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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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딱 두 번 열린다는 국보급 미술전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이름하야 ' 우리 강산 우리 그림 진경산수화전' 으로 간송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유료 전시회다. 그동안 나의문화유산답사 시리즈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에 관해 조금씩 재미를 붙이던 참이였는데 좋은 전시회다 싶어 서울에 올라갈때 가보기로 했다. '선 독서 후 답사'라. 아는 만큼 보인다던 말을 잊지 않고 책을 찾아보았고, 그러다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간송 미술 36』이다.

 

 

 

간송 미술관은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보화각(보물을 모아둔 집)으로 설립하신 사립 미술관으로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1966년 간송 미술관으로 개칭되었고, 국보와 보물, 서화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일년에 두 번 열리는 전시회때문에 많은 관람객들의 아쉬움을 두고 백인산 저자는 미술관의 최고 목적은 '보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종종 뉴스에서 발굴된 보물들이 빛과 습도 때문에 부식되어버렸다는 안타깝던 사연들이 떠올랐고 무엇보다도 일제치하 시절 어렵사리 구했던 문화재를 지키기위해 노력하신 전형필 선생님의 뜻을 따라 후대에 까지 보존하려는 미술관의 노력이 참 값지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쓰인 동기가 따갑게 들려온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때문에 미술관엔 유례없던 인파가 몰려들었데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 이야기였다.

 

' 아무리 소설이나 영화라 해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룰 때는 최소한의 근거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흥미를 위해서 어떤 왜곡이라도 용인된다면 역사상의 어떤 인물도 온전할 수 없다. 마땅히 잃고 얻은것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p250'

 

한때 신윤복을 여성화시켜 방영했던 드라마로 많은 사람들이 신윤복을 여성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속상하다는 이야기. 문화재를 연구 보존하는 사람으로써 잘못된 인식에 대한 책임감 내지 의무를 갖는 모습도 참 멋진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백인산님이 들려주신 36점의 그림은 이렇게 책임감과 의무감이 가득 담겨 어떤 이야기도 두리뭉실 하지 않다. 잘못된 부분은 꼬집고, 안타까운 부분은 아쉬워하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실감나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부분들이 미술관에서 직접 들은양 호사를 누린 기분이 들었다.

 

'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맞는 말이고,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고 읽는 것이란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아는 것만 보려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머리로 읽느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p231'

그림을 감상하기 전에 감상 포인트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산수화는 멋진 경치를 보듯, 인물화는 사람을 대하듯, 화조화는 주변의 꽃을 보듯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p18 이야기와 함께 미술품을 관람하기 전에 되도록 사전 정보를 찾지 말고 가길 권유한다. 사전정보에 빠져서 정작 봐야할 것들을 놓치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인데, 내가 딱 하나 동의할 수 없던 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무수히도 많다. 경주 수학여행때와, 경복궁에 다녀왔을때의 일만 떠올려봐도 사전 지식없다는 것은 그저 눈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문화재를 후대에까지 전해야할 책임이 있다면, 왜 전해야하는지 이 문화재가 무엇때문에 '보물'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닐까. 사전 지식과 감상 그리고 이해가 어울어진 관람으로 문화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안목을 키워나가는 일들이야 말로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의 첫번째로 실린 그림은 신사임당의 '포도'다. 회화예술이 크게 발전했던 조선중기에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써 시문과 서화에 능해 다수의 작품이 남았다고. 그러나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것에 반해 전문화가들 보다도 유작이 많아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사후 모작과 위작이 많아지면서 오늘날까지 많이 전해졌지만, 전문가들조차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고 한다.

 

 

<포도>  신사임당

 

포도는 '다산의 상징'이자 자손의 번창을 염원한다고 한다. 묵의 농도를 달리하여 탐스럽게 열매를 그려놓은 부분도 놀랍지만, 잎의 돌기와 잎맥까지 세심하게 그려놓은 것을 보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시들어버린 덩굴 손과 갈곳을 찾지 못해 허공으로 뻗어난 덩굴손등이 어울어져 실감나게 느껴지는 그림이라 왜 명화가 되어야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심산지록> 윤두서

 

두번째 인상적인 그림은 공재 윤두서의 <심산지록> 이다. 비탈진 산길을 다급하게 내려오는 사슴의 입매에 억울함이 느껴진다.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눈망울엔 한없는 슬픔이 깃들어보이며 이 작품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윤두서의 삶이 사슴과 같았는데 증조부인 고산 윤선도가 서인들과 싸우면서 가문의 화가 끊이질 않았고, 1694년 숙종20년 폐비민씨 복원운동에 반대했던 남인이 몰락하고 노론이 재집권하게된 사건으로,남인이였던 윤두서는 출사를 포기하고 그림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당파없이 서화하는 이들과 교류하는 윤두서를 남인들이 비방하기에 이르고 이에 윤두서는 심산지록과 같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는 이야기.

