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 호모아키비스트, 기록하는 사람들
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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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회 청년부 홈커밍데이에 다녀왔다. 청년부를 떠나 온지 벌써 20년도 넘었다. 그런데 그 시절 사람들이 모여 홈커밍데이를 한단다. 학교로 치자면 동문회 같은 거겠지. 벌써 7회째인데 나는 그 모임이 처음이었다. 연락을 받기는 약 한 달 전이었다. 그 연락을 받는 순간(나에게 연락해 준 사람 또한 그 세월쯤 될 것이다. 그동안 뭐하느라 한 번도 못 만난 것인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고,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이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당시 청년부는 생년이 같은 사람끼리 모임을 갖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것은 사는 지역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것 보다 훨씬 응집력이 좋았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라는 것이 친화력을 높이는 중요 요소였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절 또래 모임을 좋아했다. 그런 또래들을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왜 안 나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또 홈커밍데이란 이유로 여태까지 안 만났던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할 것도 같았다. 물론 결국 옛 추억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이겨 그 모임엘 다녀오긴 했지만.

막상 모임 장소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옛 추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 청년부에 오래 몸 담을 생각이 없어 공식 모임은 1년 정도였고, 또래 모임은 그 보다는 좀 더 오래 했다. 결론은 청년부 모임을 그다지 오래하지 못했다는 얘긴데 그래서 무슨 추억이 있으랴 싶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잊고 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난 언제부턴가 어떤 한 시절 또는 내 생애 있었던 이야기를 글로써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강하게 한다. 그래서 난 그날(청년부 홈커밍데이)를 계기로 나의 청년부 시절을 글로 써 보고 싶었다. 사람은 왜 자서전 또는 자전적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지는 것일까?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되기도 하지만 그 중 또 하나를 들자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인간만이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 이런 사람을 두고 이 책의 저자 안정희는 '호모아키비스트'라고 했다. 이는 기록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아카이브(archive)'에서 추출한 말이기도 하다. 아카이브는 원래 '정부의 기록' 또는 '공문서'를 의미하는데 지금은 '기록'이나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하자면 공적인 기록인만큼 공인이 써야하므로 사견이나 주관을 배재한 기록이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개인의 기록물을 더 중히 여겨 '민간 아카이브'를 지향한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 아카이브의  수 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카이브는 왜 생긴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개별적인 인간은 소멸하되 기록하는 인류는 미래를 꿈꾼다'고. 그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 역시 유한한 존재이기에 이 점은 동물과 같은 것이지만, 내가 이 지상에 살다 갔다는 불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아카이브는 발전해 오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문자가 없었던 시절엔 동굴 같은 데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 낙서에서도 발견이 된다. 지금도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와서 그곳 카페나 유명한 장소에 내가 이곳에 왔다 갔다고 뭔가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기록하는 습성은 인간의 본능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 것이나 다 기록할 수는 없고, 기록에도 반드시 형식은 존재한다. 저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와 다르지 않으며 단지 아카이브는 기억저장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공공성 또는 공유적이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 조건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아카이브가 될 수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기록의 대상이요, 아카이브다.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역사일 것이다. 그것도 정치사나 사회사 같은 거시적인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미시사나 일상사 같은 것이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행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행한 곳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요즘 흔히 하는 방식이다. 먹방의 세대라고 요리도 그 대상이 될 수가 있고, 카페나 레스토랑 기행도 아카이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독특하게도 단추 모으기나 버스 승차담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그런 흔치 않은 분야에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 저마다 알게 모르게 한 가지 이상은 다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늘 책에 관한 관심이 있어왔고, 인터넷 블로그가 생기고부터는 서평을 줄 곧 써 오곤 했는데 이것도 아카이브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보게 된 건 로렐 대처 울리히가 쓴 <산파일기>(57~p~)란 것이다. 사실 이건 울리히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마서 밸러드란 17세기에 살았던 산파가 무려 27년 동안 자신이 산파 일을 하면서 쓴 일기를 발견해 번역하고 그로인해 퓰리처상을 받고 하버드 교수까지된 사례를 기술해 놓았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할까? 그 내용도 별 것 아니라고 한다. 그냥 언제 누구의 아기를 받았다는 내용만 단조롭게 써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게 한 사람의 생을 그렇게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일기엔 굉장한 의미가 숨어 있었다. 즉 그 일기를 통해 17세기 미국 여성들의 사라진 삶을 밝혀낸 것이다. 그 별 것 아닐 것 같은 일기가 미국 건국의 역사의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여 준 것이다. 읽다보면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 하나가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앞에서 청년부 홈커밍데이에 참석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친김에 그 시절에 있었던 일을 글로 써 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기록에는 공공성 내지는 공유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막상 공공성을 얘기하자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이것을 글로 쓴다면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22세기나 23세기쯤 누군가에 의해 별견되어 우리나라 역사의 어느 시기의 근간이 되고, 한 사람을 영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해서 아카이브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예를 보면 소소한 것에서부터 대의를 불태우는 내용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이러 이러한 것들이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은, 저자가 읽은 책들을 위주로 썼다는 점에서 마치 또 한 권의 서평을 보는 듯도 하다. 특히 저자는 거의 모든 분야를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데 하다못해 소설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뭐 소설도 기록이라면 기록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역사 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은 픽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겐 하나의 기록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아무래도 의욕이 과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 날은 공유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유가 흔하다 못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엔 역시 디지털 기술과 SNS의 발달이 압도적인 기여를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공유는 자유로워도 아카이브는 아날로그적으로 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게 진정한 아카이브의 정신이니까. 또 그만큼 이 기록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지난한 작업이어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하다가 중단하면 아니한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그 말에 일침을 가하는 말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이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덧붙이고 싶다.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마음에만 간직하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하라. 또 누가 아는가? 자신의 아직 있지도 않은 손자나 증손자가 보게될지. 나아가서 1세기나 2세기 후엔 나라를 구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만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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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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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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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0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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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14: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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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인터뷰하다 - 평화와 용기를 위한 79가지 사랑의 메시지
곽승룡 지음 / 하양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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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 사랑을 논한다는 게 새삼스럽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TV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고,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별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양 극단의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TV는 사랑을 너무나 쉽게 하는 것처럼 묘사가 된다(또한 그것은 남녀간의 사랑으로 지극히 한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TV 밖은 사랑 보단 물질로 계산되어지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랑을 논한다는 게 새삼스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형태와 논리로 논의되어져 왔다. 사랑은 철학으로 또는 심리학으로도 논의되어져 왔다. 이 책은 사랑을 신학으로 논의했다. 그래서 신학으로서 사랑을 이해하려면 성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글쎄, 성령을 뭐라고 풀이하면 좋을까? 그냥 위로부터 내려지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본래 신학에서는 성령론을 따로 공부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성령은 심오한 영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는 성령을 이렇게도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속마음과 영은 매우 닮았다. 그래서 성령은 만남의 원리라는 속성을 지녔다. 성령에서 나오는 은총은 마음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117p).     

