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 존재의 조건을 찢는 자들
신창용 지음 / 스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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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급박한 상황의 이야기인가, 예상했었다. 탈출까지는 아니어도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꾼다. 지금의 상황에서 탈바꿈하거나 시원하게 벗어나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자신의 상황이 무거운 상태라면 더더욱.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려는 M이 비상사태 발생으로 제대가 연기되었다고 소리치는 중사의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는 아마도 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경의 반영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파스란>국에서 <로만공화국>으로 건너왔을 뿐인데, 통행증도 없이 불법으로 국경을 침범했으니, 즉결심판을 받아야 한단다. 이 상황을 어디서 본 듯하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 된다.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 K. 그로부터 1년 동안 밑도 끝도 없는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서 나갈 수 없소. 당신은 체포되었소.”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뭐죠?” K가 물었다. “우리는 그런 걸 말해줄 입장이 아니오. 방으로 돌아가 기다리시오. 이제 소송 절차가 시작되었으니, 때가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겁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하긴, 뭣 때문에 왔든 그런 건 우리가 알 바 아니지. 일단 여기에 하룻밤 구금된 후 내일 경찰에 압송되어 판사한테 즉결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나 알고 있으란 말이오!”(P10)


 위의 두 문장의 내용의 핵심이 닮지 않았는가? 기묘하게 닮았다. 확실한 증거나 타당한 이유도 없이 당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운이 사납게 되었다!’ 그렇다면 분명 담당하는 관리국이 있을 터인데, 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산림감시소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느냐 말이다. M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하지만, 산림감시소 직원 앤은 오래된 관행으로 자신들이 통행증 확인이나 불법입국자를 검거한다고 했다. 특별입법조사위원 위촉의 문제로 왔다는 말을 듣고 앤은 놀란다. 고급관리, 돈에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호들갑을 떤다. 소문을 듣고 일자리를 찾는 것도, 비상식이며 엉성하다. 더구나 자국에서 분리 독립해서 나간 초라한 로만공화국으로 들어왔다니.


 긴 대화를 나누지만, 도통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각자 목소리는 높이지만, 서로 공감할 수 없는 허공에 떠도는 말이다. 이상한 분위기에 휘말려 3급 관리가 되어버린 M을 사랑한다느니, 몸종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넬리의 말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다. 너도나도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는 현실. 출세와 숫자의 만족을 위한 삶으로 치닫는 현실이 보인다.


 파스란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살았던 M은 왜 타국 로만공화국으로 넘어왔을까? 유학에, 로스쿨을 나오고 법학박사 학위까지 가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으로서, 새 탈출지 로만이라는 외국에서 신분상승을 꾀하여 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위한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분주하다.


 앤, 넬리, 파비안 이 여성들은 관리라면 껌벅 죽는다. 빌붙어서 팔자를 고치려는 여자들 같다. 하나같이 관리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비굴하게 무릎을 꿇는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몹시 낮추며,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태연스레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어떻게든 ‘급’을 높여서 돈을 쟁취하려는 삶의 피로감이 보인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 계단씩 나아가려는 삶의 애착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그 어두운 삶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그들 나름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여자들을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는 또 뭔가. 저속하기 짝이 없다. 장난감 다루듯 하며,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는 태도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갑’이 되고 싶은 수많은 ‘을’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꾸고 싶지만,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기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무릇 국가나 관리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마땅하나, 제각각 권력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생은 뒷전이 되고. 그들도 살아야 하니까 온갖 비리와 부조리는 반복된다.

 

 새로운 삶을 원했던 M의 야망이었던, 출세도 행복의 길도 열리지 않은 채 지리멸렬한 시간이 흐른다. 좀 더 나은 세계로의 탈출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여성들은 남자에게, 급이 높은 관리와 가까운 사이가 되어 신분을 높이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 구덩이에서 벗어나려는 집착이 강할수록 그 구덩이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근본적인, 좀 더 문제 상황의 근본적인 것을 끌어내어 해결해야 한다.


