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冷戰, Cold War).

영화는 냉전의 막바지인 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소련의 KGB와 미국의 CIA 사이에서 암살자로 활동하게 된 안나’(사샤 루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가는 둘로 나뉘어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했다.


의심이라는 건 그 의심을 하는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나 몰래 상대가 무슨 일을 꾸밀지도 모른다는 생각은그걸 알아내기 위한 비밀스러운 일을 시도하게 만들고양측의 이런 공작들이 엉키면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불안적대감은 점점 더 상승한다.


하지만 상대편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우리 편도 믿을 수 없게 된다영화 속에서 반전의 반전이 연속되는 것처럼언제 우리 편도 포섭될지 모르니까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 스트레스는 결국 우리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린다열전이 무기를 동원해 상대의 신체에 손상을 입혔다면냉전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파괴해 나간다.

 





색감.

주인공 안나의 위장신분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소련 출신의 모델이라는 설정도 있어서 그런지영화 전반에 걸쳐 색감이 화려하다안나는 자신에게 맡겨진 암살임무를 다양한 모습을 수행하는데그 때마다 머리의 색깔과 길이는 물론 의상도 매우 다채롭다자칫 반복되는 설정으로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커버했다. (사실 영화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의 색감이 짐작된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뒤로 빼서 보면그렇게 스타일리시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을 뿐이다죽은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별로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그렇게 아무 데서나 총에 맞아 죽을 만한 사람들이었는가는 의문이 남는다심지어 영화 속 인물들 중 누구도 그 일 자체에 대해서 내적 고뇌나 갈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주인공 안나야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고 있지만영화가 지니고 있는 시선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마치 게임처럼 신나고 멋진 일로 묘사된다화려한 모델의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을 교묘하게 연결시켜놓은 것.

 





자유.

영화는 한 여성이 처해 있는 위기를 이용해 그녀를 도구화하려는 거대한 세력에 관해 말한다자신들의 말을 들으면 언젠가 자유를 줄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지만안나는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일찌감치 간파할 정도로 명석했다그녀는 스스로 자유를 얻기 위해 계획을 하고자신을 이용하는 양 세력에 멋지게 한 방을 먹인다.

 

안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도구로 이용되고 버려진다예컨대 자본과 권력은 오늘날 사람을 통제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안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동원하며 아등바등 애써야 했는데이건 오늘날 우리가 이 통제로부터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떠오르게 한다.

 

특정한 성별과 인종학연과 지연동종업계의 카르텔 같은 온갖 장애물까지 우리를 옥죄는 것들은 널려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힘에 순응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겠지만그게 거짓이라는 건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명한다자유는 순응이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운용되는 힘에 저항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신없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점이 과거로현재로 오고가고화려한 색감과 빠른 전개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액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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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

사실 어떤 작품이 여성영화라고 불릴 수 있는 건지그 기준은 잘 모르겠다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여성이라는 포인트였다주인공 세 명은 모두 여성인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진그룹이라는 대기업에 입사한 케이스다그러나 회사에서 그들에게 맡기는 일이란매일 아침 정확한 비율로 탄 커피를 준비하건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쓰레기를 청소하고출근한 남자 직원들의 구두를 맡기고 찾아오는 일 같은 허드렛일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 속에서 가장 용기 있고정의로운 모습으로 그려진다그룹 소속의 공장에서 폐수가 쏟아지는데도 이들 말고 누구도 나서서 문제 삼으려 하지 않을 정도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건 이 세 명의 고졸 여직원들뿐이었고(그에 비해 주변의 수두룩한 남자 직원들의 지리멸렬함은...), 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온몸을 바쳐서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가 떳떳해지기를 바란다.

 

결국 이들은 마치 신데렐라처럼재투성이에서 왕비로 신분의 수직상승을 이룬다차이가 있다면신데렐라에게는 마법의 도움이 필요했지만이들은 자신들의 선한 의지로 이 일을 이뤄냈다는 점.

 





실화?

영화는 정확히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몇 가지 사실들을 합쳐서 하나의 실감나는 그림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우선은 91년 벌어진 낙동강 페놀누출 사건도 하나의 모티브가 된 듯한데이쪽은 사고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다만 비만 오면 온갖 폐수를 강으로 흘려보내는 양심불량인 기업들은 차고 넘치니까...

