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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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걸 운명이라고들 하는데 만약 그런 일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가 닿았다면?

사실 한 번쯤은 이렇게들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신이 나 그 무언가의 안배이고 사람의 운명은 미리 결정지어져 있다는 것을...

이 책 우연 제작자들은 누군가에게 섬세한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떤 결과로 이끌어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이런 일을 담담하는 사람이 우연 제작자들이고 무엇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의 형태를 하면서 사람과 섞여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은밀하게는 살아있지 않기도 하고 사람이라 규정지을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런 존재들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깊이 생각하거나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그저 흔한 클리셰 지만 모퉁이에서 부딪친 남녀가 도와주다 사랑에 빠지게 하거나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울며 주저앉는 여자를 보고 지금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문득 어릴 적 꿈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가는 회계사의 이야기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연의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지와 같은 가벼운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우연 제작자들에게도 여러 가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을 뿐 아니라 등급이 있다는 사실~

가이는 연인들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일이 전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믿지 않는다.

자신은 아직까지도 예전 상상 속 친구로 활동할 때 만났던 여자만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지만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제로...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동기이자 친구인 에밀리의 마음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면서 받아주지 않자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에밀리는 자신들을 상대로 운명을 제작하지만 사랑에 회의적인 가이는 금세 눈치를 챈다.

그가 그저 오래전 잠시 만났던 여자의 기억만을 안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에밀리는 모든 희망을 잃고 운명 제작자를 그만두고 먼 길을 떠나버린다.

이렇게만 보면 사람이 아닌 존재들의 거창한 이야기이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남녀 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저 그들의 직업이 우연을 제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찾아 날실과 씨실을 엮어 운명을 제작하는 남자가 정작 자신은 사랑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가능성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거나 외면에 가려진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면서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양식은 사람과 똑같다.

사소한 하나를 움직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그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이와 에밀리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를 준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에 누군가의 의지나 어떤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

책을 읡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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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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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땐 앨리스라는 게 당연하게도 이상한 나라의 그 앨리스를 연상했고 그런 판타지 같은 느낌의 소설일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란다.

하지만 진 패짓이라는 여성이 겪은 일과 그녀가 이룬 일들은 충분히 환상적이었고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진 패짓이라는 영국 여성이 2차 대전이 한창인 아시아의 말레이반도에서 험한 일을 겪고 전후 호주로 넘어가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초반에는 그녀가 전쟁에서 그것도 약자의 몸인 여성으로 얼마나 지독한 고초와 고난을 겪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을 기초로 해서인지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말레이반도에서 자란 진은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순간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돌아가 생활하던 즈음 예상치 못한 전쟁이 터지면서 전쟁에 휩쓸린다.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일본군은 그들이 사는 곳까지 쳐들어와 남아있는 사람 모두를 포로로 잡았고 당장 쓸모가 있는 남자들은 끌고 간 후 여자들과 아이들은 포로수용소로 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을 받아주는 데는 없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원주민들의 호의로 살아가야 하는 동안 넉넉지 못한 음식과 고난 행군은 아이와 여성이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어 처음의 인원이 온갖 질병과 전염병으로 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일 즈음 이 나라 말을 할 수 있었던 진은 어느새 그들을 이끌고 통솔하는 입장이 된다.여자들을 격려하고 일본군과 원주민 사이에서 협상을 하는 등...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던 호주 청년 조 하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녀들을 돌봐주고 도움을 주지만 운 나쁘게도 일본군에 발각되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바닥에 못이 박히고 채찍으로 맞아 죽는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일이 있은 후 겨우 한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된 진 일행은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직접 논에서 농사를 짓고 일손을 거들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게 되는데 당시로는 파격적인 일이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포로의 몸으로 낯선 곳에서 서양인들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벼농사를 지어 스스로 먹을거리를 만들어낸 여자들... 그리고 그들을 이끈 진이라는 여성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스스로 살 길을 찾는 진의 이런 성격은 훗날 또 다른 낯선 땅인 호주에서도 유감없이 빛난다.

