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는 중대하고 놀라운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



추상화는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며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추상화는 화가도, 작가도, 과학자도수학자도, 무용수도 모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 P131

우리도 모두 추상화를 할 수 있다. 이 장에서 다룬 추상의 사례들,
피카소의 〈황소〉나 〈물에 침식된 돌의 관찰〉 등을 참고하면 된다. 방법은 추상화 주제를 잡고 그에 맞는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다. 먼저주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그 다양한 특성과 특징을 두루 생각하라. 가장 본질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잡으라. 그 다음 시간이나공간의 거리를 두고, 추상화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거듭 생각하라.
- P132

대가들의 추상화 사례를 보면서 영감을 얻으라. 그들을 따라해보라. 오렌지나 사람 같은 대상을 거듭 추상화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잘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라. 당신이 추상해낸 것은 그동안 간과한것이 아니었는가? 오렌지주스? 심장박동? 화학성분 목록? 당신은피카소처럼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추상을 진행시킬 수 있는가?
- P132

이 질문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오직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실에 대한 탐색이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추상화 자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밟아가고자 하는 길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될 것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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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항상 구체적인 실재로부터 시작해야한다. 뭔가 실체가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만 나중에 실재의 흔적들을제거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다 해도 큰 위험은 없다. 왜냐하면그 오브제가 표방하는 이념은 아무리 지운다 해도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남길 테니까. 어쨌든 현실이야말로 화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되는, 마음이 흥분되고 감정이 동요되는 출발점이 된다" 라는 것이다.
- P122

화가가 새로운 추상방법을 고안해내면 과학자와 기술자가 그 혜택을 입기도 하고, 반대로 과학자나 기술자가 다른 형태의 추상을 발견하면 화가들이 서둘러 작업에 도입하기도 한다. 모든 과학실험이나 이론은 추상화나 시만큼 추상이다. 과학자, 화가, 시인들은 모두복잡한 체계에서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과학에서 실험이란 예술에서의 새로운 시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추려내기 위한 양식화된 과정이다.
- P128

가장 명료한 과학논문으로 오토 바르부르크(Oto Warburg의 논문을들었다. 누군가가 명료함의 비결을 물었을 때 바르부르크는 이렇게대답했다. "저는 열여섯 번이나 고쳐씁니다." 스젠트 기요르기는 그비결을 자기 식으로 응용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떠오르는 것은 모두 다 씁니다. 그런 다음 쓴 종이를 치우죠. 
그러다가 한 달 후에 처음 쓴 것은 보지 않고 다시 씁니다. 두 번째 글이 첫번째 글과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그렇게 해서 열여섯 번쯤쓰게 되는데, 글이 더 이상 달라지지 않을 때까지 쓰는 셈이죠." 스젠트 기요르기의 경우 글을 거듭 써갈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게 되는 것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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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콘텐츠 - 어느 예능 PD의 K콘텐츠 도전기 좋은 습관 시리즈 10
고찬수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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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좋은습관연구소의 습관시리즈 중 열 번째 신간이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과 느낌이 달랐다. 왜 그랬을까. 그동안의 책은 영어공부, 번역가의 습관, 카피라이터의 습관, 경제, 재테크, 비즈니스, 유대인의 지혜 습관 이야기였다. 이번 책은 KBS 예능 PD가 쓴 좋은 콘텐츠,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노하우와 제작자의 자세, 태도 등 스무 가지 이야기다. 아, 그랬구나! 바로 우리가 학창시절 선망하고 동경하던 연예인과 아주 친숙한 PD의 이야기여서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저자 고찬수는 KBS 예능 PD로 전국노래자랑에서 인공지능까지 올드와 뉴를 넘나들며 방송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미래 미디어 전문가로 통할 만큼 인공지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저서로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 『스마트 TV 혁명』, 『쇼피디의 미래 방송 이야기』가 있다.


