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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평점 :
어느 날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아리(동생 친구)가 책을 추천해달랬다는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메세지를 읽자마자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 책이라는건 기호가 확실한 물건이다.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문체, 좋아하는 출판사, 좋아하는 장르와 호기심이 결합된 철저히 주관적인 선택인데, 상대의 성향을 모르고 책을 추천했다가 내 치부만 드러내는 꼴이 아닐까 싶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 왠만하면 친구의 성향이나 최근 읽은 책, 좋아하는 장르를 묻는다거나, 최근에 읽고 좋았던 책을 알려주며 내 취향을 전달하게 하는 방법을 쓰곤 했다.
그런데 서점의 주인과 고객이라는 그 난감한 입장에서 책을 추천해야 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이 많을까? 페트라 하르틀리프의 책 '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를 읽으며 긴박했던 순간이 느껴져 깔깔거리며 책을 읽게 되었다.
' 하루는 상냥한 D여사가 서점에 와서 휴가 때 읽을 좋은 책을 찾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장편 소설에 매우 열광해서 그 책을 권했다. 책에서 다루는 소재는 귀머거리 소년, 미국에 있는 어느 농가, 개사육 세 가지였다. 사실 세 가지 모두 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매력적이고 사람을 꼭 붙잡아 놓는 소설이였다. D여사는 회의적이였다. 그녀 역시 미국 중서부에서 개를 키우는 이야기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보이는 열광적인 반응에 전염되고 말았다. 그녀는 딱 한 가지 조건, 비극적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휴가를 떠나는 마당에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주말에 나는 일을 하지 않고 꼬박 그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오. 마이. 갓. 해피엔딩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렇게 우울한 결말이라니. 일요일 오후, 나는 저 아래 어둑 어둑한 서점으로 내려가 컴퓨터를 켠 다음 고객 카드에서 D여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뒤져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책 계속 읽지 마세요! 모두다 죽어요. 개까지요!" 답장이 곧장 왔다! "이미 늦었어요"P170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순간인가. 책을 추천했는데 상대방이 원치않던 결말이라니. 그것도 서점에서 추천해준 책이 고객의 기호와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면 아마도 서점 주인은 미안하고 손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생길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아닌 이상 완벽한 책을 상대에게 추천하긴 힘든일임을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추천하는 과정의 행복함을 이야기한다.
' 몇 년에 한 번 그런 책이 있다. 그런 경우 나는 처음 스무 쪽은 늘 숨을 돌려가며 읽는다. 생각 같아서는 뒷부분도 앞부분과 똑같이 재미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단숨에 다 읽어버리고 싶지만, 천천히 읽으며 그 언어를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부터 나는 그 책의 전도사가 된다. 내게 중요한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당장! 이런 일들이 내가 올바른 직업을 가지고 있음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말고 다른 일은 없음을,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이 일보다 더 중요하지 않음을 백 퍼센트 확인시켜주는 인생의 순간들이다P171'
'책의 전도사'라는 어감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동안 '추천'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내 생각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주었다. 책을 추천하거나 권유한다는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며 내 생각을 모조리 꺼내보여주는 행위일테지만, 책을 읽으며 짜릿했던 순간과 문장과 울림을 함께 느끼고 싶은 이 마음이 순수하게 전달될때의 과정들은 더없이 값진 일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는 정말 우연찮게 서점을 낙찰 받은 저자가 우여곡절을 경험하며 서점을 오픈하게된 과정을 적나라게 담은 작품이다. 이 '적나라게'라는 단어에는 돌봐야할 아이들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과 서점을 병행하게 되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고 있다는 뜻인데, '내가 만약 서점을 차리게된다면'하고 핑크빛으로 수없이 물들였던 꿈들이 모두 사라지고 녹록치 않은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점이 무척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 코 앞에도 문고를 함께 하는 서점이 있긴하다. 서점의 반 이상이 참고서적으로 가득하고 나머지 붙박이 책장에는 아주 오래된 책들이 몇년째 방치되어 있다. 매대쪽에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이 소량으로 진열되어 있어서 특정한 책을 찾기위해 방문하는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아쉽다. 베스트셀러보다 장르의 차별화, 서점만의 분위기를 살려낼 수 있다면 멋진 서점으로써의 기능도 충분하련만, 잘 팔리는 책들을 위주로 또 참고서적을 위주로 진열해야하는 동네의 분위기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것 같아 애잔한 마음도 느낀다. 그래서 더욱 서점이 주위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책을 추천해주고 함께 수다를 떨고 좋아하는 작가를 초대해 행사를 벌이고, 절제 못하고 구입하는 습관에 제동을 걸어주는 훈훈한 모습들이 (한편으로는 제동을 걸어도 구입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냥 좋은 그런 서점이 간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