여전히 그때의 악몽 같았던 일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채 영국으로 돌아와 속기사 일을 하며 무기력하게 보내던 진에게 변화가 찾아온 건 생각지도 못했던 외삼촌의 유산이 손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생각보다 큰 액수의 유산을 물려받게 된 진은 그 돈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즐기며 보낼 수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말레이반도로... 자신들이 가장 힘들었을 때 도움을 줬던 곳으로 가 여자들을 위한 우물을 파는 것인데 자신이 머물던 당시 여자들이 스스로 먹고 마실 물을 뜨러 먼 길을 마다않고 다니며 고생하는 모습을 기억해 조금이라도 그런 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죽은 걸로 알고 있었던 조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 진은 또다시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데 그 사실을 알자마자 호주로 조를 찾아간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그녀가 상당히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호주에서 조를 만나기 위한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그동안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곳의 문제점... 즉 젊은 여성들이 부족해 남자들이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 내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받을 유산의 일부분을 이용해 여자들의 일자릴 만들면 이곳의 경제도 살아나고 많은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다는 걸 파악한 진은 하나둘씩 생각했던 대로 이곳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젊은 사람들이 일자릴 찾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찾아가는 악순환을 없애고자 노력했고 이런 그녀의 노력은 성과를 내 삭막하고 사람들이 없던 죽어가는 도시를 활기찬 도시 즉 앨리스스프링스처럼 번화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전쟁에서 돌아와 무기력하고 소극적이기만 했던 진이 점차로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가는 모습부터 낯선 땅 호주로 와 삭막하기만 했던 이곳을 사람들이 벅적거리며 활기찬 곳으로 변화시켜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은 한편의 드라마같은 소설이었다.

더불어 진과 조의 설렘 가득한 로맨스까지 곁들여 시간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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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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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고 정치적 발언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수십 년 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들이 옛날 우리의 할머니나 우리 엄마들 세대에 비해 혜택을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들여다보면 아직까지 뿌리 깊은 남존여비 사상이나 남성 중심주의가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모르는 새 어릴 적부터 여자다움을 강요당하고 또 그런 걸 당연하다 교육받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 세뇌당해왔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에는 열두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할머니와 우리 엄마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그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곳에서 살아가지만 여자들이 겪는 온갖 부조리함과 불합리함 그리고 억압의 역사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걸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대부분의 여자들보다 휠씬 더 힘든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현재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먼 조상이나 혹은 부모 세대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와 연관된 유색인종이기도 한데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그네들이 뿌리를 내리기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는 굳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여성이고 성 적 소수자이기도 하다면 그 고단함이 말해 뭐 할까

시작을 12명의 여성 중 앰마로 시작한 것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뛰어난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그녀가 걸어온 길은 일단 평범하지 않다.

그녀 자체부터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성 소수자이기도 하지만 예전의 남편들이 그러하듯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밑에서 굴종하듯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 스스로를 구속하는 걸 못 견뎌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이며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게이 친구와의 결합을 통해 사랑하는 딸 야즈를 출산하고 양육한다.

더더욱 힘든 환경을 이겨낸 캐럴... 수학과를 나온 엄마를 둔 덕분인지 남보다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단 하루의 일탈이 불러온 불행은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여자들의 불행은 그녀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난을 들어야 할 뿐 아니라 여차하면 그녀의 인생 전체를 바꿔 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캐럴은 그녀 스스로 일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캐럴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도움을 준 사람은 셜리

그녀 역시 집안의 남자형제들 때문에 늘 순위에서 밀리고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머리와 노력으로 집안에서 혼자서만 대학을 나와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성공... 자신과 같은 처지 즉 약간의 기회만 주어지면 스스로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힘쓰지만 쉽게 현실에 안주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점점 지쳐 모든 희망을 버릴 때 캐럴을 만나게 된다.

캐럴에게 셜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듯이 셜리에게도 캐럴은 신입 교사일 때의 의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지만 셜리의 생각과 달리 캐럴은 기회를 잡아 원하는 바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캐럴에 대한 고마움은 없다.

오히려 노력은 자신이 하고 셜리가 그 대가를 얻었다 생각한다.

