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르크스나 레닌에 대해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은 3년전부터였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2,3번씩 읽었지만 마르크스의 대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는 자본론을 읽고는 싶었는데 너무나 압도적인 분량과 경제학 용어 때문에 읽을 염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던 중 임승수 선생의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는 자본론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원숭이도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려 사서 읽게 되었고 책 내용에 매우 만족했다.사실 난 전형적인 문돌이이기에 수학이나 경제학에 대해 굉장히 무지하다. 그런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웬만큼 이해 할 수 있었고 재밌게 읽었다. 매우 좋은 자본론 입문서다. 그러나 원숭이라는 단어를 자꾸만 보다보니 웬지 내가 이 책을 이해못하면 원숭이 보다 무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뭘까?
최근(1,2년 전)까지만 해도 김근태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떠한 일을 했는지 잘 몰랐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알라딘에서 김삼웅 선생의 서적들을 검색하다 내 눈에 가장 인상적으로 들어온 책 제목이 있었다. 바로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이다. 민주주의자라는 그 단어가 가장 끌렸다. 그리고 이 책을 사서 최근에야 읽게 됐다.우선 김근태의 행적을 소개해볼까 한다. 김근태 그는 1947년 부산 소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 그 살기 힘든 시절 그의 집안 형편은 살만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은 먹고살 만 했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교장선생이었기에 자주 이사를 하여 학교에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성적은 우수했기에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1965년은 박정희 정권이 한일회담을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졸속으로 끝내려 했던 시기이다. 청년김근태는 박정희 정권이 졸속 협상에 반대하여 다른 대학생들처럼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였다.한일협정 반대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김근태는 학생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1967년 서울대 상대 대의원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해 9월 대통령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벌이다 연행됐고 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군대로 끌려갔다. 1970년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김근태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그가 복학하기 무섭게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위한 절차를 밟았고 김근태는 이에 반대하여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였다. 1971년 그는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당했다. 그때부터 기나긴 수배 생활을 하였다. 수배 생활 도중 위장 취업하여 돈도 벌었고 후에 부인이될 민주화 동지인 인재근을 만나 결혼하였다. 1979년 박정희가 자신의 부하 김재규에게 총에 맞고 사망하였다. 18년간 지속되던 유신독재는 막을 내렸고 김근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밑에서 세력을 키워나간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들은 12,12 쿠테타를 감행하고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전두환 독재에 반대한 김근태는 1982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고 초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김근태는 조직적으로 민주화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83년 기관지 <민주화의 길>을 창간하였다. 그러던 1985년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되어 전기고문, 물고문, 통닭구이, 구타를 비롯한 인간으로서 버티기 힘든 아주 잔혹한 고문을 22일간 당한다. 그 잔인한 고문을 가장 악랄하게 한 이가 바로 이근안이다. 그 고문 사실은 후에 면회를 왔던 그의 아내 인재근 씨를 면회한 다음날 폭로되었다. 그러나 잔악한 전두환 정권은 그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5년형을 선고한다. 수감 중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나고 1987년 6.10민중항쟁으로 전두환 독재는 막을 내린다. 1988년 그는 2년 만에 석방되었고 옥중수기 [남영동]을 출간한다. 1989년 그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창설에 참여하여 정책실장을 맡는다. 그러던 1990년 민자당 반대시위를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형을 받고 1992년 석방된다. 