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실행했다고 알려진 세균전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부대와 지방 항공 감시소들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 169개 지역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곤충들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15개 지역에 대한 전문가의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그곳들에서 발견된 곤충이 1952128일과 312일 사이에 확증되었다. 많은 경우에서 특별한 종류의 파리, 벼룩, 거미 딱정벌레, 빈대, 귀뚜라미, 모기와 기타 곤충들이 발견되었으며, 그 대부분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었다. 곤충들은 많은 경우,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예컨대 눈 위와 강의 얼음 위, 그리고 풀과 돌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곤충이 나올 수 없는 대단히 낮은 기온을 고려할 때, 또한 그 곤충들이 왕왕 한 장소에서 같이 발견할 수 없는 파리, 거미와 같은 각양각색의 곤충들로 구성된 집단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곤충들이 나타난 것은 의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전문조사 결과 곤충들이 병균에 감염되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곤충들은 인공적으로 배양된 것으로 생각된다.

 

1952223일 평안남도 평원군에서는 산 위에 파리와 생선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생선들은 거의 썩어 있었으며 콜레라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 생선들은 산 위에 잘못 투하된 것으로 생각된다. 발견된 세균 종류는 급성 콜레라, 파스토르, 페스트, 에비텔라, 리브스, 바칠루스, 파라브스등이었다.

 

파리는 토종의 한국 파리와는 다른 이상한 것들이었다. 발견된 파리는 날개가 길었으며 조금 벌어져 있었다. 몸집은 큰 편이었으며, 머리는 토종 파리의 그것보다 비교적 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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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9-02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피해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한국 전쟁 당시의 생화학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여러 의미에서 ‘잊혀진 전쟁‘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NamGiKim 2020-09-02 14:33   좋아요 1 | URL
괜히 브루스 커밍스가 Forgotten War 라고 한 것은 아니겠죠.

독서가 한량 심씨 2020-09-02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치산소설 보면 재귀열이란 병이 돌아 전력을 많이 잃어버리는데...바로 세균전이군요.

NamGiKim 2020-09-02 14:34   좋아요 0 | URL
영화 남부군(빨치산 출신 이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을 보면 재귀열로 고생했다는게 나오죠.
 
현장과 광장 2020.5
현장과 광장 편집부 지음 / 현장과광장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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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올해 7월에 노동전선 단체 전선지에 실린 필자의 서평입니다.)

