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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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면은 아기가 죽었다.’는 처참한 상황에 쇼크 상태의 어머니가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이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 의문을 갖고 하나씩 단서를 찾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거칠다고 할까. 격정, 혐오감이 배어 있다. 보모 루이즈는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놀이를 하며,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화가 프랑크의 그림은 고통으로 꼼짝하지 못하거나 황홀감에 마비된 여자들의 몸이었고, 그것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루이즈의 남편 자크와 루이즈는 타인의 고통, 공포를 보며 그것을 즐긴다. 이렇게 가학적이고, 분노를 간신히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불안감이 느껴진다. 이는 다름 아닌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누군가를 향해 분노와 혐오로 펄펄 끓고 있기 때문이다.


 폴과 미리암 부부에게 딸 밀라와 아들 아당이 있다. 특히 둘째 아당은 미리암에게 집에서의 안온한 삶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핑계일 만큼 아이들을 돌보는 모성애로 언제까지나 행복할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편안한 행복감이 삐걱거린다. 시어머니와도 마음이 맞지 않아 매 순간 언제든 난투극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일 정도라니. 부모의 지원도 없이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 법관이 되었을 때 그 기쁨, 처음 변호사복을 입었던 순간이 되살아난다. 남편을 시기하고 아이들을 걸림돌로 느끼기 시작한다. “얘들이 날 산 채로 잡아먹는구나.’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어디선가 불행한 일이 불쑥 터질듯해서 내내 불안한 느낌이다.


 미리암이 일을 하기 위해 보모가 필요했고, 루이즈를 집에 들이게 되는데. 다루기 힘든 밀라를 제압하고, 밀라의 생일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아이들을 홀리듯 데리고 논다. 보모로서 역할 외에도 가사도우미 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낸다. 점점 빨리 와서 점점 늦게 간다. 시키지 않은 일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불편해 하면서도 루이즈는 이제 이들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삶은 이런저런 책무와 완수해야 할 계약, 잊으면 안 될 약속의 연속이 되었다. …… 그들은 그렇게 일에 치인다는 것이 곧 성공을 알리는 징표이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정신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의 삶은 용량을 초과해서, 남은 자리는 겨우 잠을 위한 것일 뿐, 무언가를 응시할 자리는 전혀 없다.’(P149~150)


 폴이 너무 바빠서 아이들과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을 미리암이 걱정하자, 그래도 루이즈가 있지 않느냐며 안도한다. 미리암도 변호사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육아와 살림을 맡고 있는 루이즈 덕분에 행복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폴의 어머니는 돈 욕심과 허영의 노예가 되었다고 통탄하지만. 두터운 신뢰감을 쌓아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함께 그리스에서 휴가를 즐기게 된 루이즈는 처음 맛보는 아름다운 황홀감에 계속 이들과 같이 살고 싶은 꿈이 생긴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려가는 삶은 방심한 사이에 어떤 틈을 노리고 독버섯처럼 무성해지는 무언가를 눈치 채지는 못한다. 제 살 속에 파고 든 손톱이 생채기를 내듯이, 루이즈는 어느새 그들의 삶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었다.

 

도자기 인형처럼 예쁘고 차분한 태도와 우연히 들은 루이즈의 노래 소리는 아주 아름다웠다. 오래 지내다 보면 처음에 간과했던 본연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어느날 갑자기 루이즈에게 국고에서 온 빚독촉 편지, 루이즈의 너무 완벽하고 예민한 행동 등은 이들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또한 화장 사건이라든지, 다 먹고 버린 통닭뼈를 깨끗이 닦아서 장식으로 올려놓은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혐오감은 더욱 커지고 해고 시키려는 결심에 이른다.


 예민한 루이즈가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 할 리가 없다. 남편으로부터 폭력의 상처와 빚을 떠안은 그녀에겐 어떤 것도 위안이 되어주지 못한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 준 사람이 없었다. 빚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고 딸 스테파니는 불쌍한 사고뭉치 망나니가 되고. 모든 술책을 동원해서 루이즈를 만나러 온 에르베에게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그녀는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두 눈은 뚫어져라 그 손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손, 자리 잡는 손, 시작하는 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할 손, 본색을 잘 감추고 있는 얌전한 이 손.’(P238) 어쩌면, 이렇게 간결한 문체 속에 예리함을 담고 있는지 경탄할 지경이다. 남자에게 덴 상처가 있는 루이즈의 심상은 꿰뚫어 보고 있다. 루이즈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녀의 몸을 숨길 둥지, 따스한 은신처 하나 마련하는 것이었다. 점점 루이즈의 마음은 강박관념으로 복잡해진다.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끔히 해결하려면 아기가 절실하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이러니 벌을 받을 거야. 사랑할 능력이 없으니 벌을 받을 거야.’(P273)

이렇게 루이즈의 머릿속은 이 후렴구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다. 극심한 가난과 고통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마저 앗아간다. 안으로, 더 깊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주변을 살필 수 없다. 사실 이야기의 정황상 끔찍한 이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 기이한 행동에 대한 의심을 품고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미리암은 특히 루이즈를 너무 믿는 구석이 있었고, 그녀가 누구인지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주위의 평판에만 의지한 잘못도 있다. 결국 그들만의 세계에 다가가지 못한 루이즈...


 이 작품 여성작가의 공쿠르상 수상작은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여성 작가의 시선으로 여성들에게 민감한 육아 문제와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심리와 분위기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어서 한층 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또는 각국의 내전으로 인해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들이 기존 사회에 투입되어 불협화음의 상황을 빚게 되는 사회의 단면도 짐작할 수 있다. 또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위한 복지의 미비는 생활의 불안정을 야기하고,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성도 보인다. 스릴러 같기도 하고 우화 같은 느낌도 드는 이야기, ?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속도감 있게 몰입할 수 있는, 결코 달콤하지 않은 현실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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