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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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만 이런 특정한 숫자와 함께 의미심장한 글이 보인다면 어떡해야 할까

단편으로 이뤄진 책에는 앞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 거짓말을 들을 횟수, 불행이 찾아올 횟수, 놀 수 있는 횟수, 그리고 가장 무서운 앞으로 살 수 있는 날 수까지 사람이 생각할 수 있을만한 것들의 횟수가 정해진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런 카운터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걸 볼 수 있고 미리 알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이런 점을 알아차린 후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느 날부터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엄마가 만든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보이기 시작한 남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의식을 하고 보니 카운터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그 카운터의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챈다.

카운터가 끝나는 순간이 엄마와의 이별임을 알고부터 남자는 바보스럽지만 당연한 듯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부터 자신이 한 밥을 거부하는 아들에게 뭔가를 하나라도 더 먹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도 꺼려 하면서 어느새 십수 년이 흐른다.

카운터 숫자가 주는 걸 보면서 엄마의 밥을 거부하는 아들의 심정도 그런 아들의 마음도 모른 채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마음도 다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읽으면서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못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진정한 그 카운터의 의미를 알아챈 순간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엄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하고 그런 아들을 반가이 맞아주는 대목에서 울컥하게 된다.

또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를 볼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 역시 마음 한구석을 건드려준다.

미래던 과거던 언제 어느 시기의 자신에게 전화를 5번 할 수 있다면 보통 사람은 언제의 자신에게 전화를 할까

아마도 살면서 가장 후회되거나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주인공 역시 처음엔 조금 전 자신이 가진 돈 거의 전부를 잃은 경마에서 자신이 선택한 말이 아닌 우승마에 투자하기를 원하지만 당연한 듯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한 전화는 자신의 운명이 크게 바뀌게 된 부모님의 사고를 바꿔보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는다.

당연하지만 과거의 자신이든 미래의 자신이든 누군가 전화해서 본인이라 말하며 어떤 일을 하라고 요구하면 들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 자신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기회임에도 웬만해선 쓸 수 없는 기회이고 주인공 역시 이를 깨닫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전화가 가슴에 와닿는다.

이렇게 감동적인 내용도 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기회도 있다.

불행이 찾아올 횟수나 놀 수 있는 횟수가 그런데 여러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거짓말을 들을 횟수였다.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하는 거짓말이 얼마나 많을까마는 누군가가 그런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곁에 있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거짓말까지 알아챌 수 있다면 피곤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주인공의 곁에서 사소한 거짓말을 하지만 본성은 착하고 성실한 남자가 하는 거짓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얀 거짓말이 대부분이었기에 주인공 역시 남자친구의 사소한 거짓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그런 그가 하는 결정적인 거짓말은 그래서 더 아프게 느껴진다.

이렇듯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보이는 여러 가지 의미의 카운터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있지만 아쉽게도 그걸 바꿀 수는 없다.

눈에 뻔히 보이지만 그걸 바꿀 수도 없고 그저 지켜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만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은 다 유한하다.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이걸 깨치기 전까지 뭔가 바꿔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지만 결국 깨닫는 건 자신의 힘으로 그 카운터를 멈출 수도 없앨 수도 없다는 사실뿐

그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현실을 충실히 살고 열심히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일뿐이란 걸 알게 된다.

따듯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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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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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본인 스스로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스스로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여기에는 아프고 충격적인 진실이 있다.

눈앞에서 자신의 아이가 아비라는 작자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여자라면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후 끊임없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여자가 어느 날 어린 소녀의 구원을 요청하는 소릴 들었다면... 그것도 같이 있었던 사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지

이렇게 살면서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괴이하거나 기이한 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단편집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은 그 바탕에는 상처의 치유와 사랑이 깔려있다.

그래서 무서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들여다보면 슬픔과 애잔함을 느끼게 해서 무서움을 상쇄하고 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집안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남자의 유령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상생활이 흐트러지고 있는 남자

아내 역시 그가 보이지만 남편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고 오히려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출현 빈도 출현 시점 등을 구체화해서 어느 시점에 유령이 자신들에게 붙게 되었는지를 유추하고 그 남자의 신원을 찾기 시작하는 부부

마침내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은 여느 추리소설 같지만 그 이후는 조금 다르다.

이 부부의 상처가 드러나고 그 유령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걸 납득하고서야 비로소 아내는 마음의 짐을 조금 벗어나게 된다.

무전기 역시 사후세계와 연결된 기이한 이야기인데 그 기저에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

쓰나미로 아이와 아내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남자가 자신이 선물로 준 무전기를 통해 어린 아들과 소통하게 되는 데 그렇게 무전기를 통한 소통이 무너질 수도 있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고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된다는 이야기는 안타깝고 슬프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와 곤드레만드레 SF 그리고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역시 머리가 잘렸지만 살아있는 닭을 몰래 숨어 키우는 아이들과 술에 취하면 시간이 뒤섞이고 혼탁해지는 능력을 이용하는 남녀 등 소재가 특이하지만 그 뒤에는 잔인한 사건이 숨어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는 범죄

기이하거나 괴이한 이야기만 주가 된다면 현실과 동떨어져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어서인지 현실에 일어날 법한 일에 심령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혹은 괴이한 현상을 섞어 어쩌면 있을 수도 있을 법한 그럴듯한 판타지를 엮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괴이함 뒤에는 애잔한 슬픔이 깔려있고...

