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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너의 이름은>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영상이 흐르는 동안 아기자기한 배경과 음악이 좋아서 마냥 신카이 마코토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년과 소녀의 사랑 뒤에 숨겨진 장치들, 매듭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나는 맥스무비에서 발간한 <신카이 마코토>편을 읽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단순히 아름다움으로 치부했던 한편의 영화가 위로와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이토모리에서 사는 마츠하와 도쿄에서 사는 타키가 서로 몸이 바뀌는 첫 장면. 엉뚱하고 황당한 표정 덕분에 코믹하게 즐길 수 있는 이 영화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서로를 기억하지 못해서 노력하는게 포인트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사이에 흐르는 과거와 대재앙의 키워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결정적인 건, 2011년 일어난 일본 대지진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했습니다. 그 후로 일본 사람들은 ' 모두 살아있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너의 이름을>을 만들면서 그때의 기도를 담고 싶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p147)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마츠하가 살아가는 이토모리가 혜성으로 어떻게 되는지. 또 타키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런데 이토모리를 향한 타키의 마음이 무스비와 연결되어 간절함, 희망, 용기로 변화되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위로와 치유를 전달하는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달려가는 그들과 함께 얼마나 숨이 거칠어지는지. 그것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라는 사실을 알고나니 예술가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 새삼 실감했다. 우리에게도 아픈 세월호 참사가 있을 당시 '거짓말거짓말거짓말'이라는 노래를 짧은 시간 속에 완성해 우리를 위로했던 이적씨처럼 예술가들은 정말 힘이 쎄다 느낀다.
무스비(むすび)
'잇는다'는 뜻. 명사로는 실을 엮어 만든 매듭이라는 의미다. 땅의 수호신도 '무스비'라 불렀다. <너의 이름은>에서 미야미즈 신사의 현 신주이자, 미츠하의 할머니 히토하는 손녀들과 사당으로 향하는 길에 무스비의 의미를 들려준다. "얇은 색실을 꼬아 만든느 매듭 끈도 신의 능력,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한 거란다. 한데 모여들어 형태를 만들고, 꼬이고, 엉키고, 때로는 돌아오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고 그것이 무스비, 그것이 시간이지. 물이건 쌀이건 술이건, 사람 몸에 들어간 것이 영혼과 이어지는 것도 무스비" 무스비는 사람의 인연, 이는 모두 신의 영역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무스비를 소망한다.(p141)
맥스무비 매거진이 2017년을 여는 첫 이슈로 신카이 마코토를 택한 건, 이런 이유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작품을 만든 "대박"감독이라거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받을 것 같은 '대세'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시대를 위로하는, 동시대 거장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거장의 탄생을 함께 목도하는 즐거움을 모든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장-
그런데 이 잡지 정말 대박이다. 왜 그런거 있잖나.
영화를 한 편 보면 어디서 촬영했지? 뭘 먹는거지? 이 감독의 다른 영화는 뭐가있지 등 끊임없이 찾아들던 궁금증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일들이. 그런 일을 한꺼번에 해소해주는 잡지 책 한 권을 발견했으니 왜 대박이지 않겠나. 마치 무슨 보물을 발견한 심정이다.
<맥스 무비 매거진>이 창간 3주년을 맞아 하나의 주제로 한 권의 잡지를 완성하는 원 이슈 매거진으로 탈바꿈했다." 37호 p143)
기존부터 맥스무비를 알았던건 아니다. 아주 운좋게 발견했는데 37호 주제가 원피스 38호 주제가 신카이 마코토 였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있겠나?
아직 37호편은 읽지 않았다. 아껴 읽고싶어서 부러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다. 볼때마다 엄마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성장해서 좀 징그러운 녀석들이지만, 초창기 순진했던 모습의 원피스를 너무 좋아하기에 또 내 일본어 공부에 일등 공신인 녀석들이기에 무튼 부러 읽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고...
신카이 마코토 컬렉션이라고 해도 좋을 이 작품집은 그의 초기 작품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그가 게임회사에 입사해 일본 사상 처음으로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사람들을 놀랬켰던 당시의 이야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더욱이 재밌었던 점은 마코토 감독의 영화 속 등장한 책들을 소개하고 또 마코토 감독이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그가 하루키의 팬이라고 하는데 하루키 작가는 실로 다양한 팬층을 가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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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의 이름은>으로 검색하면 무수히 쏟아지는 책 때문에 뭐가뭔지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데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부분 역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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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인터뷰 나눈 장면도 인상적인데 특히 최현석 셰프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아내에게 <언어의 정원>을 보러 가자고 말했는데 거절 당해서 혼자 극장으로 가는 길이 무지 막혔다는 것, 어렵게 도착한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 까지 일어서지 못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참 섬세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섬세함이 요리와 연결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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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반부엔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된 장소와 음식 그리고 찾아가는 경로까지 꼼꼼하게 담아놓았다. 그런데 경로이동을 살펴보니 경비가 무려 7천엔이라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만원이 넘는다는 소리인지라, 이렇게 직접 가보지 않아도 살펴볼 수 있게됨을 감사하게 된다는.
참 기쁘게 읽고 즐기고 생각하고 느끼고 감동하고 이해하고 행복하게 책을 덮었다. 요즘 이동이 불편해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데 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아니 기쁘게 보낼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신카이 마코토 그의 영화를 쭉 살펴볼 생각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러니 기대가 크다. 맥스무비가 앞으로 어떤 주제로 찾아올지 쭉 지켜보고 싶다. 맥스무비 꼭 화이팅하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래본다!
책은 기쁘게 읽는 독자로 하여금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된다. 책은 자신만의 시력으로 찾아낸 독자가 자기보다 더한 시력을 얻게 한다. 책의 호흡은 독자에게서 비로서 생겨난다. 책은 무수한 점들의 모음이다.<언니들이 여행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