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출판 창업 - 1인출판, 1인크리에이터로 성공하기 위한 A to Z
한기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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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두 가지 키워드가 담겨 있다. ‘출판창업이 그것. 오랫동안 독서와 책과 관련된 일을 해 왔던 저자인데, 개별 출판사 운영도 운영이지만 출판업계 전반을 돌아보는 잡지 출판인이었던지라 출판 업계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보여주는 통찰은 탁월하다. 책을 읽다 보면 앞으로 출판사들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가 점점 보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좀 더 눈에 들어왔던 키워드는 두 번째인 창업이라는 부분이다. 물론 당장에 무슨 출판사를 창업할 계획이나 생각은 없다. 한 때 출판사에서 일을 해볼까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건 뭐 도통 경력자만 뽑겠다고 하니, 그럼 그 경력은 어디에서 쌓아야하는지를 몰라 포기했었다.(어떻게 좀 물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땐 그런 요령도 없었다) 하긴 요새는 꼭 무슨 경험과 경력이 없더라도, 1인 출판 같은 걸 간단히 해 내기도 하는 시대니까.... 아주 가망이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튼 상황이 그런데도 이 키워드가 마음에 와 닿았던 건,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런 목적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던 건 꽤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책 전반이 새로운 출판사를 만들어 보는 데 필요한 전략이나 지향점 등을 담고 있긴 했지만, 비단 출판 말고도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선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선명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나 혼자 즐겁기 위해 하는 취미생활이 아니라면, 결국 일이란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 시작부터 다른 사람을 설득해 내지 못한다면, 그 일이 제대로 되기는 참 힘들 것이다. 나 혼자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고 설레발을 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


최근의 달라진 출판경향에 관한 설명도 눈에 들어온다. 평생 공식적인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작가가, 온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분석하고, 독자들과 피드백을 해 가면서 금세 베스트작가가 되는 과정도 그렇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면서 출판으로 나아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포털이 아닌 보털이라는 개념을 인용하며 넓고 얕은 대상이 아닌 특정한 대상을 깊게 터치해야 한다는 조언도 기억해둘 만하다.

 


출판 산업도 이제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돈을 들여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방식은, 물론 여전히 일부 영역에서는 작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으나(대형 온라인 서점의 메인에 걸리기 위해서는 꽤 많은 광고비를 지출해야 한다), 당장 나만해도 그런 자리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넘어가 버리기 일쑤니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성급하게 종이 책의 종말이니 하며 실망하기는 이른 것 같다. 어느 시대, 어느 자리던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뛰어들어 새로운 땅을 밟는 모험가들이 있으니까. 창업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과거 그런 모험가들이 했던 일들의 변형일지도 모르겠다.


모험가가 많아지면 사회에 역동성이 생긴다. 물론 실패라는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해 왔던 대로가 전부가 되어버리면 그런 조직이나 사회는 금세 경직되고 자멸하게 된다. 마치 일본처럼. 개인적으로는 같은 원리가 교회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부분은 다른 기회에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출판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꼭 한 번 봐야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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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C.S.루이스 그리고 삶의 의미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이현민.전경자.백승국 옮김 / 템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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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리처드 도킨스그리고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공통점은모두 영국 유서 깊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르쳤다는 점이다물론 이들의 전공은 서로 달랐는데루이스는 영문학을 도킨스는 동물학을 주 전공으로 공부했다맥그래스의 경우 분자생물학으로 첫 박사학위를 땄고이후 신학 박사도 되었다.


저자인 맥그래스는 이 책에서 자신과 동문인 두 사람의 사상을 대조하는데루이스 전기까지도 썼던 맥그래스가 어느 쪽에 좀 더 우호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는 명확하다하지만 또한 맥그래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별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어떤 쪽을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킨스의 전제적 과학주의와 루이스의 경험적 유신론을 대조한다알다시피 도킨스는 과학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인물이다물론 과학이라는 도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를 객관적이고 상세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효과적인 도구다그러나 동시에 과학은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


과학은 선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옳고 그름 또한 과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요소다도덕과 윤리 차원만이 아니다책에서 저자는 증거에 의한 이론의 미결정성이라는 측면을 떠올리도록 한다간단히 말해서 어떤 증거가 특정한 이론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예컨대 다중우주론과 끈이론(이건 책에 나오지는 않는다)은 발견된 과학적 증거들을 설명하는 한 이론이지만같은 증거로 다른 우주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도 여전히 많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킨스는저자의 말에 따르면 증거의 완전한 부재와 완전한 증거의 부재 사이를 구분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물론 기독교는 증거로 완전히 입증되지는 않은 사상체계다그러나 그것이 증거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말이그것이 옳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는 이를 혼동(아니 일부러 조장)하고 있다는 것그는 어떤 것이 증명될 수 없다면거짓이라고 몰아붙이지만이 둘은 명백히 다른 범주다.

