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는 메이브 빈치의 이 작품을 티저북으로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아일랜드 소설이라는 점과 제목에서 어떤 운치가 느껴졌기에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 첫 배경은 아일랜드 서부의 스토니브리지의 라이언 씨 농장의 풍경으로 시작이 된다. 내겐 아직 미지의 세계인 아일랜드의 풍경을 행간에서 찾아 떠올리게 된다. 스토니브리지는 경치 좋은 전형적인 시골이다. 라이언 씨 농장의 아이들은 각자 맡은 일이 있다. 치키의 언니 메리, 캐슬린, 치키의 남동생 브라이언, 아들 둘은 서부의 큰 도시로 나가 일을 하고 있다. 비교적 평화롭게 보이는 농장의 풍경인데, 농사만으로 가족 전체가 살아가기에는 힘에 부쳐 제각각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눈치가 있는 치키는 편물공장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미국인 미남 청년 월터 스타와 만나게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지구상에서 이 곳 스토니브리지가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말하는 미청년 월터는 치키에게 반해서 같이 여행하자고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치키. 부모님이 우리 인생을 대신 살 수는 없어. 우리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런 낯설고 황량한 땅에서 돌아다니기를 바랐을 것 같아? 신나게 즐기기나 하면서? 아니, 부모님은 내가 컨트리클럽에서 좋은 집안의 딸들이랑 테니스나 치기를 바라지. 하지만 여기가 내가 있고 싶은 곳이야. 간단해.”(P12)


 이것저것 재고 고민하지 않는 월터의 단순한 성격이 보인다. 그렇게 육 주 동안의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치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월터를 따라가려고 마음먹는다. 가족들은 노발대발하며 치키를 만류하며 난리가 났다. 결국 아무런 축복도 받지 못한 채 떠난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엄마의 말대로 지나가는 열병이었음을 확인하는데 오래 가지 않았다. 감동과 환희로 가슴 벅찼던 둘의 사랑은 차갑게 식는다. 월터는 그동안 아주 행복했지만, 이제는 끝났다고, 그저 사랑이 피어났다가 사랑이 죽은 것뿐이라고 한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버거움을 동화처럼 꾸며 편지를 보내면서 그 힘으로 버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끝나면 많은 이들이 많은 상처를 부여안고 어찌할 줄 모른다. 하지만예상과 달리 치키는 씩씩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치키는 일자리를 얻으려 노력했고 운 좋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캐시디 아줌마를 만나게 된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며 열심히 살아간 세월이 그 짧은 분량 속에 벌써 이십 년이 흐른다.


 동화 같은 달콤한 거짓말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잔잔한 일상에 파고들어 그것을 파헤치게 만든다. 세상엔 비밀이 없다고. 조카 올라와 브리짓이 미국 이모네로 놀러 온다는 날짜가 시시각각 다가오자 고민에 빠진 치키는 캐시디 아줌마에게 털어놓게 되고, 월터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참 대단한 순발력이다. 어쨌든 이 반전으로 좀 편안해진 치키는 고향에 갔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놀이터였던 스톤하우스의 미스 퀴니를 만나게 되고 호텔로 개조하자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집을 호시탐탐 노리던 이웃 오하라 집안에게 넘기지 않으려던 미스 퀴니의 꿈은 치키가 이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한다. 치키의 친구 눌라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이기도 했던 스톤하우스는 많은 사연들이 거쳐 갔다. 사랑에 빠진 치키가 미국으로 달아났듯이 눌라는 임신하게 되어 이 집을 나가고 그 아이가 리거다. 이렇게 스톤하우스가 호텔로 개조되어 오픈하기까지 치키와 리거, 올라는 창업 멤버가 된다.


 친구들과 고깃덩이를 훔치고 온갖 말썽을 부리며 엄마의 속을 썩이던 리거는 치키의 도움으로 스톤하우스에 오게 된다. 이런 낡은 집을 호텔로 개조한다니 미친 짓이라 여기던 리거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며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서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걱정할 정도가 된다. 열여덟 살의 청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더니, 다시 여자 친구 카멀이 임신했다는 소식으로 깜짝 놀라게 한다. 조카 올라는 컴퓨터를 전공한 유능한 인재로 런던에서 일을 하다가 이모 치키와 합류하게 된다.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1년만 있어 보기로 했던 올라는 이 곳에 정이 들어 더 남아있고 싶어 한다. 첫 사랑에 실패한 치키는 어디에 그런 노련함이 있었던지, 갑작스레 닥친 모든 일을 침착하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마치 기적 같이. 동굴을 탐사하고, 절벽을 오르며 새들의 둥우리를 찾아내며 자연 속에서 놀았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호텔 오픈을 앞두고 안타깝게도 미스 퀴니는 평온한 표정으로 생을 마감한다. 누구보다도 오픈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는데. 미스 퀴니의 말대로 바다, 평화, 추억이 적당하게 있는, 아름다운 경치 속에 완성된 스톤하우스가 보이는 듯하다. 갑자기 닥친 사랑으로 기쁨에 휩싸이고 어이없는 결말을 맞는 것이 경험적인 우리네 삶이다. 그 과정은 자녀에게 좋지 못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하면서 상처를 입힌다. 인생은 언제나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크고 작은 일을 안겨줌으로써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실수나 실패를 비난하거나 벌을 준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실수를 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며 사랑으로 감싸는 정감어린 이야기였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 받았다는 메이브 빈치의 장편 소설로 치키, 리거, 올라 이 세 편만 들어있다. 참으로 따뜻한 소설이다. 꿈과 희망, 사랑의 총합으로 멋진 호텔로 탈바꿈한 스톤하우스에서 그 겨울을 보내는 일주일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찾게 될까, 또 어떤 반전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지 몹시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