그래서인지 사건성만 본다면 무서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무서움보다 안쓰러움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작가의 재량이 아닐까 싶다.

필명을 바꾸는 만큼 이야기의 무게도 분위기도 제대로 변화시켜 마치 다른 작가인 것처럼 쓸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새삼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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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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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지만 읽으면서 한없이 쓸쓸해지고 마음이 침잠하는 걸 느낀다.

어쩌면 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그려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자신을 잃고 변해가는 사랑을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너무 덤덤하게 그리고 있는 데 읽으면서 그 마음이 느껴지고 공감이 가서 더 우울해졌다.

이 책에는 4명의 남녀가 나와 각자의 시선에서 사랑을 그리고 변해가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래도 좀 더 주축이 되는 사람은 아마도 히나와 가이토가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히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인 요양사의 길을 걷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한창나이에 특별한 취미도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그녀가 그저 답답하게 보일뿐이다.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흔들릴 때 그런 히나의 옆에서 오랫동안 그녀를 돌봐주고 사랑해주는 남자가 가이토지만 그런 가이토의 친절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히나는 그에게 별 마음이 없다. 그저 익숙할 뿐...

오롯이 가이토만 절절 애타게 끓는 마음을 가지고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위태로운 이 연인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린다.

노인 요양사의 모습을 취재하러 도쿄에서 내려온 미야자와

직업의 특성 때문이지 어딘가 자유롭게 메인 것이 없는 것 같은 미야자와와 섹스를 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성에 눈뜨고 점차 미야자와에게 빠져드는 히나지만 미야자와는 현재 아내가 있는 몸이다.

게다가 자유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미야자와 역시 하는 일이 위태롭고 아이를 원하는 아내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선택한 것이 히나였고 히나가 있는 이곳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에 구애받은 적이 없는 풍족한 삶을 살아왔지만 어릴 적부터 각자의 생활에 바쁜 부모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받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 탓인지 자신의 곁에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도 않고 또 상대가 너무 가깝게 근접하면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는... 천성이 누구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차가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히나는 잠시 머무를 안식처일 뿐...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자신만 바라보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나온 그녀 히나의 마음은 알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다.

누가 봐도 미야자와는 잠시 가지고 놀 상대로 히나를 대할 뿐 이란 걸 알지만 그녀가 그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아파도 내가 놔줄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이혼녀 하타나카와 몸을 섞는 가이토...이렇게해서라도 히나를 향한 마음을 끊고싶다.

그녀를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몇 해를 같이 살았고 하타나카의 아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 책임감으로 결혼하고자 하는 가이토

하지만 히나를 잊은건 아니다.히나가 떠나버린지 오래지만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뻐근해진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네 사람은 누군가는 사랑해서 함께 살지만 어느샌가 그게 일상이 되면서 반짝거림이 사라지고 또 다른 부채와 무게로 살아가거나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책임감 때문에 묵묵히 살아간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이 괴롭고 힘들고 사랑 때문에 행복했던 그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일상처럼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사랑 때문에 울고 웃지 않는다.

반짝거리던 사랑이 일상에 함몰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져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읽으면서 가슴이 헛헛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변해버릴 것 알면서 왜 그렇게 사랑에 목을 매는 건지...

게다가 히나와 가이토 그리고 무책임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하타나카까지 미야자와를 제외한 세 사람의 직업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노인 요양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곧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들 역시 한때는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랑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있었지만 어느샌가 혼자서 인생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노인들을 보면서 사랑의 그 부질없음이 더 뚜렷하게 대비되는 느낌이다.

쓸쓸한 이 가을에 읽으면 더 좋을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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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속 지옥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6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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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후반부터 1945년 전후의 일본 추리소설을 엮어 만든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는 일본 추리소설의 시작과 발전방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에서 일본에 추리소설이 유입되었을 당시부터 시작하여 전후 시대의 주요 작품을 연대순으로 기획한 이 시리즈는 그래서인지 요즘의 추리소설과는 분위기도 다르고 전개 방식도 다른데 그 색다름을 즐기는 게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의 저자 유메노 규사쿠는 추리소설 독자라면 잘 알고 있을 일본 추리소설의 3대 기서 중 하나인 도구라 마구라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실린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 괴이 소설, 기이 소설에 가까운 게 많은듯하다.

일단 등장인물 중에 광인이 많다는 것도 그렇다.

도구라 마구라 역시 광인의 정신 상태를 주로 다뤘다는 걸 보면 그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난폭성이나 광기 같은 조금은 남다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쉽지 않아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에 조금은 난해하고 복잡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나 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그가 왜 동시대를 비롯해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지도 알 수 있을 듯...