그런 것을 보면 저자는 인간에겐 선천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성령을 받아야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죄로인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신학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 전체를 감싸는 전제는 성령으로부터 내려지는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분명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신비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 날의 사랑은 너무 표피적이고, 이기적이며 심지어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날 하루가 멀다하고 데이트 폭력에 존속살인까지 신문 기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는 분명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오늘 날은 얼마나 많은 갈등속에 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가? 그것의 주장이 틀리진 않겠지만 그속에 사랑이 설 자리가 있는 것이 모르겠다. 그 자리를 대신 하는 게 자기계발류는 아닌가?

 

사랑도 배워야 한다. 흔히들 사랑은 가슴으로 하고 육체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먼저 머리로 깨우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해 할 수만 있으면 많이 묵상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이다.   

책은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곱씹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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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세상을 바꾸다 - 저항의 시, 저항의 노래
유종순 지음 / 목선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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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2, 3개는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언제부턴가 모르게 라디오와 멀어졌다. 멀어지려고 해서 멀어진 건지 아니면 멀어질만한 이유가 있어서 멀어진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난 노래를 듣지 않고, 부르지 않게 된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정권이 바뀌고 소위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음악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팝송을 듣던 가요를 듣던 가사가 영롱하고 좋은 게 많았는데 그걸 '변질'이라고 해야할지 '다양성'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중 음악은 대체로 경쾌와 경박을 왔다갔다 했던 것 같고 나는 그것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어 갔던 것 같다. 

