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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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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치(はたち), 스무 살은 얼마나 아름다운 나이인가. 스무 살의 노리코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서 다도를 배우게 된다. 틀에 가두는 듯한 다도 예법을 떠올리며 왠지 내키지 않지만, 보다 적극적인 사촌 미치코가 합세하는 바람에 그래 나쁠 것도 없지 하며 결이 다르다는다케다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과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무 살의 아가씨가 다도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어느 토요일 처음 가 본 다케다 아주머니의 집은 여느 집과 다른 분위기가 긴장감을 준다. 정원의 잘 가꾸어진 꽃들이며 자질구레한 장식품 없이 정갈한 방의 청결한 공기 속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눈에 띈 액자에 쓰여 있는 의미를 모르겠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 이야기는 어쩌면 저 글자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얀 안개에 싸여있던 다도의 세계가 점점 어렴풋이 윤곽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깨닫게 되면서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할까.

 

 다도에 쓰이는 도구의 명칭이 많이 나온다. 후쿠사(ふくさ)를 다루는 법을 시작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후쿠사는 다도에서 다구(茶具)를 닦거나 받치거나 할 때 쓰는 보란다. 후쿠사는 오비에 끼웠다가 빼내어 양쪽 끝을 잡아당기면 !”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 동작을 치리우치(ちり)’라고 하며 먼지를 턴다는 뜻이다. 차를 담아두는 나츠메(なつめ)’는 후쿠사로 닦아야 하는데 일본어의 ()’자 모양으로 닦으란다. 또 첫날이니까 차를 타서 대접한다면서 먼저 만주를 먹으라고 갖다 준다. 차 없이 먹으면 목이 멜 것 같아 망설이고 있으니, 어서 먹으라고 재촉한다. 먹는 것을 보고서야 차를 준비하며 녹색의 말차를 남기지 말고 마지막에는 소리를 내어 끝까지 마시라고 한다. 부끄럽게 소리를 내며 마시라니!, 후쿠사를 !” 하고 소리를 내는 것도 이상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건으로 다완을 닦은 다음 마지막에는 다완 바닥에 일본어의 ()’자를 쓰란다. “왜요?” 노리코에겐 모두가 의문투성이다.

 

이유 같은 건 상관없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해. 너희들은 반발심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다도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P43)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무척 당황스럽지만, 무언가 그리움이 담긴 듯한 아주머니의 눈빛을 놓치지 않는다. 저 눈빛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데마에(てまえ)’ 수업이 시작된다. 데마에는 차를 타는 것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연한 차 데마에다. ‘미즈야(水屋)’에서 물항아리를 들고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항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는 새끼손가락이 다다미에 살짝 닿도록 해야 하고, 물은 튀지 않게, ‘무거운 것은 가벼운 듯이, 가벼운 것은 무거운 듯이들어야 한다. 문지방은 밟아도 안 되고 왼 발부터 들어가야 하며, 다다미 한 장에 여섯 걸음으로 걸을 것!......

 

 히샤쿠(ひしゃく)로 찻물을 뜰 때도 수많은 주의사항이 있었다. 차가운 물은 가운데서, 뜨거운 물은 바닥에서 떠야 한다. ‘풍덩소리가 나서도 안 되고 다완에 물을 따르고 히샤쿠에 남은 물방울을 털어서도 안 된다. 자연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케다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지적. 키득키득 웃기를 여러 번이었다. 다도의 세계, 과연 깐깐하구나 싶었다. 스무 살 노리코가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낼꼬.

 

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거야.”(P49)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의 전통적인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에 노리코는 폭발할 지경이다. 차선으로 차를 젓는 것은 쉽겠지 기대했지만, 거품을 너무 많이 내면 안 되고 초승달 모양으로 수면이 보이게 만들어야 한단다. 어떻게 달인도 아닌 내가 초승달 모양을 만든단 말인가? , 지금까지 배운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해 보겠니? 다케다 아주머니의 주문에 노리코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된다. 다 낡아빠진 교양과목이라고 우습게 여겼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새하얀 머릿속을 느끼며 노리코는 좌절한다. 이때부터 다케다 아주머니다케다 선생님이 되었다

 

