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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ㅣ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평점 :
하루키의 이 작품을 읽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는 걸 알고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오히려 하루키를 좋아하는 작가가 쓴 에세이를 여러 권 읽은 것으로 하루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이 작품 세트를 19년에 구입하고 묵혔다가 작년 8월부터 읽다가 쉬다가 이제야 1권을 읽었다. 소설은 몰입해서 읽어야지 이렇게 읽으면 안 된다.
화자인 오카다 도오루는 법률사무소를 다니다 그만두고 요리와 청소를 하며 음악을 들으며 소박한 일상을 보낸다. 음악 애호가라고 할 수 있는 하루키답게 소설 속에는 음악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야기 도입부에도 로시니의 「도둑 까치」서곡을 들으며 스파게티를 삶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들어보았다. 역시 하루키의 말처럼 스파게티를 삶을 때 들으면 딱 좋은 음악으로 느껴졌다. 이때 모르는 여자로부터 10분의 시간을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그 여자는 ‘내’가 실업 중이며 나이가 서른이라는 것 등 모두 알고 있다. 또 아내 구미코의 오빠 와타야 노보루와 같은 이름을 붙여준 키우던 고양이가 사라졌다. 고양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이웃집 소녀 가사하라 메이를 만나는 등 알 수 없는 기묘한 사람들과 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 가노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특히 가노 마르타는 뭔가 꿰뚫어보는 염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은 점쟁이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앞으로 한동안 여러 가지 일이 생길 거라면서 고양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오루는 불안해지긴 하지만 특유의 침착함은 잃지 않는 모습이다.
노몬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혼다 씨와 가노 마르타가 모두 물을 주의하라고 했기에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나 들리던 태엽 감는 새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어서 가노 마르타의 동생 가노 크레타가 등장한다. 가노 마르타가 대신 보낸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도 모두 사라진 고양이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고를 하며 고통 때문에 죽기로 결심했던 지난날의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어서 마미야 중위가 등장한다. 구미코와 결혼 후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다가 중단되었던 혼다 씨가 죽고 나서 오카다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앞서 가노 크레타보다 더 길고 긴 중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참 지루하게 긴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 나른함을 단번에 깨주는 대목을 만났다.
‘우리는 도적 때 사냥, 패잔병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죄 업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중략)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우리 부대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십 명을 우물에 던져 넣고, 위에서 수류탄 몇 발을 던집니다. 그 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짓을 했어요. 소위님, 이 전쟁에 대의 따위는 없습니다. 이건 그저 살육이에요. 그리고 짓밟히고 죽는 것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입니다.(중략) 그런 사람들을 아무 의미 없이 죽이는 게 일본을 위한 일이 되겠느냐고요.’(P295)
혼다 씨와 생사를 같이 했던 노몬한 전투(1939년 만주와 몽골의 국경지대인 노몬한에서 일어난 일본군과 몽골·소련군 간의 대규모 충돌사건.) 이야기를 마미야 중위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지휘관인 야마모토가 산 채로 가죽를 벗겨지는 모습을 그대로 목도 해야 했던 마미야 중위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도 산 인생이 아닌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소박한 일상에 하나둘씩 기묘한 일을 겪던 가오루의 이야기에서 역사의 만행 이야기로 흘러가는 설정이 의아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하루키는 1970년대 이후 정신적 기둥이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고 역사로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이 작품에 2차 대전 중의 중국 이야기를 넣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면서 전혀 의도치 않은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같은 인간끼리 극악무도한 일을 벌였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흘러가고 곧 잊히고 만다. 작가의 역할이란 관찰자로서 독자에게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는 2004년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 곳인지에 대해 정직한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단다.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오루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까. 그리고 혼다 씨의 유품으로 받은 꾸러미는 텅 빈 상자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라진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