 무수한 오자와 어법에 맞지 않는 엉성한 문장, 그리고 너무 긴 대화체는 읽어내기 힘들었다. 사회 곳곳의 의혹투성이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을 문장에 담으려고 했던 것일까. 게다가 화자의 불확실한 상황의 불안감이나 심경을 반영하려는 설정이라 해도 좀 심하다. 죽음으로써만 ‘탈출’을 이루게 된 일은 심히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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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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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수 년 전 지방에 살고 있는 동생네 집을 가다가 한 밤중에 짙은 안개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동네까지는 수월하게 도착했고, 몇 분만 더 가면 동생네 집이 지척에 있는 거리였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아주 짙고 새하얀 안개,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였다. 그 속에서 몇 시간을 헤맸는지. 여긴가 하면 아까 그 자리, 그것이 반복되면서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영어회화 학원 동료였던 오하시, 나카이, 다나베, 다케다, 후지무라, 하세가와가 교토 ‘구라마 진화제(鞍馬の鎭火祭)’에 갔다가 하세가와가 홀연 사라진다. 그 후 10년이 흘렀고, 나머지 다섯 명이 모여 다시 그 곳에 가기로 하고 모였다. 밤의 이야기는 왠지 으스스하다. 빛이 차단된 밤은 시야도 짧아서, 아주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등골이 오싹하다.

 

 약속장소 교토역 주변을 걷다가 나(오하시)는 어디서 본 듯한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간다. 옆얼굴이 하세가와를 꼭 닮은 여자다. 종종걸음으로 쫓아간 곳은 ‘야나기 화랑’이었다. 분명히 여기로 들어갔는데, 그 여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화랑주인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고. 이렇게 이야기의 시작부터 묘한 일이 생긴다.

 

 저자의 고향인 교토를 비롯하여 사건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실제 지명으로 언급한다. 이는 더욱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고 묘사되는 장면들도 압권이다.

나카이는 갑자기 집을 나간 아내를 찾으러 오노미치에 간 일, 다케다군은 직장 동료 마스다 일행과 오쿠히다에 간 일, 후지무라는 남편과 남편의 동료 고지마군 함께 쓰가루 철도 여행을 한 일, 다나베는 열차 여행에서 독심술을 하는 사에키와 한 여고생을 만난 이야기를 한 가지씩 풀어 놓는다. 이들 이야기 모두 기묘하고 섬뜩하다. 나카이는 오노미치의 가게에서 아내와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물건도 샀는데,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다. 또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차를 태워달라는 초로의 낯선 여인은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미래를 볼 수 있다면서 마스다 일행을 섬뜩하게 한다. 얼굴에 사상(死想)이 보이니까 지금 당장 도쿄에 돌아가라고, 내일이면 늦는다면서. 이들의 체험 이야기는 하나같이 오싹하고, 마치 단편의 조각을 모아놓은 느낌도 난다.

 

 각각의 이야기의 배경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공통점은 동판화가 기시다 미치오의 ‘야행’이다. ‘야행’은 연작으로 하나하나의 작품에는 실명(實名)의 지명이 붙어 있다. 오노미치, 오쿠히다, 쓰가루, 나가사키 등등. 그런데, 그 지역을 여행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섬뜩함이 느껴진다. 다섯 사람이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는데, 그의 동판화 ‘야행’의 얼굴 없는 여자가 손을 흔드는, 똑같은 모습이 나온다. 한때 기시다의 작업실은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살롱이었다. 방문객들은 주로 밤에 모여서 그림을 감상하고, 모두는 여행의 추억을 수다로 풀어 놓았다. 기시다는 그들에게 요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항상 커피 냄새가 났다. 방문객들의 이야기와 암실의 명상이 서로 연결되어 ‘야행’이 탄생했다는데.

 

“이 어둠은 어디든 연결되어 있어.”라는 기시다의 말처럼 거짓말처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사람들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는 걸까.

