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나가카와 나루키 지음, 문승준 옮김, 신카이 마코토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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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았거나 사람에게 실망해서 더 이상 관계 맺는 것이 두려워 반려동물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동물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필요한 온기를 나눠주기 때문인듯하다.

그래서 외국 같은 곳에서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동물과의 교류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책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 나오는 사람들도 각자가 나름의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곁으로 온 길고양이들을 돌보면서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벗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과의 대화에 서툴고 그들이 보내는 사인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미유는 자신이 처음 독립한 집의 이곳저곳을 손봐주는 친구 후배의 모습이 듬직하게 느껴져 그와 사귀지만 그는 사귀자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다.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하고 그것마저도 뜸해질 즈음 친구로부터 힐난을 받고 당황하는 미유

친구는 자신이 그 후배를 오랫동안 좋아했으며 미유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와 사귀었다 생각해 배신감에 분노하지만 미유는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그와 사귀는 것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결국 하나뿐인 친한 친구마저 자신의 눈치 없음에 떠나버린 걸 알고 괴로워하는 그녀는 비 오는 날 우연히 마주친 버려진 아기 고양이 초비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고집이 세고 남과 교류하는 게 서툰 레이나 역시 미미라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조금씩 마음을 주면서 역시 변화되기 시작하지만 무엇보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극적인 변화를 보인 건 아오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친했던 친구 이상의 존재인 마리와 모진 소리를 하고 다투고 헤어진 다음날 마리가 죽어버렸고 이에 큰 충격과 함께 죄책감을 느낀 아오이는 더 이상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바깥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미미의 자식인 쿠키가 엄마의 손에 들려 집으로 왔지만 아오이는 쉽게 상처를 극복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쿠키마저 자신처럼 집안에만 머물도록 자유를 박탈해버린다.

이렇게 계절이 흘러 더 이상 변화가 없을 것만 같을 즈음 쿠키가 열린 문을 통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버리고 집 밖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아오이는 그런 쿠키를 위해 마침내 힘겨운 한 걸음을 뗀다.

책 속의 그녀들은 나름대로 사람과의 관계에 조금씩 상처받고 지쳐있을 즈음에 우연히 길고양이들과 인연이 닿아 돌봐주고 있지만 고양이의 시점에서는 입장이 조금 다르다. 이렇게 사람과 고양이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묘사해 놓은 장면 장면들이 장난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게도 느껴진다.

특히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허술하기만 하지만 그 녀석들의 눈에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의 상태가 좋지 못함을 알기에 나름대로 주변을 맴돌면서 신경을 쓰고 그러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늙은 개 존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태곳적부터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는 존은 참으로 철학적인 말로 대답해준다.

이렇게 각자의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가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없어 일면식도 없지만 서로의 고양이를 통해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동물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범위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따뜻한 시선과 무겁지 않은 필체로 마치 이웃들의 정겨운 모습을 그려내듯 표현하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진부함에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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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떨고 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채숙향 옮김 / 창심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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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주제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하는 사랑함에 있어 누가 주체가 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사랑에 주체가 내가 되는 것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상태에서 선택받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것인데 살아보니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어 어떤 게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있는데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모를 뿐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이 짝사랑했던 상대라는 점이다.

남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 맘껏 사랑해야 하는 청춘을 아깝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인데 에토에게는 그런 마음을 지워버리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는 현실 세계에 쉽게 적응하기 힘든 오타쿠적인 기질이 강한 타입으로 중학교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 되었던 이치에게 반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어 지금 자신에게 어필하는 남자 니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자신에게 사귀자는 고백을 한 니를 모른척하기도 쉽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자만의 고민이 시작된다.

몽상가 기질이 강하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엉뚱한 구석이 있는 에토는 오랜 고민을 하다 그녀의 성격대로 엉뚱한 짓을 하기에 이른다.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치를 만나보기 위해 동창회를 개최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이치를 만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멋지게 성장한 이치를 보고 또다시 떨림을 느끼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남자 니

과연 에코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궁금해지지만 역시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의 이런 고민은 당연한 것이지만 스스로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는 에토는 오랜 고민의 결과로 또다시 엉뚱한 짓을 저질러 버린다.

그녀가 두 남자를 만나본 후 느낀 감정 하나하나의 묘사가 너무나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다.

자신은 니를 위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취미생활을 함께 해줬는데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도 참기 싫어하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느끼는 불만이라던가 혹은 그녀가 요리해서 먹는 것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자신이 해 볼 노력조차 않는 것에 대한 불만 같은 부분은 연애를 하면서 한 번쯤 느껴봤던 부분들이라 더 와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반면 이치가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에 공감하고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발견한 순간 기쁨과 함께 오히려 그와의 사이의 틈을 확인한 듯 쓸쓸해하는 장면은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너무 좋아하면 오히려 눈물이 나고 슬퍼지는 것과 같은 감정이 아닐지...

