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힘이 세다 -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자리 찾기
폴 바스덴.짐 존슨 지음, 정효진 옮김 / 성서유니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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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따분하고 케케묵은 율법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성경은 이야기책이다. 수천 년을 배경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다. 하지만 또 그 분량이 적지 않으니 (재미있는 책은 길수록 좋긴 하지만)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청소년이나 어린이라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교회의 공동 창립자인 두 저자는, 성경 전체에서 여덟 개의 장면을 뽑아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창조와 축복(아브라함), 구출(출애굽), 선택(다윗), 경고(선지자들), 구원(예수 그리스도), 파송(사도행전), 승리(요한계시록)이라는 여덟 개의 주제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사항들이다.





번역자는 문장들을 마치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문제로 번역을 했다. 이게 영어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었을까 싶었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유머나 예화 같은 걸 보면 뉘앙스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책은 어른이 청소년/어린이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으로 읽힌다. 내용이 또 가만 보면 기독교 세계관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사실 성경을 이야기로 보고 여기에 집중하는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가 함께 쓴 두 권의 책(『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도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고, 성경을 거대 내러티브로 보는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식의 소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쉬운 문체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종종 청소년들(또는 넓게 잡으면 사회초년생 청년들까지)에게 맞는 적용과 질문들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권해 줄만한 책 자체가 적은 우리나라 기독교 책 상황을 생각해 보면 꽤 반가운 일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성경읽기 운동을 하는 성서유니온에서 냈으니 더욱 안심.





그렇다고 단지 청소년들을 위한 쉬운 버전의 성경 이야기의 소개 정도라고만 보면 안 된다. 콘셉트는 그게 맞지만, 어른들도 성경을 읽으며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만한 질문과 통찰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차분하게, 성경의 맥을 잡아보는 독서로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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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해부도감 - 이능의 힘과 지식을 지닌 신비의 존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가와이 쇼코 지음, 강영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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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나름 알려져 있는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른바 “음양사”라고 불리는, 우리로 치면 무당쯤 되는 일을 하는데, 또 고위 관직에 있기도 한 조금은 이색적인 일을 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식신이라고 불리는 요괴를 부리고, 부적으로 저주를 내리기도 하고, 도술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하는 반쯤은 신선 비슷한 느낌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 책은 그 ‘음양사’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을 흥미 중심으로 정리해 놓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다른 책을 빌리는 김에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빌려온 책. 그래도 나름 역사 파트에 들어가는 책인지라, 문헌 자료에 기초해 정리한 내용이니, 일본 중세 문화를 공부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가장 먼저 음양사는 공식 관료였다. 중무성에 속한 음양료라는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던 것. 비슷한 직책은 중국에도,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관(日官)’이라고 불렀다. 천문을 관측하고, 기상을 측정하고, 때로는 별자리 등을 통해서 일종의 운을 점치기도 했던. 점을 친다는 것을 빼면 대체로 그 당시의 과학기술관료에 가까웠는데, 또 이 점이라는 것도 약간의 우연성이 개입된다는 것을 빼면, 그 해석에 있어서는 결국 통계와 맞닿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원래는 주금사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주술을 전문으로 하는 좀 더 무당에 가까운 조직과 관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10세기 경 이들 주금사들이 하던 일을 점차 음양사가 흡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세 일본은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끊임없이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왕은 있었으나 실권을 가진 권신들이 국정을 주물렀다. 그런 시대에 관료로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줄을 서야 했을 것이고, 그건 음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권력다툼의 여파로 밀려나거나 목숨을 잃는 음양사들도, 반대로 권력의 지원을 받아 단숨에 최고 지위인 음양두까지 올라가는 일도 생긴다.


초반에 언급했던 세이메이 같은 인물이 그렇게 성공한 음양사인데, 그 후손들이 자기 가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분히 과장된 다양한 설화들을 만들어 냈다. 세이메이의 어머니가 하얀 여우가 변한 여자라든가,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던가, 수많은 식신들을 부렸다던가 하는 전설들이 그것.





한편으로 왜 일본은 인근의 한반도나 중국 대륙과 달리 그렇게 음양사가 중요하게 여겨졌을까 하는 의문에, 저자는 흥미로운 설명을 제안한다. 기본적으로 헤이안 시대(8세기 말~12세기 말) 일본의 정치는 유교적 사고가 바탕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교에서 천재지변은 하늘이 통치자의 잘못을 벌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게 당대의 권신들에게 부담이었던 것.


