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이 책은 그 무기를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역사의 교훈” 같은 것을 이르는 듯하다. 다만 역사라는 건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달라지곤 해서, 누가 그것을 읽느냐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모두 스물 세 명의 기고자들의 글을 엮은 이 책의 경우, 각각의 기고자들의 성향을 분석할 수는 없고, 이를 모아 낸 문예춘추라는 출판사(이자 월간지 이름)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찾아보니 일본의 유명한 우익 출판사라고 한다. 다만 모든 글에서 우익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건 아니고, 사안을 ‘다르게 보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부각하기’의 과정에서 다분히 일본 중심적으로 역사를 읽고 있다는 느낌은 종종 받게 된다.
예컨대 근현대를 다루는 파트에서 미국의 민주당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제로 쓴 글을 보면, 과거 민주당이 노예제를 옹호하던 정당이었으나 교묘하게 과거를 숨기고 있다(!)면서 민주당 정권을 인종차별 정권이라는 식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두 개의 원자폭탄을 배치한다. 문제는 여기 어디에도 일제가 당시에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 물론 글의 논지가 미국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긴 하지만, 일본은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원폭의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로서만 서술된다. 전형적인 우익적 논설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멸망을 다루는 글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이민족의 수용에서 찾고, 이를 현대의 난민 문제와 연결시키는 시도도 보인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형식적, 내용적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중원을 지배한 수많은 이민족들이 결국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점과 비교하면서 중국은 문화적 가치가 민중 전체에게 공유되었지만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조금은 성급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또 종교와 관련된 내용도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기초해 접근을 하니 피상적인 고찰만 나올 뿐이다. 애초에 애정이 없는 대상에 관해 쓴 글은 재미있기도 어렵다. 로마가 예수의 처형 이후 그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운동(기독교)의 의미를 깨닫고,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은근 사도들의 활동을 지지한 것 같다는 주장은, 당시 아직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화가 유대인들 내부에서도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그다지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