여러 단편 중 기괴한 북과 사갱은 괴이함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작품이다.

북을 만들 때 자신을 버린 정인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넣어서 만들어 정인의 집안을 비롯해 이 북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를 불행에 빠트린다는 이야기는 그의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어딘지 음산하고 괴괴하며 뭔가 씐듯한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랄까... 사갱에서도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는 일을 하는 광부가 생각지도 못한 인연으로 한 여자를 아내로 맞지만 이 아내에게 버림받은 연인과 같은 갱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끝내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환상과 광기가 뒤섞여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가 본 것이 진정 현실인지 그가 그린 환상인지 읽으면서도 헷갈린다.

책 제목으로 쓰인 유리병 속 지옥은 그의 단편 중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하는데 짧은 분량 속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도덕과 쾌락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것을 세 통의 편지를 통해 그리고 있는데 왜 이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후의 사랑과 인간 레코드는 러시아 혁명 이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 사후의 사랑은 일본군 병사였던 노숙인의 입을 통해 로마노프 왕조의 보석과 공주의 비참하고 안타까운 운명과 슬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장난으로 죽이기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배우였던 여자가 보이는 동물을 향한 엽기적인 행각을 그리고 있는데 그 그로테스크함과 잔인함은 아름다운 외모와 죄의식이 전혀 없는... 어찌 보면 어린아이의 순수한 잔혹성을 담은듯한 그 대비가 더 섬뜩하게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부터 상당히 기괴하고 특이하는 평을 많이 들었다는 걸 보면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 세계는 평범한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기엔 쉽지 않을듯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린 작품의 면면에서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걸 보면 그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걸 탐구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에 추리소설 장르가 도입될 당시의 분위기나 일본 추리소설의 원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읽어봐야 할 시리즈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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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소 그랑 오텔
고시가야 오사무 지음, 정선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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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도 다 지나간 10월의 보소반도

평범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조금도 평범하지 않은 3명의 손님이 보소 그랑 오텔에 묵는다.

윗대부터 계속해서 대를 이어 숙박업을 하는 이곳은 음식을 만드는 아버지와 손님을 접대하는 엄마 그리고 방과 후 틈틈이 부모의 일손을 돕는 고등학생 딸... 이렇게 셋이서 운영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호텔이다.

이야기는 각자 따로 온 손님 3명... 어딘지 우울한 얼굴빛을 가진 여자 사토와 호기롭게 고급 식재료를 주문한 중년의 명랑한 남자 스가누마 그리고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온 청년 다나카와 이 들을 궁금증을 가지고 관찰하는 이 호텔의 딸 나쓰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나쓰미의 눈에 비친 손님 중 가장 요주의 인물은 당연하게도 혼자 여행을 온 사토인데 그녀의 침울한 표정과 우울한 낯빛은 마치 뭔가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더더욱 그녀 곁에서 오지랖을 부리며 온갖 질문을 해대면서 관찰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살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곁에서 친근한 척 말을 걸어오는 나쓰미를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레즈비언이라 착각하며 꺼리는 태도를 보인다.

나쓰미와 그 가족의 걱정은 상대를 잘 못 고른듯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걱정도 없고 즐거우며 거침없는 성격인 스가누마야말로 여기에서 인생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결심으로 혼자 묵고 있는 것인데 누구의 눈에도 그는 걱정 따윈 없는 유쾌한 중년 남자로만 비칠 뿐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다나카 역시 프로 사진가인척했지만 사실은 별다른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오타쿠였지만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이곳으로 온 데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어쩌면 철 지난 휴양지에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평범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사연과 고민을 안고 온 세 사람이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곳에서 난 음식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조용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드디어 자살을 목적으로 이곳에 온 스가누마가 행동 개시를 하기 위한 일련의 소동이 벌어지면서 모두가 가지고 있던 비밀이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호텔 이름을 왜 이렇게 지은 건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 호텔이 보소 그랑 오텔이 된 사연이 공개되면서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특히 조금은 어리숙한듯한 세 사람의 손님과 야무지면서도 엉뚱한 소녀 나쓰미의 케미를 상당히 재밌게 잘 표현한듯하다.

여기에 말주변은 없지만 신선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장만하는 요리사 아빠와 명랑하면서도 조금은 소심한 엄마에 절대 미모를 자랑하는 사촌 등 나오는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세 사람 모두는 인간관계에 지치고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뭘 해도 되지 않는 대서 오는 자신감의 상실로 인해 이곳으로... 휴가철 사람이 다 떠나고 없는 한 적 안 이곳에 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들이 이곳에서 다시 삶을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는 과정이 과장하듯 부풀려지게 표현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정성이 들어간 따듯한 음식, 누군가의 관심,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사람은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렇다고 엄청난 감동을 주거나 감정을 울리는 그런 무거운 소설이 아닌...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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