2020년인 올해는 미국과 이란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COVID-19라 불리는 질병이 창궐하는 속에서 우리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많은 문제와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경제공황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고, 우리사회의 마비시키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생물학 질병은 백신이 나오지 않았기에, 어느 한 구역에서 전파되면 그 구역을 전면 봉쇄하고 사람들까지 격리시키는 조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와 마비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 노동전선에서 발행한 아주 좋은 책을 읽게 됐다. 바로 ‘현장과 광장 2호’다. ‘현장과 광장’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여러 사람들의 글을 다양한 주제로 묶은 이 책을 통해 과학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것이었다. 박하순 선생의 ‘코로나 공황’과 노동자운동의 대응과 손미아 선생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대유행을 통해 본 자본주의 모순과 대안이라는 두 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자본주의의 문제는 참으로 잘 분석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타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서 항공기는 계류장에 멈춰서 있고, 관광객들을 받던 호텔은 사람들이 오지 않으며, 올해 국내에서 계획된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량의 실업자 발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움직이는 행위를 평소보다 줄이게 되니 아마존(amazon)과 같은 인터넷 운송 및 배달 사이트들은 추가적으로 채용하는 일이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 3~4월 기준으로 최소 4주 동안 2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민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즉 자본주의는 질병뿐만 아니라 인민대중의 직장을 보호하기 보단 기업의 이윤을 보다 더 우선시하는 체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나온 고희림 시인의 ‘돈으로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시는 참으로 가슴이 아픈 시였다. 노동이라는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와서 저임금 고착취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비유되는 네팔에서 온 테즈 바하두르 구릉씨나 처빌 랄 차우다리씨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현장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갈취’ 따위의 저급한 시각이 대다수를 차지할 뿐이다. 역지사지라 했다. 우리는 여기서 과거 해외로 가서 저임금 고착취를 당하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나가던 한국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노동은 누군가는 회피하는 행위이지만,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소위 히틀러의 나치즘이 강요하던 시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저개발 국가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고착취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착취함으로써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19세기 고도의 자본주의를 발달시켜 식민지에다 값싼 원료를 팔아 경제를 부흥시킨 제국주의 국가를 연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즉 자본주의 사회 또한 그런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주제 중 하나는 ‘페미니즘(Feminism)’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경우 현재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이슈가 되면서 쉽게 판단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이것이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이나, 성폭행, 미투운동 등이 얘기가 나오면서 쉽게 얘기하기가 힘든 주제였던 것 같다. 노동전선의 천연옥 선생이 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은 여성해방과 현재의 페미니즘이 어떠한 차이가 있고, 과거 여성 해방운동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그리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까지 그들의 주장과 생애를 통해, 현재 남성의 생물학적인 영역으로만 주로 비판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노동계급과 남성노동계급의 연대와 자본주의 철폐투쟁을 외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여성해방론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2019년 11월 기준으로 ‘남녀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보면 남자 노동자 임금이 100이면, 여자 노동자 임금이 70.7%,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100이면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62.9%, 남자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남자 비정규직 임금이 62.1%, 여자 정규직 임금이 74.1%면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52.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단결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해방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의 기원이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 남성의 지배가 아닌, 사적소유의 발생·발전에 따른 사회의 경제적 관계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철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아무튼 이 글을 통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을 얘기하자면, 송필경 선생의 ‘쿠바와 체 게바라’다. 2년 전 글쓴이가 쿠바 여행을 통해 본 쿠바 사회는 비록 가난하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사회다. 수백 년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배와 수십년간의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 지배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복지를 달성한 쿠바사회는 소위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유럽이 해내지 못한 것들을 비록 미약하지만 달성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국제주의라는 사상으로 무장한 쿠바의 의사들은 단순히 자본에 혹한 의사가 아닌 인류애적 혹은 의사적 사명을 가지고 인민의 아픔을 치료하는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쿠바가 미제국의 극심한 경제 고립을 겪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키고 실행해온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는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점에서 시사해주는 부분이 많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백철현 선생의 ‘무정부주의의 정치적 본질과 이 본질로부터 나오는 반혁명적 특성들’이나 김성구 선생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부분에서도 책을 통해 학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얻어야할 결론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한 사회를 이룩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맹아나 다름없는 미국은 현재 열악한 대중의료로 인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확진자가 올해 3~4월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 200만 명을 돌파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망자도 급증하여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미국인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거기다 이런 전 세계적 위기속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라는 문제도 겹처 수많은 유색인종들과 양심 있는 미국인들의 반발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회의 문제들을 야기하고 확산 그리고 재생산할 뿐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철폐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고질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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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 친일파와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아버지일 뿐이다

 

이승만그는 총 90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던 1875년 조선 후기에 태어나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을 감행하던 1965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사망했다이승만은 독립운동 시절부터 1960년 대통령 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수히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

(이승만 동상, 2010년대에 이승만을 맹신하는 광신도 집단이 기어이 동상을 만들어 놓았다.)

 

1907년 장인환 전명운 열사가 단행한 스티븐슨 처단 사건의 변호를 교민들로부터 부탁받았던 이승만는 기독교 정신따위를 내세우며 이를 거부했다. 1910년대 하와이에서 머물 당시 그는 일본에 적대적인 교육을 하지 않았으며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대신 조선의 통치를 해야한다는 위임통치론를 주장했었다. 1919년 이승만은 기호파의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총령자리에 오른 그는 임시정부 분열의 상징이었으며, 1925년 탄핵 당했다그리고 그는 자신의 돈줄을 위해선 살인과 협박 폭력도 일삼았으며독립운동 자금을 횡령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1932년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가 단행한 이봉창 윤봉길 의거에 대해서 이승만은 주제넘게 망발을 했으며미국에게 빌붙어 활동했던 것 외에는 사실상 독립운동사에서 한 것이 없었다이승만은 1920년대부터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혐오했다자신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미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맹신적으로 따른 것이다그의 극단적이고 폭력과 증오가 점철된 반공주의적 성향은 해방 이후 그가 친일세력과 결탁하며 민중을 대상으로 했던 온갖 폭력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이승만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후 한반도 분단이라는 비극의 씨앗을 심어놓았으며대구 10.1 항쟁제주 4.3 항쟁여순민중항쟁 그리고 한국전쟁에서의 국민보도연맹학살에서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이승만을 찬양하는 유튜브 방송, 뉴라이트를 포함한 이들은 지금도 대대적으로 그를 미화하는 영상을 양산 및 재생산 해내고 있다.)