 

가사도 이성에 호소하기 보단 감정에 충실한 게 대부분이다. 김건모가 가요계의 판도를 확 바꿔놓은 건 사실이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삼각관계나 권태에 관한 것으로 채워 놓았다. 그나마 김건모는 좀 낫다. 요즘 노래는 더 들어줄 수가 없다. 

 

이대로 노래와 멀어지라면 멀어지라지. 별 관심도 없었다. 시대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가 무슨 수로 시대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됐다. 좀 성급한 결론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니 그래도 내가 음악을 좋아했던 시절 주요한 음악은 거의 다 듣고 자랐구나 싶다. 물론 저항의 시, 저항의 노래가 저자가 다룬 35곡뿐이랴마는 서너 곡은 직접 들어봐야 알 것도 같고, 아무튼 거의 대부분은 사춘기 시절 라디오만 틀면 이틀의 한 번 꼴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다.

 

그 시절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팝송을 들으며 영어 공부에도 열을 올렸을 텐데 나는 뭐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지라 노래 하나 하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이런 노래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그 시절 멋모르고 흥얼거렸던 팝송이 이떤 의미가 있으며 이떤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된 것인지 알게되니 흥미로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팝송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제 3 세계 음악까지 비교적 넓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미국 팝의 역사는 곧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니 제1부에서 <미국을 바꾼 노래>라는 쳅터를 따로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 전반은 역시 미국의 팝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려면 미국을 통과해야만 가능했으니 그럴 수 밖에.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저자가 우리나라의 저항 가요로 유일하게 양희은의 <아침 이슬> 한 곡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도 우리나라에 저항 가요가 제법 있는데 그냥 대표적으로 이런 곡이 있다는 정도로만 다루고 지나간 듯 하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큼 과연 억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가 사회를 어떻게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잘 가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노래에 대한 간략한 소개나 탄생 배경만 다룰 뿐이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얕은 꿀팁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언제나 어떤 모양으로든 저항의 노래는 있어 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음악은 독창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것도 나쁜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시대를 반영하고 억압에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대한 권태와 짜증만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도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즉 말하자면  케이팝도 좋다지만 좀 의미심장한 노래도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 책은 포괄적으로 세계적인 저항 시와 노래를 다루었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노래는 꽤 많을 거라고 보는데 이걸 알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여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저항 가요의 대표곡은 그렇게 <아침 이슬>를 떠올려도 무방하기는 하겠으나 알고 보면 우리나라 저항 가요는 그 역사가 생각 보다 꽤 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제시대 전후는 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대표곡이 <빈대떡 신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이 노래를 고찰해 보지는 않았지만 작사가는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신사 노릇하는 일본을 건달에 비유해 그러한 자는 매를 맞아야 한다며 빈대떡 먹으러 들어 온 신사에 비유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든다. 또한 그 노래는 얼마나 해학적이기까지 한가?  

 

어쨌든 이 책은 우리가 알고있는 음악에 대해 꿀팁을 전해준다. 가끔 음악에 대해 아는 척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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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0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항 노래를 단 한 곡 뽑다니... 제목과는 상반되네요.. ㅎㅎ

stella.K 2015-12-03 16:06   좋아요 0 | URL
아뇨, 우리나라 곡이 하나라는 거죠. 그점이 좀 아쉬워요.

yureka01 2015-12-0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말리라는 자메이카 가수가 있어요..
이 분이 실제 노래로 내전을 막은 적이 있죠.^^..

one love~

stella.K 2015-12-03 17:48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밥 말리도 이 책에서 다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위아 더 월드 같은 노래도 기아에서 많이 구했죠.
노래의 기능은 이런 것이어야 하는데
요즘 노래는 영...ㅠ

