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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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명암을 미완으로 남겼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무게의 시선으로 만난 첫인상은 흔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가벼운 스토리에, 이런 작품을 연재하고 있던 나쓰메 소세키는 죽음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의 글쓰기는 삶이란 나와 타자간의 충돌과 한 존재 안의 이중적 욕망의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메시지로 정돈되고 있었을까? 그의 수필이나 연설문·시론들에 비교해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작가의 마지막 소설은 예상 밖의 가벼움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치질 수술을 결정하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쓰다는 침울한 기분으로 처음 발병했을 때의 격심했던 고통을 기억하면서 불쾌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주위 사람들이 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점잔을 빼고 있는모습에 쓰다는 불쾌해진다. “자신의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과 어쩌면 바로 지금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18p)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더구나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전차 안의 승객들은 그의 눈길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19p)에 대한 자각은 앞으로 쓰다가 타자들과 만들어갈 관계에 대한 전망을 하게 한다.

 

남편 쓰다의 냉정함이 서운한 오노부는 처음 만남을 추억하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남편 때문에 외롭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지만 나처럼 못생긴 사람은 다시 태어나기라도 하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239p)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다. 한편, 외부에서는 보는 부부의 모습은 오노부가 쓰다를 손 안에 넣고 자유롭게 놀리는”(247p)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쓰다도 그녀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강인함에 불편함을 느낀다. 오노부는 재빠르고 영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사랑하는 남편 앞에서만 자신의 성품을 누르고 있다.

 

쓰다와 오노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격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관계망을 형성하며 일상을 이룬다. 감춰진 과거는 관계 안에 감춰져 있던 위기를 조명하고 쓰다와 오노부의 불안을 조성한다. 쓰다의 누이 오히데와 친구 고바야시의 암시와 요시카와 부인의 행동은 오노부를 불안하게 하고, 오노부는 남편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럼 얘기해주세요. 제발 얘기해주세요. 숨기지 말고 여기서 다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단숨에 안심시켜주세요.”(451p) 그녀의 진심이 진실보다는 안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쓰다의 옛 연인이었던 기요코의 소식을 알려주며 그녀가 있는 온천장으로 요양 가도록 하는 요시카와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오노부에게 쓰다의 비밀을 암시하는 고바야시는 이상주의자이다. 사회주의자로서 근대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요시카와 집안과 오카모토 집안(오노부의 고모부 집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쓰다의 실체를 드러낸다. 고바야시는 쓰다의 사랑을 허위라 하고, 쓰다는 고바야시의 사상을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고바야시는 오노부의 외로움을 들여다본다.

 

부인, 저는 남한테 미움을 받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일부러 남이 싫어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 존재를 남에게 인식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남의 미움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오노부 앞에 마치 딴 세상에서 태어난 듯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펼쳐졌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고 또 누구에게나 사랑받도록 해나가고 싶으며, 특히 남편에게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외 없이 세상의 누구에게나 들어맞으며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다.(253p)

 

미움 받는 행동이라도 해서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사상을 세상 앞에 보이려고 하는 그의 간절함은 세상과 융화될 수 없는 사상가,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 절절한 외로움 앞에서 오노부는 자신의 외로움을 확인한다.

 

 

미완이지만 이 작품에는 수미쌍관이 있다. 도입부에 등장한 레일 위의 전차는 후반부 온천으로 향하는 그가 탄 경편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도입부, 병원에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쓰다의 생각은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우연, 우연, 하는 이른바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19p)이라고 한 푸앵카레를  떠올린다.

후반부, 온천으로 향하는 쓰다가 탄 기차(경편)는 탈선하고 여러 번 앞으로 밀었다 뒤로 되돌리는 과정을 반복한 뒤 제자리로 돌아온다. 함께 탄 노인들은

또 늦어지고 말았군, 친구, 덕분에 말이야.”

누구덕분에 말이죠?”

경편 덕분이지. 하지만 이런 일이라도 없으면 졸려서 안 되네.”(523p)

라는 느긋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은 이 경편이 늘 탈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예상하고 있었다.

푸앵카레의 말처럼 인생에서 만나는 우연이라고 하는 사건들은 사실 예측 가능한 것들이다. 인생의 단계·시기마다 겪어야 할 일들이 찾아오고 관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노부의 행동에서도 사람들에 대한 예측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쓰다가 기요코를 만나고 미완으로 마친다. 그가 온천마을에 도착해서 나는 지금 이 꿈꾸는 듯한 것이 연속된 곳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꿈, 지금도 꿈, 앞으로도 꿈, 그 꿈을 안고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524p)라고 생각한 것처럼 결말이 날지 모르겠다. 그럼 그는 무엇 때문에 도쿄를 떠나 거기까지 갔을까?

 

쓰다는 적막한 마을을 지나며 희미한 전등 불빛과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가로놓인 커다란 어둠을 비교했을 때”(524p) 꿈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암을 만들어내는 빛은 희미하다. 그래서 꿈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지식인의 이상도 과거의 사랑도 희미한 빛이다. 도쿄에 있는 아내 오노부는 현실이고 그가 만나러 가는 기요코는 꿈이다. 빛과 어두움, 현실과 꿈은 삶에 혼재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타인들과의 관계가 끼어들고, ‘명암을 만든다. 인생은 관계가 만들어낸 의미들로 이루어진다. 그 관계망의 점들에 사람이 있다. 지나온 시간 속의 사람, 관계, 사건이 만들어낸 의미는 현재의 나를 비추는 빛이다.

 

놀라운 일은 이와 동시에 현재의 내가 천지를 다 가리고 엄존하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이다. 일거수일투족의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이 ()’라는 존재가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이월하고 있다고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심경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기준을 두고 자신의 뒤를 돌아다보면 과거는 꿈이 아니다. 아주 명백하게 현재 나를 비추고 있는 탐조등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정월이 올 때마다 나는 역시 보통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나이를 먹고 늙어 쓸모없게 되는 상태가 된다.

생활에 대한 이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그리고 모순 없이 공존하고, 상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의 논리를 초월하고 있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나는 지금 아무것도 설명할 의도가 없다. 혹은 해부할 수완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연초에 즈음해서 나 자신은 한 형체 두 모습이라는 견해를 품고 내 전 생활을 다이쇼 5(1916)의 조류에 맡길 각오를 할 뿐이다.”

(188~189p 점두록」 『나의 개인주의 외나쓰메 소세키)

 

점두록은 그가 명암을 연재하기 몇 달 전에 쓴 글이고 같은 해에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을 미완으로 둔 채 삶을 마감했다. 말한 것 처럼 그는 일거수일투족의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이월하고 그 과거로부터 현재를 탐조한다. 그렇게해서 조명되는 그의 안에 공존하는 두 모습에 대해서 설명할 의도가 없다. 그런 글쓰기를 명암에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힘을 빼고 애써 부인하지도 강조하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읽었다. 5년 전 죽음 앞에까지 갔었던 작가는 오히려 가벼움을 취하여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가볍게 보였던 작품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중요한 의미들을 생성했고, 미완의 여백에 무게를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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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11 0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소세키 소설 다 보시고 이렇게 상도 받으셨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11 08: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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