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 작가는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으로 처음 만났고 이 소설집이 두 번째다. 그러니까 김애란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는 얘기다. 먼저 소감을 말하자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에 감탄했다. 장편에 비하면 단편은 몰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주변의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깊은 관심과 연민이 없었다면 이런 얘기를 쓸 수 있을까. 이 소설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이웃이다. 행복한 삶의 선택권을 줄 수도 있는 이라는 화두는 우리 삶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그려놓지 않는가. 그리고 이웃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중 인상에 남았던 단편 몇 가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숲속 작은 집>은 한 부부가 미루었던 신혼여행을 떠나 해외의 장소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렀던 경험과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언제부턴가 꿈과 로망으로 여기는 한 달 살기는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있는 거라서 반가운 마음으로 몰입하며 읽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마주치는 낯선 곳은 설렘과 더불어 긴장감도 생긴다. 그 때문에 머무는 공간의 사소한 변화까지도 예민하게 다가온다. 외출했다 돌아온 은주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알아채고 불길한 생각이 든다. 숲속 작은집에서 무슨 사건이 터지는 건가 두근두근하며 읽어나가다 안도를 했다. 은주의 불길한 생각은 다행히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숙소를 청소해주는 메이드와의 소통의 부재였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진다. 객실 청소를 불성실하게 하는 것이 을 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메이드에게는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었다. 감정의 혼란이다. 이런 혼란은 이미 가족 내에서도 있었다. ‘와 남편과 와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불편한 마음이 뾰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것을 솔직히 말을 못 한 채 엄마에게 돈을 부치고 고마워하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여기서 <홈파티>의 등장인물 중 배우 이연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성찰했던 얘기가 오버 랩 되었다.

 



<좋은 이웃>은 이사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서명을 부탁하는 이웃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도 여러 번 겪은 일이어서,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 다 소설이 되는구나 싶어서 공감한 이야기였다. 화자의 또래로 보이는 한 부부가 좋은 이웃이 되겠다며 서명을 받아갔는데 말과 다르게 행동한다. 이 소설 속 또 하나의 이웃은 독서 지도를 하는 시우라는 아이다. 어려운 형편인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수강료도 올리지 않고 정성을 다해 독서 지도를 했는데 새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해한다. 어려운 제자를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고 뿌듯했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남편의 말에 허탈해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 부분의 마음속 독백은 애잔함 그 자체였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p141)

 


살다 보면 품고 있던 큰 꿈과 희망은 얼마나 작아지는지.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 모두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면서도 내가 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감추고 살지 않을까. 모두 그런 마음이 아닐까. 역시 화자인 도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자기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린 것, 분명 좋은 일이고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p130)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도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p142)

 



하지만 이미 이런 자각을 했다는 자체가 희망적이지 않을까. 사람이니까 욕망이 있다. 잘 살고 싶고 다른 이보다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인간은 욕심이 있는 존재이기에 발전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좀 더 나은 이웃이 되고 싶은 마음, 그런 사람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누구나 마음속에서는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에 위안을 느낀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중략)‘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p214, <레몬케이크>)

 



여러 편 중 맨 마지막 작품 <빗방울처럼>이 제일 좋았다. 사회 문제가 될 만큼 떠들썩했던 전세 사기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실제로도 많은 청년층 가구가 이 피해를 당했고 기성세대를 안타깝게 했었다. 독서 교실 방문교사 일을 하는 지수는 남편 수호와 함께 새 아파트로 이사할 날을 학수고대하던 어느 날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고액의 대출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과는 전화통화가 되지 않고, 천장에선 물이 새고, 이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하며 지수 부부의 삶은 급변하게 된다. 할 수 없이 대출을 얻어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게 되고, 급기야는 수호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한 조각 희망을 품고 살아가던 소박한 일상은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세상을 살다 큰일이 닥치면 대개는 세상을 원망한다. 하지만 지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던지 체념하고 만다. 그런 일은 그냥일어나는 것이라고, 내 차례일 뿐이라고, <안녕이라 그랬어>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을 받아들인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본문 중에서)

 



오늘 우리는 이런 말을 이웃과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가. 이웃의 안부는커녕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과 마주 보는 일도 힘든 세상이다. 지수는 외국인 도배사가 안방 천장을 보고 했던 그 말, 정중한 안부의 말을 떠올리며 어떤 결심을 바꾼다. 그리고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p294)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회학자라고 규정할 만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백번 공감할 수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사회의 고통과 불안,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려냈다는 것,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시선을 보내야 한다는 것, 소설가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도. 소설 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한 후 읽어서인지 그동안의 소설 읽기와 달리 깊은 감동이 전해졌다. 우리의 삶이 문학을 통해서 재현되고 그것을 읽고 나누는 과정에서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소설가란 대단한 사람이라는 존경심이 일었다. 열심히 읽어야겠다. 한국 소설을.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5-10-16 0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단편소설이 훨씬 읽기 편했는데, 님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김애란 소설가의 이책을 찜해 놓고 있는 있었는데 덕분에 살펴볼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2025-10-16 11:57   좋아요 0 | URL
네, 단편은 이야기가 짧아서 빨리 읽게 되는 장점도 있지요. 저도 단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호시우행님.^^

호시우행 2025-10-16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관심갖고 있습니다.