이렇듯 오랜 세월 힘든 세월을 거치고 그런 할머니와 엄마의 노력과 희생으로 현재의 자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이 처한 현실이나 자신이 보면서 자랐던 과거를 통해 자신처럼 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남자들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왔단 이유로 할머니를 엄마를 연민하면서도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말...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의 영국식 버전이랄지

이렇듯 누구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버텨내고 자식을 양육하고 마침내 여자들의 권리의 일부분을 쟁취해냈지만 이번에는 여자들 간 세대 불화가 기다리고 있다.

서로를 연민하고 애정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여자들의 이야기가 세대를 넘나들며 서로의 삶에 얽히고 관계를 맺어가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왜 많은 찬사를 받고 호평이 이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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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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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 많이 미치지 않은 깊은 숲속에서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새를 연구하는 논문을 준비 중인 조는 외딴 집 근처에서 제대로 된 복장도 갖추지 않은 채 맨발인 여자아이를 만난다.

자신을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하는 아이는 처음부터 조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 아이의 말에서 정보를 얻어 보호자에게 인계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신상에 대해 절대로 말하려 하지 않는 아이로부터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소녀의 몸에 누군가에 의한 멍과 상처를 본 순간 자신도 몰랐던 보호본능이 생기게 되고 아이에게 제대로 된 보호자를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지역 경찰에서조차 주변에 아이를 찾는 신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조의 말은 묵살당해 어쩔 수 없이 소녀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아이를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리함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고 애정을 느끼지만 이웃집 계란 장수인 게이브의 조언처럼 그 아이를 곁에 두면 둘수록 조가 고발당할 위험만 커질 뿐이란 걸 알면서도 경찰에게 인계되는 걸 극도로 거부하는 소녀를 외면할 수 없어 고민하는 조

얼사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거리를 두던 게이브마저 점점 이 작은 소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이 세 사람은 마치 한 가족처럼 친밀감과 애정을 갖게 되지만 처음부터 불안했던 얼사의 처지가 극도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그 아이를 알아보고 뒤를 쫓아오면서 마치 한편의 동화 같았던 이야기에 서스펜스와 스릴러적인 요소가 스며들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처음부터 맹렬하게 자신을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 주장했던 얼사의 말을 믿었던 건 아니지만 조와 게이브가 사방에 알아보고 누군가 그 아이를 찾는 사람이 없는지 세심하게 온라인 사이트를 둘러봐도 그 아이를 찾거나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에서 왔거나 어쩌면 정말로 다른 별에서 온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 시점에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켜주는 미행자의 존재는 얼사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던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새삼 맞았음을 깨닫게 해준다.

막다른 길에 있는 외딴집 근처의 깊은 숲에 불쑥 나타난 소녀의 존재만큼 이질적인 건 없고 소녀의 행색을 보면 누구라도 미아거나 범죄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가 범죄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건 서로 처음 마주친 순간 얼사가 보인 태도 때문이었다.

처음 보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겁에 질린 태도가 아닌 너무나 태연하게 자신이 지구가 아닌 저 멀리 보이는 별에서 온 존재라고 말하는 소녀를 보면서 누가 범죄 연루 가능성을 알 수 있었을까

게다가 처음부터 5가지 기적이 일어나면 떠날 거라는 걸 입버릇처럼 말한 대로 그 아이 주변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발병으로 인해 우연히 검사했던 자신의 몸에서 암조직을 발견하고 가슴과 난소를 절제하면서 여성성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는 조에게 남자친구의 배신은 더더욱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우연히 엄마와 아빠 친구와의 불륜 장면을 본 충격에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게이브가 얼사를 돌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 것부터 주변 모든 것이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기적 같은 일을 깨달으면서 얼사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던 만큼 그 아이가 숨겨온 비밀이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졌을듯하다.

숲에서 새와 자연을 사랑하며 연구하는 조와 스스로를 별에서 온 아이라 칭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서로의 운명을 변화시키게 되는 존재가 되는 과정이 환상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진 숲과 별이 만날 때는 한편의 동화같이 느껴졌다.