니르바나 2015-12-0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잘 쓰셨어요.
제목도 잘 뽑으시고요.
이 달의 리뷰 후보로 선정되기를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15-12-03 17:52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이달의 리뷰로 뽑히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쓴 거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걸요?
설혹 된다고 하더라도 저 돌 맞을 거예요.
그래도 저의 글을 좋아라 하시는 니르바나님 계시니까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기억의집 2015-12-0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동안 안 듣다가 요즘 들어요 애들이 들으니깐 같이 듣게 되더라구요. 저도 랩이나 힙합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는데, 애들하고 들으면서 싹 사라졌어요. 음...근데 빈대떡 신사는 좀 아닌 것 같은데....(말끝 흐림).....

stella.K 2015-12-04 13:38   좋아요 0 | URL
ㅎㅎ 왜요, 양복입은 신사는 일본 사람을 가리키잖아요.
빈대떡 집은 들어갈 땐 폼을 내고 들어가지만 나올 땐 돈이 없어
쩔쩔매다 동망치다 붙잡혀서 매를 맞는다잖아요.
그게 언젠가 일본X들 망할 거라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보는뎅...
아님 말구요.ㅋ

제가 지금도 유일하게 듣는 음악 프로가 <세상의 모든 음악>이죠.
주로 제3세계 음악이잖아요.
거기서 자주 소개된 음악을 이책에서 다루고 있기도 한데
그게 알고 보면 저항 음악이었구나. 역시 음악은 저항의 속성을 띄고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cyrus 2015-12-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희은의 <아침 이슬>이 많이 사랑받은 저항가요라는 평가를 인정할 수 있는데, 저항 스피릿이 철철 넘치는 노래를 부른 가수로는 한대수가 캡이죠. 한대수 거르고 양희은이라니. 저자가 대중음악 평론을 했다던데 그의 안목이 아쉽군요.

stella.K 2015-12-04 13:41   좋아요 0 | URL
네 말을 들으니 그도 맞겠다 싶네.
하지만 한대수 음악은 나도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어.
아마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35곡만을 추리다보니 누락되지 않았나 싶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테레사 카푸토 지음, 이봄 옮김 / 연금술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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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있긴 있는가 보다. 영혼을 보는 사람.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을 영매나 무당으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왜 그런 특정인에게만 나타나느냐는 것이다.
오래 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의 외할머니가 그러셨다. 옛날엔 귀신을 보는 일은 흔했다고.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끼리 하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물론 나의 할머니는 무당은 아니었다. 보통은 천당이나 지옥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귀신이 된다고도 하는데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닌가 보다 했다. 밤에 그들이 나타나면 대야에 퍼놓은 물이 핏빛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오싹하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왜 요즘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냐고  여쭈었더니 요즘엔 너무 시끄럽고 탁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이긴 하지만 아주 안 믿기엔 뭔가 억울할 것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가 뭐가 아쉬워 한낮에 손녀에게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은 할머니의 그 말을 어느 정도 뒷받침 해 주기도 한다. 영혼을 보거나 느끼는 일은 영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일반인도 조금만 기울이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구나 싶다.
하지만 책 내용은 그동안 죽음이나 영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에서 그다지 많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 더 구체적이고, 디테일하다고나 할까? 작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는 느낌이 들어  솔직히 좀 지루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깨닫길 바라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책이다. 하지만 난 이 책이 어떤 면에선 신빙성이 다서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영계는 물질계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에 관한 설명은 나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문장을 보라.(당신은 영계에서 또는 당신이 죽으면)

당신은 자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고 이 삶에서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잘 이해했고 수행했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해 벌을 받지는 않는다. 자기자신에 대해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잔혹한 벌과 심판은 우리가 물질세계에서 서로에게 가한 것들이다. 천국에서 당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때 흔히 생각하듯 신은 지옥을 불과 유황 모습이 아니라고 나는 들었다. 신과 당신의 안내자들은 자애롭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영혼이 내게 보여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평균적인 흠이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영원한 지옥살이가 있는 것 같진 않다. (164p)