그 뒤 여러 활동을 하다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리고 1999년 김근태는 국민정치연구회를 창립하여 지도위원을 맡고 2000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된다. 2002년 당시 대선에선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노무현 후보에게 힘을 보태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그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2004년 김근태는 보건복지부장관에 취임하여 약 2년간 가난한 사람들과 빈민들 노숙자들의 편의와 권리를 위해 헌신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김근태지만 한미FTA협상당시 빈부적 양극화를 우려하여 노무현의 한미FTA협상에 반대 했고 국민들과 함께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2008년 이명박 집권당시 한양대에서 한국정치학을 초빙교수로 강의 하였지만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반대하여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도 아주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집회에 참가하여 힘없는 약자들 시민들을 위해 항상 투쟁하였다. 그러던 2011년 민주화 운동 당시 고문으로 생긴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2012년을 점령하라”라는 말을 남긴 채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김근태 그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서민들이 보다 더 잘사는 세상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군사독재 하에서 그는 잔혹한 고문을 버텨냈고 그 이후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없는 이들을 위해 투쟁하였다. 2000년대 당시 그는 정치권에서 여러 직책을 지냈지만 절대로 사치를 즐긴 적이 없다. 부자들의 인기 스포츠 골프를 하지 않았고 매주 주말마다 동네 사람들과 축구를 즐겼다. 2004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노숙자 체험을 직접하며 그들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80년대 자기를 아주 잔인한 수법으로 고문했던 이근안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고자 했다. 만일 내가 김근태였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근태는 용서했다. 이것이야 말로 김근태가 가장 대단한 이유라고 본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기에는 정치적인 민주주의를 위해 2000년대에는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이가 바로 김근태다. 막심한 고문을 당했던 그의 과거와는 다르게 그는 항상 밟게 웃었다. 그리고 불의에는 항상 저항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때 2009년 용산 참사때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불의한 일이 벌어질 때 그는 투쟁을 지속했다. 김근태 평전을 집필하신 김삼웅 선생님의 목격담에 의하면 그는 시위도중에도 항상 젊은이들을 시민들을 챙겼고 추운 겨울에 집회할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커피와 음료를 옆 사람에게 다정다감하게 나눠줬다 한다. 그만큼 그는 친 서민적이었고 탈권위주의적이었다. 김근태가 죽기 전 그는 박근혜의 당선에 대한 예상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2012년을 점령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염원과는 다르게 박근혜는 집권했고 대한민국을 박정희 시대로 몰고 갔다. 2016년 이대총장 사퇴시위로 시작된 박근혜 퇴진 집회로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을 몰아냈고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김근태는 2012년을 점령하라 했지만 우리는 2017년을 점령함으로써 그의 바람을 성공시켰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싶다. 무튼 김근태 평전을 집필해주시고 일일이 자료를 김삼웅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풀 메탈 자켓 감상평(주의 이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스텐리 큐브릭이 만든 영화 풀 메탈 자켓을 봤다.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만든 미국영화 중에는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디어헌터와 같은 반전과 평화를 호소하는 명작 영화들이 많다. 큐브릭의 영화 풀 메탈 자켓도 명작 영화 부류에 속한다. 풀 메탈 자켓은 구성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징집된 신병들이 거치는 8주간의 빡센 훈련소에서의 생활이고 2부는 구정공세 전후와 후에(Hue) 전투에 참전한 이야기다.영화 첫 시작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삭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들의 앳된 얼굴은 대부분 겁에 질려 있거나 주눅 들어있는 얼굴이었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그들의 겪게 될 운명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이는 마치 끈질긴 적 베트콩을 상대하다 지친 미군 병사들의 얼굴과 비슷해 보였다. 훈련소에 들어온 병사들은 시작부터 매우 권위적이고 스파르타적인 교관을 만나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모욕을 받으며 8주간의 훈련을 받는다. 교관 하트먼 상사가 그들은 빡세게 훈련시키는 목적은 단 하나였다.그들을 살인마로 만들어 지옥의 베트남으로 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교관 하트먼 상사는 병사들에게 “너들은 킬러가 될 것이다.”