반면 그녀의 고민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이치는 그야말로 자신이 만든 이상향에 가까운 남자이기에 결점이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자신은 그에 대해 잘 안다 생각하지만 그야말로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만 봤을 뿐... 그것도 한창 소녀병이 있을 중2 때 잠깐 본 걸로 그 남자를 판단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에코는 마치 성숙하지 않은 어린 소녀의 감성을 그대로 가진 채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해야 하나 아니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사랑해야 하나 하는 결정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름조차 첫 번째를 뜻하는 이치와 두 번째를 뜻하는 니를 쓸 만큼 조금은 장난스럽고 엉뚱한듯하지만 그래서 더 연애의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고 있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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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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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우리 엄마의 딸인데도 불구하고 딸과 엄마라는 관계만큼 멀면서도 가까운 관계가 있을까 싶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도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서로를 못 견뎌 했던 것도 잠시, 내가 내 딸을 낳고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엄마의 삶은 안타깝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일찍부터 철이 들어서 엄마의 노고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하나미가 그렇다.

아직 열세 살의 초등학생이지만 자신을 위해 열심히 공사현장에서 땀을 흘려 일하시는 엄마를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고 그런 엄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착한 소녀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질 수 있는 것도 적고 무엇보다 남들은 당연히 있는 아빠의 부재에 대해 엄마가 말하기를 꺼린다는 이유로 궁금한 것도 참을 줄 아는 속이 깊은 아이다.

사춘기의 소녀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가난이 드러나는 일에 이토록 신경 쓰지 않고 부끄러워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하나미가 이렇게 성장한 데에는 엄마의 영향도 큰 듯하다.

비쩍 마른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이 대부분인 노동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힘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딸아이를 키우는 모습은 어떤 말보다 아이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다.

땀을 흘려 노력한 대가는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떳떳하다는걸...

하지만 여기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거창한 말 따윈 나오지 않는다.

삼시 세끼 자식과 함께 맛있게 먹고 같은 집에서 편안히 잠드는 것... 작지만 소소한 이런 일상에 고마워할 줄 알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하나미는 많은 걸 느꼈을 듯하다.

친구 중에 사립 중학교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자신과 너무나 다른 그 아이들의 처지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기는 쉽지 않은데 하나미는 말한다.

너무 차이 나는 환경은 질투하는 마음조차 나지 않는다고...

질투나 시기라는 감정은 서로 비슷한 처지나 위치에서만 하는 거라는 걸 이미 어린 나이에 알고 있는 하나미의 말은 아마도 글 쓴 작가의 통찰에서 나온 말이리라.

어려운 환경에도 비뚤어지지 않고 사람의 말을 말 그대로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하나미를 보면서 참으로 밝고 맑은 아이구나 싶은 게 왜 그 아이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지 이해가 간다.

그런 하나미를 좋아하는 미카미의 시선을 통해 두 모녀의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안녕, 다나카는 많은 걸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걸 원하면서 충족되지 못한 욕심에 힘겨워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다. 미카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아 더 그 아이의 아픔과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엄마와 둘이서 세일하는 음식을 사와 맛있게 먹고 철마다 은행을 주우러 다니며 월동준비라고 하는 것 같은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홀로 사는 엄마에게 들어온 맞선이 자신 때문에 깨진 거라 생각해서 혼자 고민하다 스스로 보육원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보는 장면 같은 데에선 울컥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감수성이 있는 글을 십 대의 어린 소녀가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글 속에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깔려 있는 게 느껴져 읽는 사람에게도 그 기운이 와닿는다.

앞으로 눈여겨볼 만한 작가 중 한 사람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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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태어나다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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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청소년은 아닌... 갓 스물이 된 아이들이 각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 어떤 틀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사이 료의 다시 한번 태어나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인 누구 에서처럼 청춘의 그 미묘한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어 감탄하게 한다.

단편으로 되어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 등장인물이 각각의 챕터에서 교차되어 등장하고 그 챕터에선 몰랐던 사실을 다른 챕터에서 다른 사람의 입이나 에피소드를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게 한다.

친구와 셋이 있던 방에서 잠깐 조는 사이 누군가가 시오리에게 키스를 했다.

그 사람은 누굴까? 잠깐 고민하지만 그 방에 남녀 비율은 여자 둘에 남자 한 명... 그렇다면 당연한 결과지만 잠시의 틈으로 누구였을까를 고민하는 부분에서 시오리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어떤 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화려한 외모로 단숨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히짱이지만 그녀는 무리 짓는 여자들 틈으로 들어가길 거부한 뒤로 반에서 약간 아웃사이더이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를 동경하는 시오리와 그녀를 바라보는 히짱 그리고 그런 히짱을 짝사랑하는 동기생... 물론 이 동기생을 좋아하는 여학생도 있다.

사랑이 청춘만의 특권은 아니지만 역시 청춘 하면 떠오르는 게 이런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조금씩 알게 모르게 성장해간다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다른 사랑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챕터에 등장하는 하루와 나츠 남매 이야기는 좀 더 울림이 크게 와닿는다.

