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목회자를 위한 하루 10분 챗GPT 사용설명서
민진홍.백형진 지음 / 한사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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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성시대다. 이제 교회에서도 어지간한 상황에서 AI를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다만 이 때의 ‘사용’이 늘 동일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유행을 따라 자신의 프로필 이미지를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보는 정도나 좀 뛰어난 검색엔진 정도로 사용할 것이고,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AI가 가진 잠재력을 좀 더 사용하기도 할 것이고.


이 책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들을 위한 AI,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GPT 사용법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 쓰였다. 제목에도 붙어있는 “바쁜”이라는 수식어는, 왜 목회자들이 이런 도구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하는지 그 상황적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너무 바쁘다.





책은 말 그대로 초보자들을 위한 수준에 맞춰져 있다. GPT 계정에 로그인을 하는 것부터 내용이 시작되고, 기본적인 구조와 실제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를 이미지로 실어두었다. 또 GPT로 교회 사역에 이용 가능한 영역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


책 말미에는 실제 목회 현장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을 특정 상황에 따른 프롬프트의 예가 140개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양육반 개강 알림 메시지를 작성하기 위한, 예배용 파워포인트 3장 구성 법 같은.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부분만 따서 적절히 사용해도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 절약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목회자들이 AI를 어느 수준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을 돌보고 양육하는 목회자의 본질적인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티타임을 하면서 저자가 만든 목회자를 위한 다양한 GPTs를 구경해봤는데, 꽤 많은 노력을 절약해 줄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는 게 한 눈에 와 닿았다.


물론 이런 도구들은 자칫 목회의 근간을 흔드는 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건 설교문 자체를 AI에게 맡겨서 작성하는 것이다. 앞서의 티타임에서 저자에게 이 부분을 질문했더니, 저자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런 행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만든 GPTs에는 그런 기능을 넣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정도. 물론 이 부분은 기술보다는 목회 윤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우려인, ‘과연 그렇게 얻은 여유를 목회를 더 잘 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역시 근본적으로는 윤리 문제다.


사실 요새는 다양한 AI작업 도구들이 나와서 꼭 GPT가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다만 몇 개를 사용해 본 결과 대략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나 설정 등은 유사한 경우가 많으니, 처음부터 기초를 잡아 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목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한 번 손에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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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걷는사람 에세이 7
김봄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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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달에는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읽었으니, 이번 달에는 균형을 맞춰보자(?)는 심산으로 이 책을 골라봤다. 제목이 뭔가 말랑말랑하지만, 아무튼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그런데 책은 예상과 달리 본격적인 정치철학 책도, 그렇다고 정치판 인근에서 살아온 사람의 경험이 담긴 것도 아니다. 물론 책 말미에 작가가 당시 매력을 느꼈던 이낙연이라는 정치인(그 시절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물론 그 후의 갈지자 행보로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에 관한 한 두 개의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주되 내용이라고 하기엔 주변적 소재일 뿐이다.





책은 작가가 “손 여사”라고 부르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저자는 유일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게 어머니를 비롯한 부모님의 큰 걱정을 사고 있다(나도 충분히 어떤 느낌인지 안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시고, 요 근래에는 이상한 유튜브 채널에 빠져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강하게 띠기도 하는 듯하다.


반면 딸 쪽인 작가 역시 딱히 사상적으로 투철한 “좌파”는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시절 대학을 다니던 작가는 강제적인 학과 통폐합을 경험하면서 권위적 행정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성추행을 포함한)로 인해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해진 듯하다.


당연히 정치적인 주제로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책에도 몇 번인가 등장하는 정치적 대화는 금세 끊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끊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쩌면 책은 우리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의외로 가까운 관계에서도 좀처럼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작가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닌 듯.





책 제목에 나오는 “좌파 고양이”란, 고양이가 좌파라는 말이 아니라 좌파인 딸이 키우는 고양이는 맡아줄 수 없다는, 조금은 심술이 섞인 어머니의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결혼도 안 한 딸이 갑자기 한 달간 프랑스를 다녀와야 하니 고양이 좀 맡아 돌봐달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이 또한 어떤 감정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전체를 이끌어 가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목은 잘 붙였다. 덕분에 내가 손에 들게 되었으니까. 정치적 성향이 조금은 다른 엄마와 딸이 투덕거리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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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
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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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의 이름이 다 쟁쟁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여섯 명 중 다섯 명의 책을 이미 최소한 한두 권씩은 읽어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의 맨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처럼, 이 책은 12.3 계엄을 전후로 한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점들을 모았다.


