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설계자들 - 이스라엘 민족의 비밀스러운 흔적
이스라엘 크놀 지음, 정예중 옮김 / PCKBOOKS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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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역사를 기록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다층적인 배경을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발견 성과와 성경 본문에 대한 비평적 연구에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 낸 민족 창시 신화다.


저자는 세 개의 집단을 이스라엘 민족 구성분자로 보는데, 첫 번째는 이집트 문헌에서 하비루(아비루)라고 불리던 떠돌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이 BC 12세기 있었던 출애굽의 당사자들이었고, 가나안 산지에 정착하고 있던 초기 이스라엘 인들에게 뒤늦게 합류한 그룹이라고 말한다. 뒤늦게 합류했기에 따로 땅을 분배받지는 못했고 종교적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것. 출애굽의 기억은 이들을 통해 성경에 들어가게 되었다.


두 번째 그룹은 힉소스인들과 관계가 있다. 힉소스는 이집트 역사에서 두 번째 중간기(BC 19-16세기)의 주인공들로, 이집트 토착들을 지배했던 외래인들이다. 저자는 이들 힉소스 통치자들이 이집트를 지배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요셉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집트 토착 왕조가 힉소스 통치자들을 몰아낼 즈음 이집트 땅을 빠져나온 가나안인들이 ‘초기 이스라엘인’이라고 비정한다.


세 번째 그룹은 창세기에 ‘족장들’로 그려진 집단이다. 신명기 26장 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이 “방랑하는 아람 사람”이었다고 말하는데, 저자는 야곱으로 대표되는 초기 이스라엘인들이 전쟁 난민 신분으로 갈대아 우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왔다고 추정한다.(BC 13세기) 이들은 그 지역 고유의 제의의식을 가지고 내려왔고, 후에 합류한 하비루의 유일신 사상과 결합되어 이스라엘의 고유한 종교 전통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기존의 현대주의자들이 성경 속 이야기를 그저 신화로 치부하며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가공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그 이야기 속에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기억은 있는 그대로 정확히 기록으로 남은 것이 아니고, 일종의 편집을 거쳤다고 보기에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성경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퍼즐과 같은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정도의 ‘학문적인’ 접근이라면 다분히 반종교적 성향이 짙은 학계에서도 의외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른바 비평적 접근이라는 것이 다분히 해석의 문제인 경우가 많아서, 같은 내용을 두고서도 학자들 사이에도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점, 고고학적 증거 역시 자칫 어떤 것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없는 것이라는 식의 ‘침묵의 증거’ 식으로 오용될 수도 있고, 책에도 언급되는 것처럼(62) 같은 증거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는 점 등은 이 책의 설명이 하나의 가설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기억해야 할 듯.


저자는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복층적 구성 가설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신학적 진화 과정에 대한 가설까지 제시한다. 사실 이 부분은 특별히 새로운 건 아니고, 오랫동안 비교종교학 등에서 주장해왔던 내용을 조금 색다르게 정리했다는 느낌.





저자의 재구성이 퍼즐을 맞추는 듯한 지적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한된 고고학적 자료와 논쟁적인 본문 해석 위에 세워진 하나의 가설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스라엘의 기원과 성경의 형성 과정을 밝혀 주는 최종적인 해답이라기보다,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 온 성경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역사성과 신학적 의미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도전적인 책으로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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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모험 - 우리가 찾아내야 할 믿음의 열쇠
팀 한셀 지음, 한원선 옮김 / 아르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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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은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지 30여 년이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하나하나가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태생이 내성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기에(요새는 극 I형이라고 표현하더라), 다른 사람 앞에 서서 뭔가를 하는 걸 전혀 내켜 하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것부터가 놀라운 변화긴 하다.