그래서 그들은 천재지변을 귀신이나 원령의 저주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음양사들이 필요했다. 저주는 음양사들이 나서서 제사를 하거나 다양한 조치를 취하면 해결될 일이니까. 그 책임을 최고권력자가 져야 할 필요가 사라진다는 것.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음양사라는 직책이 통치에 중요했다는 건데, 왕으로서의 책임감까지는 갖출 필요가 없었던 권신들이 선택할 만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공식적인 음양사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이나 불러서 부탁할 수 있었기에(정원도 20여 명 밖에 안 됐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비공식적인 음양사들도 활동했다고 한다. 승려이면서 음양사 노릇을 했던 일들도 있었고(법사음양사), 음양사가 하는 일들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하인들도 음양사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창문사). 그러나 후자 쪽은 일종의 예능인으로, 주술성을 지닌 다양한 공연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음양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메이지 정부에서였다고 한다. 주술은 미개한 사교라고 여겼고, 또 다른 주요 업무인 달력 제작은 서양력을 가져오면서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일종의 미신이나 금기로)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일단 신사문화가 생활 속 깊이 남아 있기도 하고, 다양한 운세뽑기 등등.






재미로 보기에 딱 좋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판형은 작고, 글씨는 더 작다는 점이다. 기본 본문도 여느 책에 비해 1포인트 이상 작은데, 삽화와 함께 적힌 글씨는 그보다 또 작고, 삽화 영역에 들어가는 표라도 나오면 글씨는 더 작아진다. 깨알보다 작은 글씨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 슬슬 노안이 오는 나로서는 포기할 수밖에...


이 정도 내용을 담으려면 아예 판형을 키우던가, 페이지 수를 좀 더 늘려서 가독성을 좋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그러려면 책값이 또 올라가겠지. 근데 종이도 두꺼운 걸 쓴지라.. 적당히 타협이 안 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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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6-2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 리뷰를 읽고 사볼까 생각했는데 판형이 작고 가독성이 나쁘다고 하니 읽을 엄두가 당최 생기지 않네요ㅜ.ㅜ

노란가방 2026-06-26 09:17   좋아요 0 | URL
판형은 그냥 보통 책 정도고요... 다만 글씨가 작긴 합니다. 요새 눈이 좀 침침한 듯하여....ㅜ
 
정치에 오염된 신앙의 언어
권연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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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교회의 극우정치세력화를 비판하는 책 분야의 대표주자(?)라고 할 만한 야다북스에서 또 다른 책이 한 권 나왔다. 전에 관계자분을 만나서 잠깐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는 출판사랄까.


이번 책은 ‘단어’에 집중한다.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신앙과 윤리, 예언과 선동, 정교분리, 자유와 평등, 국민저항권, 극우 기독교와 근본주의 같은 단어들을 중심으로 사회와 교계를 아울러 분석한다.


대체로 어느 정도 내용이 예측이 되는 장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들어온 두 개의 주제가 있다. 최종원 교수가 정교분리의 역사적 맥락을 정리하는 3장과 김동춘 교수가 극우 기독교의 신학적 배경을 분석하는 6장이이다.





최종원 교수는 미국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교분리’가 실은 국교의 부인에 가까웠으며, 이는 종교의 자유를 보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조항은 국가에 종교에 개입하지 말고, 나아가 종교(단체)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야만 한다는 책임을 지운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심지어 극우 기독교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 교회가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최종적인 주장이지만, 이제까지 야다북스에서 나온 책들의 논조와는 살짝 다른 결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이 부분은 최근 읽었던 오스 기니스의 책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에서 좀 더 깊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책의 결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진실이 언제나 우리의 구미에 완전히 맞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걸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당파성에 매몰된 극단적인 무리로 분류될 수밖에.





6장에서도 꽤 흥미로운 분석이 등장한다. 우리는 보통 극우 기독교가 대체로 신학적인 근본주의자들인 것처럼 인식해 왔다. 보수적 신학이 보수적 정치관을 낳고, 그들은 쉽게 극우로 넘어간다는 간단한 그림이다. 하지만 김동춘 교수는 이런 그림이 얼마나 단순하고 왜곡된 그림인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우선 이미 한국교회의 신학적 자유주의화는 상당부분 진행되었으며, 개인의 자융적인 선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대신 교리적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른바 극우 기독교가 확산이 근본주의적 신앙의 증거와 매칭되지 않고 있다는 것. 저자는 근본주의적 신학보다는,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정치권력 획득을 추구하고 있는 ‘세속주의 기독교’가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본다. 흥미로운 분석이다.