 


루이스는 기본적으로 합리론자였다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그것이 주는 감정적 위안이나 앞선 세대로부터 전해 받은 무비판적 순응이 아니었다사실 루이스의 기독교 관련 글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내용은 검증에의 요구저자가 잘 지적했듯루이스는 일단 기독교가 사실이라고 가정한 채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해볼 것을 도전하는데이런 식의 가설과 검증은 일반적인 과학적 절차와도 일치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루이스는 도킨스가 보지 못한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 이상을 갈구하는 존재다도킨스가 제한한 좁은 세계에 관한 비전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도킨스는 과학을 숭배했지만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은 1+1=2라는 식의 간단한 공식으로 이루어진 체계가 아니다모든 것이 과학적 방식으로 말끔하게 설명되는 세상은 도킨스의 과학주의적 동화 속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과학을 배타시하느냐그렇지는 않다저자는 과학이나 기독교는 각자가 가진 비전만을 보여줄 뿐인데이는 삶의 일부만 밝혀줄 뿐이라고 말한다대안은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다그럴 때 우리는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이건 자연을 통한 일반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 계시가 있다는 정통적인 기독교적 입장과도 일치하고어쩌면 루이스는 어렴풋이나마 이 과정을 시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고 얇은 책이라 충분히 깊은 내용까지는 담기 어려웠지만과학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와기독교와 과학의 동반자적 관계 설정의 가능성 등을 빠르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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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인문학 - 인간 욕망에서 사회 시스템까지 뉴노멀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
안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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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도 1년이 훨씬 지나버렸다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한 집단 격리와 셧다운국지적이고 세계적인 이동의 중단이 동시에 일어났고그렇게 사람과 물건의 이동과 운반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에도 문제가 생겼다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해서 (비대면 수업을 이어오긴 했으나대규모의 학력저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도 하니이번 문제의 여파는 제법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복잡할 때는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문제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급조된 해결책을 내어놓는 식으로는 누더기밖에 만들 수 없으니까그리고 이런 사회 경제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보는 데는 인문학적 관점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전염병을 역사와 문화사회적 배경 안에서 읽어내는 것이다이 책이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쓰였다.

 


     저자는 우선 역사적 관점에서 전염병을 이해해보고자 시도한다중세의 흑사병이 어떻게 사회체제를 변화시켰는지근대 초입에서 일어난 마르세유 흑사병이 일어난 원인을 추적함으로써대규모 전염병이 갖는 힘과 인간의 탐욕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한 눈에 읽어낸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도 아니고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예시도 아니다과거는 늘 반복되지도 않지만그렇다고 내일의 사건이 어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대신 우리는 역사를 읽어가며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어떤 것들이 계기가 되고문제가 확산되도록 만들었던 실책이 무엇이고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역사적 관점을 지닐 수는 없기에, 21세기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알코올을 들이마시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도시의 방역망을 뚫어 마르세유 흑사병이 퍼지게 만든 탐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애써 쌓아 놓은 방역 전선을 여기저기에서 뚫고 있다.

 


     책의 2부는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여러 나라들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시위들이 일어났었다여기에는 어떤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있었을까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와 고립된 자아라는 근대의 자아상을 비교하는 글도 있고대규모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취약계층이라는 지적팬데믹 못지않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인포데믹이라는 재앙이 끼치는 결과들 등등.


     물론 이런 고찰들이 당장의 코로나 사태를 해소하는 데 무슨 직접적인 해결책을 알려주지는 않겠지만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뉴스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이나 선동적인 어구들에 휘둘리며 대책 없는 불평만 남발하곤 한다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그런 대부분에게 돌아온다는 것.


     코로나는 산불이다작은 불이야 중구난방 어떻게든 물만 뿌리면 금세 꺼질 수 있지만거대한 산불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에모두가 큰 그림을 보며 힘을 합치든지아니면 최소한 큰 그림을 보고 있는 지시자에게 협력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걸 방해하면 누가 피해를 볼지 자명하다책에도 언급되어 있는사회의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지고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것.

 


     책의 후반부 몇 개 장은코로나 상황 이후를 조망하는 장들이다매일 엄청나게 발생하는 일회용 마스크 쓰레기 이야기로 시작해기후위기까지 이어지는 장과바이러스의 전 세계로의 급속한 확산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세계화 문제그리고 비대면 시대에 최적화되고 있는 산업형태의 미래까지.


     단순히 보건과 방역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특히 마지막 장의 제목은 “‘콘택트’ 없는 언택트는 디스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있는데편리해지고 있다는 생각만 할 수 있는 언택트 산업의 불편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다만 결론이 조금 얼버무려진 듯한 느낌은 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금세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이제 어느 정도 코로나 상황도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이게 정말 이라고 쉽게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어느 식으로든 이 문제는 우리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테니까.