첫 글에서는 권수경이 권력과 재물, 이념을 우상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역사신학을 전공한 배덕만은 트럼프로 실체화된 미국 교회의 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진단한다. 옥성득은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박성철은 이른바 ‘기독교 극우’의 출현을, 백소영은 한국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비판을 각각 제시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장동민이 영성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제언을 한다.





각각의 글들이 모두 읽어볼 만하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거의 모든 일에는 전사(前史)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러 부분에서 미덥지 못하게 된 건 어느 특정한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서만 그 연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


예컨대 국가조찬기도회(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라는 모임만 해도 그렇다. 국가조찬기도회라니, 우리나라는 국교가 헌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붙어 있는 ‘국가’라는 단어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정부측 요인들이 참여하거나 주최한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소위 재벌로 불리는 경제인들까지 잔뜩 참여하는 정경유착의 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박정희 시절 교회 길들이기와 정권 정당성 홍보를 위해 시작된 이 모임은 불과 얼마 전 이 모임의 회장이었던 한 건설사 회장이 1억의 뇌물을 김건희에게 바친 대가로 자신의 사위를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올린 것이 발각되었고, 부회장인 이배용 역시 마찬가지로 김건희에게 금거북이를 바치고 국가교육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비위에만 집중하지만 애초에 이런 모임 자체가 문제였던 것.


여전히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 목사들은 여기에 초대되고, 기도나 설교를 하는 것을 무슨 명예인 양 착각하지만, 서울 시내의 비싼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하는 기도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 경제인들을 만나고 온 게 자랑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가는 것이(눅 7:25) 과연 그리스도의 길이겠는가.





다만 이런 짧은 발제글의 모음집이라는 특성상,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은 분석과 정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있어서 더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는 글이 없고, 현실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분석과 해법을 제안하려고 애쓰는 부분이 좋다. 여성문제와 관련된 챕터는 12.3 계엄이라는 큰 주제와 어느 정도 밀접한 지는 살짝 의문이지만.


책의 구성상, 그리고 내용상 마지막에 결론처럼 실려 있는 건 “한국교회 공적 영성의 재구성”이라는 글이다. 다른 글들이 주로 비판점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느낌인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성령에 대한 관심 환기, 영성의 회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이 글 자체도 내용이 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긴 한데(더 잘, 더 많이 담으려는 욕심이 많았다), “성령이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지 못하고 체제에 밀착하거나 종속될 때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는 지적에 핵심이 담겨 있다.


결국 교회의 정치(권력) 종속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건 교회가 속세를 지배했다고 알려진 중세에도 마찬가지였고,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바람처럼, 세상을 만드시고 뒤집으시는 성령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는 좀처럼 반전, 혹은 부흥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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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태양을 먹어치우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생물로 인해 위기를 맞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12광년이나 떨어진 타우 세티로 보내진 주인공 그레이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그레이스는 홀로 이 미지의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로키라는(물론 이 이름은 나중에 붙여준 것) 외계인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진다.


로키 역시 자신의 별에서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와 있었고, 두 과학자들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급조한 통역기로 서로의 말을 이해하게 되고, 특수한 재질로 된 장벽과 우주복으로 함께 다닐 수도 있게 된 그들. 마침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았지만, 또 하나의 문제, 그레이스에게는 돌아갈 연료가 없었다. 이 임무는 처음부터 이른바 자살임무였던 것.





외계인과의 협력.


영화의 대부분은 그레이스와 로키의 합동 작전에 할애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른 존재와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영화 속에서는 종(種, species)마저 다른 상황이었으니 어려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 낸다. 대개 외계인 하면 지구를 침략하고, 싸우고 하는 이야기들이 주가 되는 영화계에서 꽤 신선한 전개다.


한편으로 외계인과도 가능한 협력이 정작 인간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안 되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툭하면 혐중을 일삼는 머저리들이 널렸고, 온갖 음모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상대를 저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공당의 대표라는 인간이 나와서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향해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을 정도니 말 다했다. 나라 밖 사정도 마찬가지고. 헐리우드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우리는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들끼리 싸우다 멸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자기희생.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후반부에 나온다. 마침내 아스트로파지의 해결책을 갖고 지구로 돌아가려던 그레이스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갈 연료를 날려버리고 만다. 자신만 돌아가거나 아니면 해결책만을 담아 보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를 보면 그레이스는 남기로 했나 보다.


사실 그레이스는 이 임무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주선을 발사하기에 적합한 시간이 곧 다가왔고,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고(사실 우주인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미심쩍다), 결국 그를 강제로 잠을 재워 보냈던 것. 심지어 애초에 돌아올 수 없는 임무에 말이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헤일메리란, 미식축구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때 상대편 진영을 향해 있는 힘껏 멀리 공을 던지는 작전을 말한다. 말 그대로 도 아니면 모라는 작전.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계획이다.


