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년에 딱 두 번 열린다는 국보급 미술전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이름하야 ' 우리 강산 우리 그림 진경산수화전' 으로 간송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유료 전시회다. 그동안 나의문화유산답사 시리즈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에 관해 조금씩 재미를 붙이던 참이였는데 좋은 전시회다 싶어 서울에 올라갈때 가보기로 했다. '선 독서 후 답사'라. 아는 만큼 보인다던 말을 잊지 않고 책을 찾아보았고, 그러다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간송 미술 36』이다.

 

 

 

간송 미술관은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보화각(보물을 모아둔 집)으로 설립하신 사립 미술관으로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1966년 간송 미술관으로 개칭되었고, 국보와 보물, 서화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일년에 두 번 열리는 전시회때문에 많은 관람객들의 아쉬움을 두고 백인산 저자는 미술관의 최고 목적은 '보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종종 뉴스에서 발굴된 보물들이 빛과 습도 때문에 부식되어버렸다는 안타깝던 사연들이 떠올랐고 무엇보다도 일제치하 시절 어렵사리 구했던 문화재를 지키기위해 노력하신 전형필 선생님의 뜻을 따라 후대에 까지 보존하려는 미술관의 노력이 참 값지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쓰인 동기가 따갑게 들려온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때문에 미술관엔 유례없던 인파가 몰려들었데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 이야기였다.

 

' 아무리 소설이나 영화라 해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룰 때는 최소한의 근거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흥미를 위해서 어떤 왜곡이라도 용인된다면 역사상의 어떤 인물도 온전할 수 없다. 마땅히 잃고 얻은것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p250'

 

한때 신윤복을 여성화시켜 방영했던 드라마로 많은 사람들이 신윤복을 여성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속상하다는 이야기. 문화재를 연구 보존하는 사람으로써 잘못된 인식에 대한 책임감 내지 의무를 갖는 모습도 참 멋진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백인산님이 들려주신 36점의 그림은 이렇게 책임감과 의무감이 가득 담겨 어떤 이야기도 두리뭉실 하지 않다. 잘못된 부분은 꼬집고, 안타까운 부분은 아쉬워하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실감나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부분들이 미술관에서 직접 들은양 호사를 누린 기분이 들었다.

 

'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맞는 말이고,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고 읽는 것이란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아는 것만 보려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머리로 읽느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p231'

그림을 감상하기 전에 감상 포인트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산수화는 멋진 경치를 보듯, 인물화는 사람을 대하듯, 화조화는 주변의 꽃을 보듯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p18 이야기와 함께 미술품을 관람하기 전에 되도록 사전 정보를 찾지 말고 가길 권유한다. 사전정보에 빠져서 정작 봐야할 것들을 놓치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인데, 내가 딱 하나 동의할 수 없던 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무수히도 많다. 경주 수학여행때와, 경복궁에 다녀왔을때의 일만 떠올려봐도 사전 지식없다는 것은 그저 눈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문화재를 후대에까지 전해야할 책임이 있다면, 왜 전해야하는지 이 문화재가 무엇때문에 '보물'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닐까. 사전 지식과 감상 그리고 이해가 어울어진 관람으로 문화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안목을 키워나가는 일들이야 말로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의 첫번째로 실린 그림은 신사임당의 '포도'다. 회화예술이 크게 발전했던 조선중기에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써 시문과 서화에 능해 다수의 작품이 남았다고. 그러나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것에 반해 전문화가들 보다도 유작이 많아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사후 모작과 위작이 많아지면서 오늘날까지 많이 전해졌지만, 전문가들조차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고 한다.

 

 

<포도>  신사임당

 

포도는 '다산의 상징'이자 자손의 번창을 염원한다고 한다. 묵의 농도를 달리하여 탐스럽게 열매를 그려놓은 부분도 놀랍지만, 잎의 돌기와 잎맥까지 세심하게 그려놓은 것을 보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시들어버린 덩굴 손과 갈곳을 찾지 못해 허공으로 뻗어난 덩굴손등이 어울어져 실감나게 느껴지는 그림이라 왜 명화가 되어야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심산지록> 윤두서

 

두번째 인상적인 그림은 공재 윤두서의 <심산지록> 이다. 비탈진 산길을 다급하게 내려오는 사슴의 입매에 억울함이 느껴진다.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눈망울엔 한없는 슬픔이 깃들어보이며 이 작품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윤두서의 삶이 사슴과 같았는데 증조부인 고산 윤선도가 서인들과 싸우면서 가문의 화가 끊이질 않았고, 1694년 숙종20년 폐비민씨 복원운동에 반대했던 남인이 몰락하고 노론이 재집권하게된 사건으로,남인이였던 윤두서는 출사를 포기하고 그림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당파없이 서화하는 이들과 교류하는 윤두서를 남인들이 비방하기에 이르고 이에 윤두서는 심산지록과 같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는 이야기.