 우선 책을 읽고 난 감상은 재미있다. 10년 전부터 현재까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프로그램, 콘텐츠 제작 과정과 현장의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예전에 즐겨보았던 <연예가 중계>가 방송국 입사 후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토요일 전원 출발>, <슈터TV 일요일은 즐거워> 등 많은 프로그램을 소환해 주어서 당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놀랐던 것은 AI의 영역이 이제 우리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AI 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이라는 프로그램이다. 2000년대 초반 인기 그룹이었던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생전에 부르지 않았던 최근 곡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노래를 부르도록 학습시켜 현실인 듯 재현해냈다고 한다. 놀랍고도 감동적인 영상이었다! 이것은 공상과 AI의 활용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작은 아이에게 들어봤냐고 묻자, 물론이라며 다른 것도 있다며 프레디 머큐리의 영상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AI와 사람이 서로 노래 대결을 벌이는 <AI vs 인간>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동안 기존 지상파 방송은 변화를 거듭하면서 IPTV로 넷플릭스 같은 OTT로, 다시 1인 미디어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모든 영상물을 잠식시키다시피 하는 오늘에도 결국 좋은 콘텐츠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사람’과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중 인상 깊게 느꼈던 부분과 콘텐츠 제작 현장의 흥미로운 뒷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거북이' 그룹이 부른 신곡!

https://www.youtube.com/watch?v=Jm0s0CEEd3Q


낯선 만남을 즐기기


 직업상 항상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출연자를 만나 섭외를 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이 그것을 반복하는 패턴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 콘텐츠 제작 PD임에도 일부러 IT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 결과 IT기술을 아는 독특한 PD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의도적이지 않으면 쉬운 일은 아닌데 역시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촉수가 느껴졌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보통 사람들이 배워야 할 태도라고 생각되었다. 그 결과 저자의 첫 책인 『쇼피디의 미래방송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낯섦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새로운 만남을 할 기회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자는 이런 만남은 책이나 영상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책을 만나면서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책은 꾸준히 읽고 있으니, 가끔이라도 의도적으로 영화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얻는 활력소도 색다른 기쁨이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기회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을 진행하고 있는 ‘재재’가 SBS에 처음 인턴으로 입사하여 정직원으로 성공하기까지의 흥미로운 스토리와 저자가 2015년 MCN(Multi Channel Network)사업을 추진하여 국내 지상파 방송 사상 최초로 주목을 받은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과감하게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된 10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저자는 입사 후 우연히 인터넷 오디오 라이브 방송을 보다가 미래 미디어 산업의 중심은 인터넷이 될 거라는 확신으로 틈틈이 전자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IT 전문용어를 모두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단다. 그러고 보면 10년 공부의 법칙은 어디서나 통하는 것 같다. 그 결과 IT 관련 내용의 책 3권을 쓰게 되었고 회사에서도 미래 미디어 전문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자신의 콘텐츠를 사랑하고 꾸준히 소통하는 자세로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콘텐츠 제작자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모두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이다.


 이 밖에도 SBS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를 기획하고 기록했던 과정 등 가수들의 립싱크 논란을 취재하기 위해 찾았던 <가요톱텐> 현장에서 댄스 그룹 ‘쿨’이 립싱크를 하지 않고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담으면서 공유할 가치를 기록하고자 했던 열정을 이야기한다. 콘텐츠 기획자의 직업의식이나 일을 사랑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 10분 정도의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보통 10시간 이상 촬영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상품으로서 소비자 앞에 내놓아야 하니 과연 시간과 정성은 필수적 요소일 것 같다. 중요도와 함께 배치 순서 등 예술성과 오락성을 가미하여 편집하게 되는데, 이런 편집은 ‘영상으로 글을 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조연출 기간을 거치며 편집의 노하우를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업무적인 과정을 언급하며, 더 중요한 것은 편집자는 출연자를 대상으로만 보면 안 되고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스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때 아이들과 함께 즐겨보았던 SBS의 <런닝맨>, <복면가왕> 등이 해외에 수출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전에는 일본의 프로그램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K콘텐츠의 우수성은 세계에서도 인정할 정도가 되었으니 콘텐츠 제작자들의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야기는 더욱 콘텐츠 제작의 중심으로 들어가 출연자 섭외,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임기응변에 대처하는 방법, 기획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설득하는 방법, 남다른 콘텐츠 기획안 만들기 등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세계 시장을 읽는 눈