그렇게 지구로 돌아갈 연료 없이 보내진 그레이스. 어떻게 보면 지구는 그를 버렸고,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지구를 위해 어렵게 얻은(로키가 자신의 연료를 주어서) 돌아갈 기회를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독서모임에서 이 주제를 놓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전쟁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라면 자기희생을 충분히 할 수도 있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아직 세상은 살만 한 건가.





그가 돌아온 이유.


영화의 결말이 꽤 인상적이다. 결국 지구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그레이스는 로키에게로 돌아왔고, 그레이스에게 연료를 주어서 6년은 더 연료가 만들어질 때까지(아스트로파지가 분열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로키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어쩌면 그는 지구에 있는 인간들보다 바위 덩어리처럼 생긴 로키에게서 좀 더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또 그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결국 지구인들이라는 건 가기 싫다는 사람에게 약까지 먹여 잠재워서 돌아올 수도 없는 임무에 보내버린 것들이니까. 그 뒤에 아무리 인류의 운명 같은 묵직한 무엇인가가 얹혀 있어도, 본인이 싫다는 데 억지로 강요하는 게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터. 그에 비해 로키는 처음 만났음에도 (심지어 종도 다른데도) 그레이스를 위해 6년이라는 시간을 추가로 더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가끔 ‘동물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하는 류의 말들을 한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어지간히 컸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실제로는 동물들 사이에서도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 자주 일어나긴 하지만, 그만큼 신뢰를 주고 또 받는 일을 우리가 갈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깜찍한 꼬마 외계인들이 잔뜩 등장해 시끌벅적한 학교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편안하게 나올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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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챙김 - 내 안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
채정호 지음 / 선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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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0여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는 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영성챙김”이라는 방식을 발견했다. 이 용어가 좀 생소하다. 영어로는 Spiritfulness라고 표기하는데, 어떻게 봐도 신조어인데,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 “마음챙김”이라는 말이 요새 여기저기서 들리긴 한다.


사실 이 두 개념은 거의 비슷한데 강조점이 약간 다르다. 사실 기존의 정신과 치료의 주된 방향성은 정신적 고통을 회피하거나 억제하는 데 있었다면, 마음챙김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주의, 알아차림, 수용이라는 단계는 현재의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다분히 종교적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이 마음챙김은 불교적 수련법의 하나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영성챙김’도 사실 비슷한 방법론과 방향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마음챙김이 가져다주는 정신, 심리치료적 효과를 유사하기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자신을 살피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복원하고, 영적인 회복을 꾀한다는 면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 전반에 걸쳐서 이런 차별점에 대한 강조가 자주 보인다. 다만 이건 “영성챙김”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방법론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일종의 방어논리처럼 느껴진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이런 시도를 이교와의 혼합주의라고 경계 내지는 비난하고 있기 때문.


그런데 사실 이런 접근은 애초에 자기모순적이다. 기독교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얼마나 될까? 인류 역사만 해도 문자 기록이 남지 않은 선사시대를 제외해도 5~6천 년은 된다. 기독교가 출현하기 이전의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 영향을 받지 않은 게 몇 개나 있을까. 실제로 기독교 예배 가운데도 이미 근원을 따져보면 상당히 멀리서 온 요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명백히 이교적 영향이 남아있는 것들이라면, 효과가 좋으니 무조건 받아들이자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반복해 입증하려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시간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신앙의 방식 중 하나다. 이른바 “영성챙김”이란 누구나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이 방식을, 몇 가지 도구를 통해서 도와주려는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관건은 ‘익숙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서유럽의 가톨릭 신앙의 결을 이어받은 주류 개신교 신학은 처음부터 조금은 이지적인 측면에 기운 상황이다. 나도 여기에 익숙해 있기에, 책 후반부에 실려 있는 열세 가지의 영성챙김(기독교적 명상?)의 실제 예를 보면서 어색함을 느꼈다. 그런데 현대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정교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방식의 영적 수련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는 걸 보면, 함부로 폄훼하는 것도 “기독교적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성경을 익히고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데에는 이 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방법론이 나름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신비주의자의 항해가 언제나 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는 C. S. 루이스의 경고도 항상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적절한 지도(신학)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 부분에서는 이른바 영성챙김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영적 우월함 같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실제로 목회적 상담을 하다보면, 단순히 이론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개인의 삶에 하나님을 짙게 경험할 수 있는 훈련법들이 아울러 제시된다면 분명 기독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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