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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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8년간의 유형생활을 마치고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이어 1866년에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다.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고 말했을 정도로 범죄자의 심리 묘사가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다.

 

<죄와 벌>은 1860년대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페테르부르크는 급격히 늘어난 인구로 인해 열악한 주거난과 빈부 격차, 실업 문제, 각종 범죄, 대기 오염 등의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더운 7월의 어느 저녁, 한 청년이 페테르부르크의 혼잡한 거리를 걷고 있다. 청년의 이름은 라스콜니코프. 23세의 법학도이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휴학 중인 그는 더럽고 악취나는 이 도시가 혐오스럽다. 누추한 골방, 누더기 같은 옷은 주위의 비웃음을 사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자신을 위해 온갖 수모를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사악한 전당포 노파를 죽여 그 돈으로 수많은 가난한 사람을 구하자는 생각이다.

그가 보기에 노파는 남의 목숨을 좀먹는 '이(蝨)나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이다.

 

그는 인간을 두 부류, 즉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누는데 평범한 사람은 법을 지키고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만,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법을 어기고 전 인류에게 구원이 되는 사상을 실행할 권리를 갖는다. 이런 대표적인 인물들로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을 거론하며 이들 모두가 '전부 범죄자였다' (1권 p.468)고 말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말 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그 본성상 반드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1권 p.469)으며, 그들은 '더 나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하길 요구'(p.470)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하려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상이 깔려 있다. 그는 자신이 '비범한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 결국 노파 알료나를 죽이고, 우연히 범죄 현장에 나타난 노파의 이복 여동생 리자베타까지 죽이는 우를 범한다.

 

대의를 실천한다는 의지로 저지른 살인,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후 그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지만 예리한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범죄 심리 분석은 라스콜니코프를 조금씩 조여오고, 포르피리는 괴로워하는 그에게 자백할 것을 권한다. 또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데, 소냐 역시 그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한다.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냐를 통해 자신의 지난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라스콜니코프는 왜 사람은 두 부류,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뉜다는 사상에 빠져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대도시 속 가난에 찌든 대학생 라스콜니코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돈이었다.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려면 돈이 필요한데 현실은 당장 낼 방값도 없는 실정이다. 빈민들로 득실거리는 더러운 대도시는 그에게 혐오감만을 줄 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한 인물(스비드리가일로프)은 페테르부르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젠장! 민중은 술이나 퍼마시고, 교육받은 청년들은 무위에 시달리며 실현할 수 없는 꿈과 몽상으로 타들어 가다가 이론의 불구자가 됩니다. 어디선가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돈을 감추고 나머지는 몽땅 음탕에 절어 살지요. (2권 p.377)]


이런 현실은 라스콜니코프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니라 당시 제정 러시아의 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일개 군인에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나폴레옹의 신화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특히 라스콜니코프처럼 예민하며 생각이 많은 젊은이에게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나폴레옹처럼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싶었을 것이고 자신에게도 그런 의지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노파 한 명 죽여서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는 그만큼 그의 삶이 절망적이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노파를 살해하기 전에 그는 자신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길지 말지를 고민하는데, 그래도 결국 그를 살인으로 이끄는 그 일련의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라스콜니코프는 인류에 공헌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포함한 주변의 극빈자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하급 관리인 마르멜라도프를 만나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가족과 그 가족을 위해 매춘을 하는 딸 소냐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음 날 그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고, 여동생이 돈 때문에 쪼잔하고 비열한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반드시 뭐든 해야 한다'(1권 p.87)고 다짐한다. '한낱 몽상에 불과했던 생각'(1권 p.88)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또한 길에서 술 취한 어린 소녀를 보며 여동생 두냐를 떠올리고, 공황상태에서 돌아다니다 숲에서 잠이 들어 사람들이 말을 때려 죽이는 꿈을 꾸게 되고 공포에 사로 잡힌다. 


['설마, 설마 내가 정말로 도끼를 들고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게 될까. (...)나는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견뎌 내지 못할 거야! (...) 주여! 저에게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빌어먹을......저의 몽상을 단념하겠습니다!' (1권 p.113)]


잔인하게 맞아 죽은 말의 꿈을 꾸고 난 후 그는 사람을 죽이는 범죄는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음을, 자신은 그 일을 견뎌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선택받은 소수라 생각하고 법을 뛰어 넘어 큰 일을 해보려던 그는 자신이 그런 일을 감당할 인간, 즉 '비범한 인간'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들른 센나야 광장에서 내일 저녁 7시에 노파의 유일한 동거인인 리자베타가 집을 비우고 노파가 집에 혼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다시는 없을 절호의 기회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생각의 자유도, 의지도 없'(1권 p.117)이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살인이 일어난다.


<죄와 벌>은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벌인지 묻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라스콜니코프가 저지른 죄를 밝히고 그 죄에 걸맞는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내용의 소설이 아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백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는 자신이 그 큰 일을 견뎌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를 기만해 가면서 기어코 그 일을 한 데에 있지 사람을 죽인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죄라고? 무슨 죄? 저 추잡하고 해로운 이(蝨)를, 가난한 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 죄악은 용서받을 텐데, 그것이 죄라고?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그런데 왜 다들 사방에서 나에게 '죄야, 죄!'하며 손가락질을 하느냔 말이야. 다만 내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옹졸했다는 것쯤은 이제 톡톡히 알겠고, 그래서 이제 저 불필요한 수치를 감내하러 갈 결심을 한 거야! 그저 나의 천함과 무능함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한 것이지." (2권 p.443,444)]


