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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 지혜에 관한 작은 책,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7월
평점 :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가 남긴 지혜의 말씀을 읽었다.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그의 강의와 대화를 엮어 대신 집필한 것이다. 원제는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이며, ‘손에 들고 다닐 만한 작은 것’이라는 뜻으로 에픽테토스 철학의 정수만을 담은 요약집이다.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당대 최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알려진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철학을 배웠고 이후 자유인으로 해방되었다. 그 후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93년경 도미티아누스가 철학자 추방령을 내리자 니코폴리스로 건너가 학교를 세우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철학을 가르쳤다. 에픽테토스의 철학 사상은 몽테뉴, 데카르트, 애덤 스미스, 칸트에게 삶의 지침을 준 불멸의 고전이며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는 53가지 철학적 지혜가 담겨 있다. 원문에는 제목이 없었는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부에서 추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든 얘기가 주옥같은 얘기지만 그중 몇 가지 문장을 소개해 보겠다.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라
‘세상에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충동과 욕망과 혐오는 자아에 속한 것이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지만, 질병과 부와 명예는 자아에 속한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P25)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난다. 일일이 마음 쓰며 살 수 없다. 코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도 바쁜 일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충동, 욕망, 혐오는 우리 마음속에서 들끓는 흔한 감정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반면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외부의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것은 껍데기일 뿐,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야.”(P27)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과감히 멈춰야 한다는 얘기다.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우리가 모욕을 느끼는 것은 누군가의 욕설이나 폭력이 아니라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다.’(P62)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위의 문장을 보면 다른 건 문제가 아니고 오로지 ‘우리의 마음’이 문제가 된다고 했다. 전에 마음공부를 하면서 반야심경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마음은 실체가 없는데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며 괴로워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공감할 수 있는 얘기였다. 상대의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닌데 그걸 받아들여서 나를 괴롭히는 모습이라니. 이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라고 핑계 대기 바쁘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활용하여 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명예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게 되겠지요.”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 괴로워하지 마라. 명예가 없는 것이 악이라면 타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P69)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부자로 살고 싶고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고 명예로운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노력해서 원하는 위치에 오른다면 좋겠지만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한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작은 성취를 하나씩 이루어가면서 당신이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면 된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것이다.
결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지금이다
’최선의 것을 당신만의 규칙으로 삼으라. 결코 위반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쾌락이, 혹은 영광과 치욕이 당신 앞에 드리워져 있는 이 삶 자체가 전투 중인 전쟁터이다. 결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지금이다. 올림픽 경기를 앞둔 선수처럼 당신의 성공과 실패가 단 하루, 단 하나의 행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라.‘(P134)
성공과 실패가 단 하루, 단 하나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참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무런 긴장감이나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기 마련이다. 오늘만 날이냐 내일이 또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선의 것을 찾아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것, 그런 적극적인 행동만이 원하는 나로 바꾸어 줄 것이다.
왜 지금 에픽테토스를 읽어야 할까. 오늘의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피로한 사회를 살고 있다. 성공한 인생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가운데 타인의 눈치를 보며 휘둘리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데 먼 데서 찾으려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진리는 평범함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스토아 철학을 ‘삶의 원리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남에게 휘둘리는 인생은 진짜 인생이 아니다. 내가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진정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스토아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함께 제시된 이 핸디북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