 

이승만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모자를 것이 없는 광란의 학살자였다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 학살로만 죽은 민간인이 최소 30만 명을 넘어섰으며전쟁 중 청년단과 군경의 보복으로 일어난 민간인 학살까지 합치면 최대 100만 명까지 추산하기도 한다이런 광란의 학살극은 이승만이 항상 내세웠던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합리화 됐고이승만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죄책감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을 더 증오했다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애국자로 생각했고사회주의자들을 민족반역자로 생각했다따라서 그의 사회에선 과거 사회주의자였던 조봉암은 간첩 내지는 민족반역자로서 생을 마감했지만,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악질친일경찰을 지냈던 노덕술은 애국자로 칭송받았던 것이다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자 이승만이 한반도 이남에 만들어낸 아주 모순적인 구조였다. 1960년 마산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고 사망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바다에 빠뜨려 증거인멸을 시도했던 경찰 책임자도 일제시절 악질친일 경찰이었고조봉암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형장의 이슬로 보낸 판사도 친일경력을 가진 판사였다.

 

대한민국 사회가 친일세력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유에는 그들을 애국자로 둔갑시켰던 이승만이 있다결과적으로 친일파 청산 실패와 광란의 민간인 학살극은 이승만이 주도했다이처럼 이승만의 행적에는 무수히 많은 과오들이 존재한다그러나 아직도 일각에서는 친일파의 아버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 따위의 용어로 미화하고 합리화시킨다이승만을 합리화시키는 이들의 수법은 참으로 집요하고 사악하다이들은 이승만이 생전에 저지른 악행들을 자유민주주의’, ‘반일애국투사’, ‘부자나라 한국 가난한 나라 북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국충정’, ‘좌익소탕’, ‘공산화 방지’ 따위의 용어로 각색을 하며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운다.

(남한과 북한의 지도, 이러한 지도는 소위 극우들이 남한 우월주의를 내세울때 많이 사용된다. 근데 이 사진은 역으로 한국은 24간 내내 불이켜져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도리어 이게 인민들 건강에 무조건 좋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기는 할까?)

 

정리하자면 뉴라이트를 포함한 친일친미 제국주의자들이 이승만을 내세우는 데에 가장 큰 논리의 핵심에는 경제가 있다즉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추구했던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였기에 부유한 나라가 됐고반면 이승만이 싫어하던 공산주의 나라 북한은 사회주의를 선택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됐으며세계최악의 빈곤국이 되었다는 논리 말이다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했을 때과거 1960년대나 70년대와는 달리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훨씬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이 남한사회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증거로는 자리매김할 수는 없다그리고 북한이 못산다고 해서 실패한 국가라 보는 것도 지극히 우월주의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19세기 서구열강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듯이 말이다어떻게 보자면 제국주의 논리의 판박이다.

 

추가적으로 얘기하자면 현재 한국사회가 코로나 상황에서도 재난지원금이나 무상에 가까운 코로나 관련 진료를 하는 것은 절대 이승만이 추구했던 사상이 아니다아니 오히려 이것은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사회주의적인 복지원리를 일부분 받아들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즉 이승만의 자유주의적 사상대로 하자면 현재 우리는 코로나 시국에서도 자비로 치료받고돈 없으면 병 걸려 죽어 마땅하다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다이승만식 자유주의 논리라면 재난지원금도 받아선 안 된다그런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니까하지만 현재 재난지원금을 안 받거나 코로나 걸렸을 때코로나 무상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뉴라이트 세력들은 거의 없다이것만 보더라도 이승만식 자유주의 사상이 얼마나 끔찍한 사상인지 알 수 있다.