신앙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어느 순간 한 번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마도 평생 동안 우리를 지속적으로 바꾼다. 그게 신앙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 역사를 봐도 핵심적인 진리체계는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믿어오는 형식이나, 그 믿음의 실천 양식에는 끊임없는 변화가 있었다. 2세기의 기독교인들은 21세기의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꽤 신기하게 바라볼 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신앙을 갖고 살다보면 오히려 점점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생각이 굳고, 행동이 굳고, 마치 과거의 어느 순간 더 이상의 변화나 발전은 중단된 것처럼,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신앙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너무 일찍(신앙의 변화는 평생을 두고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신앙이 기본적으로 모험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저자는 “교회 의자가 너무나 편안해졌고 진정한 모험이 사라졌기에,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나이와 지위가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모험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아브라함은 거의 100세에 모든 것을 건 모험 길에 나섰다)


책의 1부에서는 이 모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반복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강조를 한 뒤, 2부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신앙적 모험의 삶을 살 수 있을 지에 관한 실천적인 제안들을 제시한다.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우리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단계적인 지침이 도움이 된다.


3부는 조금 전체 맥락과 떨어져 있는 느낌이기도 한데, 이른바 “섬김의 리더십”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이를 체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설명이다. 굳이 이어본다면, 앞에서 말한 모험적 신앙을 되찾았을 때 자칫 우리의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조언일 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강한 도전을 받고 조금은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제는 됐다고,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접은 채로 지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니엘의 믿음이 그를 사자 굴로 이끌었음을 모르는 우리는, 날마다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그저 걱정스럽게 바라볼 뿐, 그 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한다.