 이후로도 다도 연습은 계속되고 선생님의 새해 첫 다회를 비롯하여 밖에서 열리는 다회를 접하면서 식견을 넓혀간다. 또 그 다회에서 발견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액자, 많은 다인들과 다도구를 접견한다. 다도를 배운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실수투성이다. 어떻게든 다도 수업에 빠질 이유를 찾으면서도 결국은 가서 위안을 받는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화과자의 매력에 푹 빠지고, 다도에는 그동안 잊고 있던 4계절이 오롯이 들어있음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제 족자를 마주하게 된다. 차를 최고로 즐기는 법은 족자에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눈이 둥그레진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데마에를 반복하며 화과자를 먹고, 도구를 만지고, 꽃을 바라보고, 이윽고 족자에서 바람과 물, 눈이 흩날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게 된다.

 

 몇 번의 슬럼프를 넘기면서도 점점 다도에 빠져드는 노리코의 이야기가 많은 위안을 주었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살아야 하는 일상의 피로와 복잡한 마음속을 말끔히 닦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무엇을 결정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우리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며 살지는 않았는지. 일종의 신부수업이라는 고정관념,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부자들의 권위주의나 허영심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다도를 하는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처음엔 점 같았던 서툰 동작이 아름다운 선으로 이어진다. 느릿하지만 온 마음을 그 곳에 집중하는 선과 그 여백이 참 아름다웠다. 몇 년간 계속되는 아르바이트, 취업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노리코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간다. 그때까지 이해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데마에의 여러 과정이 퍼즐 조각 맞추어지듯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진한 차는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어서 위를 보호하기 위해 만주를 먹거나 가이세키(

)로 빈속을 채우는 것 등 다도의 흐름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에 감탄한다.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것만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애초에 반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모두 존재할 때 비로소 깊이가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저마다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P236~237)

 

비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P256)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느끼고 추위도 더위도 마음껏 느끼는 것.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느끼는 삶이라면 안 좋은 날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 그거였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노리코가 다도를 통해서 소리의 미학을 느끼고 냄새의 기억으로 후각이 눈뜨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는데 25년이 지나서야 어렴풋이알게 되었다면서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라.”는 차의 가르침을 말한다. 다 읽고도 감동의 여운이 남아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해졌다. 영화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하다. 너무 빨리 앞서 가려고만 하지 말고 지금의 자신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막연하게 꿈꾸던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며 사는 삶,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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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도
박완서 외 지음 / 책읽는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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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보통의 여행기와 다른 느낌이 나는 여행 에세이다. 박완서 작가를 비롯하여 법정 스님 등 여러 시인들의 인도 여행담이 들어있다. 글을 쓰는 문인들이어서인지 여행에서 느끼는 바가 아무래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여행의 즐거움과 낭만보다는 성찰이 돋보인다. 아마 인도여서 그럴까.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광활한 땅과 문명의 속도와는 전혀 다르게 느린 시간이 느껴진다


 김선우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결코 낭만적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경로에서 내가 들은 바로도 정해진 시간에 척척 맞는 교통수단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제 시간에 오지 않아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누구를 탓할 수 도 없다. 낡고 오래되고 지저분해서 깔끔한 여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어딘가 좀 불편한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을까. 아마도 모든 것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적인 사회에 신물이 나서일까. 때로는 넋을 놓고 기다려도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하며, 재촉당하지 않는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인도를 여행하는 일은 어딘가 아파지는 일이다. 일단 몸이 몹시 고된 데다 맞부딪히는 풍경들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들쑤셔 놓기 일쑤다. 도시 문명의 안락함 속에서 병들었으나 병든 줄 모르고 있던 마음의 어떤 부위를 인도는 특이한 방식으로 깨우는데, 자신의 병든 데가 보이면 여행자는 힘들어진다. 그 힘듦을 맞대면하면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아파진 후 문득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 인도 여행이 순례라는 이름에 적합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P14)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는 눈에 익숙한 것과는 다르게 낯선 이들의 풍경에서 자신의 안락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불평을 일삼던 일상이 그들로 인해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 삶을 위안을 찾고 성숙해가는 삶, 이것이 여행의 힘이 아닐까.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잃어버린 여행 가방 때문에 편치 않았던 마음을 토로한다. 아까워서가 아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겉옷이나 속옷, 양말을 많이 가져가서 갈아입고 넣어둔 옷가방인데 누군가 흑심을 품고 열었다가 개봉했을 때 실망감을 생각하고는 가슴앓이를 했다. 그 후로는 많이 가져가지 않고 그날그날 바로 빨아서 입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어찌 생각하면 이미 잃어버린 가방 누군지도 모르는 손에 들어갔을 것이고 걱정한다고 찾을 수도 없으니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좀 그렇겠다 싶으면서 우습기도 하고 그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한의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법정 스님은 그림에서 보았던 건축물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는 무무타지마할이 샤자한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달라는 유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럴 수 있을까. 또 하나의 타지마할을 야무나 강 건너편에 만들려했는데 아들의 저지로 좌절되고, 샤자한은 아그라성에 감금된 채 8년 후에 생을 마친다는 이야기. 권력을 위해서는 부모자식의 인륜도 저버린 인과관계로 점철되는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당시 국고를 탕진한 독재 왕이었지만 지금은 가난한 인도의 국가 재정을 위해서는 두고두고 애국자가 되었다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다.