모나리자 2025-10-16 12:08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합니다! 그동안 책 읽기가 뜸했는데 분발하려고 합니다.
응원 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10-1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기 전이고요.
김애란 작가의 책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내면을 서술하는 부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모나리자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5-10-22 22:1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가지고 계시는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인물의 내면을 잘 묘사하는 것 같았어요.
날씨가 춥네요. 겨울이 다가온 듯합니다.
건강하고 편안한 나날 보내세요. 서니데이님.^^

페크pek0501 2025-10-19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를 읽고 작가의 역량을 알고 있었지요. 다 식상하지 않고 특색이 있었어요. 잊기 좋은 이름, 은 오디오북으로 반쯤 들은 것 같아요. 에서이보다 소설이 나은 작가 같았어요.
안녕이라 그랬어, 는 제목도 좋네요.^^

모나리자 2025-10-22 22:19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요즘 젊은 작가들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저도 열심히 소설을 읽어야겠어요. 이렇게 마음 먹으면서도 책 읽기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ㅠㅠ
추워진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페크님.^^
 

여기서 아빠는 입을 열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여기서 아빠는 공격을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빠는 동물들과 같이 살면서 땅을 경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이 야생 환경에 이제 적응했다. - P29

떠나기 전에 어머니는 냉장고 속 물건들을 보여주며 도시로 다시 가져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녀는 이 집이 매우마음에 들었으며 벌써 그리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불안할 때나 바쁘게 일할 때 이곳이 생각날 거라고 말한다. 깨끗한 공기, 언덕, 해질녘에 붉게 빛나는 구름.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 P142

그러다 어느 순간 지수의 눈이 차분하게 빛났다. 그간 고민해온 문제의 답을 얻은 얼굴이었다. 지수는 자신이 이 집 말고또 갈 데가 있음을 깨달았다. 거기 수호가 있다는 것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만날 방법이 있다는 데 작은 기쁨마저 일었다.  - P281

그러자 어디선가 방금 전 낙숫물에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이 집에 일부러 흘리고 간 단어마냥 툭툭.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가.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뚝뚝 흘러내렸다. - P29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5-10-09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42쪽의 글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좋은 이웃을, 좋은 친구를 찾지 말고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려고 해야 한다.

모나리자 2025-10-15 2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먼저 다가가야 하겠지요. 좋은 친구도 이웃도요.
이 소설집 좋았습니다.^^
 

직장 일로영혼이 어둑해지거나 인간에게 자주 실망할 때면 혼자 이국의낯선 도시를 검색해보곤 했다. 태블릿 피시와 다정히 얼굴을맞댄 채 열대지방 햇볕 쬐듯 전자파를 쐬었다.  - P50

 실은 적는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동작이었다. 중간에 글씨를 자꾸 틀려 만족할 만한 모양이 나올 때까지 종이를 몇 차례 구겼다. 그러자 새삼 이 나라 사람들, 이걸로 수백 년간 뭔가 읽고, 쓰고, 기록했겠구나, 거기 내가 모르는 삶도 많이 담겨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8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5-09-30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볼까 어쩔까 했어요. 김애란 책을 한 권 읽었는데-제 정신머리가... 소설집이 생각이 안 납니다.ㅋㅋ-참 좋았거든요.

모나리자 2025-10-03 13:12   좋아요 1 | URL
네 그러셨군요.ㅋㅋ 저는 이 작가의 산문집 한 권 읽고 소설은 처음 읽네요. 이제라도 소설을 좀 읽으려고요.ㅎ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고 평도 좋은데 읽어보니
알겠더구요.^^

페크pek0501 2025-10-09 13:30   좋아요 1 | URL
생각났어요. 달려라 아비, 라는 소설집입니다. 위의 댓글 쓸 때 아버지가 들어가는 그런 제목의 책이었는데, 라고 썼다가 지웠답니다. 지우길 잘 했죠. 아버지가 아니라 아비, 입니다.ㅋㅋ^^

모나리자 2025-10-15 22:0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목만 알고 있는 소설이네요. 언젠가 읽어 보려구요.^^
 