 

' <심산지록>에는 이러한 공재의 현실적 상황과 내면의 자의식뿐 아니라, 조선 중기와 후기 화풍의 교차하는 과도기적 화풍이 특징인 공재 그림의 면면이 잘 드러나있다. 나열적인 배치와 평면적인 묘사로 인해 깊이감과 현장감이 떨어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중기 화풍의 전형이다'p88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라는 부제는 바로 이러한 사연들이 담겼다. 그래서 그림을 안다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와 어울어질때 비로소 '안목'이 생길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번째로 인상적인 그림은 이광사, 이영익 부자의 <잉어>그림이다. 이광사의 나이 51세에 일어났다는 '나주 벽서'사건은 영조 31년 세력을 잃은 소론들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나주에서 유배중이였던 윤지와 윤광철이 나라를 비방하는 벽서를 붙이고, 이들과 서신을 주고 받았던 이광사가 함께 압송되면서, 50세에 눈과 머리만 그렸던 잉어 부분을 20년후 아들 이영익이 완성하게되었다는 사연이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잉어> 이광사 이영익

 

입신양면을 꿈꿨던 염원을 담아 잉어를 그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고사 등용문登龍門을 살펴보면 산서성 황하의 지류에 3단계 폭포가 있는 곳을 용문龍門이라 하고, 이곳을 뛰어오른 잉어는 용이 된다는 염원에서 입신양면의 뜻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p181 제법. 통통하게 오른 살에 갑옷처럼 걸친 비닐, 또랑한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지면에서 튀어오를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염원이 가득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그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 잘 아는 그림인데도 너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였다.

 

 

 <미인도> 신윤복

 

이 부분을 이 책의 장점으로 놓고 설명해보자면, 보통 그림을 설명해줄때 전체 그림을 놓고 설명해주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클로징한듯 잡아서 세세히 설명해주는 부분들 때문에 좀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미인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사실 이 그림은 퍽 '야한' 그림이다. 그 '야함'을 일견 모순되게 보이는 장치들로 교묘하게 감춰 두었을 뿐이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며 옷고름을 푸는 손은 뭇 남자들을 홀릴 듯한 교태지만, 건조하리만큼 무미한 표정을 보면 경박한 연정을 품기에는 조심스럽다. 또한 흘러내린 허리끈, 풍성한 치마, 치마 아래로 살포시 내민 버섯발에서는 성숙한 여인의 관능미가 물씬 풍기지만, 시선을 위로 돌리면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정한 머릿결과 가녀린 상체에서는 앳된 소녀의 청초함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p253

 둥그스런 얼굴형에  이목구비가 안정감있게 자리잡고, 꼭 다문 입술과 눈매가 그윽하게 느껴진다. 틀어올린 탐스러운 머리와 목뒤의 잔 머리가 여성스러움을 극대화시키며 정말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미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책에서 싣고 있는 36점의 그림중에 대표할 만한 표지 그림들이 많았는데 저자가 선택한 그림은 신윤복의 <미인도>였다. 김흥도의 <마상청앵-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이나 강세황의 < 향원익청-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또는 김득신의 <야묘도추-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의 그림들도 표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는데 왜 <미인도>를 채택했을까 하는 의문들이 일시에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간송 미술관 연구실장이신 백인산 저자의 이야기들이 직접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지만, 책에 실려 있는 그림들은 독자들을 위해 많이 보정된 상태로 실제 그림들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꼭 이번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다녀오고 싶다. 백인산님의 친절한 도움으로 사전지식을 얻었으니, 감상과 이해를 통해 내 스스로의 안목을 키워가고 싶다. 더불어 간송 전형필님에 대한 궁금증이 크게 생겼다. 기와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서라도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기위해 노력하신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였는데, 전형필님에 관한 책도 찾아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간송 평전
    from 突厥閣 2015-03-03 18:22 
    손에서 뗄 수가 없는 평전이다. 소설처럼 읽힐 정도로 이야기가 매우 박진감이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우리 문화재 수집에 뜻을 두게 된 경위와 일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수많은 보물들을 수장하게 되는 일화들이 쉴새없이 이어진다. 처음에 나온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사들인 얘기며, <혜원전신첩>을 두고 일본인 야마나카와 벌인 심리전 등등...글쓴이가 여러 자료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다 자신의 상상을 조금 덧붙여서 무척 현장감 넘치는 글
 
