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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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자신이 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그 사람의 모습을 어느 날 문득 발견했을 땐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드는 건 은연중에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자만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같이 살았던 사람이 이름부터 고향까지 모든 게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배신감을 넘어서 선득한 두려움까지 느껴지지 않을까?

오래전 이혼을 도와준 인연이 있었던 리에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은 변호사 기도

그는 리에로부터 묘한 의뢰를 받게 된다.

그녀가 고향에서 재혼했던 남자 다이스케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부탁인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리에가 알고 있던 이름도 고향도 모든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에 그녀는 그의 조사를 부탁하게 된 것이다.

기도가 조사하면 할수록 그는 다이스케가 아닌 누군가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그렇다면 그는 진짜 누구인지... 왜 다이스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건지 궁금증은 늘어만 간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남자 X에 대한 호감과 동경은 기도의 마음속에서 자라 어느 날은 낯선 곳에서 그의 이름과 과거를 빌어 자신이 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하는 등 다른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에서 자유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그의 결혼생활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도 자신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일본인이 아닌 재일이라는 어중간한 위치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커다란 자연재해 앞에서 느낀 아내와의 정서적 거리감은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그의 가치관을 비롯해 이제껏 당연하다 여긴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했었고 이는 기도로 하여금 외로움과 함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쓸쓸함을 느끼게 했었다.

이런 때에 자신의 과거를 비롯해 이름까지 모든 걸 던져버리고 익명 속에 숨어버린 그 남자 X를 알게 되면서 어쩌면 자신은 하지 못한 일을 행한 그 남자를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순간에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의외로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추억에 의해서 자기 자신이 되는데 그렇다면 타인의 추억을 소유하기만 한다면 타인이 되는 것도 가능한 게 아닐까? 기도가 X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타인의 행세를 하기 위해 사소한 과거까지 그 사람인 척 행세한 X를 보면서 문득 떠올린 말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은 나중에 진짜 다이스케를 통해 증명된다.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그 사람의 과거까지 받아들여 완전하게 그 사람으로 될 수 있음을...

이렇게 X를 추적하는 동안 낯선 곳에서 낯선 이로 살아가는 데서 오는 자유와 일탈에의 동경은 그로 하여금 일생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하고 안 그래도 거리감이 생겼던 아내와 더욱더 멀어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기도의 흔딜리는 마음과 달리 그의 과거의 행적을 쫓을수록 범죄의 냄새는 짙어지고 그가 꿈꿨던 일탈도 점차 현실로 돌아올 즈음 마침내 기도가 찾았던 진짜 X의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알던 남편이 전부 가짜라는 범죄 냄새 풀풀 나는 소재로 시작해서 그의 행적을 쫓아가는 추적 스릴러의 모습에다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 교포의 존재론적 고뇌와 갈등을 재일 변호사의 기도를 통해 보여주고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을 버린 채 제도 뒤로 사라져버리는 자발적 실종자 문제를 범죄자 가족의 문제와 섞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한 남자는 스릴러적 재미도 만족시키고 그가 제시한 사회문제 역시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X,그리고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다이스케는 새로운 신분을 찾아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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