 수행자답게 크리슈나무르티의 자취를 찾아간 법정 스님은 첸나이의 베산타비하르에서 마지막 강연의 주제였던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모든 것과의 단절입니다. 죽음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당신을 당신의 집착으로부터, 당신의 신으로부터, 당신의 미신으로부터, 편안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잘라 버립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당신은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P81,84)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삶은 지난 날 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추라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제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살아서 여행을 하고 죽은 자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 자신의 길을 확인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도 한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살아있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멋진 도구다.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더라도 여건을 만들어서 여행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누려야 하리라.

 

바라나시는 시바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신이 함께 공존한다. 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인간들도 공존한다. 성자로부터 마약쟁이, 깔끔한 공무원으로부터 양아치까지, 사제로부터 장사꾼까지, 온갖 사람들이 바라나시라는 독특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다. 신과 인간의 공동체가 이곳에 있고, 선과 악의 공동체가 여기에 있으며, ()과 속()의 공동체가 이 땅에 있는 것이다.(P103)

 

 승려이자 시인인 동명은 바라나시의 풍경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갠지스 강의 화장터에서 타오르는 시체들, 그 옆에서 한 쌍의 개가 교미하는 장면 등 낯설면서도 편치 않는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삶의 터전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 그 진리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 속에서도 삶과 죽음은 반복된다. 더 이상 죽음이 나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앎으로써 오늘을 더 행복한 삶으로 만들 수 있다.

 

 

 

 

 

 

 

 문인수 시인은 인도에서 본 검은 눈에 대한 인상을 풀어간다. 깊고 검은 눈, 표정 없는 미인들의 검은 눈. 일행에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나 또한 이 부분에서 웃음으로 공감했다. 비록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본 것이지만 깊고 커다란 눈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움으로 다가왔었다.

 

그 지독한 소음과 매연, 무질서가 뒤섞여 들끓는 도시라는 지옥, 혹은 극빈의 함정 속에 버려진 사람들. 그들은 모두 누구인가. 그러나 그런 도가니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더없이 깊은, 검고 아름다운 눈이 있었다. 방치된 소와 개와 염소와 돼지들과 함께, 싸이클 릭샤에서 외제 세단에 이르기까지 온갖 차량들이 들끓는, 그것들과 함께 어디론가 하염없이 흐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략) 천천히 통과하고 있는 거리는 바로 생의 고통 한 마당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일절, 비명도 엄살도 분노도 저항도 없이 그저 무표정한 얼굴들. (중략) 오래 견디는, 아니 참으로 오래 기다려 온 그 깊은 눈의 아름다움은 특히, 인도 여인들한테서 완성되고 꽃 피는 것 같았다.’(P122~123)

 

 저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이런저런 고생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성숙해간다.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은 달라질 것이다. 내게도 미지의 세계인 나의 인도는 훗날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몹시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은 여행지임에도 문인들의 나의 인도는 고향의 향수처럼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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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먹는 즐거움 - 한 그릇으로도 온전하게, 일즙일채 식사법
도이 요시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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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가정에서 직접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밖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잔치에서 먹는 뷔폐 음식은 얼마나 우리의 오감을 얼마나 황홀하게 하는가. 맛과 색깔, 종류도 다양하게 잘 차려진 음식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최근 결혼식장에 갈 일이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배고플 때 엄청 먹을 것 같아도 두세 번 가져다 먹으면 더 이상 못 먹는다. 더구나 몇 시간 지나면 갈증을 느끼며 물을 마시기 바쁘다. 달고 자극적인 향신료로 무장을 한 음식이 갑자기 들어와서 속에서 놀랐을까. 계속되는 이 갈증은 뭘까 궁금해지고 살짝 마음이 꺼림칙해지기도 한다.

