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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항상 환상과 현실의 경계 그 사이를 넘나들며 독자를 매혹시키는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가을의 감옥은 몰랐지만 신간이 아닌 복간 작품이었다.
절판된 지 오래인 책이지만 꾸준하게 재출간 요구가 있었다는 설명이 책을 읽고 나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3편의 중편을 엮어 만든 가을의 감옥에서는 주인공 모두가 어딘가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묶여있는 상황 설정이다.
누군가는 특정한 날짜에 묶이고 다른 누군가는 집에 묶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환상에 묶인 사람이다.
문득 눈을 뜨고 보니 같은 날 즉 11월 7일에 갇혀 버린 나
매일 같은 날에 갇혀버린 걸 알게 되면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당황하고 이윽고 문제가 뭔지 해결 방법을 찾다 도저히 그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자포자기하게 되는데 주인공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자포자기할 때쯤 자신과 같이 시간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 혼자만 시간에 갇힌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조금씩 여유를 가지게 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듯 그들을 쫓는 낯선 존재를 알게 되면서 새삼 죽음과 소멸의 공포를 깨닫는다.
낯선 존재와 마주한 리플레이어는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리플레이어들은 죽은 걸까 아니면 그토록 원하던 11월 7일을 넘어 8일의 세계로 넘어간 걸까? 확인하려면 그 괴물과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 괴물을 만난 사람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기에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같은 날을 반목해서 살아가는 소설 속 리플레이어들과 비록 날짜는 바뀌지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듯해 생각할 바가 많았다.
과연 일상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3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신의 집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낯선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유로 그 집에 갇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그 집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처럼 누군가를 이 집에 묶어두는 방법뿐인데 그 집은 모든 사람에게 그 모습이 보이는 곳이 아니라 특징인에게만 보여서 좀처럼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은 채 그 집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 즉 처자식이 없는 중년의 남자가 그 집에 들어오던 날 마침내 자신의 짐을 그 남자에게 넘겨주고 몰래 그 집에서 벗어나지만 그 남자가 있는 곳 주변에서 영문모를 실종 사건과 살인사건이 연속으로 벌어지면서 자신이 물려준 그 남자가 저지른 짓일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 집을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남자의 행동을 막기 위해 그 집의 행적을 쫓는 게 아니라는걸... 자신 역시 그 집에 대한 미련이 남았고 그 집을 차지한 사람이 살인범이던 아니던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남자가 그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못 견디게 질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남자는 어쩌면 그 집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3편 중 가장 환상에 가까운 내용을 담은 게 바로 환상은 밤에 자란다인데 할머니의 특별한 능력을 보며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늘 공주님이라 불렀던 할머니는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할머니를 무한히 우러러보는 소녀지만 사실은 그 소녀는 할머니의 손녀가 아닐뿐 더러 그 할머니로 인해 오히려 인생이 뒤틀려버린 가여운 소녀라는 게 반전의 포인트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뒤를 쫓으며 소녀의 능력을 탐하는 무리가 있었다,
소녀에게 강제적으로 환술을 펼치게 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힘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희망을 찾아준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결국 돈을 뜯어 내기 위한 명목상 소녀의 힘이 필요할 뿐이라는걸... 소녀 역시 알고 있다.
3편 모두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정서는 지금 우리의 모습 그중에서도 밑바탕에 깔려있는 인간들의 욕심, 질투와 시기 그리고 존재론적 고민에 대한 깊은 고찰이 깔려 있다.
그런 걸 떠나서 소설적으로 봐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색다른 소재가 주는 재미 또한 괜찮았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