물론 믿음의 모험은 언제나 드라마틱한 상황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서 늘 하던 일상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믿음이 모험임을 온 몸으로 깨닫고 그 모험에 뛰어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치 삶은 계란과 날계란이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점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똑같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무엇인가에 부딪혀 깨지게 되는 날 비로소 그 안에 얼마나 다른 것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저자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등산 도중 추락해 몸의 일부가 마비된 채로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에 대한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던 대단한 인물이다. 편한 신앙생활에 젖어서 도전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 줄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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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
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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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군사력을 두고 대립을 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빠른 발전이었다. 미국이 두 차레의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거두었을 무렵, 중국은 국공 내전과 항일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었다. 게다가 최종적인 승리자였던 마오쩌둥의 잇따른 자살골로 중국 경제는 그대로 추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어느덧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빠른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찬탄하지만, 중국의 발전 또한 그 못지않은 놀라운 속도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중 중국의 지도층이 ‘공학자들’로 구성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지도부는 거의 전원이 공학자들이다. 중국 경제 발전의 기점이 되었던 덩샤오핑은 8, 90년대 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정부의 최고위층에 대거 입성시켰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일 정도였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칭화대 공대를 졸업하고, 10년 간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다른 지도급 인물들도 다양한 기술대나 공대를 졸업하고 실제 공장 등의 현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현 주석인 시진핑 역시 칭화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국가 운영의 핵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모두 공학자라는 것은 자연히 국가 운영에도 그에 따른 스타일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이른바 “개발 독재”에서 출발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이미 거의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의 공학 전공 지도자들은 마치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거침없이 설계하고, 건설한다. 그 결과가 미국의 2배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일본의 20배에 달하는 고속철도,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 그리고 전 세계 제품의 거의 절반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 같은 것은 그리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팬데믹 사태 당시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었다. 심지어 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 도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최소 천 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커다란 지역이다) 전체를 봉쇄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강제 불임수술 같은 인권유린적인 조치까지 있었다. 이 정도의 대규모의 사회적 실험은 공학자 마인드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반면 미국은 법률가 중심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이기도 한 만큼, 모든 것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업은 끊임없는 소송전으로 기약 없이 지체되고, 나중에는 아예 그런 사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 대규모 공장들도 사라져버렸고, 트럼프가 갖은 협박과 위협을 하며 동맹국들을 쥐어짜더라도,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절차적 정당성애 매여서 진취적 기상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닌데, 미국 역시 공학의 전통과 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도,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모두 미국에 있었다. 물론 이미 법조인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미국 정계가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저자는 미국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약점에 발목이 잡혔다고 말한다. 공학 중심의 나라는 통제와 간섭에 대한 집착으로 사회의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농담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훌륭한 문화적 결과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 중심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과정의 정당성에 집착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발하는 지리한 정치적 갈등이 사회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만 보면, 철학(김영삼), 경영학(김대중, 이명박), 법학(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등 인문계열, 특히 그 중에서도 법학이 주가 되고 있고, 전자공학(박근혜)을 전공한 경우가 한 명 있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법학 전공자나 법조인 출신이 66명으로 20%가 약간 넘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미국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쪽 하나가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사회적 통합은 함께 가야 할 목표들이다. 문제는 국가운영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이들이 자기 관점에서 벗어나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 일 텐데, 이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진보계열에서는 ‘당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고, 보수계열에서는 고인 물에서 나는 썩은 내를 좀처럼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시대다. 단순이 이념과 관성에 충실하게 살다간 우리부터 얻어맞고 몰락할 지도 모른다.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인 상황과 단기적인 대처 사이에서 현명한 결론을 찾아갈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에겐 있을까. 이건 단지 대통령 한 명을 잘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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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 삶을 세우는 10가지 기준 핵심 진리 시리즈 1
박준호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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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각 계명들을 한 장씩 다루는 짧은 책이다. 구성 상 아마도 저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했던 연속 설교문들을 엮은 게 아닌가 짐작된다.(각 계명의 적용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사실 내용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익히 들어왔던 설명들이고, 비유이고, 적용이다. 워낙 오래된 내용들이라, 달라진 시대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살짝 흠칫 하는 내용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일부만 가지고서 전체를 논한다는 비유 같은 게 그 예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예화다. 천 몇 백 년도 더 전에는 시각장애인의 부족한 관찰력을 지적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이제 이런 비유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아마도) 설교다 보니까 내용을 충분히 깊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은 된다. 하지만 이건 책이니까, 어느 정도 좀 더 깊은 조사와 고민들을 담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그런 깊이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 설교를 위한 쉬운 구성과 전개, 적용 등이 중심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이상하거나, 나쁘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십계명에 대해 처음 차근차근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권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내 경우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을 너무 여러 권 봤다는 게 평가를 좀 박하게 내리는 요인이니, 확실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평가다. 하지만 세상엔 나 말고 사람도 많고, 그 가운데는 또 이 책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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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교과 하브루타 - 질문 중심 수업으로 바꾼 지아쌤 10년의 기록
김지아 지음 / 비비투(VIVI2)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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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란 고대 유대인들의 독특한 교육/학습 방식을 말한다. 토라를 공부할 때 교실에 앉은 학습자에게 교수자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습자가 짝을 이루어 서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더 깊게 이해하고, 나아가 종종 굉장히 창의적인 방식의 해석까지 낳는 교육방식이다. 탈무드니 학가다니 하는 유대 고전들은 은근 이런 형태의 교육방식을 권장하는 구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애초에 랍비들의 가르침이란, 어느 하나의 전통을 오랫동안 물고빠는 식이 아니라, 수많은 랍비들이 앞선 의견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고 하는 거대한 해석사적 전통의 모음이다. 그래서 랍비들 사이의 의견도 꽤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기독교 내 정통주의자들처럼, 우리 선생님의 의견을 절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식의 태도와는 큰 차이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요새는 이게 질문, 창의력 같은 키워드가 주목받으면서 종교적 맥락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학습전술로도 수용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졌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 다양한 교육학자들에게서 나왔던 문제제기다. 『페다고지』로 유명한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책들을 읽으면서도 자주 들었던 질문이고, 미국에서는 마일스 호튼 같은 인물이 비슷한 질문을 제기하고, 나름의 교육윤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확실히 질문은 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하브루타 방식의 교육활동을 진행해 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눈 책이다. 경험 정리 중심이다 보니,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하브루타의 정의와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본문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감을 잡게 되겠지만. 아마도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대화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건 설명이 아니라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서두에 간략하게 설명을 넣어두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책은 이론보다는 실제에 집중한다. 어떻게 이런 방식의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실제로 진행했을 때 아이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예상되는 어려움과 그 대처법이라든가, 지역 교사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이 방식을 연구하는 지 등등. 우선은 초등교사인 독자에게 관심이 갈 만한 내용들이 주가 되지만, 그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비단 교실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질문이 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질문이 없는 교회는 딱딱하게 굳은 돌처럼 돼서 언젠가 깨지고 말 테니까. 적어도 교실에서는 (물론 일부라고 하겠지만) 나름의 고민과 실험이 진작 시작되었다. 교회도 좀 더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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