 
 
우리 할아버지가 꼭 나만했을 때 노래 그림책
주경호 인형제작 / 보림 / 199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림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 할아버지가 꼭 나만 했을때』의 표지를 보자마자, 어릴적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아파트 담벼락에 낙서를 하다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하지 않았던 낙서까지 죄를 물어 억울했던(?) 심정으로 낙서를 모두 지워야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라 냉큼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삐툴빼툴한 아이들의  손글씨를 제목으로 사용한 작가의 센스가 느껴진 이 동화엔 구수한 이야기가 담긴 전래 동요를 만날 수 있다. 좀 생소한 동요와 익숙한 동요들이 교차하며, 앙증맞은 인형들의 표정이 곁들여지니 웃음짓게되고, 어릴적 아이들과 놀이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이다.

 

 

나비

 

' 나비 나비 범나비 배추 밭에 흰나비 장다리 밭에 노랑나비

팔랑팔랑 잘 난다 살랑살랑 춤춘다'

 

 

얼굴이 동그란 아이는 노래를 부르는듯 모은 입술이 앙증 맞고, 팔을 벌린 입술이 두툼한 아이는 나비를 잡아볼 속셈인데 손이 닿지 않아도 즐거운 모양이다. 흔히 알고 있던 흰나비, 노랑나비 외에도 범나비가 있고, 팔랑팔랑 과 살랑살랑이 운율감을 더해주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시각적 즐거움과 리듬감, 운율감을 익히며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동화가 될듯 싶다.

 

 

 숨바꼭질

 

솔개미 떳다. 병아리 숨어라 에미 날개 밑에 애비 다리 밑에

꼭꼭 숨어라 나래미가 나왔다. (솔개미:솔개, 나래미:날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시절 아이들과 동네 구석에 숨어 머리카락이라도 보일세라 몸을 동그랗게 말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숨바꼭질의 노래가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는게 재미나다. 날개 밑에도 숨고, 다리 밑에도 숨어라 꼭꼭 숨어라 라고. 그런데 그만 다 숨지 못한 아이의 고무신이 장독대 바깥으로 나와버렸다. 거기다 강아지가 엉거주춤한 자세의 아이를 바라보며 곧 술래가 찾아낼 듯 한 긴장감이 감돈다. 술래는 삐져나온 고무신이 재밌는지 익살스런 표정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뒷편에 숨어든 아이도 찾아냈을성 싶다. 요즘은 보기 힘든 초가집과 절구, 장작과 헛간등을 보는 재미도 참 쏠쏠한거 같다.

 

놀림 노래 - 성난아이

 

골났니 성났니 골도 나고 성도 났다

장지문을 열어라 김칫국을 끓여라

김칫국이 싫거든 호박국을 끓여라

너 먹자고 끓였니 나 먹자고 끓였지

 

 

놀림노래라는 동요가 무척 재밌다. 골도나고 성도 났으니 김칫국을 끓이든가 호박국을 끓여내라니. 왜 끓여야하냐고 물으니 누가 너 먹으라고 했냐고 퉁을 놓는 모습이 참 재밌다. 성이 나서 다가가는 아이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힘껏 골려준 큰 아이는 여차하면 뛰어갈 태세를 취하고, 뒤에 붙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큰 아이만 믿고 뒤에 숨을 심산인 표정들이 제각기 살아있어 분위기를 살린다.

 

 

 

 

 독사려

 

독 사려 독 사려 독 사세요 잘생긴 독 사세요

아주머니 독 사세요 얼마예요 백원이요 아이고 예뻐 주세요.

 

 

어릴적 비스듬히 들쳐업고 아버지가 외치던 소리가 떠오른다 ' 사세요 사세요 해피북사세요 ~"라며 내침김에 서울 구경도 시켜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이를 등에 비스듬히 들쳐 업고 독 사세요~ 라고 외치는 정겨운 모습 뒤로 작은 아이는 큰 아이 엉덩이에서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막고 있는 모습이 참 익살스럽다. 할머니 뒤에 있던 막내둥이도  신이났는지 싱글벙글한 분위기가 참 정겹고 따스히게 느껴진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아궁이와 솥단지, 벽에 걸어둔 마늘과 깔끔하게 포개놓은 그릇들이 정겨움을 더하면서 따스함이 묻어난다.

