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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평점 :
류 라는 작품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전력을 가진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
그가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전작인 류를 읽어봐서 작가의 작풍이 절대로 가볍지 않고 심오한 철학을 지닌 문학작품이라는 걸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었지만 역시 이번 작품도 쉽지 않았다.
일단 2173년이라는 먼 미래 소행성이 충돌한 후 극심한 기후변화로 전 세계가 초토화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생각하기도 싫지만 인육을 먹으며 살아가는 미국 중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대립 그것도 자신이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어서 식량이 되어야 하는 극한 대립구도를 보면서 기존의 디스토피아처럼 전투신이나 액션신이 넘쳐나는 작품일 거라 생각한다면 절대 오산
여기엔 지금의 도덕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될 같은 종인 인간끼리도 서로를 보통의 먹이처럼 잡아 먹는 세상이고 소행성 충돌 후 세계가 뒤집어진 것처럼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가치관을 비롯해 모든 것이 변해야만 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소행성 충돌 후 인간이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기온 변화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졌다.
운 좋게도 먹을 것을 비롯해 많은 것이 견고하게 남아있는 곳인 캔디선 안쪽의 생존자는 이제까지의 삶보다 좀 팍팍하고 감시를 받지만 인육을 먹어야 할 정도의 극심한 굶주림은 면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못 받은 사람들은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굶어서 죽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일까 캔디선 안쪽의 사람은 같은 사람을 먹는 캔디선 바깥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종이 아닌 마치 도덕적으로 부족하고 미개한 그 무엇으로 보고있다.
그렇다고 캔디선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 따윈 없다. 그들이 들어오는 걸 목숨 걸고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들이라고 누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을 먹고 싶었을까?
도저히 어쩔 수 없어 행하는 인육 섭취지만 끊임없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겐 이제까지의 신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이끌 새로운 구원자가 필요했고 그런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블랙 라이더 이른바 새로운 신이라 추앙받는 영웅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블랙 라이더가 왜 그들의 신이 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네이선 발라드라는 구 시대의 종교와 신을 대표하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그들이 믿었던 신이 아닌 새로운 신의 등장 배경과 신격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만이 진정 善이고 진리일까?
세상이 뒤집히고 변하면서 가치관이나 옳고 그름 역시 바뀌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사실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이런 소재를 가지고 책을 썼는지는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많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충분히 깊고 심오해 많은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
다음엔 또 어떤 소재를 가져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