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왕 - 정치꾼 총리와 바보 아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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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총리인 아빠와 아들의 몸이 서로 바뀌어버린다면?

이런 다소 엉뚱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민왕은 사실 처음 콘셉트를 들었을 때 이후 어떤 전개를 보일지 뻔하다고 생각했다.

부패한 정치인인 아빠와 몸이 바뀐 아들이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으며 정의롭게 일을 처리해나가고 그걸 지켜본 아빠는 반성하고 이후 개과천선한다는 식으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과 함께 재미와 감동을 주는 식의 힐링물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작가가 이케이도 준이라는 걸 간과했다.

평범한 소재로 아주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일 뿐만 아니라 뻔한 식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 작가의 전작처럼 이번 역시 다소 황당한 소재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뻔한듯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오랫동안 정치에 몸담고 정치를 해 온 무토 다이잔에게 총리가 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전대 총리에 이어 이번에도 임기 중에 느닷없이 사임한 총리를 이어 짧은 기간이지만 국회를 이끌어갈 총리가 된 무토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다.

하지만 이런 행운도 잠시 국회의원들을 앞에 두고 정부 질의 시간에 느닷없이 아들의 몸으로 바뀌어버린 황당무계한 일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아들 쇼 역시 친구들과의 파티를 즐기다 느닷없이 국회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아빠의 몸으로 바뀐다.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원망을 쏟아붓는 것도 잠시... 일련의 사태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알고 보니 자신들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 몸이 바뀐 사람이 또 있었다.

언제나 무토와 대척점에 있어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던 제1야당의 부녀 역시 자신처럼 뒤바뀐 채 허둥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 CIA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온 신기술을 누군가가 훔쳤고 그 기술을 이용해 뇌파를 조종해 일련의 사태에 이른 것이었다. 단순히 서로 간의 영혼이 바꿔치기 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거대한 음모론까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가 무겁거나 긴장감을 주진 않는다.

작품의 기저에는 유머와 적절한 사회비판이 있지만 그걸 풀어가는 방식이 사뭇 이케이도 준 답 달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재미를 주고 있다.

뇌파를 조종해 사람을 바꿔치기한다는 발상도 황당하지만 더 재밌는 건 정치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쇼가 오랫동안 정치활동을 한 아빠를 대신하는 데도 그 차이를 눈치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한자를 몰라 머뭇거려도 정책에 대해 누군가가 질문을 해도 쇼가 아니라 담당 장관이 대답하든지 아니면 엉뚱한 말로 얼버무리고 몽뚱그려 대답해도 진실을 아는 주변인들 외엔 아무도 무토가 아님을 모른다는 걸 보면 우스갯소리로 누굴 그 자리에 앉혀놔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작가의 비꼼을 엿볼 수 있다.

정책에 대한 질의시간에도 그 정책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저 헐뜯기식의 말꼬리 잡기나 하고 업무능력과 상관없는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고 서로 싸우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라 실소가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우리나 이웃인 일본이나 가장 수준이 낮은 건 이런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꾼들인지도 모르겠다.

다소 황당한 전개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담긴 현실 정치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날카롭다. 거기에 더해 소설로서의 재미도 놓지 않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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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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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대신해서 부모가 대리 맞선 활동을 하면서 겪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담은 내 아이 결혼 시키기 대작전을 그린 이 책을 보면서 처음 느낀 건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 였고 어쩌면 요 몇 년 계속 유행 중인 패턴 즉, 유머와 감동을 섞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읽어보니 처음 내 짐작은 반 정도는 맞고 반 정도는 조금 의외인 부분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요즘 세대들이 느끼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 결혼시장에 대한 현실적인 반응을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다.