 

또 하나는 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건이다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간보다는 조금 후의 일이긴 한데당시 수많은 기업들이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말았다이 모든 일들이 세계화니 국제적 감각이니 하는 말들로 포장되긴 했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90년대를 다루는 영화답게여러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쓴 게 눈에 들어온다조금은 촌스러우면서도 향수를 느끼게 하는 복장이라든지배경이 되는 회사라든지.. 특히 영화 종반부에 언뜻 배경으로 지나가는 장면 중에 2호선 신정지선 연장개통과 관련된 현수막이 길에 걸려 있는데실제 지하철 2호선 신정지선의 연장선은 96년에 개통됐다.(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95)

 





차별.

첫 번째 키워드와도 연관이 있지만그 시절(그리고 오늘에도 여전히우리 사회는 차별이 고착화되어 있다영화 속에서 그 차별의 이유는 고졸이라는 학력이었다고졸 사원들을 뽑아놓고서는 수년 째 진급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심부름이나 시키고 있는 회사는 뭘 바라고 있었던 걸까심지어 그렇게 입사한 고졸 사원 중 박혜수가 연기한 심보람은 수학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은 인재였음에도 고작 가짜 영수증으로 회사 돈을 빼먹는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뿐.


대부분의 차별이란 이런 식으로 별다른 근거도 없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고졸보다 대졸이 더 유능할 거라는 편견여성보다 남성이 더 일을 잘 할 거라는 편견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회사를 더 잘 경영할 거라는 편견이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났던 장면 중 하나는이솜이 연기한 정유나와의 대화 중 얻은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양 제출해 상사로부터 인정받는 캐릭터다똑같이 여직원이지만 이쪽은 정직원이라 입는 옷부터가 훨씬 더 색감이 다양했는데하는 일이라곤 시종일관 유나의 뒷담화와 그의 성공을 시기하는 것뿐이다.


마치 암세포처럼차별과 편견혐오 같은 것들도 무한정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결국은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마저 힘을 빼고 다 같이 죽게 만드는 암세포처럼이런 것들도 사회의 건강을 훼손시켜 결국 자기가 서있는 기둥까지 썩어 쓰러지게 만든다문제는 일단 그 차별과 편견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어느새 동화되어 버린다는 점영화 속 회사의 다른 직원들의 무시가 어디 처음부터 그랬을까.

 





엄청나게 무겁고 그런 영화는 아니다조금은 가볍게 볼 수 있는일상 속 영웅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그래도 재미있게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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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갈
니테쉬티와리 감독, 아미르 칸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레슬링.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한 번씩 보게 되는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인기가 많은 종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정확한 경기규칙이나 점수를 내는 방법 같은 것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두 선수가 나와서 서로 붙잡아 매치고뒤집고 하는 운동에 그닥 박진감을 느끼지도 못했었다.


이 모든 생각이 인도의 여성 레슬러를 그리는 이 영화를 통해 바뀌었다레슬링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운동인지 확 와 닿는다그렇다고 카메라워크에 뭔가 엄청나게 공을 들이거나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심지어 음향 부분에서도 별다른 게 없는데도감독은 스토리의 전개만으로도 박진감을 만들어 낸다.




 


여성.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다심지어 비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 같은 신분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더더욱영화 초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금메달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마하비르(아미르 칸)연달아 태어나는 딸들을 보며 실망하는 모습은 수없이 봐 왔던 남아선호를 보여주는 듯했지만이내 그들은 딸들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훈련을 시작한다.


물론 이 역시 부모의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또 하나의 억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시간이 지나면서 마하비르의 감춰진 마음이 드러나면서 이런 인상은 완전히 바뀐다. “우리 딸들은 능력 있는 여자가 되어서남편감을 직접 선택하게 될 것”(그렇게 만들겠다)는 아버지의 각오는십대에 팔려가듯 시집을 가서 평생 남편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도 여성들의 삶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기타와 바비타는 그렇게 인도 소녀들의 한 모델이 되었고기타가 영연방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후천 명의 인도 소녀들이 레슬링에 뛰어들었다고 한다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여성의 지위가 낮은 상황에서 그 소녀들이 그저 짐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뭔가 특별함을 내어보여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안쓰럽기도 하고.





 

협회.

영화 속 인도 레슬링 협회(?)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니다물론 일부 각색이 되었다고는 하지만전반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복지부동의 자세로 선수들의 실력향상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영국 식민지 시절 이식된 티타임 시간은 꼬박꼬박 챙기는 꼰대들과연 저럴 수 있을까 싶다가도우리나라의 빙상연맹이나 수영연맹 같은더 한심한 실제 예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뿐물론 우리나라 양궁연맹처럼 회장이 사비를 털어 선수들을 지원하는 데도 있다지만...