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의 사적인 소설 작업 일지
김호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호연 작가의 에세이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읽고 글쓰기에 진심인 그의 열정에 깊은 감동이 일어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소설 작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쓰기의 비법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에 신춘문예에 도전해보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하지만 계획만 세우다가 흐지부지되었다. 그런 내가 요즘 소설 쓰기를 한번 배워 볼까, 하는 생각이 동해서 작법에 관한 책이나 소설가가 쓴 에세이 등을 관심 목록에 올리고 있다. 사실 예전부터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변명과 함께 소설가가 될 것도 아닌데 하는 핑계를 대면서 소설 읽기는 별로 열중하지 않았다. 역시나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비록 쓰지 않더라도 공부 삼아 배워두는 건 나쁘지 않겠지. 소설을 읽을 때 분석하고 평가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먼저 목차를 살펴보니 1 소설을 쓰며 생각한 것들 2 나의 소설 작업 친구들 3 이야기 탄생의 비밀 4 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 5 글쓰기 마음 쓰기 6 마감하고 다시 쓰고 팔아라 7 쓰기 위해 읽다 이렇게 일곱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만 보아도 소설가의 글쓰기 작업과 일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단은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소설 편집자를 하다가 전업 소설가가 되었고 밀리언셀러불편한 편의점이 해외 판권으로 수출될 만큼 중견 소설가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 얼마나 분투했는지 행간에서 알 수 있었다. 특히 김호연 작가는 소설을 쓰는 장소인 작업실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무명 시절 첫 작업실이었던 동인천의 낡은 빌라부터 카페, 공공 작업실, 문학관, 이동 작업실 등에서 체류하고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 소설가가 되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니 감탄했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글 쓰는 공간은 작가들에게 그곳에 있다면 편안한 마음이 들고 영감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겠다. 김호연 작가는 자신의 소설 작업 친구들은 작업실과 루틴, 산책과 독서라고 했다. 여기서 그는 루틴에 대해 말하기를 종종 작가의 삶이 운동선수의 삶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깊은 공감을 했다. 오랜 시간 훈련을 하고 노력을 해서 프로 선수가 되는 과정이 작가들의 모습과도 겹쳐졌다. 3,4장에서는 이야기의 아이템을 떠올리고 제목을 짓는 방법과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플롯과 캐릭터 구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소설의 장르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소설을 쓰기 전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이 어떤 성질의 소설을 쓰는지 알고 써야 한다고 했다. 잠깐 언급해 보면, 문학성, 작품성, 실험성, 대중성, 통속성, 흥행성 등을 고려하여 그중 한 가지 성질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라고 했다.

 



나는 5장의 글쓰기 마음 쓰기 편이 가장 좋았다. 첫 문장을 쓰거나 글쓰기를 규칙적 습관으로 만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소설 쓰기도 일단 시작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한 멋진 처방을 내리는데 다음과 같다.

 



첫날은 작업 파일을 만들고 아무 문장이나 쓰세요. 그럼 당신은 작품을 시작한 것입니다.’(김호연)(p106)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다. 그냥 파일을 만들고 아무 문장이나 쓰더라도 작품을 시작한 것으로 치자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한다면 시작하기도 쉽다. 여기에 헤밍웨이도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무척이나 곤란해했다면서 헤밍웨이의 글을 인용하여 다시 이렇게 말한다.

 



첫날은 작업 파일을 만들고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세요. 그럼 당신은 좋은 작품을 시작한 것입니다.’(김호연)(p107)

 



한 번 따라 해봐야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집필 생활의 영양제라는 글쓰기 금언을 소개하는 부분도 좋았다. 대작가들도 처음엔 힘들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글을 쓰면서 경험하고 깨달은 글쓰기 철학이 절절히 담겨 있는 것이다.




글을 쓸 용기를 낸다는 것은 두려움을 지워버리거나 정복하는것이 아니다. 현직 작가들은 불안감을 씻어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려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랄프 키스(p114)


'글 쓰는 일을 받아들여 습관으로 만들고 그 습관이 강박관념이 되기 전에는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글 쓰는 일은 강박관념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말하고 잠자고 먹는 일처럼 본질적이고 생리적이며 심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니위 오순다례(p118)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힘들다더니. 이 글을 보니 책이 좋아서 글 쓰는 작가가 되었다면 그 강박관념도 즐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숙명은 평생 작품을 쓰고 마감을 하는 반복의 연속이다. 그런 시간이 쌓여야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들의 루틴이나 글쓰기 금언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6장에서는 마감력에 대한 얘기와 마감 노동자, ‘마감 좀비로 살아가는 소설가의 고뇌를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 마감이 있어서 글을 쓰고 마감이 있어 존재한다고 했다. 마감은 매니저이자 멘토이자 영감의 원천이자 삶의 동반자라고 하는 김호연 작가는 소설가의 삶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고를 읽어 줄 모니터 요원의 중요성과 원고는 반드시 출력본으로 읽어볼 것을 강조한다. 출력본을 읽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모니터 요원의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다시 쓰기작업은 이야기도 작가도 성장하는 길이라고 했다. 소설가의 일상 루틴을 실천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마감과 다시 쓰는 일의 반복을 통해서 소설가는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7장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인상 깊게 읽은 소설 7편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 읽기는 최고의 소설 공부라고 했다.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닌가. 앞으로도 이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09-28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똑같이 하지 않는다 해도 자기만의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에요 별거 아닌 걸 쓰고도 시작했다고 생각하기, 는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그걸 날마다 이어가야 할 텐데...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끝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모나리자 2025-10-03 13:37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작가들의 일상 루틴이나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는지 등 여러 정보를
접하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시작하고 그것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어느새 10월이 왔네요. 날씨도 서늘해졌고요.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희선님.^^

2025-09-30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01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