 

총 42편의 전래 동요가 우리의 민속 놀이와 만나, 마음껏 밖으로 나가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달팽이, 연잎, 원두막, 모래놀이, 닭장, 잠자리등의 풍경과 어울어지면서 어른들에겐 향수를 주고 아이들에겐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재미난 동요들이 가득해 참 재밌는 동화책으로 자주 들여다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읽어주는 할머니 (작가가 읽어 주는 파일을 QR 코드에 수록) - 2010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작가가 읽어주는 그림책 1
김인자 지음, 이진희 그림 / 글로연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할머니는 그림책을 좋아하십니다.

  내가 큰 소리로 책을 읽어 드리면

  깜깜하던 세상이 환해진 것 같다고 하시거든요'

 

 

글을 모르시는 할머니께 밤마다 책을 읽어주는 손녀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던 내겐 이런 아련한 추억이 없는것이 좀 서러울때가 있다. 내게도 할머니의 푸근한 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들을 물씬 품게되는 동화책 『책 읽어주는 할머니』는 정말 따뜻한 이야기가 매력적인 동화이며, 저자 김인자 님의 실제 이야기를 모델로 담아놓은 그림책이라 감동이 배가 되는것 같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혼자 사시는 심계옥 할머니는 늘 집안에 머물러 계신다. 글자를 몰라서 엄마가 읽어주던 책 이야기에 무척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게된 손녀는 매일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잠드실때까지 책을 읽어드린다. 언제나 똑같은 동화책에 등장하는 똑같은 이야기지만, 같은 장면에서 흥분하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며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의 팔순잔치에 모여든 가족들 앞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손녀가 읽어줬던 동화책 한 권을 꺼내들며 천천히 책을 읽게 된다는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파스텔 톤의 색깔과 글이 어울어지면서 뭉클함이 더해진거 같다. 그림엔 주로 손녀가 책을 읽어주는 모습과 할머니의 모습들이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부분들이 많고 살짝 살짝 등장하는 펭귄들의 모습에서 이 동화의 상징성을 찾을 수 있지만, 펭귄은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라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펭귄의 소망이 정말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것일까 싶은 마음에서. 그러나 할머니의 온화하면서도 참 편안한 미소들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와 닿고, 내게도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단아하고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시지 않았을까 싶은 상상을 남몰래 해보기도 했다.

 

이 책엔 '작가가 읽어 주는 그림책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부록으로 cd를 담고 있다. 낮에 들려주는 이야기와, 푸근한 잠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밤의 이야기를 구분하여 담고 있어 아이들의 잠자리에 틀어 줘도 참 좋을것 같다.

 

내게도 이런 따스한 마음을 지닌 손녀가 있었으면 좋겠다. 침침해진 눈으로 띄엄띄엄 글을 읽고 있을때 더듬거리며  천천히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든다면 아마도 그때 이 책이 떠오르며 뭉클한 마음이 들거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 맹앤앵 그림책 6
김현태 지음, 박재현 그림 / 맹앤앵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동화책을 읽으면 딱 떠오르는 일이 있다. 그리기 시간에 아이가 유독 파란색으로 집, 나무, 꽃, 공룡등을 색칠하는 것을 본 일인데 아이에게 다양한 색깔이 많다고 유혹도 해보고, 알록달록 색칠한 친구를 칭찬하며 관심을 끌어봤지만, 아이는 끝내 파란색 나라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의 행동이 심리적 불안에서 표출된 것은 아닌지, 혹시 아이의 주변 환경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피기 위해 심리학 서적도 들춰보며 나름 고심의 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

 

 

며칠이 흐른 후 우연히 자동차 놀이를 하는 아이 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때 무심결에 내뱉던 아이의 말에 작은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 우리 엄마는 파란색 자동차야. 파란색 좋아!"라던 이야기.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했던 아이. 엄마의 자동차 색깔이 파란색이라서 자신도 파란색으로 색칠 하고 싶었을뿐인데,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깊은 반성과 실없는 웃음이 나오던 그때를 몇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맹&앵 출판사에서 나온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 의 미카엘 역시 이와 유사한 이야기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미술시간. 미카엘은 곰곰히 생각한다.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하고. 그리고 선택한 색깔은 검은색 크레파스.

