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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일본 전후 문학의 거장이라는 엔도 슈사쿠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슈사쿠의 마지막 장편 소설이며 그의 첫 작품 『침묵』을 능가하는 엔도 문학의 집대성이자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슈사쿠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사후에는 그의 유언대로 이 두 작품은 관 속에 넣어졌다.
‘선과 악이 혼재한 인간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신의 모습을 그린 역작!’
소설은 크게 13장으로 되어있는데 주된 내용은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네 사람이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나 각자의 사연과 어우러지며 스토리는 무르익는다. 이소베는 말기 암을 선고받은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다. 이소베의 아내는 세상 어딘가에 다시 태어날 테니 자기를 꼭 다시 찾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아내와 살면서 거의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이었다. 아내가 죽기 전에 쓴 일기나 유품들, 이소베에게 일상생활을 알려주는 메모를 발견하고 점점 아내가 없는 현실을 실감한다. 이소베는 왜 인도 여행을 갔을까. 환생하는 아내를 만날 수 있을까.
나루세 미쓰코는 대학에서 불문과를 다니던 시절 친구들에게 ‘모이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강의 텍스트였던 쥘리앵 그린의 소설 『모이라(Moira)』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모이라는 자기 집에 하숙한 청교도 학생 조지프를 장난삼아 유혹한 아가씨다. 여기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펼쳐진다. 촌스럽고 수동적인 성격의 오쓰라는 철학과 학생이 있는데 후배들은 그를 한번 구워삶아 보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개방적이고 활달한 미쓰코에겐 오쓰가 너무 촌스럽고 답답하기만 했다. 미쓰코는 순진한 오쓰를 장난으로 유혹하다 차버렸고 그 일은 미쓰코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게 된다. 그 오쓰가 신부가 되어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미쓰코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누마다는 동화작가다. 그는 유년시절을 일본의 식민지였던 만주의 다롄에서 보냈다. 부모님의 불화에 괴로워했고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누마다는 검둥이나 새한테 비밀을 털어놓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구관조를 키우게 되었는데 투병 생활 중 수술을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구관조는 죽어 있었다. 혹시 내 몸을 대신해 준 건가 누마다는 생각하며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개와 새 등 살아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지탱해 주었는가를 느끼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5장 기구치의 이야기는 태평양 전쟁 때 미얀마 정글에서 겪은 전우 쓰카다와의 처참했던 죽음의 기억을 떠올린다. 알콜 중독자인 쓰카다가 기구치에게 취직을 부탁하자 당시 죽어가는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갚는다 생각하고 지인에게 소개한다. 쓰카다는 도쿄로 올라와 일자리를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한다. 어쩌다 알콜 중독자가 되었을까. 미얀마 정글에서 죽은 동료의 인육을 먹게 된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았다는 것을 기구치도 뒤늦게 알게 된다. 도마뱀 고기인 줄 알고 먹었지만 인육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고 훗날 그 죽은 동료의 아내와 아들과 눈을 마주친 이후 술을 마시지 않고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고 오열을 한다.
이처럼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고통스러운 사연을 품은 채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렀고 인도 여행을 왔다. 온갖 악취가 풍기는 거리와 깡마른 잿빛 소들이 걸어 다니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어린이를 만나는 등 맨살 그대로의 인도를 경험한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가난한 사람이든 귀족이든 할 것 없이 누구나 갠지스강 물에 몸을 담그고 죄를 씻는다. 그리고 그 시신의 재를 강에 흘려보내면 윤회로부터 해방된다고 믿는다. 기구치는 이 광경을 보며 미얀마의 ‘죽음의 거리’를 떠올린다. 한편 이소베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자주 아내를 떠올렸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생활이나 보잘것없는 광경이었다. 흔해 빠진 무미건조한 대화였지만 이소베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시크교도와 힌두교도가 다투다가 격화되어 수상이 살해당하고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지만 관심이 없다. 오직 아내에 대한 추억이 가치 있게 생각되었고 무관심했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사무쳤다.
네 명의 인물 중 가장 의아하게 생각된 사람은 미쓰코였다. 가난도 겪지 않았고 당당한 자신감 그 자체로 보였던 미쓰코는 삶에는 좀 회의적인 태도가 보였다. 공감 능력도 별로 없어 보였다. 기구치가 전우 쓰카다가 동료의 인육을 먹고 평생 고통스러워했다는 이야기나 임종 때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미쓰코는 별로 동요되지 않는다. 미쓰코는 오쓰가 카톨릭 신자가 되어 종교에 귀의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도만이 아니라 이란 이라크의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신이 살아있다 한들 이런 증오의 세계를 해결하지 못하니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카톨릭 신자인 오쓰가 갠지스강의 화장터로 시신을 나르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렴풋이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엔도 슈사쿠의 이 작품은 일흔의 나이에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써낸 작품이라고 한다. 그때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전기적 사실들을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오쓰라는 등장 인물에게 자신의 분신처럼 그려놓았다. 만주 다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 투병 생활을 하던 당시 구관조의 죽음, 『테레즈 데케이루』에 대한 심취와 랑드 지방 여행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이다. 종교적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그의 열린 종교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오쓰가 좋아했다는 이 말에서 엔도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P290)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엔도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제각기 고통의 시절을 보냈던 등장인물들은 치유의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데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미쓰코의 닫혔던 마음이 바뀌는 걸 보면서 신이란 권위적인 절대복종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주제를 인도의 갠지스강을 모성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그 속에 녹여낸 작가의 탁월함에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