 나는 이 말이 영 미덥지가 않고 작가가 어떠한 논리나 해석없이 멋대로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어서도 벌을 받지 않는다면 지옥은 저쪽 세상의 것이 아닌 이 세상의 것이며, 서로가 복수하느라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또한 용서는 신의 것이고, 영적 세계의 것이지 인간은 도무지 아무 것도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무엇보다도 절규하듯, 지옥이나 가버리란 말은 영영 쓸모가 없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의 악한 자의 책임과 처벌은 누가하고, 그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천국과 지옥의 개념은 유사이래 있어왔던 말인데 그것을 과연 저자의 저 말 한 마디로 뒤엎을 수 있다고 보는가?   
이는 마치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과 흡사해 보이기도 하다. 폐지론자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폐지가 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범죄율이 떨어지지 않고 더 잔악해질 것이다. 어떠한 잔인한 방법으로 죄를 저지른다해도 법정 최고형은 종신형일 뿐이니까. 작가의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그 보다 더 심각하다. 설혹 사형제도의 존속된다해도 죽어도 지옥은 안 갈테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떤 끔찍한 범죄를 지를지 모를 일이다.
그뿐인가? 저자는 동물들과도 채널링인지 리딩을 한다고도 썼다. 내가 알기론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 들었고 설혹 있다고 쳐도 지금까지 영매가 그런 일까지 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어쨌든 그런 내용을 접하자 독서 의욕이 확 떨어졌다. 안 그래도 지루했었는데 .
난 감히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사람들한테 권할 수는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영적인 세계를 다 경험하고 쓴 책은 아닐 거라고 본다. 읽는다면 그냥 참고 정도만 하고, 이 분야에 대한 권위있는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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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1-1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어릴때 죽ㄱ어 관에 들어가고도 깨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 본적은 있습니다만, 증명의 연대가 없으면 공감이 잘 안되긴 하죠.우리는 흔히 이런 오류에 빠지기도 하잖아요.주장의 과장에 대하여... 이때까지 이 지구상에 태어 났던(원시인까지 포함한다면) 사람들의 전부가 죽음의 사실은 절대적이지만 죽고난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입증한 바는 없었거든요. 죽음이란 지극히 공통적이지만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거든요. 요즘 혼의 비정상이란 말이 회자되는 바람에 ㅎㅎㅎ

stella.K 2015-11-19 15:2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하긴, 그래서 의사들 사망선고 빨리하지 말라는 얘기는 들었어요.
임사체험에 관한 이야기는 전 심심찮게 들어요.
정말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무작정 믿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에 대한 평점이 대체로 높은 게
섞연치가 않아요.ㅠ

yureka01 2015-11-1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기야 저는 온라인으 평점은 그닥 신뢰하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나 서점의 마케팅에 따른 판매량의 왜곡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서 말이죠. 그래서 출판사의 리뷰를 쓸때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더군요. 팔은 밖으로 굽지는 않는 이치는 다 비슷한건가 싶더라구요..^^..리뷰 잘봤어요 ^^..

stella.K 2015-11-19 17:53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싫으면 싫다고 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음하하하하하~
제가 원래 직언을 하기로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제 무덤 제가 파기도 하지만.ㅠ
사실 나쁘다고 말하기 쉽지는 않죠.
애둘러 말하거나 완곡어법을 쓰게 되죠.
오늘은 저 인용구 말이 빡이 돌아서...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뭔가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나는데요.. ㅎㅎㅎ

stella.K 2015-11-19 17:53   좋아요 0 | URL
저는 이승철 노래가 생각나던데...ㅋㅋ

cyrus 2015-11-1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웰다잉’ 같은 책이 많이 나오니까 영계와 관련된 책을 죽음을 주제로 한 인문서적으로 둔갑해서 나오는 것 같아요.

stella.K 2015-11-19 17:56   좋아요 0 | URL
지금은 모든 건 인문으로 통하긴 하지.
이 책은 인문학 책 같진 않고 그냥 에세이 같긴 해.
근데 좀 빡이쳐져.ㅋ
 
당신의 때가 있다 - 내 인생의 사계절을 지혜롭게 경영하기 위한 "때" 사용법
김태규 지음 / 더메이커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집어드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한다. 사람이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고 싶어하는 건 거의 본능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땐 자신의 사주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가 삼시세끼 다 챙겨주고, 공부만 잘하면 되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단지 공부하는 것 하나가 힘들어서 일뿐. 공부하는데 장애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나이들면 들수록 되는 일 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어떻게 떠밀려서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한다지만 또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니 불안할 것이다. 세계 정세도 불안하고, 나라 꼴은 더 안 좋고 등등.