저자는 이런 세속주의적 경향이 보수적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진보 자유주의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주로 진보적 신학을 갖고 있는 비판자들은 모든 문제를 근본주의 신학과 묶어 폐기하면 될 것처럼 주장한다. 번짓수를 잘못 찾은 비판이고, 당연히 그런 비판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챕터 후반부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을 붙들고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거나, 최소한 기독교가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오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부분은 앞서 3장에서 논의했던 종교의 자유 영역과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 역시 앞서 언급했던 오스 기니스의 책에서 어느 정도 논의된다.





이번 책은 피상적인 비판을 넘어, 문제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느낌을 준다. 보통의 예상과 달리 실제는 경계선이 울퉁불퉁하고, 종종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어서 복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낙인찍기나 정체성 정치 같은 도구들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을 악화시키는 이유다. 소위 부수적인 피해들이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


사안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언제나 가장 단순한 답을 붙잡기 마련이다. 내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문제이고, 그들의 입을 막고 제거(혹은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신앙언어의 오남용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떤 해결책이든 그리 효과가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확장된 듯한 이번 책의 일부 내용들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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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화에 관하여 비아 제안들 시리즈
피터 브라운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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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화된 4세기와 5세기 제국 내 기독교의 위치와 영향력에 관한 짧은 세 개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분야의 걸출한 학자이다 보니, 그 간략한 글들에도 뛰어난 통찰들이 잔뜩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통찰은 이 시기 기독교에 관한 대중적 인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게 흥미롭다.



1부에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갑작스러운 개종으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한다. 우리는 황제가 그렇게 기독교인이 되면서, 제국 역시 단번에(최소한 매우 빠른 시기에) 기독교화 되었다고 추정한다. 황제가 그렇게 되었다는데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 기독교로 갈아타는 게 좋지 않겠는가.


저자는 4-5세기의 다양한 ‘보통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서 이런 통설이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심을 던져준다. 4세기 브리타니아(잉글랜드)에 살던 한 사람이 자신의 돈을 도둑맞은 후, 한 여신과 관련된 우물에 가서 저주를 새긴 판을 세워두었다. 그 판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자신의 돈을 훔친 사람이 ‘이교도든 그리스도인이든” 저주를 받게 해 달라는 문구를 삽입한다. 그는 최소한 그 여신이 그리스도인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저주를 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앙이란 (신앙과 거리가 먼) 학자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손바닥 뒤집듯 같단히 바꿀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위에서 누군가 강요를 한다고 해도, 인간의 심층까지 바뀌는 일은 쉽지 않다. 그건 하나의 세계관이고, 우주를 이해하는 틀이기도 하다. 남아있는 좀 더 많은 (그리고 일반적인) 자료들을 취합하면, 이 시기는 기독교적인 것들과 이교적인 것들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2장에서 다루는 문제는 관용이다. 많은 수의 학자들과 작가들이 기독교는 배타적이었지만, 고대 다신교는 관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문을 반복해서 외우고 있다. 그러나 고대 사회는 관용적이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민은 개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공동체의 법과 관습을 준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시오노 나나미 같은 작가들이 주구장창 물고 빠는 로마의 관용은 실은 그저 ‘적당한 무관심에 입각한 통치’였을 뿐이다.(64)


후기 로마 제국 시기에도 이런 ‘적당한 무관심’이라는 통치 기조는 계속 이어졌다. 비록 여러 문헌들에 다른 종교와 신앙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어쩌면 그 빈도야 말로, 이런 탄압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저자는 여기에 실제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행정력이 떨어졌던 당시 제국의 통치는 지역민들, 특히 지역의 상류층들의 광범위한 협조가 필요했는데, 그건 강압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79) 대다수 지역에서 제국의 행정은 세금을 거두는 데 집중되어 있었지, 종교문제를 강요하는데 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82)


3장은 ‘성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성자’는 가톨릭을 비롯한 몇몇 기독교 교파에서 말하는 ‘성인’과는 다른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지역의 유명한 그리스도인들, 대개는 수도사들이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경건한 농부가 그 역할을 맡을 수도 있었다. 저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분으로 실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한다.(109)


이런 인물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여전히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일반인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고 보는 게 맞다. 다만 그런 ‘성자들’의 신학적 견해는 전문가들(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134)는 걸 보면, 이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요약하면 책의 내용은 이렇다. 4~5세기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의 우위는 아직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들은 강압적으로 기독교를 믿도록 하지 않았고(아니, 그럴 능력이 충분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저술가들과(주로 문헌 작성을 통해) 비공식적인 성자들(주로 일반인들과의 접촉과 감화를 통해)이 나서야만 했다. 그럼에도 곳곳에 여전히 이교적 영향력은 남아있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기독교와 이교가 중첩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


이는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독단적이고, 배타적이어서 박해를 통해 강제로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다는)이 (비록 그게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해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애초에 관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 세계에는 희미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갖지 않았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태도이다.