공허했던 조에게 가득 찬 행복감을.... 사람들과의 관계조차 어려워했던 게이브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그리고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긍정적이고 용기가 있었던 얼사에겐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가족이 생기는 기적의 과정을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펼쳐준 마법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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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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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불처럼 뜨겁게 모든 것을 태우는 복수를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몬테 크리스트 백작이랑 어딘가 닮았다 였는데 작가가 존경하는 대작가 뒤마에게 오마주로 이 소설을 썼단다.

몬테 크리스트 백작의 주인공은 믿었던 친구를 비롯해 모두의 배신으로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져 어두운 감옥에 십수 년을 갇혀지내는 형벌을 받았기에 탈옥한 후 보물을 찾아 그 돈을 디딤돌 삼아 모두에게 복수하는 모습이 공감이 갔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 역시 믿었던 사람들... 친척을 비롯해 부하직원 그리고 선의를 베풀어 준 대상 모두의 공모 아래 한순간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후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몇 년의 노력 끝에 끝내는 모든 것을 불로 태워버리듯 복수한다는 설정이 닮아있다.

단지 차이점이라곤 주인공이 남자에서 이 책에선 여자로 그것도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라는 위치만 다를 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한 은행의 설립자이자 존경받았던 인물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순간 이 집안의 상속자인 고인의 손자가 위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장례식은 엉망이 되고 피 흘리고 의식이 없는 아들을 병원으로 싣고 가는 고인의 외동딸이자 상속녀인 마들렌은 평정을 잃고 이후 그녀의 모든 관심은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의 치료에 쏠려있다.

그리고 그런 마들렌과 그녀의 아들 폴에게 고인의 거의 모든 재산 즉 집과 돈, 은행의 지분이 상속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삼촌과 그녀와 결혼을 해 은행을 물려받을 것을 당연시 여겼다 뜻밖의 거절로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던 은행장 귀스타브는 그녀에게서 모든 재산을 뺏어올 궁리를 한다.

그녀가 아픈 자식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라곤 없고 오랫동안 자신의 집안을 위해서 일해왔던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믿으리라는 그들의 자신감은 맞아떨어졌다.

평생을 부유하게 살아왔지만 돈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고 순진했던 마들렌을 속이는 건 너무나 쉬웠고 그녀로 하여금 은행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줘 그녀가 가진 재산을 비롯해 은행의 지분을 팔게 한다는 이 계략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들어맞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년이 채 안 된 시간에 상속받은 재산 거의 전부를 잃어버린다. 심지어는 폴의 몫인 재산까지도...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후였고 자신에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렇게 된 거라는 걸 알기에 어디에도 호소할 수도 없었다.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마들렌이지만 이제 아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평생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폴은 모든 의욕을 잃고 살아가다 우연히 듣게 된 한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듣고 새로 삶을 살아갈 의지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 사고의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입을 떼어 그날 사고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서 마들렌을 새로운 충격에 빠트린다.

그리고 그녀가 받았던 그대로 그들에게 하나씩 복수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그녀를 함정에 빠드린 것보다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함정을 파 그들이 가지고 있다 생각했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져 있는 화재의 색은 평범하면서도 순진했던 한 여자가 어떻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냉정한 복수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폴의 사고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훨훨 태우는 듯한 복수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의 복수에 가장 도움이 될 사람을 포섭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그들 한사람 한사람 누구 하나 빠트리지 않고 복수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고 어쭙잖은 용서 따윈 없는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시원함을 선사하고 있다.

1930년대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유럽의 분위기... 파시즘과 나치즘의 태동, 정부의 지독하리만치 쥐어 짜낸 세금에 시민들이 반대해 들고일어나 파업을 선언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에서 언제나 그렇듯 부자와 권력자들은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당시 상황과 한 가문의 상속녀의 몰락과 복수의 과정을 엮어놓은 화재의 색은 배경이 30년대일 뿐이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다.

스릴러 작품으로 먼저 만나본 작가지만 탁월한 필력과 스토리텔링은 장르를 막론하고 어필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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