 

뉴라이트 세력들이 이승만을 치켜세우며 소위 경제의 논리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정통성이라는 문제가 있다왜냐하면 이승만 정권 자체가 북한과는 달리 친일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권이었기 때문이다따라서 현재 북한은 근현대사를 얘기할 때 자신들의 항일 정통성을 얘기하는 반면남한의 뉴라이트 세력들은 경제와 자본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것이다이들이 내세우는 경제적 논리는 매우 천박한 논리이다경제력은 그 나라가 얼마나 돈이 더 많은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뿐그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그리고 이런 경제적 논리 자체는 제국주의에 긍정적인 뉴라이트들이 가지고 있는 아제국주의적 요소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관련 여론조사, 충격적이게도 찬성이 64%나 나왔다. 참고로 이승만도 해외 파병을 좋아했다. 그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영국과 미제국의 수에즈 운하 폭격때 군대 파병을 얘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신처럼 모셔 받드는 뉴라이트들은 미국하면 껌뻑 죽는다마치 이승만이 미국하면 모셔 받들었듯이 말이다이들에게 있어 미국은 단순히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구해준 구원의 나라다그래서 마치 기독교 신자가 예수를 맹신적으로 떠받들 듯이 그들 또한 미국을 맹신적으로 떠받든다이들에게 있어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사탄에 가까운 빨갱이고 좌익분자일 뿐이다즉 미국은 비판해서는 안 될 신성한 영역에 가까운 것이다그래서 현재 뉴라이트들은 올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때, “이란 파병 적극지지” 따위의 집회를 열었고이란 전쟁 반대 집회를 종북 빨갱이로 몰아갔다이들이 미국을 이렇게 까지 떠받드는 것은 그만큼 이승만의 사상과 정신을 신봉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얼굴의 이승만, 친일인명사전으로 유명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이승만의 진실을 아주 낱낱이 잘 파해친 영상이고, 많은이들에게 시청을 권하는 명작이다.)


(독부 이승만 평전,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선생이 집필한 평전이다. 이 책 또한 이승만의 진실을 아주 낱낱이 파해쳤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썼다. 많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이처럼 이승만은 친일파와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아버지일 뿐이다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 친일파의 아버지였으며신제국주의 미국을 신봉하는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아버지였을 뿐이다해방 이후 미국과 결탁하여 친일세력을 등용하고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던 이승만의 후예가 바로 뉴라이트와 같은 극우세력들이다이번에 이승만 악행사를 연재했던 이유는 이들이 추종하는 이승만의 실체를 낱낱이 알리기 위함이었다이승만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무수히 많은 그의 악행들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2018년 독재자이자 파시스트인 프랑코의 묘가 파였듯이이승만 또한 후세대에게 그런 준엄한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이제 이승만 악행사의 연재를 마치도록 하겠다.

 

그 동안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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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0-08-29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어요!! ^^

NamGiKim 2020-08-29 17: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조만간 다른 주제를 연재시리즈로 올릴 생각입니다.^-^

청아 2020-08-29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기대되네요! 많이써주세요^^👍

막시무스 2020-08-29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꾸준하게 하나의 주제로 밀고 나가시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음 주제도 기대 잔뜩할께요!ㅎ

NamGiKim 2020-08-29 23: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음주제는 천천히 결정하겠습니다. 사실 연재하는게 쉽진 않아요. ㅎ

행인96 2020-09-02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간 고생많으셨습니다 :)

NamGiKim 2020-09-02 22: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다른 주제를 연재할 겁니다.ㅎ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종북좌파? 와 우방 미국을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이란에 파병하는 종북좌파가 이세상에 어디있냐? 그 세 사람에게 종북좌파라 하는거는 그냥 논리고 뭐시기도 없는 매카시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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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8-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리고 영화 강철비2에서도 스무트한테 아부하는거 봐봐. 이게 한국 대통령의 본 모습이지.
 

이승만 정권 몰락 이후와 그의 죽음

(철거되는 이승만 동상, 4.19 혁명 이후 시민들은 이승만 동상을 철거하였다.)