뭔가 일을 하려면 일단 무슨 위원회니 협회니 하는 것들부터 만들고그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온 자원을 빨아들인다이게 어디 스포츠 협회에만 해당하는 일일까얼마나 많은 관료제 조직이 그렇게 사람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의욕과 의지를 말려버리는지... 때문에 모든 조직은 늘 어느 정도는 새로워질 수 있는 자원을 떼어놓아야 한다안정성은 필요한 요소지만 지나친 보수성은 결국 조직에 속한 모든 이들을 죽인다.





 

훈련.

영화 속 소녀들의 훈련 장면은 유쾌하게 그려지지만실제 선수들의 훈련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다최근 난생 처음 헬스장에 등록해서 PT를 받기 시작했다매일 겨우 한 시간 남짓의 운동을 하는 것도 온 몸에 근육통이 장난 아닌데하물며 선수들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지나면서점점 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그래도 최근에는 다이어리에 하루하루 한 일들을 적으면서조금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진다정말로 뭔가에 매진해 본 경험이 언제인지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조금 더 열심히조금 더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해 보고 싶다그러려면 몸이 편한 자리만 따라다녀선 안 되겠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고인상적이었던 영화개인적으로는 소위 엘리트 체육은 시대적 효용을 다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그게 또 어느 자리에선 누군가에게 꿈을 품을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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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5-06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어요. 러닝타임이 길어서 중간중간 놓친 부분도 있지만 재미있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명 읽으니 또 다른 느낌이 들어요.
잘 읽었습니다.
노란가방님 좋은하루되세요^^

노란가방 2021-05-06 23:0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내일도 좋은 하루 되시길~
 



49.

동양에서 사람이 죽으면 바로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이 세계에 49일 동안 머문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래서 소위 49제라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는데죽은 이가 편안하게 떠나기를 비는 의식이다아마 그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유족들도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가 될 수 있을 테고일종의 종결의식을 치렀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바로 그 의식이 있다그러나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검은 상복을 입고 죽은 이를 추모하는 엄숙한 의식이 아니라, ‘파티로 그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남은 가족들이 그 날을 준비하는 이야기다조금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죽음을 꼭 우울하고 괴롭게만 마주하라는 법이 어디 있던가.


개인적으로 내가 죽으면 천편일률적인 장례식 같은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특히나 오늘날 기독교인의 장례식에 가보면이건 기독교적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솔직히 말하면 이것저것 적당히 섞어서 만들어 놓은 짬뽕 같다.)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장례식이 왜 이렇게 음울할까


한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내용 중 하나는내 장례식에는 카레우동을 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싶긴 하지만조금은 더 유쾌하게 마지막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이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발자국 책.

영화의 제목에도 나오는 레시피는 죽은 오토미가 남긴 카드형태의 책을 말한다오토미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는데아이들이 시설을 졸업해야 하는 때가 되면그 아이들에게 발자국 책이라는 걸 만들어 주었다여러 이유로 시설에 보내진 아이들에게 좋은 과거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 파티도 그런 시설에서 나온 청년 이모(니카이도 후미)가 나타나면서 준비가 시작된다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소위 갸루 느낌)과 경쾌한 목소리로 등장한 그녀는환대하지 않는 가족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오토미로부터 받은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꿋꿋이 일을 해 나간다.

 

사실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그녀도 나름의 상처가 있었다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그녀에게 과거는 지워버리고만 싶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이건 시설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그런 아이들에게 오토미가 만들어준 발자국 책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우리는 누구나 과거라는 흙에 뿌리를 박고 거기서 양분을 얻으며 자라니까.

 





발구름판.

영화 속 이모의 출신 시설은 리본하우스라고 불린다장식으로서의 리본(ribbon)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리본(reborn)일 듯하다오토미의 49일 파티에 그녀가 돌봐주었던 시설의 청년들을 초청하려는 계획을 밝히자오토미와 함께 봉사를 해 온 노부인은 그 아이들을 초청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아이들은 시설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지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곳은 아이들에게 발구름판 같은 곳이니일단 뛰어 오르면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말과 함께.


넘어져 있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고마침내는 높이 뛸 수 있도록 해 주면서 정작 자신은 발구름판처럼 남아 잊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런 발구름판들이 많은 사회는 얼마나 건강해질까다음세대가 누려야 할 것까지 악착같이 약탈해 오늘 재물을 축적하는 기성세대들만 보던 눈이 신선해지는 느낌.


우리는 누군가에게 발구름판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새엄마.