 

' <심산지록>에는 이러한 공재의 현실적 상황과 내면의 자의식뿐 아니라, 조선 중기와 후기 화풍의 교차하는 과도기적 화풍이 특징인 공재 그림의 면면이 잘 드러나있다. 나열적인 배치와 평면적인 묘사로 인해 깊이감과 현장감이 떨어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중기 화풍의 전형이다'p88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라는 부제는 바로 이러한 사연들이 담겼다. 그래서 그림을 안다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와 어울어질때 비로소 '안목'이 생길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번째로 인상적인 그림은 이광사, 이영익 부자의 <잉어>그림이다. 이광사의 나이 51세에 일어났다는 '나주 벽서'사건은 영조 31년 세력을 잃은 소론들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나주에서 유배중이였던 윤지와 윤광철이 나라를 비방하는 벽서를 붙이고, 이들과 서신을 주고 받았던 이광사가 함께 압송되면서, 50세에 눈과 머리만 그렸던 잉어 부분을 20년후 아들 이영익이 완성하게되었다는 사연이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잉어> 이광사 이영익

 

입신양면을 꿈꿨던 염원을 담아 잉어를 그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고사 등용문登龍門을 살펴보면 산서성 황하의 지류에 3단계 폭포가 있는 곳을 용문龍門이라 하고, 이곳을 뛰어오른 잉어는 용이 된다는 염원에서 입신양면의 뜻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p181 제법. 통통하게 오른 살에 갑옷처럼 걸친 비닐, 또랑한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지면에서 튀어오를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염원이 가득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그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 잘 아는 그림인데도 너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였다.

 

 

 <미인도> 신윤복

 

이 부분을 이 책의 장점으로 놓고 설명해보자면, 보통 그림을 설명해줄때 전체 그림을 놓고 설명해주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클로징한듯 잡아서 세세히 설명해주는 부분들 때문에 좀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미인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사실 이 그림은 퍽 '야한' 그림이다. 그 '야함'을 일견 모순되게 보이는 장치들로 교묘하게 감춰 두었을 뿐이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며 옷고름을 푸는 손은 뭇 남자들을 홀릴 듯한 교태지만, 건조하리만큼 무미한 표정을 보면 경박한 연정을 품기에는 조심스럽다. 또한 흘러내린 허리끈, 풍성한 치마, 치마 아래로 살포시 내민 버섯발에서는 성숙한 여인의 관능미가 물씬 풍기지만, 시선을 위로 돌리면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정한 머릿결과 가녀린 상체에서는 앳된 소녀의 청초함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p253

 둥그스런 얼굴형에  이목구비가 안정감있게 자리잡고, 꼭 다문 입술과 눈매가 그윽하게 느껴진다. 틀어올린 탐스러운 머리와 목뒤의 잔 머리가 여성스러움을 극대화시키며 정말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미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책에서 싣고 있는 36점의 그림중에 대표할 만한 표지 그림들이 많았는데 저자가 선택한 그림은 신윤복의 <미인도>였다. 김흥도의 <마상청앵-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이나 강세황의 < 향원익청-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또는 김득신의 <야묘도추-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의 그림들도 표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는데 왜 <미인도>를 채택했을까 하는 의문들이 일시에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간송 미술관 연구실장이신 백인산 저자의 이야기들이 직접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지만, 책에 실려 있는 그림들은 독자들을 위해 많이 보정된 상태로 실제 그림들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꼭 이번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다녀오고 싶다. 백인산님의 친절한 도움으로 사전지식을 얻었으니, 감상과 이해를 통해 내 스스로의 안목을 키워가고 싶다. 더불어 간송 전형필님에 대한 궁금증이 크게 생겼다. 기와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서라도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기위해 노력하신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였는데, 전형필님에 관한 책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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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송 평전
    from 突厥閣 2015-03-03 18:22 
    손에서 뗄 수가 없는 평전이다. 소설처럼 읽힐 정도로 이야기가 매우 박진감이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우리 문화재 수집에 뜻을 두게 된 경위와 일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수많은 보물들을 수장하게 되는 일화들이 쉴새없이 이어진다. 처음에 나온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사들인 얘기며, <혜원전신첩>을 두고 일본인 야마나카와 벌인 심리전 등등...글쓴이가 여러 자료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다 자신의 상상을 조금 덧붙여서 무척 현장감 넘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