 

 

도화지에 온통 검은색으로 색을 칠하는 미카엘. 곁에서 바라보는 선생님의 근심어린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아 따끔거리며 동화를 읽었다. 아이들에겐 개별성을 인정하고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고 지지와 응원을 해야함을 알면서도 곁에서 화사하게 수놓은 다른 아이들을 지켜보는 입장에선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 이 아이에게 심리적 문제가 생긴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드는것이다.

 

 

 

 

 

미카엘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은색으로 칠한 도화지를 높이 쌓아만 간다. 미카엘의 행동으로 다른반 선생님들 역시 자못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미카엘은 자신이 칠한 도화지들을 한 장 한 장 맞춰 그림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생님들의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림의 실체는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남겨둔다.)

 

 

동화를 읽으며 다시금 그때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표현이 서툰 아이들에게 어른이라는 명목으로 어떤 틀을 만들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겐 단순히 하나하나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뿐. 가르치려 들고 지도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불신'이 아이를 아프게 하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 김현태님의 말도 참 인상적이다. 여섯 살 여자 딸아이가 하루는 검은색 꽃을 그린 그림을 내밀었다고. 그래서 왜 예쁜색을 놔두고 검은색으로 칠했냐는 이야기에 검은색은 나쁜거냐 물어보는 아이.

 

 

'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검은색으로 꽃을 그리지 말라는 법은 없었습니다. 아이 딴에는 검은색이 참으로 예뻐 보였던가 봅니다. 그날밤,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생각과 상상을 저의 기준과 편협한 생각 틀에 가둔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

- 작가의 말 中-

 

 

그러니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세상을 마음껏 뛰어놀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자고. 세상을 화사하게 수놓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15-03-0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_ 궁금해서 잠이 안 올 거 같은데요 ㅠㅠ

2015-03-02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롭힘은 나빠
고정완.나누리 글, 송하완 그림 / 풀빛미디어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내 곁에도 학교 폭력에 힘들어 하다 아이를 유학 보낸 가정이 있다. 중학생이 된 아이가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전해 들으며 안타까움과 은근한 걱정이 들었다. 내겐 아직 아이가 없지만,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부터 멀리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조카들의 학교 생활에 대한 염려가 들었다.

 

아이들 세계를 전부 들여다볼 수 없는 어른들과, 폭력과 외면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학력기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정내에서 아이와 함께 인성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는 습관을 들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아이는 괜찮겠지'와 같은 생각으로 방치하는건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아이들의 상처를 외면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직 아이가 없는 나도 열심히 인성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다. 백마디 말보다 한 권의 동화가 주는 위로는 수없이 경험했으므로.

 

그래서 읽은 책 『괴롭힘은 나빠』는 표지에서부터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진다. 책상에 앉아 있는 영수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힘들어하는 모습 때문에. 표지에 보여지는 알록 달록한 여러 손바닥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이들과 표지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봐도 참 좋을 성 싶다.

 

 

책의 표지를 열면  영수의 노란 책상과 영수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파란 책상이 눈에 띄면서 나머지의 책상들은 모두 회색 빛이다. 왜 그럴까. 이런 부분들도 아이들과 놓치지 않고 이야기 나누면 참 좋을 성 싶은데, 그러면 제일 마지막 표지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관찰력이 좋은 아이라면 달라진 모습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꺼 같다. 이런 작은 부분에도 세심히 배려해 놓은 출판사에 감사함을 느낀다.

 

 

 

 

주인공 단비는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반 친구인 영수를 괴롭히는 세 명의 친구가 있지만 늘상 말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럽고, 괴롭힘이 자신에게 향할까 두려워 쉽게 나서지 못하며 하루하루 비밀이 쌓여간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단비네 반 친구들은 모든 잘못을  '영수 때문' 이라는 원망을 시작했고,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게된 단비는 변해버린 모습이 괴물같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로 간 단비는 친구들과 영수의 괴롭힘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아이들 모두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후에 영수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멈춰! 그만해!'라고 함께 외치는 용기를 내어본다. 두렵고 무서웠던 일들을 아이들과 함께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가 크게 와닿고, 무관심해 보였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세명의 아이에게 쏠리면서 제 색깔로 돌아온 장면이 이 동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였다.

 

무섭고도 두려운 문제를 아이들이 혼자서 감당하기엔 분명 어려움이 많다. 그러니 우리 함께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동화책을 함께 읽고 싶다. 아이들의 따뜻한 세상을 위해서 우리 함께 읽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