 

<심플하게 먹는 즐거움>은 일본 가정식 연구가가 제안하는 집 밥의 미니멀리즘 혁명이다. 그간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삶을 살자는 메시지였는데, 이제는 식생활에도 미니멀리즘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트랜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인은 못 먹어서보다는 너무 먹어서 각종 병에 시달린다. 단순하게 요리 레시피를 전달해주는 책은 아니다. 식생활과 삶의 철학적 사유라고 할까. 그것이다. 식사란 단순히 먹는 일만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먹으려면 해야 하는 일들 전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식사와 삶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일즙일채란 무엇일까. 바로 ,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 절임을 말한다. 저자는 일즙일채를 일종의 시스템이자 이상이자 미학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바빠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살아 있는 한 먹는 행위를 멈출 수 없고,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면서 매일 무엇을 해 먹을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단순한 , , 절임(채소 절임)’을 기본으로 삼으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바쁜 현대인에게 최적의 식사이며 건강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는 저자의 경험담에 호기심이 급 발동한다.

 

'가정 요리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바로 먹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관련성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각자 따뜻한 마음과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과 스스로 행복해지는 힘을 기른다.

일즙일채로도 충분하다는 내 제안은 지속 가능한 가정 요리를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 제안의 이상적인 도달점을 질서를 되찾은 생활이다. 개개인의 생활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미를 되살리고, 세대를 넘어 전해야 할 생활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P103~104)

 

 요리에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내 삶의 중심이 날마다 돌아오고 싶은 집으로 바뀌고, 내 일상의 불편한 패턴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되돌리는 기적이 시작된다고 한다. 수고를 들이지 않을수록 맛있어지는 식사법이라는 역설에 반가운 마음이다. 매일 매일의 먹는 행위를 위한 준비가 스트레스 없이 지속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요리에서 실력이나 능력, 요령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장 순수하다. 그리고 순수한 것은 가장 아름답고 귀중하다. 이런 것들은 아이의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부모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당시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아이가 경험을 쌓아 어른이 된 후 언젠가는 분명 알게 된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가정 요리는 생명을 만드는 일이라고 시미즈 히로시(생명관계학 전공의 도쿄대학 명예교수이자 약학박사)가 가르쳐줬다.’(P106~107)

 

  밥과 미소시루의 대단한 점은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위적인 맛을 첨가하지 않은 자연에 가까운 음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같은 메뉴지만, 사계절 다양한 제철의 식재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변화 있는 일즙일채를 즐길 수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일즙일채를 식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우선 그 간편함에 시간적인 여유에 혁명을 일으킬 것 같다. 또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서 만들 수 있으니 버려지는 야채 없이 알뜰한 살림을 할 수 있다. 채소의 가짓수를 많게 하면 건더기가 반찬 역할을 한다. 조금씩 맛의 변화를 위해서는 여기에 생선이나 고기를 넣어서 영양적으로 균형을 이루면 된다. 미소 된장에는 식중독을 불러일으키는 세균이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O-157 같은 대장균을 넣어도 사멸한다니 놀라운 식품이다.