     치료제 정도의 기능을 해야 할 언론이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변이 바이러스처럼 굴고 있다는 책 속의 한 구절이 인상적이다그런 언론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늘수록사회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적어도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책 한두 권 정도는 찾아 읽었으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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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감성.


     영화를 보면서 문득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일본 영화들이 떠올랐다그 중에서도 역시 아케우치 유코가 주연을 맡은 지금만나러 갑니다가 가장 먼저였다감정의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이 영화에서도 헌신적으로 가족을 보살피는 캐릭터와 조금은 무뚝뚝한 가장그리고 도시를 벗어난 시골마을의 정서 같은 게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이런 감성은 또 대만영화나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들에서도 종종 보였던 것 같다드라마에 일부 멜로적 요소가 더해지고판타지가 포인트로 더해지는 그런 영화이런 게 동양적 정서에는 제법 많이 와 닿는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여기에 가족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서 아주 제대로 관객을 자극한다각자의 생각으로 대화가 끊어지면서 오해가 큰 담처럼 쌓인 부자가 결국 속마음을 털어놓는 영화 종반 장면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그리고 또 하나이 영화의 히든카드 격인 보경의 정체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효율성.


     영화의 배경이 되는 양원역은 실제로 존재하는 기차역이다경북 봉화의 산골에 있는 두 개의 원곡마을’ 사이에 위치한 역인데영화에 나온 것처럼 기차가 아니면 마을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 자체가 없었는데도 기차역은 없어서마을 주민들은 먼 산길을 돌아가는 대신 인근 역에서 내려 기찻길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제때 피하지 못해 사망하기도 했고.


     그러면 진작 역을 하나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건설비부터 운영비까지 역 하나 운영을 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그런데 심지어 이 역을 이용하는 인원이 하루에 다섯 명도 안 되는 상황이니 타산이 나오지 않는다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역을 설치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이다결국 영화 속 이야기처럼주민들이 직접 역을 만들고 역명까지 정한 전국 최초의 역이 생겼다고 한다다만 이용자 수가 워낙에 적으니 지금은 관광열차만 운행 중이라는 소식.






     어려운 문제다이동권이라는 건 법률로 규정된 건 아니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상황이 이러면 대책을 세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 같다비슷한 부분으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 과제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데이쪽은 일종의 사회보장혹은 복지 차원에서 비용의 상당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그런데 기차까지 그렇게 운행을 하는 게 가능할까(비용 측면에서 워낙에 큰 차이가 나니까).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나 부담이 가능할까.

 






배우들의 호연.


     영화를 보며 젊은 여배우 둘이 눈에 띈다걸그룹 출신의 윤아는 제법 이런저런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어느 정도 연기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고(진짜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팍), 이야기에 색다른 느낌을 주는 보경 역의 이수경은 몇몇 작품에서 꽤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약간 시골스러운 느낌의 연기에서도 매력을 발휘한다).


     주연인 박정민의 연기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는데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자식들을 사랑했던 아버지 역의 이성민이 잡아주는 무게감도 꼭 필요했다앞서도 언급했지만이 아버지 역의 이성민이 눈물을 삼키며 털어놓는 진심이 마음을 울렸다.


     전반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중심이 되는 이야기 몇 개를 잘 조화시켰다는 느낌뻥뻥 터뜨리는 영화도 좋지만가끔은 이런 영화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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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 -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백지윤 옮김 / IVP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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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책이다제목인 알라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가볍지 않게 다가올 텐데부제인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는 이 의심과 불안을 좀 더 강화시킬지도 모르겠다책을 좀 더 읽어 나가다보면더 이상 피할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정말로 저자인 미로슬라프는 두 종교의 신이 같은 존재일 가능성을매우 진지하게그리고 우호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가 왜 이 작업을 시작했는지를 알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이 책에서 저자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구원이 아니라, ‘화해’, 또는 평화이다그러니까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영원한 복된 상태를 누릴 것인가가 아니라오랫동안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온 두 종교가 서로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애초의 목적이 이런 것이었다면굳이 이 책의 작업그러니까 두 종교의 신이 같은 존재임을 역설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다두 종교의 신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에는 무엇보다 이웃사랑이 중요한 덕목으로 명령되고 있으니 말이다문제는 신앙인들이 그들의 경전을 충분히 존중하지도따르지도 않는다는 점이지두 신앙이 본질적으로 서로를 적대하는가가 아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보자그러면 저자는 어떤 식으로 이 두 종교의 신이 같은 존재임을 설득하려 할까유일신 종교라고는 하지만삼위일체라는 개념은 두 종교의 신관에서 결정적인 차이로 보인다실제로 이슬람교의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우상숭배로 평가되기까지 하니까.