 

 환상인지 꿈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속은 것 같기도 하다. 돌다가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원점. 헷갈린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떤 틀에 묶여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까.  어린 시절 똑같은 모습의 친구와 마주치기도 하고,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다. 예술가의 눈으로 본 밤은 신비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서광이 다가오면 밤은 그 속에 묻히고 새 날이 반복이 된다.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일까.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던 퍼즐이 하나하나 꿰어 맞추어지듯이 스토리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게다가 마지막의 반전은 또 다시 현실과 환상을 뒤집어 놓는다. 나중에 다시 교토를 여행하면 많은 생각이 겹칠 것 같다. 열차여행 이야말로 낭만의 극치. 밤의 열차를 탄 여행길에서, 차창에 비친 얼굴들도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 三内丸山遺跡 さんないまるやまいせき)은 일본 아오모리 현 아오모리 시에 위치한 조몬 시대 중기(후기신석기)의 대규모 취락지 유적이다. 1994년의 조사에서 직경 1미터의 거대목주열이 6개가 출토되면서 각광을 받아 현재 관광지가 되어 있다. 길이 30미터의 대형 건물이나 굴립주 건물 자취, 약 500기의 수혈주거 흔적, 무덤, 성토 고건축의 잔존물 등이 35ha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네이버에서 퍼온 사진과 정보임.)

세 번째 이야기-후지무라의 쓰가루 여행에 나온 배경

 

‘교토의 천재’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재능’ 등의 찬사로 수식되는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의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밤의 세계를 환상의 세계로 열어주고 무더운 여름날을 서늘하게 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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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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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 적령기가 되면 많은 여성들의 관심은 내 반쪽 ‘백마 탄 왕자’는 어디 있을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고 꿈을 꾼다. 영화배우 같은 매력적인 외모에 지적이며 재미있고 직업도 근사한 저명한 변호사 잭은 여성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지인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친절하고 배려 넘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동석한 여성들은 부러움과 시샘을 하기에 바빴다. 잭 엔젤은 완벽하게 ‘백마 탄 왕자’였다.


『오만과 편견』의 도입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는 말.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잭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호색한도 아니다. 오로지 ‘공포에 질린 인간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 위해’ 대상을 찾는다. 이리저리 사냥감을 찾던 잭은 야외 공원에 앉아있는 그레이스를 발견하고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로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6개월 만에 부모님을 만나 인사하고 결혼식까지 초단기로 성사되었다. 너무 친절하고 너무 잘 생긴 남자가 재력도 있어서 집을 결혼선물이라고 사 주는 남자가 접근한다면 한 번쯤은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운증후군이 있는 여동생도 같이 살자는 제안에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세상에서 최고로 운이 좋은 여자라는 환상에 들떠 행복감에 젖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척척 진행된다.


 이 글은 나(화자)가 과거와 현재를 돌아다보며 사건의 추이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있다. 겉에서 드러난 평가와 안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이 많다. 가볍고 심한 정도의 차이로 누구나 약간의 이중성은 있다. 하지만, 안팎의 정도가 심할 때 감쪽같이 속았을 정도로 격차가 심할 때 사이코패스 성향을  의심하기도 한다. 타인의 공포로 얼룩진 얼굴을 보며 재미를 느끼다니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왕자가 사이코패스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혼여행지 태국에서, 아니 그보다 먼저 결혼식을 마친 당일 밤 부터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레이스는 잭이 없는 빈 방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첫날밤을 고스란히 홀로 보내고...


“유감이지만 꿈은 끝났어”

소름이 돋는 오싹함이다. 지금까지 그레이스가 알던 잭이 아니었다. 뒤늦게 괴물과 결혼했구나, 뼈저리게 느끼지만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여권, 휴대폰, 신용카드, 지갑 등을 모조리 빼앗아 감추고 돌아갈 길을 차단한다. 그때부터 아름다운 저택은 감옥이 되고, 그레이스는 포로가 되어 일상생활 일체를 감시당한다. 꼭두각시처럼 그의 지시대로 행동해야 했다. 보여주기 위해 연출사진을 찍고, 행복한 모습을 연기한다.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잡히고 점점 수위 높은 괴롭힘을 당한다. 거의 동물이 사육당하는 만큼 참혹할 정도다.


