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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외투』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걸쳐 다른 주제로 변주가 가능한 소설이다. ‘외투’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필수품 그 이상을 상징한다.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욕망의 대상, 욕망의 기원을 생각해보게 된다. 한 인간이 빼앗긴 무엇-외투와 같은 물건일수도, 권리와 같은 관념적인 것일 수도 있는–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관련하여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찾을 수도 있다. ‘외투’는 새로운 의미들을 환유하고, 다른 사물로 대체될 수 있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외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도 그렇지만 그의 이름을 짓는 과정은 그의 미천함을 보여주고 있다. 의성어일 뿐 특별한 의미가 없는 아까끼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그는 어느 관청의 말단 9급 관리이다. 서기로서 서류를 정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근무했다.”(59p) 약간의 응용을 요구하는 문서 작성을 맡겼을 때 그는 부담이 되어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다소 낮은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뻬쩨르부르그의 겨울에 부는 북풍은 박봉의 하급관리에게는 가장 큰 적이다. 여기저기 덧대고 기워서 입던 낡은 외투가 더 이상 수선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돈과 상여금을 다 모아서 비싼 외투를 맞춰 입는다. 그로서는 큰 결심이었고, 이를 위해서 앞으로 극도의 내핍생활을 해야 했다. 외투가 완성되고 직장으로 출근한 그는 상사가 여는 축하파티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뜬 마음으로 걸었던 광장에서 외투를 강탈당한다. 외투를 찾으려고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되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직장동료의 충고대로 고위관리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 관리는 절차를 무시하고 찾아온 그에게 호통을 치고 모욕을 준다. 상심한 그는 추운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열병에 걸려 앓다가 죽는다. 그 후 뻬쩨르부르그의 밤거리에는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아 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아까끼에게 외투는 무엇일까를 질문하게 된다. 외투에 들어갈 돈을 보상하느라 저녁을 굶었지만 그 대신 완성될 외투를 상상하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72p) “그 자신의 존재는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으며,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하기로 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삶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았다.”(72p) 그는 생기가 돌았고 성격이 강인해지고, 외투 생각을 하며 산만해지기도 했다. 여인에 대한 욕망과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욕망을 눈뜨게 한 대상이었고, 이제까지 느껴보지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완성된 외투를 받던 날은 “그의 생애에 가장 장엄한”(74p) 순간이었다. 그 외투를 입고 출근한 날 어떻게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직장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황한 그는 사실 그 외투는 새것이 아니고 헌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이전에 받지 못했던 주목과 관심이 그에게는 벅찼을지 모르겠다. 이 외투 때문에 파티에 초대를 받고 처음으로 걷는 밤길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축제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는 파티에서 사람들의 놀이에 어울리지 못하지만 외투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안타깝게도 떨어진 외투를 주워서 먼지를 털어 입고 밤거리를 나선 그는 지나가는 여자를 갑자기 쫓아가고, “몸 전체가 특별하게 움직인다.”(80p) 의외의 행동이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욕망들이 몸으로 표출되고 있다.
오래 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당시 사회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비판에 시선을 고정하며 의미를 읽어냈었다. 계급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욕망의 대상으로서 ‘외투’를 바라보았다. 그가 욕망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이고 타자의 욕망을 소유함으로서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그를 보았다. 재독(再讀)하면서 중요한 의미를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인 내가 아닌 아까끼는 이 ‘외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만일 그가 사회로부터 주입된 욕망으로서 외투를 받아들이고 있다면, 명품백, 자동차처럼 과시하려는 태도를 보일텐데 오히려 그는 그것을 홀로 즐기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외투의 옷감을 고르고, 매일같이 재단사 뻬뜨로비치를 찾아가 이야기를 하고, 거기에 덧댈 가죽을 상상한다. 80루블이라는 돈의 가치를 넘어, 소유의 개념을 넘어, 애착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겨울을 나기위한 생존 필수품,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고급재료와 아름다운 디자인을 얼마든지 가미할 수 있는 외투 그 이상이었다는 생각이다.
외투를 빼앗긴 후, 마치 연인을 잃은 사람처럼 제 정신이 아니다.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얼이 빠져 있었다. 되찾으려는 노력은 다 수포로 돌아가고 모욕적인 말만 들었다. 그의 열병은 고급관리로부터 들은 모욕으로 인한 수치심이 원인일까? 아니면 외투를 잃어버린 상심 때문일까? 두 가지가 다 복합되어 있겠지만 후자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이 소설의 소재가 된 고골이 들었던 이야기에서 그 힌트를 얻었다. 어떤 가난한 장교가 돈을 절약하여 모은 전 재산으로 고급사냥총을 장만하였다. 오리 사냥을 나간 첫날 물에 빠뜨려 잃어버리고, 열병이 나서 누워버렸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직장 동료들이 돈을 모아 새로운 총을 사주었다. 그는 다시 생기를 되찾았지만, 그 때의 이야기만 나오면 다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곤 했다는 이야기이다.(참고; 85p,『러시아문학의 하이퍼텍스트』,조주관) 웃음을 목적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고골은 상실로 인해 마음이 상해 죽을 수도 있는 인간의 마음을 보았고 아까끼라는 인물과 ‘외투’를 만들어 냈다. 상실로 인해 오랜 불면의 밤을 지내 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왜 어떤 것을 잃어버림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일까?
아까끼는 새로운 외투를 입은 자신을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초대해주는 관계의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동안 받지 못했었던 환대를 받으면서 자신도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은 평소에는 감히 알지 못했던 욕망들을 깨운다. 아까끼에게 외투는 욕망의 대상이 아닌 욕망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고, 존재의 일부가 된 것을 잃었다면, 그 상실은 실연처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 절망의 심연을 가늠할 수 없다. 타인의 상심을 대할 때 그 이유가 사소해 보일지라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까끼의 유령이 출몰해서 사람들의 외투를 벗겨가고, 관리에게 받은 생전의 억울함을 풀고 있는 환상적 결말은 그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아까끼의 욕망의 크기를 나타내는 극적인 장면이다. 생전의 왜소하기만 했던 그의 몸은 유령의 커다란 몸집과 대비된다. 또한 사람들의 놀림에 겨우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58p)한 항의와 비교되는 “‘넌 뭐야?’라고 물으며 커다란 주먹을 내미는”(96p) 유령의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관의 외투를 빼앗아 입은 유령은 “전보다 키도 훨씬 큰 데다 위엄 있어 보이는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96p) 호통치고 타인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갈 힘과 권력은, 비틀어진 모습이긴 하지만, 그가 사회에서 학습한, 존재가 인정받는 방식이다. 왜소하고 제한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욕망은 있다. 그것은 그 내면에서 커가고 실현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외투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이 욕망이다.
혹시 나는 사회적 타자들의 욕망을 웃음으로 대한 적은 없을까? 그들이 이유를 대며 눈물을 흘릴 때 공감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서있지는 않았을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사회를 비판하고 정의를 말하느라 아까끼를 개별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라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함으로 놓쳐 버린 그의 욕망과 상심의 깊이처럼,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고 지나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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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골의 소설집에 수록된 <외투>외 중단편, <코>,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키 거리>의 인물들이 살았던 뻬쩨르부르그 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라스꼴리니코프가 살고 걷게될 장소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사회적 관심과 비판적 시선이 고골의 문학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갖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을 그리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몸을 이탈한 코, 광인들, 유령이 출몰하는 사회,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억울함을 푸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떠한가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