평소 자식의 결혼에 대해 큰 고민이 없었던 부모라 할지라도 가까운 친인척 혹은 친구 중의 누군가의 자녀가 결혼을 한다는 연락이 오면 갑자기 우리애만 너무 늦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고들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지카코 역시 친한 친구가 보낸 연하장에서 친구 딸의 결혼 소식을 들은 후부터 아직 28살의 딸을 둔 엄마가 아니라 마치 결혼하지 못한 딸을 둔 부모의 입장이 되어 마음이 급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딸 도모미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시작되는데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볼 때 딸아이가 제대로 된 연애는커녕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안 보이는 걸 깨닫는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변변치않은 급여를 받으며 별 발전이 없는 판매직 일을 하는 그렇고 그런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이성들에게 어필할만한 외모도 아닌 데다 애교적인 성격도 아닌 딸을 보면서 마냥 이렇게 딸이 스스로 결혼 상대를 찾기를 바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지카코는 남편과 의기투합해서 부모 대리 맞선 활동에 뛰어든다.

부모가 바쁜 자녀를 대신해서 맞선을 보며 상대방의 조건을 보고 서로 맞으면 자식들의 명함을 돌려 서로의 자식들이 시간을 정해서 만남을 갖는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듯 보이고 이게 무슨 코미디 같은 상황인가 싶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선 시장과 큰 차이가 없는듯하다.

미리 상대의 학력이나 외모, 조건 등을 맞춰본 후 적당한 상대라 생각하면 만남을 성사시키고 몇 번의 만남 후 바로 결혼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그렇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카코와 딸 도모미의 맞선 활동은 쉽지 않다.

우선 변변치않은 직장에 평범한 외모는 연애에서도 그렇고 선뜻 이성을 끌어들이기엔 매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

당연하지만 세 가족이 머릴 맞대고 상대의 프로필을 본 후 낙점한 남자들은 도모미를 원하지 않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나 조건이 나쁜 남자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와 이런 일에 서툰 지카코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은 조건의 상대 부모로부터 면전에서 거절의 말을 듣는 일이 많아지면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거절당한 것처럼 점점 더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아질 뿐 아니라 이러다 딸이 결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처음 결혼 조건 중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했던 조건까지 수정하는 등...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이렇게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난 후 좋은 점은 늘 바쁘고 일에 치여 힘들다며 집에 와 짜증을 내기 일쑤였던 딸과 부부가 서로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주변에서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나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남자들은 가부장적이고 안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것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요즘 세대들은 부부로 할지라도 각자 경제권을 가지고 공동으로 생활비를 내면서 서로의 개인적인 일에는 터치를 안 하는 걸 불문율처럼 여기지만 육아와 살림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이고 남편은 도와준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본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부부와 도모미가 나누는 대화는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어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무겁지 않게 유머를 섞어 현실에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았다.

도모미의 나이가 불과 28살인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못 할까 안절부절하며 직접 딸 대신으로 맞선활동을 하는 지카코의 모습이나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요즘의 눈으로 보면 안 맞는 부분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보고 소설적 재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즐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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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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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의 유쾌한 은행강도 팀 이야기 명랑한 갱 시리즈는 특유의 엉뚱함과 유쾌함에다 적당히 허를 찌르는 재미까지 다 합쳐진 엔터테인먼트 같은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나온 1,2편에 비해 3편인 이 책은 전편들이 나오고 9년이 지난 후 나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떨지도 궁금하다.

일단 주인공들이 은행강도라는 흔하지 않은 일을 하지만 이게 또 이들의 주 수입원이거나 은행강도라면 흔히 연상되는 난폭한 행동을 하고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등의 거친 행동을 일삼는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 마치 장난처럼 혹은 심심한데 은행이 있어 턴다는 식의 가벼움으로 어필하고 있는데 이게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엉뚱한 면과 어울려 재미있는 시리즈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간간이 어울려 은행을 털면서 엉뚱한 사건에 휩쓸리는 게 특기인 나루세일당은 이번에도 은행 하나를 가볍게 털어 소기의 목적을 이뤘지만 경비원의 반격으로 일행 중 한 사람인 구온이 왼팔에 부상을 입는다.