 이 과정에서 시선을 끌었던 부분이 있었다. K-POP에 이어 한국의 드라마 예능, 영화, 웹툰이 세계로 퍼져 나가고, <스위트홈>, <킹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콘텐츠 산업 전면에서 주목받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세계 시장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콘텐츠 기획자는 항상 시장의 변화를 공부해야 하며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뉴스를 매일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라고 했다. 역시 경제 공부는 어느 특정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기본은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 우선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떠오른다. 추억의 프로그램부터 K콘텐츠 까지 그 제작과정이나 세계로 수출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언젠가 NHK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틱톡’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기에 작은 아이에게 물어보니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비슷한 용도라고 했다. ‘틱톡’을 활용하는 사람도 수억 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개인 브랜딩 차원에서 홍보를 하거나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만들던 시대에서 개인 브랜딩 차원의 콘텐츠 산업 트랜드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시기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미디어 영상 제작에 관심이 있거나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현장 경험 풍부한 전문가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겠다. 그 외에도 글쓰기나 다양한 분야의 창작을 하는 이들이 읽어도 유익할 것 같다. 기획자에게는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나 소비가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게 하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반복하는 일을 수익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닐까. 꼭 영상 제작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찾고 그것을 강점으로 키우고 싶은 이들이 읽어봐도 좋은 책이다.

***이 리뷰는 좋은습관연구소 대표님이 보내주신 책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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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13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송을 즐겨보지는 않지만 기발한 컨텐츠를 개발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똑똑하다고 창의적인 생각 들더라구요. 예전에 ‘나는 가수다‘ 랑 ‘응답하라‘ 시리즈 컨셉 보고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모나리자 2021-06-14 11:04   좋아요 1 | URL
정말 그렇죠? 수출될 정도면 외국에서도 열광하는 콘텐츠가 된 거죠.
저도 전에 ‘나는 가수다‘를 아이들과 엄청 즐겨봤었요. 그 이후엔 tv를 끊어서 요즘엔 뭐가 나오는지도 몰라요.ㅎㅎ

새파랑님~새 한주도 화이팅 하세요~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고요. 감사합니다.^^
 

피카소는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림을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힘든 일이었는지 거듭 언급하고 있다. 그는 그 과정을 하나씩 익혀야했다. 커밍스 역시 그의 창작노트를 보더라도 시가 단순성을 획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신이본 현실의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오히려 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 P120

에드윈 A. 로빈슨 Edwin A. Rokinsm은 젊어서 짧은 시를 쓰다가 점점긴 시를 썼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이가 예순이 넘고 보니시를 짧게 쓰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이처럼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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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읽는 세상 - 서른 편의 시로 읽는 삶과 문학 이야기
김용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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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를 읽자는 주제로 원고에 한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시 읽기 실천으로 시집을 들춰보던 중 이벤트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블로그 이웃님(예스블로그)의 신간이다. 작년 가을쯤 책을 내셨던 것 같은데 몇 달 만에 다시 신간이라니 놀라웠다. 나의 20대 시절엔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끼고 살았고, 오랫동안 시와 멀어졌다가 다시 함민복, 장석남, 문태준, 김선우, 허수경 시인 등 바쇼의 하이쿠, 작년 11월에는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만났다. 시에서 완전히 멀어지진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띄엄띄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어보라고 권해 준 덕분에 시를 즐겼던 예전의 추억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를 많이 들려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적어도 한 계절에 1권의 시집을 읽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인용되는 시들은 모두 30편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의 시는 20여 전 전에 한차례 선보였던 원고이며 여기에 새로운 원고를 추가해서 썼다고 한다. 다시, 시로 읽는 세상이라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다시(多時), ‘많은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를 통해서 세상을 읽고 시인의 삶까지 엿볼 수 있는 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인과 시들이 나와서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시를 읽을 것인가, 에 대한 가이드가 나와 있다. 전에 어떤 글에서 시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을 본 적 있다. 저자도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으며 무수히 많은 모범 답안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산문과 시의 비교를 말하는 문장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산문 쓰기는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것에 비유되고, 시 쓰기는 발효시켜 술을 빚는 것에 비유된다.”