고교 때부터 댄스로 각종 상을 타고 이름을 날렸던 하루는 역시 고교 때부터 각종 미술상을 휩쓸었던 오빠인 나츠와 온갖 걸 이야기하며 의논하는 여느 남매 완 달리 좀 더 각별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좀 더 체계적인 댄스를 배우기 위해 댄스 전문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오빠와 대화는커녕 제대로 얼굴조차 보지 않는 관계가 된다.

댄스학교에서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서 이 자리에 온 여느 아이들과 달리 그저 춤이 좋아서 느낌대로 자유롭게 춤을 췄던 자신은 무대 위에서 고교 때처럼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방황하면서 스스로 위축되고 자격지심이 생긴 탓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신은 좋아하는 춤을 제대로 추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 것에 비해 자신 주위의 사람들은 그저 태어나면서 얻은 재능이나 외모 하나만으로 별다른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안주하고 있다 생각해서 마음속으로 그들을 경멸하고 비웃으며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이 있었지만 고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된 지금 자신이 비웃었던 그들은 각자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지만 자신만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비웃었던 그들도 자신이 몰랐을 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으면서 더욱 위축된다.

사실은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으리라. 자신이 빛날 수 있었던 건 딱 고등학교 때의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기뿐이라는 걸... 세상에 나와보면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보다 더 재능을 가지고서도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자신이 위치를 정확이 깨닫는 순간이 바로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너무나 찬란하고 빛나게 그렸던 오빠의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한다.

또 다른 챕터에서는 늘 이쁘고 뭐든 쉽게 해나가던 쌍둥이 동생을 질투하던 자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원래 자매지간에는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가 있는데 하물며 나랑 같은 날 태어난 나와 똑같이 닮은 얼굴의 자매가 있다면... 게다가 커갈수록 그 애는 점점 더 빛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관심과 인기를 끈다면 나라면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을 것 같다.

뭘 해도 비교되고 심지어 외모마저도 어느샌가 차이가 나게 된 쌍둥이 동생을 부러워하다 결국은 그녀에게 온 연락을 차단하고 스스로 동생 쓰바키가 되어 그녀인 척하지만 스스로 그런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 고즈에는 괴롭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위험해 보이지만 그냥 한번 뛰어 내려보라는 말을 하는 영화감독 지망생.... 무섭고 두렵지만 하고 보면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고즈에는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이렇게 각각의 챕터에서 청춘들의 고민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놔서 많은 공감을 하게 한다.

게다가 자신이 보는 시각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떤 사실은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틀을 깨지않으면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는 걸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듯 하다.

더 이상 어리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무섭다고 달아날 수도 없는... 어른인 척 걸어가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짧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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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테러리스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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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일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이는 모든 일본 사람에게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대사건으로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는 것만이 유일한 사명인 것처럼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합심하는 게 당연시되는 이때 누군가가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다는 협박편지를 보내고 곳곳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경시청은 비상이 내려지지만 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제해 일반 사람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드디어 용의자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시마자키 구니오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는 도쿄대의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자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그가 왜 이런 행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올림픽을 방해는 그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경시청은 그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양들의 테러리스트는 두 가지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품의 평범한 대학원생이 왜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런 테러리스트의 길을 가게 되었나 하는 그가 이런 범죄행위를 하게 되는 필연의 과정을 담은 과거 시점과 지금 현재 그가 벌이고 있는 폭탄 테러를 막고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그를 검거하고자 노력하는 경찰들의 행동을 담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 나눠 진행해 그의 범죄 동기에 대해선 공감하게 하게 그를 잡고자 하는 경찰의 모습을 통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장과 공권력의 입장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구니오가 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올림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육체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또 그런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와 영광은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현실은 충분히 부조리하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모든 혜택이 올림픽을 여는 도쿄에 집중되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이런 부의 작은 혜택조차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풍요가 넘치는 도쿄에 비해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어떤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가난이 대물림되는 게 당연시되는 현실을 죽은 형을 대신해 일을 하게 된 건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깨달아가는 구니오가 분노와 더불어 점차 허무함을 느끼는 모습은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필 그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과목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이론이었다니...

어쩌면 그가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는 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쭙잖은 공명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이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 창 피 끓는 엘리트 젊은이가 가지는 오만한 열정이 아닌 순수한 분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그가 있는 위치도 이런 결정을 하는 데 한몫을 했다.

타고난 머리로 우수한 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그가 원한다면 사회에 나가 어디서든 높은 지위에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그는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아웃사이더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여린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서른이 넘도록 일만 하다 죽은 형의 죽음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어 마치 죄를 고해하듯 형을 대신해 평생을 해보지 못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늘 당하고 겪는 부조리함과 노동착취에 분노하며 분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그가 앞으로 행 할 행동에 대한 동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의 동기가 순수했고 그가 분노하는 심정 또한 십분 이해 가능했기에 그가 걷는 행보가 더욱 위태롭고 안타깝게 느껴져 그의 행위와는 별개로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게 된다.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수없이 자행되는 폭력의 모습과 도시의 뒤편에 가려진 어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구니오의 짙은 허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지...

그의 도피에 많은 도움을 준 여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그는 마치 위태롭기 그지없는 고독한 한 마리의 늑대 같다.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가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고 현시점에서 나의 최고 도달점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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