 게다가 놀라운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영리했던 밀리에 의해 결혼식 당일, 계단을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은 잭이 밀었던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이 사실은 그레이스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공포심으로 번지고. 야수 같은 잭은 너 그레이스가 아니라, 밀리를 도구삼아 그레이스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조급해진 그레이스는 어떻게든 그 소굴을 벗어나려고 애쓰는데...


 이럴 때는 조급함보다는 차분한 마음이 우선이다. 두려움을 눈치 채게 하는 것은 이미 지는 것이다. 포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레이스는 맞서지 않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테스트하는 잭에게 지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스릴 넘치는 치밀한 두뇌 게임이다.


 악의 끝은 없다더니, 잭의 죽음으로 그레이스와 밀리의 고통은 끝난다. 어쨌든 후련한 마무리다. 부모의 극단적인 무관심, 폭력은 잭이라는 괴물로 키웠다. 그렇다고 그러한 환경이 모두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정환경,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아니 된다. 제 2의 잭이 나타나 그것을 역이용하여 범죄의 대상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문 뒤에 싸늘한 웃음을 띠고 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완벽해 보이는 커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소설 『비하인드 도어』는 B. A. 패리스의 데뷔작으로, 아마존 킨들 독립출판 후 3일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판권도 계약되었을 만큼 올여름 무더위를 확 날려줄 스릴 만점의 몰입도 높은 작품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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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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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한참 동안 찾곤 한다. 잘 두었다고 신경 써서 둔 것을 잊어서 곤란해 하기도 한다. 이런 때 농담으로 치매 아니야? 라는 말을 가볍게 하지만, 그러한 중증의 환자가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 중에 있다면 결코 웃을 일이 아닐 것이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살아오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나쁜 기억만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오베라는 남자』로 감동을 선사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아주 조그맣고 얇은 두께의 책으로 맑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하기에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와 노아의 이별 연습이다. 때로는 기억 속에서 때로는 꿈인가 싶은 이야기로 환상의 공간을 보여준다. 아주 담담하게.


“어떤 기분이에요?”

“주머니 속에서 계속 뭔가 찾는 기분, 처음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거야.”(p183)


 궁금한 노아가 할아버지에게 머릿속이 아프냐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간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무너지는 마음일 것이다. 시간적 공간을 오락가락하면서 헤매기도 한다. 어릴 적 노아와 청년 노아를 보며 당황해 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젊은 날 만나 사랑에 빠졌던 할머니는 히아신스 향기가 나는 아가씨의 모습으로. 수학자였던 할아버지는 일이 너무 바빠서 아내였던 할머니의 설거지도 도와 준 적이 없고, 할머니에게 까다롭고 뚱하게 대했다. 노아의 아빠인 테드가 음악을 좋아하여 기타를 치는 것도 못마땅했다. 이 모든 것이 후회로 남는다.


 묵직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지만, 전혀 무겁지는 않다. 큰 사건도 없이 담담한 가운데, 웃음도 선사한다. 자주 노아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묻는 장면이 나온다.


“수학은 별로 안 하고 쓰기만 많이 해요.”

“그리고 계속 글을 쓰래요! 한번은 선생님이 인생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함께하는 거요.”(p113~115)


그래, 인생은 함께 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다. 참 따뜻한 말이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도 있다.


“가장 평범했던 일들이 그리워. 베란다에서 아침을 먹었던 거. 화단에서 잡초를 뽑았던 거.”