 

 중국 청나라의 시인인 오교(吳喬)의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산문은 밥이고 시는 술이 되는 셈이다. 같은 재료인 쌀이 발효되어 술이 된 것이 함축의 미를 지닌 시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시의 특성을 알게 되면 산문과 달리 음미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 보자. 1편의 시에는 저자의 에피소드와 함께 시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 맨 처음에 나오는 시는 김소월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이다. 소개된 시들 중에는 가요로 불린 시들도 꽤 있어서 정겹다. 시는 노래고 노래는 시도 되니까. 국어시간에 배웠던 김소월의 시는 특히 전통적 민요조라거나 정한(情恨)을 노래했다는 특징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이 시에 반영된 것이기에 무조건 민족의 정서를 한()으로 특징 지우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매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리뷰로 소개할 시는 그동안 알고 있던 친숙한 시 외에 예전에도 아주 난해하게 생각되었던 시인의 시와 이번에 알게 된 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고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엇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거울>

 



 고교시절 국어책에 나왔던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 띄어쓰기 무시는 물론 비슷한 말을 반복해 놓은 듯한 시를 보며 어안이 벙벙하던 기억이다. 이렇게 글쓰기의 규칙에서 벗어난 시를 읽어내려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하는 것이 일차적인 독법이라고 한다. 기존의 문법 규칙을 벗어나는 새로운 형식은 절망을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문학적 기교라고 했다. 과연 해설을 따라 시를 반복해서 읽어보니 난해하게 보였던 시가 환해진다. 거울을 매개로 한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심상을 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난해한 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왠지 매력적인 시로 다가와 <오감도>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시인의 이 시는 제목은 알고 있었는데 처음 접했다. 제목 느낌으로는 서정시인가 했었다. 어떤 이는 이 시를 접하고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인이 된 이도 있었다.(어떤 리뷰에서 접했다) 영화 상영 전에 어김없이 볼 수 있었던 애국가를 들으면서도 이런 시가 나오는구나, 감탄했다. 일렬, 이열, 삼렬 하는 군대용어를 등장시켜 독재 정권의 억압을 드러내어 후련하고도 씁쓸한 웃음을 웃게 한다. 시인의 관찰력과 통찰이란 참 대단하다. 시의 매력이란 그런 것 같다. 처음 접할 때 아주 난해한 시도 있지만 한두 번 읽다 보면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가 있다. 문학 중에 가장 효율적인 장르가 시가 아닐까. 아주 짧은 문장 속에 핵심을 숨겨놓는다. 독자는 시와 행간에서 그것을 읽어내며 의미가 환해지면서 희열을 느낀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도 좋았다. 인간의 감정을 소재로 이렇게 시를 쓸 수 있구나.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처음엔 어려운 듯 느껴졌는데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니 그림이 그려진다. 시장에서 귤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귤을 사면서 싸게 샀다고 기뻐하는 사람, 누군가 얼어 죽었는데 무관심했던 사람들. 어느 한쪽이 기뻐하면 다른 한쪽은 슬플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시라고 할까. 한마디로 더불어 살자는 호소가 짙게 느껴지는 시였다. 그리고 나도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서 야채를 사면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 보았다.

 



 오랜만에 국어시간으로 돌아간 듯 시를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난 국어를 좋아했다) 김용찬 저자는 현재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가사, 조선의 마음을 담은 노래, 18세기의 시조문학과 예술사적 위상, 교주 병와가곡집,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등 다수 있다. 저자는 시의 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시 해설서를 읽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시는 왠지 어렵다는 생각에 멀어졌던 독자들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어떻게 시를 읽을 것인가, 한 편의 시에 삶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배경을 잘 풀이해주고 있어서 산문에서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시와 친해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시 독법 가이드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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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8 2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 시를 가끔 보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슬픔이 기쁨에게>도 좋네요. 모나리자님 리뷰보니 시에도 관심이 생길거 같아요^^

모나리자 2021-06-09 10:19   좋아요 2 | URL
네.. 시를 너무 띄엄띄엄 읽어서 이제부터 좀 열심히 읽으려구요.ㅎ
인간의 감정으로도 이렇게 좋은 시가 나오네요.^^

붕붕툐툐 2021-06-08 2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 총출동이네용!! 저도 다 좋아는 시라 반가웠어요~

모나리자 2021-06-09 10:20   좋아요 3 | URL
그쵸. 정말 반가웠어요. 역시 익숙한 시가 편하긴 해요.
전에 읽었던 허수경 시인의 시는 좀 어렵더라구요.ㅎ
현대시는 좀 어려워요. 자주 읽어야 갭을 없앨 텐데..^^

그레이스 2021-06-08 2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황지우 시 좋아해요~

모나리자 2021-06-09 10:21   좋아요 3 | URL
네.. 그러시군요.
유머에 재치에 후련함, 대담함까지.. 재미있는 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