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하타치(はたち), 스무 살은 얼마나 아름다운 나이인가. 스무 살의 노리코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서 다도를 배우게 된다. 틀에 가두는 듯한 다도 예법을 떠올리며 왠지 내키지 않지만, 보다 적극적인 사촌 미치코가 합세하는 바람에 그래 나쁠 것도 없지 하며 ‘결이 다르다는’ 다케다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과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무 살의 아가씨가 다도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어느 토요일 처음 가 본 다케다 아주머니의 집은 여느 집과 다른 분위기가 긴장감을 준다. 정원의 잘 가꾸어진 꽃들이며 자질구레한 장식품 없이 정갈한 방의 청결한 공기 속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눈에 띈 액자에 쓰여 있는 의미를 모르겠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 이야기는 어쩌면 저 글자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얀 안개에 싸여있던 다도의 세계가 점점 어렴풋이 윤곽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깨닫게 되면서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할까.
다도에 쓰이는 도구의 명칭이 많이 나온다. 후쿠사(ふくさ)를 다루는 법을 시작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후쿠사는 ‘다도에서 다구(茶具)를 닦거나 받치거나 할 때 쓰는 보’란다. 후쿠사는 오비에 끼웠다가 빼내어 양쪽 끝을 잡아당기면 “팡!”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 동작을 ‘치리우치(ちり打ち)’라고 하며 먼지를 턴다는 뜻이다. 차를 담아두는 ‘나츠메(なつめ)’는 후쿠사로 닦아야 하는데 일본어의 ‘こ(코)’자 모양으로 닦으란다. 또 첫날이니까 차를 타서 대접한다면서 먼저 만주를 먹으라고 갖다 준다. 차 없이 먹으면 목이 멜 것 같아 망설이고 있으니, 어서 먹으라고 재촉한다. 먹는 것을 보고서야 차를 준비하며 녹색의 말차를 남기지 말고 마지막에는 소리를 내어 끝까지 마시라고 한다. 부끄럽게 소리를 내며 마시라니!, 후쿠사를 “팡!” 하고 소리를 내는 것도 이상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건으로 다완을 닦은 다음 마지막에는 다완 바닥에 일본어의 ‘ゆ(유)’자를 쓰란다. “왜요?” 노리코에겐 모두가 의문투성이다.
“이유 같은 건 상관없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해. 너희들은 반발심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다도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P43)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무척 당황스럽지만, 무언가 그리움이 담긴 듯한 아주머니의 눈빛을 놓치지 않는다. 저 눈빛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데마에(てまえ)’ 수업이 시작된다. 데마에는 ‘차를 타는 것’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연한 차 데마에다. ‘미즈야(水屋)’에서 물항아리를 들고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항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는 새끼손가락이 다다미에 살짝 닿도록 해야 하고, 물은 튀지 않게, ‘무거운 것은 가벼운 듯이, 가벼운 것은 무거운 듯이’ 들어야 한다. 문지방은 밟아도 안 되고 왼 발부터 들어가야 하며, 다다미 한 장에 여섯 걸음으로 걸을 것!......
히샤쿠(ひしゃく)로 찻물을 뜰 때도 수많은 주의사항이 있었다. 차가운 물은 가운데서, 뜨거운 물은 바닥에서 떠야 한다. ‘풍덩’ 소리가 나서도 안 되고 다완에 물을 따르고 히샤쿠에 남은 물방울을 털어서도 안 된다. 자연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케다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지적. 키득키득 웃기를 여러 번이었다. 다도의 세계, 과연 깐깐하구나 싶었다. 스무 살 노리코가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낼꼬.
“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거야.”(P49)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의 전통적인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에 노리코는 폭발할 지경이다. 차선으로 차를 젓는 것은 쉽겠지 기대했지만, 거품을 너무 많이 내면 안 되고 초승달 모양으로 수면이 보이게 만들어야 한단다. 어떻게 달인도 아닌 내가 초승달 모양을 만든단 말인가? 자, 지금까지 배운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해 보겠니? 다케다 아주머니의 주문에 노리코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된다. 다 낡아빠진 교양과목이라고 우습게 여겼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새하얀 머릿속을 느끼며 노리코는 좌절한다. 이때부터 ‘다케다 아주머니’는 ‘다케다 선생님’이 되었다.
이후로도 다도 연습은 계속되고 선생님의 새해 첫 ‘다회’를 비롯하여 밖에서 열리는 다회를 접하면서 식견을 넓혀간다. 또 그 다회에서 발견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액자, 많은 다인들과 다도구를 접견한다. 다도를 배운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실수투성이다. 어떻게든 다도 수업에 빠질 이유를 찾으면서도 결국은 가서 위안을 받는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화과자의 매력에 푹 빠지고, 다도에는 그동안 잊고 있던 4계절이 오롯이 들어있음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제 족자를 마주하게 된다. 차를 최고로 즐기는 법은 족자에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눈이 둥그레진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데마에를 반복하며 화과자를 먹고, 도구를 만지고, 꽃을 바라보고, 이윽고 족자에서 바람과 물, 눈이 흩날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게 된다.
몇 번의 슬럼프를 넘기면서도 점점 다도에 빠져드는 노리코의 이야기가 많은 위안을 주었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살아야 하는 일상의 피로와 복잡한 마음속을 말끔히 닦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무엇을 결정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우리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며 살지는 않았는지. 일종의 신부수업이라는 고정관념,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부자들의 권위주의나 허영심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다도를 하는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처음엔 점 같았던 서툰 동작이 아름다운 선으로 이어진다. 느릿하지만 온 마음을 그 곳에 집중하는 선과 그 여백이 참 아름다웠다. 몇 년간 계속되는 아르바이트, 취업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노리코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간다. 그때까지 이해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데마에의 여러 과정이 퍼즐 조각 맞추어지듯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진한 차는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어서 위를 보호하기 위해 만주를 먹거나 가이세키(
懷石)로 빈속을 채우는 것 등 다도의 흐름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에 감탄한다.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것만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애초에 반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모두 존재할 때 비로소 ’깊이‘가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저마다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P236~237)
‘비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P256)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느끼고 추위도 더위도 마음껏 느끼는 것.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느끼는 삶이라면 안 좋은 날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 그거였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노리코가 다도를 통해서 소리의 미학을 느끼고 냄새의 기억으로 후각이 눈뜨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는데 25년이 지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면서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라.”는 차의 가르침을 말한다. 다 읽고도 감동의 여운이 남아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해졌다. 영화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하다. 너무 빨리 앞서 가려고만 하지 말고 지금의 자신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막연하게 꿈꾸던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며 사는 삶,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