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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도쿄를 향해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 청년 산시로. 그가 고향을 출발했을 시점에는 자긍심과 설레임 같은 감정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낯선 곳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있을 불안감과 함께. 이 불안감은 도쿄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더욱 커져가고 실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안의 불씨는 여인들의 얼굴 피부색을 보는 산시로의 생각에서 보인다.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그 얼굴색이 밝고 희어지는 것을 보며, 낯선 느낌이다. 고향의 색을 가진 여인, 친근함을 느끼지만, 그녀의 대담함에 위축되는 느낌, 낯선 곳으로 향하는 그에게 시작된 난처함이다. 뭔가 대범한 모습으로 기분을 떨쳐보려고 한 그는 기차 옆자리 사내(히로타 선생)의 무심함, 시니컬함에 다시 무색해진다. 그는 드디어 구마모토를 떠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여행자가 아닌 것이다. 이제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한 도쿄에서 살아야 한다.
개화된 도쿄에 도착해 아주 많은 것에 놀란다. 도쿄는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서양의 300년을 40년 동안 되풀이 하며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었다. 그는 자신이 “호라가토게에서 낮잠을 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라가토게: 교토와 오사카 경계에 있는 고개, 1582년 야마자키 전투때 이 곳에 진치고 어느 편에 가담할지 형세를 관망했다는 쓰쓰이 준케이의 고사에서 나온 말) 그는 “도쿄 한복판에 갇혀 혼자 울적해 한다.”(37p)
어머니가 편지로 소개해 준 노노미야에게서 도쿄의 지식인, 기차에서 만난 사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쩌다 그의 집에 혼자 있게 된 산시로는 집 옆의 철로에서 이름 모를 여인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 장면은 산시로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몸의 반쪽이 잘라졌는데도 온전한 여인의 얼굴,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여전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부조리는 유미주의적 표현이다. 그 밤에 산시로는 ‘노노미야와 아는 여인일까?’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목숨을 끊은 것일까?’ ‘그래서 노노미야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한다. 불안이 극대화 되고 신경쇠약의 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세키가 영국에서 불안 증세로 신경쇠약을 앓았다고 한다. 그 경험에서 나온 글이라 추측된다.
병원 앞의 연못가에 서있는 미네코를 보게 된 산시로는 “모순이다”라고 중얼거린다. 낯선 여인에게 느낀 설레임이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함과 모순이라는 뜻일까? 이제,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그녀와 연결되어 있고, 그가 가는 장소 또한 그녀가 지나간 자리다. 욕망이 자랄 때 불안도 커가는 법. 미네코를 향한 마음이 커갈수록 노노미야와 미네코를 바라보는 불안함은 커져간다. 청춘은 서툴다. 미네코의 태도나 말투에서 독자는 어렴풋이 느낀다. 그녀의 마음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교태를 흘리는 여인의 마음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길 수는 없겠으나, 그녀에게 있는 이중적인 욕망 때문에 산시로도 그녀도 어쩌면 또 다른 한 남자도 길을 잃게 된다. ‘스트레이 쉬입(stray sheep)’이다.
청춘은 서툴다. 욕망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도쿄의 한 복판에서 개화의 바람을 맞고 있는 지식인들의 마음을 비유하는 듯하다. 빗나가는 마음의 방향을 알아채지 못하고 부질없는 희망에 들뜬다. 23세의 청년 산시로의 첫사랑은 근대화의 희망과 불안감 속에서 열병처럼 들떴다가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는 회화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연못가 언덕에 서있는 미네코의 모습과 그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도 그림 같다. 그가 받은 느낌은 “아름다운 색채라는 것뿐이었다”(45p)고 한다. 바닥에 떨어진 하얀 꽃과 “화려한 색에 흰 참억새 무늬가 새겨진 오비”(46p) 역시 미적이다. 이 오비(기모노의 허리 부분을 감싸는 띠)를 보는 시선은 조지훈의 『승무』에서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을 떠올리게 한다. 국어 참고서(고등학교때)에서 해설했듯, 버선이 관능미를 보인다는 해석이 맞다면, 아마 오비를 본 산시로의 느낌이 그렇지 않았을까 한다.
“여자들 바로 아래가 연못이고, 연못 맞은편이 높은 절벽으로 된 숲이며 그 뒤에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풍의 화려한 건물이 있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해가 그 모든 것들 너머에서 비스듬히 빛을 비추고 있다. 여자는 그 석양을 향해 서 있었다. 산시로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낮은 그늘에서 보면 언덕 위는 무척 환하다. 한 여자는 눈이 부신 듯 부채로 이마 위를 가리고 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모노의 색, 오비의 색깔은 몰라도 조리를 신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두 여자가 산시로 앞을 지나갔다. 젊은 여자는 지금까지 향기를 맡고 있던 하얀 꽃을 산시로 앞에 떨어뜨리고 갔다.” (44~46p)
산시로 앞에 있는 세 개의 세계, 한 세계는 메이지15년(1882) 이전의 향기가 나는 세계이고, 돌아가고자 하면 당장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세계는 이끼 낀 벽돌 건물이 있는 대학이다. 2·30년에 걸쳐 조금씩 쌓인 귀중한 먼지(지식)가 있는 곳이고, 그것은 미래를 이겨낼 만큼의 조용한 먼지다.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현세를 모르기에 불행하고 화택을 벗어나니 행복”(106p)하다. 그들은 히로타 선생이고, 노노미야이다. 세 번째 세계는 봄처럼 찬연히 흔들리고 있다. 은수저, 환성, 우스운 이야기, 샴페인이 있고, 특별히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곳이다. 청춘의 욕망이 있는 곳이다. 산시로에게는 이 세 번째 세계가 가장 의미심장하고 자신이 속해야 할 세계인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을 속박하여 자유롭게 출입해야 할 통로를 막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106~107p)
산시로는 어느 세계에 속하게 될까?
대학 새내기 시절, 아직은 싸늘한 바람 속에서도 캠퍼스는 들뜨게 했다. 세상은 불의에 앓고 있었고, 둘러 앉아 우리가 배워왔던 허상을 씻어내고 진실을 마주하며 토론하던 자리들이 기억난다. 찬란한 꽃그늘 아래 하얗게 서린 최루가스 냄새, 그 와중에도 마음을 설레던 청춘의 들뜸,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험과 불의한 세상 사이에서 결단을 요구받던 불안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히로타의 철학, 노노미야의 학문, 요지로의 잡지발간과 연극상연은 개화라는 시대적 자극에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현대일본의 개화」) 소설의 중간중간 나오는 히로타의 사상 ‘노악가(露惡家)’(200p)와 「하이드로타피아」(268p)에 대한 이야기는 소세키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개화에 대한 욕망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는 세대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답은 그의 개인주의 ‘자기본위’ 사상에 있다. 이후의 작품들과 연설, 에세이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서부터 언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