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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평점 :
심리학 박사가 쓴 심리 스릴러라는 걸로 제법 유명세를 탔던 작가의 전작 테라피스트
심리 스릴러가 대부분 그렇듯이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내부에서 시작된 작은 의심이 불안감을 불러오고 서서히 내면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고 몰입감 있게 그려내는 가 가 관건인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작가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작가의 후속작이라니...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일단 소재는 다소 평범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피해자에겐 아내 몰래 정사를 즐겼던 상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케... 10대의 딸과 어린 아들을 둔 유부녀였고 남편인 오스먼드와는 어린 시절부터 만나 서로에게 별다른 불만이 없었던 관계였다.
하지만 불륜 상대였던 요르겐의 죽음으로 이중생활이 탄로날 위기에 처했을 뿐 만 아니라 자칫하면 자신과 자신을 믿고 헌신하는 남편 오스먼드까지 용의선상에 오르는 위험에 처한다.
배우자 몰래 불륜을 즐기던 상대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불륜 대상이 용의선상에 오른다는 설정은 사실 너무나 흔해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런 설정의 소재가 나오는 걸 보면 또 이것만큼 익숙하면서도 사람을 자극하는 소재가 흔하지 않아서 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도 불륜을 저질렀던 리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누가 봐도 그녀는 범인이 아닐 수밖에 없지만 그녀가 혐의를 벗기 위해선 반드시 자신의 불륜을 고백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다음 용의자는 과연 누구일까 생각해 보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두 사람의 배우자가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요르겐의 배우자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부여했고 리케의 남편 오즈먼드는 아내의 부정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완벽히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수수께끼를 던져준다.
게다가 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몇 달 전부터 누군가가 고양이를 훔쳐 살해한 후 철조망에 걸어두는 잔혹한 동물 학대 살해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어다는 것도 의심스러운 정황이다.
그렇다면 모두의 생각처럼 요르겐을 살해한 사람과 동물을 학대에서 살해한 사람과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지만 이 아파트를 드나드는 데는 비밀번호가 필요할 뿐 아니라 모든 출입이 기록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살인자는 아파트 내부의 사람임을 보여준다.
요르겐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 역시 용의선상에 오른 리케는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남편에게 진실을 알려야만 하지만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남편을 보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백이 불러올 파장을 두려워하면서 내내 잠 못 이룬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진실은 언제나처럼 사람의 겉은 알아도 속은 모른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사랑도 아닌 그저 한순간의 쾌락을 즐긴 대가로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음을 깨달은 리케의 깊은 후회 그리고 어떡해서든 자신의 불륜을 남편에게 알리는 걸 피하고자 하는 비겁한 마음까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리케의 심리묘사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아니었지만 심리의 변화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