 

 

전에 일드에서 이런 음식이 자주 보였는데 미소시루였던 것 같다. 각종 채소는 물론 심지어 토마토까지 들어있었는데 처음 볼 때는 저걸 어떻게 먹나 궁금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꺼려지기도 하지만, 인공적인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자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고 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겐 항암작용이 우수한 우리나라 대표 발효식품 된장이 있다. 세계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된장으로 일즙일채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일즙일채(밥, 국, 채소 절임)의 예.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만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하는 것,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먹는 행위를 통해서 건강 유지는 물론 식사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생물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인간은 요리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P145)고 했단다. 요리하는 행위로 인해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바뀌고 삶에 애착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식생활의 색다른 변화를 위해 좋아하는 그릇을 골라서 사용하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항상 같은 그릇에 아무 생각 없이 먹곤 했는데, 이런 것도 시도해보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식사를 하면서 애착을 갖고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일즙일채의 실천,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가끔 한번이라도 좋겠다. 심플한 식생활을 통해 삶이 좀 더 가뿐해진다면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의 관계도 즐거워지지 않을까아주 작은 변화가 모여 나중엔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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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할 걸 그랬어
김소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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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나만의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 그랬었다. 이 책은 전직 아나운서 김소영의 도쿄 서점 탐방기와 책방 운영기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어 열심히 활동하다가 의도치 않은 상황이 되고 앞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다가 선망의 대상인 직업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책방지기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가게, 자신만의 사업을 꿈꾸지만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용기 있는 도전이 멋져 보인다.


 이야기의 구성은 1. 책방에 간다는 것 2. 책방을 한다는 것 두 파트로 되어있다. 도쿄의 서점을 여행하는데 책방에서 얻은 정보와 사진 자료와 주소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마치 그 여정을 함께 하는 듯 실감난다. 또 여행의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가 아닌가.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금세 푹 빠져 군침이 돌고 이 서점 탐방 여행이 부럽기만 하다. 소개하는 많은 서점 중 내가 가 본 곳 진보초 고서점 거리와 롯폰기에 있는 츠타야 서점이 나와서 정말 반가웠다. 특히 인상적인, 진보초 서점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지고 이들의 저력을 짐작하게끔 해주었다.


 이제 책만 있는 서점은 좀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라나. 모든 것이 변화하듯이 서점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그가 만든 ‘북마크(Bookmarc)’가 패션의 메카, 패션 1번지 하라주쿠에 있는 아시아 1호점 이라니. 패션과 책의 조합에 의아해지지만 역시 창의력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것 같다. 지루해 보이는 밋밋한 분위기보다는 다양한 아이템과 볼거리, 즐길 수 있는 이벤트,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인테리어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긴자 식스에 있는 긴자 츠타야는 전 세계의 유명 아트북 출판사와 협업하여 수만 권의 예술 분야 도서로 꾸민 서가가 있고, 장서가 무려 6만 권이 넘는다는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30년간 사진 평론가로 활동한 주인이 식당과 겸업으로 운영하는 사진집 식당 등 저마다 개성이 있고 특색 있는 서점도 있다. 또 상상하지 못한 은행 내의 도서관을 소개한다. 고객이 수없이 드나드는 은행, 왠지 재테크에 대한 책이 수북할 것 같은데 의외로 ‘꿈’에 대한 책으로 진열돼 있어서 놀랐다는.


 요즘 작은 책방이 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뭔가 좀 된다 싶으면 우후죽순으로 늘기도 한다. 여기 이 작가도 그랬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방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으며 생업이기 때문에 유지 내지는 이익이 나지 않으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온전히 주인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을 골라 진열하고 소개를 해주고 파는 일까지 말이다. 어떤 서점인지 정체성을 드러내는, 책과 서점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북 큐레이션 이라는 전문 용어를 만나게 된다. 그냥 베스트셀러 위주의 보통 서점과 다른 개성 있는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보다 숨은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


 진보초의 ‘책거리(CHEKCCORI)’는 한국 책을 파는 서점이다. 일본의 서점가에서 한국 책이라니,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정말 놀랍다. 출판사까지 겸업으로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기 전에 첫 번째로 출간했다며 무척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뿌듯해한다. 작가를 초청하여 북토크는 물론 일본 독자들을 상대로 한국으로 문학 투어까지 진행했다니 열정이 대단하다. 이 일을 ‘진작 할 걸 그랬다’는 말을 거듭했다는데 그 열정과 재미가 오롯이 전해진다. 천생 책을 좋아하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감수해야 할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안정된 울타리는 종종 도전의식을 약화시킨다.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 쉽지도 않고. 어떤 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시도하고 도전했을까 궁금한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꼭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아닌, 어떤 일이더라도 동기부여와 열정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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