 

그렇게 불안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점이나 예언에 목매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나만해도 그렇다. 뭔가 움츠러든 마음을 펴고 다시 일을 해 보려고 했으나 내가 확인한 건 그 일 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특히 인사는 만사라고 했건만 좋은 뜻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해도 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아 마음만 더 심난해 졌다. 그럴 때면 의심이 든다. '이 길이 아닌 게벼.'하며 난 앞으로 뭘해야 하지? 막연해지고, 난감해진다. 그럴 때면 나도 솔직히 뭘하면 좋을지 사주팔자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다. 그런 거 봤다고 크게 도움이 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냥 위로 삼아서라고 해 두자.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고 싶어하는 건 거의 본능은 아닐까? 사람들이 점을 보는 건 요행수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사람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걸 인정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이 자신이 약한 존재인 것을 알면 겸손하고 자중자애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러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상술에 써먹는 사람도 많으니.   

 

명리학도 사주팔자나 점처럼 미래를 예견하는데 쓰이는 것처럼도 보인다. 또 그것은 일견 맞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읽은 이책은 그 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삶이나 운을 자연의 순환에 빚대어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기 좋아한다. 봄은 유년시절을, 여름은 청년을, 가을은 장년을, 겨울은 노년에 빚대곤 하는데, 명리학은 그 보단 좀 더 세분화 해서 사람과 자연의 주기를 24절기, 15년, 60년, 360년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명리학은 자신이 지금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학문인 것이다. 더 나아가 나라나 세계 정세에도 적용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법 그럴 듯하게 맞아 떨어진다(참고로 저자는 2016년 하반기는 우리나라가 24절기 중 동지를 지나는 싯점이라 여전히 어렵고, 2017년에는 통일이 올 것이라고 했다. 맞는지 어쩌는지는 그때가 되보면 알겠지만 아주 틀리지만도 않을 것 같긴 하다). 

 

명리학은 주역만큼이나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을 자연의 순환주기에 맞춰 풀이하고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결국 인간은 뭘 정복하고 지배하기 보다는,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것이다. 진시황이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찾아 헤멨다는 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가? 또 그 후예들이 아직도 이 땅에 너무 많이 존재한다. 다 어리석은 일이다. 왔으면 가는 게 당연하고 맞는 것인데 아둥바둥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이런 명리학의 이치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준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글쎄 어릴 때부터 알면 너무 욕심없이 살아서 사회 발전에 오히려 저해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청소년 시절부터 알려주면 좋겠다. 이놈의 세상은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 하지만 결국 사람을 경쟁체제로 몰아가고 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그 경쟁을 성장이란 말로 바꾸길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경쟁과 성장을 향해 나간다면 과부하에 걸리고 만다.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누군가는 성장을 해야한다면, 누군가는 성숙을 지향하며 안정을 향해 나가야 한다. 그런 식의 밸런스가 필요한데 세상은 그런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치 퇴화되고 도태되어 버린 존재로 낙인 찍길 좋아하는 것이다.

 

명리학의 이치를 깨달으면 내가 현재 잘 안 풀릴지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초조해 할 필요가 없고, 잘 나간다고 해서 잘난 척 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이 알고 보면 명리학에서 나온 말이다. 누구는 인생에 봄을 지나지만 누구는 가을을 지난다. 봄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며, 가을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마는 아니다. 그것을 세분화 해서 24절기도 절기마다 좋은 의미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책을 보라. 자세히 나와 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그에 맞혀 지혜롭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다시 한 번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나의 재능을 반겨 맞아 준 한 사람으로부터 나는 나중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신앙 좋은 척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경제력으로 점잖은 교회에서 사람들을 자기 발 아래 두며 징그러운 야욕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그것이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해 준 권위인 양 떠들고 다녔으니까). 그를 보면서 역시 이 세상은 돈이었구나 싶었다. 적어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앙이 가진 진실함과 위대함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일견 부럽기도 했다. 나도 인간인지라. 하지만 난 안다. 대체로 있는 사람이 장자리를 맡는 건 세상이나 교회나 다르지 않고, 그렇다고 그 사람의 인격까지 성숙한 건 아니라는 걸. 화무십일홍이랬다고 그의 권세나 능력이 언제까지 갈 것 같지만 사람은 상승곡선을 타면 반드시 하강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쯤 어느 지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성숙해져야 하는 그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가진 뜻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것은 없다. 이 책을 보며 나 자신 그렇게 위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참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저자는 인생의 여정을 다루는 장에서 그것이 욕망이나 의욕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욕망이나 의욕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욕망이나 의욕을 추구하고 관철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고 여긴다(252~253p).