은행강도인 주제에 의외로 가족적인 분위기인 팀은 팀원 중 일행인 유키코의 아들이자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같이 키우다시피했던 신이치가 처음 가진 직장인 호텔에 갔다가 위기에 처한 한 남자를 구하게 되지만 이 남자 히지리는 오히려 자신을 도와준 팀의 약점 즉 경찰들과 언론이 찾고 있는 그 은행강도라는 걸 눈치채고 협박을 한다.

하필이면 구해준 사람이 악당보다 더한 악당이라는 점이 이 팀의 불운이지만 남들이라면 불안에 떨고 허둥 되기 마련인 때에도 차분히 대책을 세우는 팀은 각자가 가진 장기를 이용해 적진으로 스며든다.

게다가 조사하면 할수록 히지리는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돈이 되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자신의 기사로 누가 피해를 보고 얼마나 지옥 같은 일을 겪는지 따위는 관심없는 그야말로 자신들보다 더한 악당일 뿐 아니라 머리까지 좋아 속여 넘기기도 쉽지 않고 여차하면 자신들이 이제껏 해왔던 일과 정체를 들키는 걸로 모자라 자신들 주변 사람까지 모두 피해를 볼 상황에 처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않고 속 시원하게 대갚음해 주자!

이런 목표 아래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 나가는 갱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도와 히지리의 기사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같이 팀을 이뤄 아슬아슬하지만 흥미로운 작전은 시작된다.

이제 은행을 턴 일 따윈 잊어버리고 자신들보다 더한 악당인 히지리를 자신들의 피를 안묻히고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해 진짜 쎄고 전문적인 악당을 끌어들인다.

속된 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작전인데... 그러기 위해 팀이 세운 전략은 이사카 코타로식의 엉뚱한 유머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방법이라 읽다 보면 웃음이 실실 나온다.

거창한 사회의식을 요구하거나 통렬한 비판이 있는 블랙 유머 같은 걸 기대하기보다는 이들이 과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 그러기 위해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이 나올지 그 점에 초점을 맞추고 본다면 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

1,2편을 읽은 지 오래라 이야기의 텀이 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은 우려에 불과... 1,2편을 안 읽었던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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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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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자신이 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그 사람의 모습을 어느 날 문득 발견했을 땐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드는 건 은연중에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자만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같이 살았던 사람이 이름부터 고향까지 모든 게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배신감을 넘어서 선득한 두려움까지 느껴지지 않을까?

오래전 이혼을 도와준 인연이 있었던 리에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은 변호사 기도

그는 리에로부터 묘한 의뢰를 받게 된다.

그녀가 고향에서 재혼했던 남자 다이스케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부탁인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리에가 알고 있던 이름도 고향도 모든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에 그녀는 그의 조사를 부탁하게 된 것이다.

기도가 조사하면 할수록 그는 다이스케가 아닌 누군가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그렇다면 그는 진짜 누구인지... 왜 다이스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건지 궁금증은 늘어만 간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남자 X에 대한 호감과 동경은 기도의 마음속에서 자라 어느 날은 낯선 곳에서 그의 이름과 과거를 빌어 자신이 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하는 등 다른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에서 자유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그의 결혼생활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도 자신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일본인이 아닌 재일이라는 어중간한 위치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커다란 자연재해 앞에서 느낀 아내와의 정서적 거리감은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그의 가치관을 비롯해 이제껏 당연하다 여긴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했었고 이는 기도로 하여금 외로움과 함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쓸쓸함을 느끼게 했었다.

이런 때에 자신의 과거를 비롯해 이름까지 모든 걸 던져버리고 익명 속에 숨어버린 그 남자 X를 알게 되면서 어쩌면 자신은 하지 못한 일을 행한 그 남자를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순간에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의외로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추억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되는데 그렇다면 타인의 추억을 소유하기만 한다면 타인이 되는 것도 가능한 게 아닐까? 기도가 X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타인의 행세를 하기 위해 사소한 과거까지 그 사람인 척 행세한 X를 보면서 문득 떠올린 말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은 나중에 진짜 다이스케를 통해 증명된다.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그 사람의 과거까지 받아들여 완전하게 그 사람으로 될 수 있음을...