영화 속 오토미는 유리코(나가사쿠 히로미)의 새엄마였다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소개시켜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함께 가족끼리 공원을 갔던 그 날유리코가 일부러 오토미가 싸온 도시락을 바닥에 떨어뜨린 건어린 아이의 반항이었을 것이다하지만 뻔히 보이는 그런 행동에 화대신 미소로 대응해준 오토미는 엄마였다.


영화 속 유리코는 남편의 외도로 친정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 10년 가까이 아이를 갖지 못했던 유리코는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불륜녀의 전화에 버틸 수 없었다그런 유리코는 친자식도 아닌 자신을 정성껏 키워준 오토미의 모습을 돌이켜 보며꼭 배 아파 아이를 낳아야만 엄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는 모순적인 사회다한쪽에서는 전근대적인 핏줄 운운하며 집착을 하는가 하면또 한 편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버려진다인연은 꼭 맺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맺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인연을 만들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대하는 것그러면 되지 않을까.


 

일본영화 특유의 일상 속 감동이 잘 느껴지는 영화다추천하고 싶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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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말을 배경으로자원고갈과 환경오염으로 더 이상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된 지구를 떠나우주에 새로운 거주구역 UTS를 만든 인류그리고 이곳 UTS를 지배하는 설리반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당연히 그곳은 돈이 넉넉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인류의 95%는 여전히 지구에 남아 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거주구역의 분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던 문제다지구적으로 보면 남북격차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고개별 국가 안에서도 소위 부촌과 빈촌도시와 농어촌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위적으로 임대주택과 분약주택을 섞어서 이런 격차를 해소해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분리주의라는 이 악령은 그 사이사이를 파고들어가 사람들 사이를 떨어뜨려 놓고 있다.


     일명 요새 주택도 그런 일환이다미국 등지에서는 고급 주택단지를 아예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고자체적인 경비원을 두고 그 안에 병원과 학교 등 필요한 시설을 자체적으로 설치하는 일들도 있다외부인의 출입 자체를 막아 자신들끼리 살겠다는 것인데우리나라에도 흔히 “OO팰리스(궁전)” 하면서 외부의 출입을 막는 주거시설들이 독버섯처럼 여기저기 솟아나고 있다넓게 보면 부동산 투기에 동참해 결과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내쫓는 이들도 영화 속 설리반과 다를 게 없는 인간들이다.

 





     그들 중에는 인류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우주 쓰레기들을 수거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이들도 있었는데영화의 주인공 승리호의 선원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영화 속에서는 태호를 제외하고는 이 부분이 너무 간단하게 지나가버린다엄청난 성능(?)의 쓰레기 처리선 승리호을 타고 다니며 조금은 얄밉게 살아가는 중.


     소외된 이들과 쓰레기가 하나로 묶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실제로 지구상에는 쓰레기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가난한 나라에서는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는 지역들이 형성되어 있는데이들은 소위 선진국들에서 돈을 주고 처리해버린 쓰레기들이 모이고그 안에서 팔 만한 것들을 골라내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예는 그 외에도 많다전근대적 방식으로 채굴이 이루어지며 화학약품에 절어 있는 광산 마을이라든지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착취하며 이루어지는 아동노동 경제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성매매업자들 등가난한 이들은 언제나 깨끗하지도건강하지도 못한 일로 내몰린다.


     영화 속에서는 그렇게 쓰레기를 치우는 이들이 유토피아의 지배자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지만현실 속에선 좀처럼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흥미로운 건 1인 1표제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언제나 소수의 기득권층들이 다수를 지배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건데온갖 정치적사회적 분석들이 나와 있지만이 부분은 논리보다는 심리 쪽의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영화는 어느 날 승리호의 선원들이 폭발형 안드로이드” 소녀 도로시를 만나며 벌어지는 코믹 액션 우주 활극인데실은 그 소녀가 인간이었고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입한 나노 로봇들의 효과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다원작 웹툰에서는 그 소녀가 설리번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는데영화상에서는 그 부분이 빠졌다대신 행성을 테라포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를 제거함으로써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는 설리반의 흑심이 전면에 내걸린다. (이 부분에서는 웹툰 쪽이 좀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이긴 하다)


     인류의 진정한 희망이 당장은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소녀에게 달려 있다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결국 이 다음 세대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양육하느냐에 따라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이미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는 기성세대기득권층들은 어차피 새로운 변화에 저항할 수밖에 없고결국 오늘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새로운 세대들일 것이다우리는 이 일을 잘 해 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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