 

오래 전, 시나리오를 공부한답시고 학원을 다녔을 때 같은 수강생 하나가 나의 손금을 봐준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나의 손금을 자세히 보더니 너무나 확신에 찬 어조로 끝까지 못 간다고 했다. 무엇을 하더라도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걸 너무나 확신에 넘쳐 외치다시피 한 게 미안하던지 운명이란 개척하라고 있는 것이지 운명 그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손금에 재물운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칼로 째서 그 손금을 만들었다고 했다. 없던 손금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의 강한 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어찌보면 열정이나 에너지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정주영 회장은 자신이 부자가 되어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갑부가 되긴 했지만 말년에 자신의 운을 잘 다스리지 못해 건강을 잃고 명을 재촉했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그는 말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한다. 과욕이고 노욕이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이 맞는 것 같긴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한 것에 후회가 없다면 그것 또한 그의 운명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다. 어쩌면 그 수강생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포기가 빠른 사람이다. 그래서 성취는 없어도 명을 재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질긴 인연 하나쯤은 있을 것이고, 죽어도 포기 못하는 것 하나는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나의 손금에서 미쳐 보지 못한 뭔가를 나는 가지고 있을 거란 말이다. 난 그런 사람이 부럽긴 하다. 바위 같은 사람. 세상의 어떤 비 바람이 불고 휩쓸려 갈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해 내는 사람. 내게 그런 에너지가 없다면 그런 사람 곁에 있어야 할 것이다.

 

책에서 나의 눈이 오래도록 머물었던 구절 하나가 있었다. 삶이란 고생하거나 허전하거나. 얼마나 그럴 듯한 말인가. 20대 말 30대 시절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났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단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과 인간적인 부침을 겪어야 했다. 물론 그들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힘들게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도 싫었고, 사람도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따라서 인간적 부침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엔 좋았다. 하지만 또 어느 만치 지나고 나니 헛헛했다. 나중엔 묘하게도 향수병 같은 것도 생겼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나에겐 전성기이기도 했고 그 시절 인간적 부침이 많았던 건 어쩌면 통과의례 같은 거란 걸 나중에 깨달았다.

 

가수 이상은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그 얼마나 인생을 통찰한 노래인가. 고난 속에 축복이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난 그나마 오늘을 버티고 살고, 아직도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세상은 세상 살아가는 법칙이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속에 나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법칙 말이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며 살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도 자연속에서 낳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명리학은 정말 공부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명리학이 처음이라면 이 책은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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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1-1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자주 듣는 말중에 철없다는 말..저도 때를 몰라요...때를 다 알면 아마 벌써 죽었을지도요...

stella.K 2015-11-11 13:57   좋아요 0 | URL
도인이 되셨겠죠.ㅋㅋ

2015-11-11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1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5-11-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가 있는 거 정말일까요? 그렇다면 최대한 늦게 오면 좋겠어요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할 때. 예전같으면 빨리 날고 차라리 빨리 가는 게 낫다 그랬는데 생각도 나이 먹을수록 달라져요. 리뷰 좋네요. 책은 재미없어보이는데ㅎㅎ제목 너무... 자기계발서예요?

stella.K 2015-11-11 14:20   좋아요 0 | URL
좋은 건 빨리 오고 나쁜 건 늦게 오는 게 날까요?
아니면 나쁜 건 빨리 지나가고 좋은 때를 기다리는 게 날까요?
저는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올핸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대체로 홀수 년이 힘들고,
짝수 년이 그나마 좋고 그랬죠.
긴 리뷰 읽어줘서 고마워요.
제목이 좀 그렇긴 하죠? 그런데 전 좋았어요.
주역 보다는 쉽고 매력적이에요.
나이들면 이런 게 좋아지나 봐요.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