이런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는 인물은 소냐이다.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했을 때 소냐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속죄'(2권 p.265)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꺼이 그가 짊어질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그의 고통을 나누겠다고 한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순간 소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향한 그녀의 사랑에 고통을 느끼지만, 나중에 자수하러 가기 전 소냐의 말대로 땅에 입을 맞추고 눈물을 쏟으며 생각한다. '소냐는 이제 영원토록 그와 함께할 것이며 운명이 그를 어디로 이끌든 세상 끝이라도 그를 따라갈 것임을...'(2권 p.458)


라스콜니코프가 자수하면서 6부가 끝나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그의 유형 생활이 나온다. 몸이 아파 병동에 있던 어느 날 라스콜니코프는 꿈을 꾸는데 인류가 선모충이라는 미생물에 감염되어 모두가 자기만 옳다고 외치며 서로 싸우고 죽이는 세상이 된다. '다들 불안에 떨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누구나 자기 하나만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2권 p.492)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간다.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난 라스콜니코프는 그동안의 자신의 사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비범하지도 않은 인간이 자신이 비범하다고 나설 때 얼마나 큰 혼돈을 초래하는지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병실 창밖을 보다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소냐를 보았을 때, 그는 뭔가가 심장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냐를 찾고 기다린다. 

퇴원한 후 그는 그녀 앞에 쓰러져 그녀의 무릎을 끓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한 인간의 희생과 사랑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소냐도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 무한히 사랑한다는 것, 마침내 이 순간이 도래했다'(2권 p.496)고 느낀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둘 다 창백하고 여위었다. 하지만 병색이 완연한 이 창백한 얼굴에서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놀이,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아침놀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2권 p.496)]


그들 앞에 남은 칠 년의 세월, 이제 두 사람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시간 속에 수많은 고뇌와 행복이 있을 것임을 알지만 그들은 다시 태어났기에 참고 견디기로 한다. 그날 밤 라스콜니코프는 동료 수인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말을 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았던 그가 '정녕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2권 p.497) 생각하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것이다. '변증법 대신 삶이 도래'(2권 p.498)한 것이다. 

자신은 이(蝨)가 아닌 '비범한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살인을 저질렀던 라스콜니코프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구원을 얻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죄를 짓고 벌을 받음으로써 다시 태어난 한 사람의 이야기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전기 작품 두 편 <가난한 사람들>,<분신>만 읽어 봤는데, 작가의 후기 걸작 장편 중 하나인 이 작품이 왜 그토록 유명하고 문학의 대명사로 칭송받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묵직함과 깊이가 확실히 전기 작품을 능가하고 심오한 작가의 세계관은 읽는 내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보낸 츠바이크의 찬사로 글을 마친다.


"당신이 고통을 알게 한 인간들 내면에서 당신은 승리했다. 어두운 밤에서 낮, 고통에서 사랑을 창조했고, 지옥에서 성스러운 찬송가를 가져왔다. 가장 열정적인 사람만이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다. 당신을 아는 사람은 당신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분은 당신을 깊이 통찰했다. 보라, 그분은 어느 누구보다 당신을 입증했고, 어느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던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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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14 23: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스콜니코프가 처한 현실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과 과학은 날로 발전해서 Ai시대 이지만
인간의 삶은 수세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능 ㅠ.ㅠ

coolcat329 2022-05-15 13:05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4 2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읽은 죄와 벌과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상황을 알고 나서 읽은 죄와벌은 느낌이 또 달랐어요.
도스토옙스키 완독을 목표로 하고 읽는데 죄와 벌을 다른 버전으로 또 읽어야 할 것 같아요^^

coolcat329 2022-05-15 13:09   좋아요 2 | URL
어릴 때 읽으셨군요. 도스토예프스키 완독을 멋진 목표입니다.
어떤 출판사로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음사 김연경님 번역 저는 참 좋았습니다.☺️

페넬로페 2022-05-15 14:02   좋아요 1 | URL
열린책들로 읽었는데 다음엔 민음사나 문학동네로 읽어 볼까 합니다^^

blanca 2022-05-15 10: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다시 읽고 전율함요. <죄와벌>은 고전 정도가 아니라 어떤 현실에서도 다시 재생시키고 곱씹을 수 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oolcat329 2022-05-15 13:14   좋아요 3 | URL
저 이번에 읽으면서 정말 뭐랄까요...도스토예프스키를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조금 알게됐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그 내면을 깊이 탐색하는 과정이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블랑카님 다시 읽으셨군요. 저도 나중에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 중언부언 늘어놓은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5-15 1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선생님 마니아 쿨캣님 드디어 이 좋은 작품을 읽으셨군요~!! 저도 다시 한번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안되네요 ㅋ 역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도 명작인거 같아요 ^^

coolcat329 2022-05-15 13:18   좋아요 3 | URL
도선생님 찐 마니아 새파랑님! 드디어 읽었습니다. 참으로 읽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제서야 읽었네요. 😂

물감 2022-05-15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이제 도끼옹 전작 패기 하시는가요ㅎㅎ 에고 전 언제쯤 도전을...

coolcat329 2022-05-16 06:45   좋아요 2 | URL
이번에 읽고 후기 걸작들 다 읽어 보고 싶어졌는데...다 기본 천 페이지가 넘네요. 😿
겨울에 <백치>를 도전해볼까 합니다. 물감님도 도전해보시길요~^^

레삭매냐 2022-05-16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죄와 벌> 짱이지 싶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두 번 읽은 도끼샘
책이 바로 <죄와 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