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영화는 블랙 위도우 나타샤의 과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여기엔 그녀의 ‘가족’이 있었는데, 사실 그 가족은 소련에서 보낸 공작원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팀이었던 것. 작전의 성공 후 구성원들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타샤와 그녀의 동생 옐레나가 만나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런저런 사연 끝에 부모 역을 하던 두 사람과의 재회도 이루어지면서,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어디 가족이라는 게 꼭 한 가지 방식으로만 구성될까. 인류 역사상 수많은 형태의 가족들이 있었고, 이들은 단순히 혈연으로만 연결되었던 게 아니었다. 가짜 가족 따윈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든 가족이라는 건 그렇게 가볍게 치부되기는 훨씬 묵직한 존재다.
가족이란 나라는 존재의 뿌리, 근원을 찾는 일과도 관련되어 있다. 뿌리의 결손은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듯, 가족은 사람이 앞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여기저기 가족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도하는 뉴스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위기의식을 가지고 들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 히어로.
온갖 초능력자들와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히어로 영화의 홍수 속에서,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특별한 괴력을 지니거나, 초자연적 능력을 가지지도 못했지만, 본인의 훈련과 성품으로 마블의 히어로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니까.(이런 면에서 비슷한 위치인 원더우먼과도 좀 다르다.)
블랙 위도우를 단독 주연으로 하고 있는 이번 영화에서도, 사실 액션보다는 그런 주인공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서사가 중심이 된다. 로봇이나 초인과 달리 인간은 과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나타샤 역시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의 기억들의 만든 긴 그림자 속에서 복잡한 심정을 보여준다.
최근 자주 보이는 ‘고민하는 히어로’를 그리나 싶었는데, 애초의 의도가 그런 거였다면 빌런 쪽에서 바로 그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야 했을 듯. 하지만 의외로 빌런은 허술했고, 나타샤를 제대로 괴롭히지도 않는다. 덕분에 뭔가 쾅쾅 터지긴 하는데 그리 긴장감까지는 주지 못한다.
안녕.
영화 개봉 전 알려지기로, 이번 영화를 끝으로 그동안 블랙 위도우 역을 맡았던 스칼렛 요한슨이 마블을 떠난다고 한다. 사실 히어로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와중에 마블 캐릭터들 중 나름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캐릭터가 블랙 위도우여서 그런지 아쉬운 감이 좀 있다. 뭐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테니...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 못지 않게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도 참 매력적이었다. 언젠가 요한슨을 다룬 다큐 비슷한 프로그램을 봤는데, 대학시절 학업도 굉장히 열심히 했던 데다가, 단순히 얼굴과 몸매로서가 아니라 연기자로서 일을 하고 싶어서 신인 때부터 굉장히 열심히 연습과 훈련을 해왔다고 한다. 마블 영화 속 블랙 위도우처럼 탁월한 하드웨어나 초능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것 같아서 왠지 응원을 하게 된달까.
그래서 그런지 마블에서의 마지막 영화 속, 요한슨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이기도 하다. 조금은 쉬면서 또 다른 연기인생을 잘 그려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