     저자는 몇 가지로 이를 완화시키려 하는데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독교인들 역시 무슬림들이 비판하는 식의 삼위일체 이해를 문제로 여긴다는 부분이다무슬림들이 삼위일체를 불편해 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이 세 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그러나 정통적인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믿지, ‘세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삼위일체란 한 분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양식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그림일 뿐이다.


     물론 이 주장을 무슬림들이 받아들인다면 중요한 포인트에서 상당한 정도의 의견일치를 이룰 수도 있을지 모른다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좀 더 단순한 해결책(기독교의 설명은 틀렸고자신들은 옳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양측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이 비슷하다는 부분도 주요한 논거로 제시된다신은 오직 한 분이시고창조주이시며피조물과는 구별되는 존재이다그분은 선하고자비로우시며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요구하신다이렇게 비슷한 존재는 서로 같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사실 이 문제는 단순한 유비의 차원은 아니고제시된 신의 속성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오직 한 분인 신을 믿는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신을 믿는 게 아닌가같은 논리가 만들어지지 않고오히려 만드신 분을 믿을 때도 적용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저자의 결론보다 좀 더 쉬운 해설이 존재한다양측이 같은 신을 섬기지만 한 쪽이 왜곡된 형태로 섬기고 있다는 결론이다사실 이건 마르틴 루터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해법이기도 한데그 방향을 바꿔도 마찬가지로 통할 수 있다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내버리면 결국 서로 간의 반복은 좀 더 심해질 뿐이건 평화라는 애초의 저자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

 


     때문에 저자는 이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은근하게 제시한다같은 신을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왜곡된(혹은 제한된형태로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사실 이 부분은 직접 표현된 건 아니지만신에 대해 우리가 모든 걸 알 수 없다는 불가해성혹은 신앙의 신비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암시적으로 제안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 이해가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없으니까좀 더 열린 마음으로 한 분 하나님을 믿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해 볼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다만 신앙이라는 게 그렇게 논의를 위한 중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실제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무시한 채몇몇 신학자들의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게 한계.


     결국 저자의 논의는 사랑의 요구라는 윤리적 차원과 공공선에 대한 호소로 넘어가는데사실 평화를 위한 논의라면 이런 차원도 나쁘지는 않다그렇게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 신을 섬긴다면서 상대를 파괴하려고 하는 일에 나서는 건 무엇보다 자기 신앙을 부인하는 일이 아니겠는가다만 책의 결론부로서는 조금 약한 느낌도 들고.

 


     저자가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을 좀 더 말해보자저자는 삼위일체 문제를 신의 불가해성신비라는 측면으로 어느 정도 조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문제는 이슬람교의 가르침에는 그런 식의 조화 가능성 자체를 무산시키는 내용이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삼위의 이위인 성자예수를 단순한 선지자들 중 한 명(물론 꽤 존경심을 담아서)으로 설명한다애초에 예수의 신성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건데이 문제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정교하게 분리해 사고하는 고대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걸까?


     또물론 의도적으로 저자는 구원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지만과연 신앙을 다루면서 이 부분을 빼놓을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를 빼버린다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양 종교의 신자들 대부분이 저자가 제안하는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려 들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설득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고 본다그러나 이건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이지그 목적 자체는 충분히 공감하고응원하고 싶다기독교인과 무슬림이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료로서 우애를 쌓을 수도협력할 수도 있다다만 우리 사이에 높이 쌓인 혐오와 불신의 벽을 허무는 데는 문자보다는 영의 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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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10-04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평화에 집중해서 이 주제를 연구했다는 게 볼프스럽네요.
이 주제는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인데, 늘 구원의 문제에서 사고가 딱 막힙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은 있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고, 반대의 주장은 종교간 대화를 어렵게 하고요. 비단 기독교만이 아니라 종교간 통합을 이루랴는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저는 볼프가 삼위일체의 불가해성에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약화시킨 것 같아 불만입니다.. 루이스의 말처럼 삼위일체야말로 다른 종교에는 없는 기독교만의 교리일텐데 말이에요. 볼프가 화해와 평화을 강조하다 중요한 부분들을 애써 간과하려 한 것 같은 느낌이네요..
서로 다른 종교의 신학적/종교적 화해는 어쩌면 이뤄질 수 없는 과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저 겸손과 존중을 가지고 다른 종교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 같기도 합니다

노란가방 2021-10-04 22:56   좋아요 0 | URL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전투‘에서 언뜻 보여주었던 것처럼,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심지어 타슈를 섬기던 사람이라도) 한 곳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다려 볼 일입니다. 볼프의 (암시적인) 생각처럼 그곳에 진실한 기독교인과 진실한 무슬림들이 함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요. 공공선을 위한 협력, 이웃에 대한 호의와 사랑, 민주주의 안에서의 다양성 존중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김민우 2021-10-04 2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덕분에 또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