이렇게 X를 추적하는 동안 낯선 곳에서 낯선 이로 살아가는 데서 오는 자유와 일탈에의 동경은 그로 하여금 일생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하고 안 그래도 거리감이 생겼던 아내와 더욱더 멀어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기도의 흔딜리는 마음과 달리 그의 과거의 행적을 쫓을수록 범죄의 냄새는 짙어지고 그가 꿈꿨던 일탈도 점차 현실로 돌아올 즈음 마침내 기도가 찾았던 진짜 X의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알던 남편이 전부 가짜라는 범죄 냄새 풀풀 나는 소재로 시작해서 그의 행적을 쫓아가는 추적 스릴러의 모습에다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 교포의 존재론적 고뇌와 갈등을 재일 변호사의 기도를 통해 보여주고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버린 채 제도 뒤로 사라져버리는 자발적 실종자 문제를 범죄자 가족의 문제와 섞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한 남자는 스릴러적 재미도 만족시키고 그가 제시한 사회문제 역시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X,그리고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다이스케는 새로운 신분을 찾아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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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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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온 작품이라는 설명이 흥미를 불러오는 파국은

한 남자가 서서히 파국을 맞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일반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유도 아니어서 왜 이 작품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는지 이해가 갔다.

주인공인 요스케는 겉으로 봐선 건실한 청년이다.

재학 중이면서 꾸준히 공부를 하고 스케줄에 맞춰 운동을 해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뿐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취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머리도 좋은 편이어서 취업전선에도 문제가 없고 여자친구도 끊이지 않는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성욕도 강하고 그 성욕을 해결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처지... 그야말로 속된말로 엄친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는 요스케지만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반듯하다.

그 반듯함이 지나쳐 요스케라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마저 사람이 아니라 로봇처럼 느껴질 정도... 여기에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면이나 사회규범에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를테면 절대로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거나 짧은 옷차림의 여자를 훔쳐보고 싶어도 그 행동이 옳지않아서가 아닌 스스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사람인 자신은 그런 비열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자제한다거나 유흥업소 같은 곳은 절대로 가지 않는다거나 연인의 데이트 거절로 성욕 해소가 절실한 상황에서도 그녀의 커리어를 위해선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이지 않다.

화를 내거나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일견 성실한 청년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그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부분은 빠져있고 오로지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선 안된다는 규칙에 강박적으로 옭아매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일 즉 사회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을 땐 스스로 공무원이 될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네는 모습에서 어쩌면 자신을 이런 규범 속에 묶어 두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시킬 수 있음을 무의식중에 자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자신의 근육을 관리하고 스케줄을 조정하며 언제나 바쁘기만 하던 여자친구의 편의를 봐주고 넘치는 성욕은 스스로 해결하던 그가 파국을 맡게 된 계기는 한 여자를 만나고 난 뒤다.

아카리를 만나면서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다르게 섹스에 점점 탐닉하게 되는데 이조차도 스스로가 원해서라기보다 아카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그녀를 사랑해서인가 하면 그녀와 만나는 중에도 전 애인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잠자리를 가진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전 애인인 마이코에게 순간적이라도 성욕을 느껴서가 아닌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은 결과였다는 것... 그야말로 성욕의 해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죄의식 역시 갖지 않는다.

아니 죄의식은 당연하고 순간적인 욕망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기계적으로 반응하는지...그리고 그 모습이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스스로가 계획을 세워 모든 것을 조절하던 그의 일상이 아키리로 인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마침내 스스로의 광기를 드러낸 순간 폭발하듯 터져버린 그의 모습은 의외라기 보다 오히려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반듯한 모습은 어딘지 불안함과 긴장감을 불러왔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위력에 의해 결박당하는 순간 그가 느낀 안도감이 완전하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고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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