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산책 -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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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미세먼지로 잔뜩 찌푸린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어 마음마저 그런 기분에 휩싸이기 쉬운 요즘, 봄 향기가 물씬 나는 싱그러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꽃과 나무 등 자연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일까,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 이소영은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가이자 식물학자이다. 10여 년 동안 식물원과 수목원, 산과 들, 정원과 공터를 찾아 가 보고 만난 다양한 식물과 사람의 이야기다. 꽃과 식물을 채취하고 세밀화를 그리며 정성을 쏟는 일이기에 누구보다 남다른 애정이 생길 것 같았다. 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 닮고 싶어지고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초록빛 숲 속에서 떠도는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져 감동이 일었다.

 

 지난겨울 12월에 제주도 여행길에 들렀던 여미지 식물원이 생각났다.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선인장이나 평소에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짙은 초록으로 무성한 잎들이 달린 나무들 사이를 거닐면서 바쁜 삶으로 경직돼 있던 마음을 유연하게 해 주는 느낌이 좋았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던 관계로 워낙 넓은 식물원의 다양한 수목과 꽃들을 자세히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보통 마음을 치유하고 쉼을 위해 식물원에 가곤 한다. 하지만 식물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닌 종의 보존을 위해 식물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분류학자, 생태학자, 원예학자, 조경학자 등 식물세밀화가 까지 식물을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숨겨진 노력 덕분에 우리의 삶이 한층 건강하고 풍요로워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국내의 수목원은 물론 세계 각지의 식물원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다른 나라의 식물원에 대해서 다룰 줄은 생각도 못했다. 특히 일본의 하코네 습생화원이 인상적이었다. 언뜻 스치듯이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방치되어있던 논을 습지로 복원해서 조성한 곳으로 1979년 문을 열어 200여 종의 습생식물 외에도 1100여 종의 고산식물과 일본의 자생식물 등 1700여 종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3월부터 11월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곳은 매년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정원이 떠오르는 풍경,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정원으로 동북아 자생 풀들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의 자생식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고 그럴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던 식물의 세계도 우리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보고 들은 적만 있는 식충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벌레가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벌레잡이식물은 원래 다른 식물들과 함께 숲과 들에서 살았는데, 작고 약해서 점점 습지나 암벽으로 밀려나면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은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작은 곤충이나 동물을 통해서 영양분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 식물들이 살기 위하여 생존 방법으로 사냥을 택한 것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끈끈이주걱은 끈끈한 점액질에 달라붙은 동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 둔 후 지쳐 죽도록 해서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그에 따라 변화하려는 몸부림이 있었기에 식물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반면, 강자인 인간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대하며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식물을 다룬 이야기지만 과일 이야기도 나온다. 과일은 우리 생활과 너무나 밀접하고 친숙해서 생각지 못했던, 과일도 식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식물세밀화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했고 왜 굳이 그림이 필요할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알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원예식물의 식물세밀화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단다. 사진으로는 식물의 종 특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데, 사진으로 담으면 식물 개체 각각의 변이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밀화에서는 어떤 종의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특징은 드러내되, 개체의 환경 변이 등은 축소해 표현하므로 식물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특징을 잡아내기도 용이하기 때문에 식물 연구가 발달한 미국, 영국, 일본에서는 그림을 통해서 발표한다고 한다.

 

 최초의 식물세밀화는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16세기 최초의 식물학자들이 약용을 위해 식물의 생태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생체를 채집하며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 약용식물을 얻기 위한 식물 연구가 식물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 인류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식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약효가 증명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이름이 붙여지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식물의 가치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지에 달려 있고, 결국 그것은 인간이 결정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은 식물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그러면 식물에게 미안해지고, 또 나는 그만큼 식물을 더 사랑하게 된다.’(P166)

 

 한 종의 식물을 식물세밀화로 그려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으니 오랫동안 그 식물의 생육과정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십 번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식물을 채집하고 형태를 기록하며 연구하는 일련의 활동 속에는 식물들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종의 역사가 들어있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자신이 뿌리를 내린 환경에 순응하고 긴 시간 동안 주변의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는 식물에게서 인간인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과일이나 화분에 심겨진 화초들이 소비자의 기호와 입맛에 따라 선택을 받으면 인기 있는 상품이 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멸종되기에 이르는 원예 산업의 역사적 사례에서도 사람들의 심리가 보였다.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번영과 소멸이 반복되는 식물세계의 흥미로운 변화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식물을 키운다. 관상, 식용, 약용 등 식물로부터 유익함을 얻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울 때 잘 죽지 않고,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좋은가를 묻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질문을 통해서 나는 식물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지만, 식물은 내게 많은 걸 해주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데...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콕 집어 말하는 이 장면에 웃음이 난다

 

 여미지 식물원에서 정말 신기했던 것은 천장이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화초들이었다. 이 책에서 알았는데 흙이 필요하지 않고 공중에서 자라는 틸란드시아였다. 선인장과 같은 다육식물이지만 전혀 다른 품종처럼 외관이 다르다. 흙이 필요 없으니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공기 정화 효과에 실내 장식의 기능도 활용할 수 있으니 사람들의 인기를 끌지 않을 수 없겠다. 사람들이 바라는 심리와 맞아 떨어져 운명이 갈리는 틸란드시아와 리톱스의 사례를 보아도 마냥 편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늘 그 자리에 서있는 나무, 화초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바라볼까. 봄엔 푸릇푸릇 새싹으로 여름엔 짙은 녹색의 그늘을 베풀어주는 나무들. 꽃을 피우고 열매를 한없이 내어준다. 그들의 변화 속에서 위안을 얻고 내일의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어쩌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그냥 지나쳤던 주변의 식물의 꽃 이름을 알아보고 한 번 더 돌아보는 작은 노력으로도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식물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이 리뷰는 채널예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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