또 한 편으로 기독교인들이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식은, 단순히 황제가 명령을 내리는 식이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물론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수많은 (이름이 알려지거나 그렇지 못한) 이들의 오랜 “설득”과 감화가 필요했다. 따지고 보면 이건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분량도 많지 않으면서도 지적으로 흥미로운 자극을 주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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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인 THE COIN - 스테이블코인이 이끄는 화폐 대격변의 시대
성상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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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떡하니 The라는 단어를 넣은 건 자신감을 반영한 걸까? 부침은 있으나 코인 열풍이 가시지 않고 있다. 십 수 년 전 비트코인이라는 게 처음 등장했을 때, 이걸 어디에다 쓰나 싶었던 사람들 누구도 이제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는다. 현대 1비트코인의 가격은 9730만 원 정도다. 엄청나다.


물론 어떤 현물 자산이나 가치 표시가 된 화폐와도 연동되지 않은, 순수한 데이터일 뿐인 비트코인에 그렇게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게 정당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책 말미에 저자는 비트코인 채굴에 소요되는 에너지 등의 비용(8만~10만 달러)을 고려해 하한선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 비용으로 무슨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낸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지워지진 않는다.





이 책의 전반부는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설명을 담고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은 둘 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개념은 전혀 다르다. 비트코인이 채굴이라는 방식으로 복잡한 수식을 푸는 대가로 얻어진다면, 스테이블코인이란 발행액과 동일한(혹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가치의 담보를 잡고 발행되는 일종의 담보부증권과 비슷한 느낌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운용된다는 점에 있다. 기존의 은행 거래는 은행영업시간의 제한과 중앙집권적 시스템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해외 거래의 경우 며칠 씩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거의 즉시 거래를 할 수 있다. 거래 속도의 비약적인 향상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더 빠르고 편리해진 송금 서비스 정도처럼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담보에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운용사는 발행한 코인의 금액 이상의 담보물을 보유해야 한다. 이 때 당연히 안정적이면서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담보로 잡아야 하는데, 담보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이 미국 달러나 미국 국채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국 정부가 왜 스테이블코인을 키우려고 하는지로 연결된다.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미국은 끊임없이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 국채를 사줄 사람(국가/기업 등)이 무한정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정확히 그 금액만큼의(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국채가 팔리게 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로서는 재정운용에 숨통이 트이게 되는 셈이다.


그뿐 아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통화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명목 GDP도 높아진다. 이는 상대적으로 부채의 실질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빚이 녹아버리는 것이다. 여러 모로 미국 정부로서는 부채질을 할 만한 도구다.


물론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 전통적인 재정 운용에서는 중앙은행과 재무부 등의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서 어느 정도 통화에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완전히 민간에 주도권이 있다. 경제제재 같은 것을 우회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도 하는 것 같은데,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자체의 특성상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게 결국 어떤 쪽으로 흘러갈 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는 것.





사실 책은 칼럼형식으로 짧게 쓰인 글들을 여러 개 모아놓은 형태라서 하나씩 읽어나가기에 부담이 없다. 다만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단점. 스테이블코인이 뭔지 전혀 몰랐던 차에 그 개념과 기능을 조금은 알게 해 주었으니 나름 유익한 독서였다. 그 자체가 일종의 투자/혹은 투기인 비트코인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의 편의성 쪽에 방점이 찍힌다.


그런데 그저 새로운 결제 수단처럼 보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국가 단위의 재정운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니,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게 많다. 다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애초의 주제에서 벗어나 경제 전반, 투자 같은 주제로 퍼져서 조금은 느슨해진다는 느낌도 준다. 뭐 그래도 교양으로 알아둘 만한 것이고,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확장적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투자나 경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교양삼아 한 번 읽어 볼만한 책. 중요한 개념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언젠간 도움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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