 

1960년 4월 26일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이것은 이승만 개인이 민주주의를 위한 선택이 절대 아니었고, 4.19 혁명에서 수많은 민중이 피를 흘리며 투쟁해서 얻어낸 결과였다그로부터 2일 뒤 이기붕 일가는 집단자살로 역사속에서 사라졌고이승만은 그들이 죽은 현장을 직접 가서 참사 현장을 잠시 둘러보고 경무대를 떠나 걸어서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승만 동상 철거 소식을 전한 대한뉴스)

 

1960년 4월 27일 국회의 결의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이 발표되자 허정 외무장관이 자동적으로 대통령 서리에 취임했다이리하여 장면 내각이 들어서고 허정 과도정부가 만들어진 것이다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한국사회에서는 새로운 발걸음이 생겨났다이승만 숭배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던 이승만 동상은 민중의 손으로 무너져 내렸다. 1948년 여순민중항쟁 때나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유족들은 유족회를 결성하기도 했었다.

 

또한 4.19 혁명 이후 극심한 반공 체제에 도전하며 통일 문제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는 운동도 출현했다기존에 이승만 반공 정권이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정복주의적 비젼인 북진통일론에 대립되는 통일 방안이 바로 그것이었다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구호가 가라 북으로오라 남으로!”였다당시 급진적인 지식인과 학생은 자립적 경제 발전을 원하기도 했고이는 종종 반미 구호를 통해 표현되기도 했으며반제국주의적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집필했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는 당시 남한 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4.19 혁명 이후 시민들 중 일부는 이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것은 이승만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던 북진통일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일을 추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서울의 지배 집단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시련이전쟁 전의 시기를 상기시키는 시련이 시작되었으니그것은 다름 아닌 명백한 좌경화 경향이었다.”

(장면, 장면은 이승만 정권 당시 야당에서 활동하며 그와 경쟁했다. 4.19 이후 허정 과도내각을 이끌었고,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이 해방 이후부터 만들어 놓은 반공주의적 토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가 물러난 이후에도 당시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알려진 반공주의자 맥아더의 동상에는 대대적인 헌화가 쌓였었다또한 이승만 정권 이후 등장한 장면의 민주당 정부는 데모규제법과 반공법을 도입해서 민중운동을 억누르고자 했다이승만 정권 몰락 이후에 들어선 장면 정부 또한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반공사상에선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른 이승만과 그의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 리)

 

1960년 5월 29일 이승만은 하야한 지 1달 3일 만에 부인 프란체스카만 동반하고 하와이 동포 몇 사람이 제공한 대만 CAT 전세기편으로 비밀리에 김포공항을 떠나 하와이로 망명하였고이것은 이승만 인생에 있어 마지막 망명길이었다이승만은 정말 마지막 까지도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이승만은 4.19 혁명과 자진하야 그리고 망명길에 오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이 12년간 저지른 온갖 악행과 폭정 그리고 4.19 혁명에서 일어났던 사상자에 대해서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마치 한국전쟁에서 거짓방송을 해놓고도 국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1960년 한국과 북한의 경제 차이,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이야 한국이 앞섰지만 당시 한국은 북한 경제 규모에 두배나 더 작은 규모였다.)

 

이승만이 떠난 한국의 경제상황은 참으로 처참했다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빈곤은 4.19 혁명 이후에도 끊이질 않았다이승만의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였다심지어 한국전쟁 당시 남한보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던 북한보다도 훨씬 경제력에서 밀리는 상황이었다. 1953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소련과 다른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그랬듯이 전후재건에 착수했고, 1956년에는 소위 천리마 운동이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여 경제성장과 전후복구에 성공해냈다또한 북한은 다른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경제원조도 받았다. 1960년 당시 북한의 경제규모는 세계 50위에 오르게 되었지만남한의 경제규모는 북한보다 2배나 작은 101위였다.

 

따라서 이승만 정부를 세워 반공보루를 강화하려 했던 미국의 반소련 반공정책도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실제로 미국은 4.19혁명 이후 가난한 한국인들이 북한으로 흡수되는 것을 원할까봐 매우 노심초사했고 두려웠다그러던 1961이승만이 하와이에 망명한지 1년이 되던 해 한국에선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이것은 과거 이승만에 반대했던 일부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였다바로 5.16 쿠데타였다이 쿠데타를 주도했던 인물은 바로 박정희(Park Chung-hee, 朴正熙)였다. 5.16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정희가 했던 일중 하나는 자유주의자 이승만이 하지 않던 일이었다바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었다거기다 박정희는 일제시절에는 만주육사에서 소위로 지냈던 친일경력이 있었고해방 후에는 남로당 경력도 있었으며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킬 계획도 세웠었다.