와 같은 말을 지속적으로 세뇌시키고 병사들은 “피 피 피 살인 살인 살인 혹은 우리는 적을 죽이기 위해 해병대로 태어날 것이다” 와 같은 구호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징집된 병사 중 약간 덜떨어져 보이는 파일이라는 신병이 있었는데 그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교관에게 뚱땡이라 불리고 교관의 빡센 훈련을 받을 때 마다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교관에게 인격모독과 협박 무시당한다. 결국 교관은 영화 주인공 조커이병에게 파일의 모든 것을 담당하게 했고 훌륭하게도 조커 이병은 파일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파일 이병도 점차 바뀌어 갔지만 어느 날 손발톱 검사하던 중 하트먼 교관은 파일 이병의 사물함에서 도넛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파일이 잘못이나 실수할 때 마다 파일에게 얼차려를 주기보단 파일을 제외한 부대 전체에게 벌을 주었다. 그 결과 분노가 차오를 만큼 차오른 병사들은 새벽에 단체로 파일을 폭행했고 주인공 조커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같이 동참해버린다. 그날 이후 파일 이병의 눈빛은 살기가 가득 찬 눈빛으로 바뀌어버렸고 파일 이병은 사격과 총기 손질에서 하트먼 상사에게 재능을 인정받는다.8주후 자대배치를 앞둔 마지막 날 밤 불침번을 서고있던 주인공 조커는 화장실에서 파일 이병을 발견했다. 파일 이병은 큰소리를 외치며 총을 장전했고 자신을 살인괴물로 만든 하트먼 교관을 죽인 뒤 파일 이병 자신도 그 모든 배설물들이 모여드는 화장실에서 자살하며 1부가 끝난다.1부가 끝나며 갑자기 배경은 베트남으로 바뀌며 2부가 시작된다. 종군기자가 된 주인공 조커는 따분한 군생활을 이어갔고 베트남 창녀와의 매춘과 방탕한 생활에 찌들어 있었다. 그러나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구정시기 전국적으로 대공세를 가하며 “베트남 전에서 이기고 있다는 미군의 선전”이 가짜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종군기자인 조커는 후에로 가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 헬기에 오른다. 헬기에 오른 조커는 광기에 휩싸인 어느 미군병사를 목격한다.헬기 기총사수는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며 얘기한다.미군병사: “죽어, 죽어, 죽어”미군병사 “뛰는 놈들은 다 베트콩이고 안 뛰는 놈들은 고단수의 베트콩이야!!”미군병사: “니들은 나에 대한 기사를 좀 실어봐”주인공 조커: “내가 왜 당신에 대한 기사를 실어야 하지?”미군병사: “왜나하면 나는 매우 끝내주니까! 내가 지금까지 죽인 베트콩이 157명이고 공식집계야! 50마리의 물소도 마찬가지고”주인공 조커: “여자나 아이는?”미군병사: “가끔”주인공 조커: “어떻게 여자와 아이를 쏠 수 있지?”미군병사: “왜냐고? 그들은 느려서 잡기 쉬우니까! 전쟁이 그런 거 아니야? 하하하하하”광기에 휩싸여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으며 학살했던 미군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명장면이었던 것 같다. 후에 도시에 도착한 조커이병은 훈련소에서 만났던 동기를 만나 잠깐은 기뻤지만 그 기쁨은 잠시었고 전투에 휩싸인 후에에서 조커와 미군병사들은 죽음과의 공포와 싸우게 된다. (다 스포 할 수는 없으니 2부얘기는 여기까지)이처럼 풀 메탈 자켓은 베트남 전쟁의 잔혹함과 광기 그리고 오직 적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평범한 인간을 살인기계로 만드려는 군대문화를 아주 예리하게 비판한 영화다. 어느 한 이병을 통해 군대문화와 군대폭력을 아주 예리하게 비판했고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적과 민간인을 구분안하고 헬기에서 M-60 기관총을 갈겨대는 어느 미군 병사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미군의 광기를 아주 예리하게 비판했다. 장면 하나하나 마다 정말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였다.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풀 메탈 자켓은 내가 본 베트남 전쟁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의 베트남 전 영화인 것 같다. 영화 풀 메탈 자켓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징병제와 군대문화를 예리하게 잘 분석했기 때문이다. 현재 징병제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감상 할 수 있는거 자체가 매우 영광이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보게 될 영화다.영화 점수는 10점 만점에 10점.
호치민이 누구인가? 프랑스 식민지 시기 베트남에서 태어나 20대때부터 세계를 일주했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독립투사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의 침략,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시기 프랑스의 침략, 베트남 전쟁시기 미국의 침략을 무찌르고 자주국가를 수립한 항일 항불 항미 투사이자 베트남의 위대한 국부이다.사람들이 베트남이 못산다고 굉장히 무시하는데 베트남은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농촌으로 시집오고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 미국의 침략에 맞서 침략군을 무찌른 해방전사들의 후손들이다.그 베트남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이끈 사람이 바로 호치민이다. 이승만같은 악마를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려는 수구세력들의 행태를 보며 참으로 화가 나고 인간 쓰레기 같은 이승만이 아닌 독립영웅 호치민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는 베트남이 부러울 따름이다.심심풀이로 읽어봤는데 생각보다 내용이탄탄했다. 다만 10살짜리 내 사촌동생의 말대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서술이 너무 허술하다. 그래도 좋은 책이다. 한국의 많은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호치민을 바르게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