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사건들 - 현재의 소설 :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롤랑 바르트 지음, 임희근 옮김, 박상우 해설 / 포토넷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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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흔히 생각하는 감성적인 에세이도 아닌 애매한 글이 꽤 낯설었다나중에 알았는데 롤랑 바르트가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쓴 것이며, ‘스냅사진을 찍듯 보고 경험한 일의 장면을 묘사했다는 걸 알았다그리고 일본 여행을 하고 하이쿠를 접하고 그것을 글쓰기에 적용하여 짧은 메모나 일기 형식을 빌려 쓴 전형적인 사진적인 글이며롤랑 바르트가 쓴 하이쿠이기도 하다고맨 끝에 나오는 <파리의 저녁들>은 카페나 길에서 본 풍경과 생각들을 적고 있다일기처럼 보이지만 일기형식을 빌려 쓴 일종의 새로운 소설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의 유명세에 대한 호기심과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끌려 읽었으니 그럴 수밖에다시 읽어보니 하이쿠적인 느낌을 엿볼 수 있었고 스냅사진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스냅사진은 연속적인 장면이 아니다여기서 저기서 시선을 끄는 장면을 찍는 것이니까확실히 정지된 느낌보다는 새로운 낯선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이쿠를 떠올리게 하는 짧은 문장을 소개해 보겠다.

 

 


마라케시의 시장첩첩이 쌓인 박하 풀 더미 속에 보이는

시골 장미 꽃송이들.’(122P)

 


 

 하이쿠에 필수적인 계절을 엿볼 수 있는 장미 꽃송이들을 보면 여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시장에 모인 사람들의 와글와글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1968년과 1969년 모로코그중에서도 탕헤르와 라바트또 그 나라 남부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간결하게 쓰고 모아서 엮은 것이라 한다그렇다고 해서 모로코의 국민이나 문화사회문제에 관한 롤랑 바르트의 성찰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짧아서 금세 읽을 수 있다그런데 내용은 그다지 서정적이지 않다좀 거칠다고 할까초현실문명 비판환상동성애의 성적 시선 등 지극히 사적인 시선과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표현하고 있다하지만 양념처럼 글 속에 유머도 들어있고 생각할 여지를 주기도 한다그냥 묵독보다는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 내용이나 정황을 이해하기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여기서 간간이 언급되는 책이나 작가는악의 꽃라캉팡세』 프루스트 등이다마르셀 프루스트는 롤랑 바르트가 좋아하는 작가였다고 한다그가 쓴 작품이 기억의 소설이었다면 자신의 글은 현재의 소설이라고 불렀다기존 에세이의 여운과 감동을 바라고 이 책을 읽는 건 좀 곤란하겠다프랑스 지성인의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스냅사진을 찍는 기법으로 연결되지 않는 단편의 조각들그것들을 쫓아가는 시선의 여행그런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좋겠다이런 형태의 글쓰기도 있구나낯선 글쓰기 형식에서 어떤 영감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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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9 2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롤랑바르트 SNS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응축된 문장으로 대 스타가 되었을것 같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학자네요 메모-쪽지-일기 속에 드러난 단상들이,,,일본의 하이쿠 시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일본의 예술을 아주 마니 숭배 하고 있답니다 ^ㅅ^

모나리자 2021-09-10 09:50   좋아요 2 | URL
그쵸.ㅎ
프랑스인이 일본 예술을 숭배하듯이 일본인들도 모네와 수련을 엄청 사랑하더군요.
빈센트 반 고흐도 일본의 우키요를 접하고 좋아했다는 걸 책에서 본 것 같아요.
3년전 도쿄 여행에서 모네 수련 전시회가 있었는데 귀국 다음날부터 예정이어서 아쉬웠던 기억입니다.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스콧님.^*^!

새파랑 2021-09-10 0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문장은 완전 서정적 느낌이 드는데 거칠다고 하니 궁금하네요. 현재의 소설이라니~!!

모나리자 2021-09-10 09:54   좋아요 2 | URL
네.. 저 하이쿠 같은 글 말고는 대체적으로 그래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행지에서 낯선 풍경을 떠올릴 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나 이상 행동을 하거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눈에 빨리 들어오는 것처럼 그런 맥락의 글 같아요.
정말 스냅사진 처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아무런 감정없이 포착했다고 할까요.
나중에 기회되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새파랑님은 금세 앉은 자리에서 읽으실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