 

현재 이승만 세력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박정희는 이승만을 매우 싫어했었다그는 이승만을 부패한 권력자 혹은 독재자로 생각했으며그는 18년이라는 세월을 대통령으로 지내면서 이승만을 찬양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었다그가 이승만을 대신해서 국가적으로 높게 평가한 독립운동가가 있었는데바로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였다거기다 백범 김구의 아들 김신은 5.16 쿠데타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고그 또한 자신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어 했다이승만을 싫어했던 박정희는 그 대안으로 백범 김구를 민족영웅 혹은 독립영웅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높게 평가했다또한 이승만이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틈을 타 귀국하려고 하자이를 막은 인물이 바로 박정희였다즉 박정희는 이승만의 귀국의사를 수차례 거부했다.

(박정희와 5.16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 이들은 5.16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초기에 약속했던 공약과는 달리 독재정권을 유지했으며, 이승만 보다 더 긴 18년간 군림했다.)

 

박정희는 이승만을 싫어했지만이승만이 그렇게 강조하던 한가지를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바로 반공주의(Anti-Communism)’애초에 5.16 쿠데타를 할 시점부터 박정희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겠다고 명백히 입장을 밝혔었고과거 그의 남로당 경력을 의심했던 존F케네디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미국까지 갔었다오히려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 시절의 반공주의를 사회적으로 더 체계화 시켰다박정희에게 있어서도 이승만식 반공주의는 사실상 정치생명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962년 하와이 요양병원에서 찍은 이승만과 그의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 리)

 

하와이에 망명하여 아예 그곳에 정착한 이승만은 점차 늙어갔다. 1962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하와이의 한 병원에 입원하였고서서히 기력을 잃어갔다이승만은 반수(半睡상태로 몇 년을 살았다사실상 산 것도,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년을 더 산 것이다어쨌든 그는 하와이에 망명하여 거의 칩거하면서 살았다그가 반수상태로 몇 년을 더 산 것은 산삼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이승만이 병상에 누워있던 1964년 이승만이 매우 아끼고 좋아하던 인물이자 극단적 반공주의자 맥아더가 생을 마감했다맥아더가 사망한지 2달 후인 1964년 6월 말 이승만은 갑작스런 급성 위장 출혈로 쓰러졌다그는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의 헌신적 내조를 받았기에 비교적 건강했지만무엇보다 박정희가 귀국을 거절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즉 1964년 6월에 그가 쓰러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그는 결국 서서히 죽어갔다그러던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마우나리니 요양원에서 사망했다그의 나의 90이었다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그가 죽은 7월 19일은 사실상 그가 없애고자 했던 해방정국의 지도자 몽양 여운형이 괴한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던 날이기도 했다.

(이승만의 장례식, 이승만의 귀국요청을 수차례 거부한 박정희는 그가 죽자 귀국을 허락했다. 일각에서는 박정희가 이승만을 높게 평가한 것 처럼 얘기하며 그 근거로 장례식에서 박정희가 읽은 추도문을 예시로 들지만, 사실 그건 박정희가 대통령으로서 표면적으로 공개석상에서 보인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2020년에 열린 이승만 추모제, 이승만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가 죽은지 55년이 지났음에도 그를 여전히 미국의 조지 워싱턴 마냥 건국의 아버지로 찬양하고 있는 중이다.)

 

이승만이 죽자 결국 박정희는 이승만의 귀국을 마침내 허락했다이승만의 유해는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전 주한 미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Van Fleet)가 마련한 특별기로 한국에 이송됐다특별기가 한국에 귀국하자 3군 의장대에 의해 운구되어 가족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고그의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이승만은 4.19 민중혁명으로 한국에서 쫒겨난 대통령이었다그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지 않았고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에도 계속 귀국하려고 했다그는 미국유학시절부터 사망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과오를 저질렀고전혀 반성하지 않았으며계속해서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그리고 그는 뻔뻔스럽게도 국민들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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