“나는 새벽이 그리워요. (중략) 호수 위로 반짝이던 햇살이 부둣가 돌멩이들을 지나 뭍으로 올라와서 정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집 안으로 살그머니 쏟아져 들어오면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하루를 시작했잖아요. 사랑스럽게 졸음에 겨워하던 그때 당신 모습이 그리워요. 그때 당신 모습이.”(p119~121)


 살다보면 일에 치여서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도 데면데면 해지기도 한다. 부모의 주장을 자녀들에게 앞세우다보면 약간의 불협화음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두 지난 일이 된다. 세월 앞에서는. 읽는 동안 생각난 것이 있다. 부모와 조부모와의 추억을 요즘은 얼마나 만들어가며 살고 있는지. 추억으로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는 것인데. 아이들이 성장하며 경쟁교육에 내몰리면서 평범하고 소중한 관계의 추억 만들기가 너무 결여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족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전혀 무서워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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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3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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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서는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은 세 사람이 서로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 펼쳐진다. 광대한 타클라마칸 황량한 사막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받아 새 삶을 꾸려간다.


권력욕에 눈이 먼 송인 등 주변세력은 모사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고...


 당한 대로 갚아 주는 것!

이 문장을 발견하고는 전에 본 일드가 생각났다. 은행원으로 월등한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주인공은 어릴 적 아픈 기억이 있다.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도산 직전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끝내 거부하며 아버지가 자살하게 된다. 그 사건은 성장하는 내내 피맺힌 한으로 작용하고, 거절했던 그 은행에 취직한 주인공이 해결하기 어려운 채무를 걷어 들이는 일을 맡게 된다. 거의 가능성 제로였던 것을 해결하면서 반전이 된다. 그 주인공이 자주 부르는 노래. ‘당한만큼 갚아준다. 열 배로 갚아준다.’ 는.  피바람을 부르는 복수도 아닌, 통쾌한 복수이기 때문이다. 왕좌를 노리기 위한 복수와는 격이 다르다.


  반면, 왕좌를 노리기 위한 복수는 비열하기 짝이 없고, 인간은 과연 어느 선까지 사악할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다. 그렇게도 왕의 자리가 탐나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송인 등은 있지도 않은 죄를 조비를 비롯한 측근에게 덮어씌워 왕전을 내세워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혈안이다. 왕의 자격 같은 것을 갖추지도 못한 허수아비나 진배없는 위인을 내세워서 권력의 실세를 노리려는 음흉한 간계다. 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워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검은 음모다.


 현애택주 산을 찾아서 왕에게 수십 배의 고통으로 복수하고 싶은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예상치 못한 가까운 곳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데...


 단의 도움으로 밀실에 갇혔던 산은 탈출에 성공한다. 죽은 줄 알았던 린이 살아 있고 노예로 팔려갔다는 정보를 듣고, 장의, 송화, 비연 등 일행은 린을 찾아 길을 떠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물이 없어 탈진하는 등 고생고생 끝에 사막 가운데 있는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한편 원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대도에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마을. 원나라의 공녀로 차출되어 왔다는 미금. 그들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힘을 얻어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이곳은 누가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일하지 않는다. 소유권을 위한 다툼도 고발도 없다. 냉혈한의 비열한 웃음도 없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산은 일행과 더불어 사랑이 있는 삶의 풍경을 떠올린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참으로 고생길이다. 사랑에 관한 갈망은 왕실의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독점하고 소유하며 괴롭히는 원의 방식은 안쓰럽다. 건전한 정신에서 우러나는 사랑이 아니다. 어떤 폭력으로도 소유하려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성스러운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원이 린과 산에게 그렇게 끔찍한 고통을 안겼는데도 미워할 수 없다. 오히려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산. 다시 우정이 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 고통은 고통으로 치유할 수 없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오직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스진의 현명한 처사, 부자지간을 증오의 대상으로 여겼던 원의 태도가 조금씩 유연해진다. 어쩌면 성군이 되기에 앞서 자신이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증오와 야욕이 가득 찬 마음으로 좋은 왕이 된다는 것은 역시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권력욕도 마찬가지다. 왕좌를 노리기 위해 사랑으로 가장하고, 신분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이 오래갈 수 없다. 역사적 상황의 전개와 인연이 된 세 사람의 사랑, 우정,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사람의 운명은 결코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정당한 방법으로 취하지 않은 권력은 머지않아 모래성처럼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와 상상력이 가미된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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