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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 - 신앙과 이성의 만남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마이클 고힌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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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인 C. S. 루이스는, 중세 영문학에 관한 그의 뛰어난 식견과 훌륭한 강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교수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건 그가 정교수직에 큰 욕심이 없었다거나 교수직 외에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간절히 그 자리를 원했고, 먼저 정교수가 되었던 톨킨(“반지의 제왕을 쓴 바로 그 작가) 같은 이들이 측면 지원까지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결국 그는 케임브리지에 새롭게 만들어진 영문학과로 자리를 옮기고 정교수가 되었다.

 

     루이스의 정교수직을 가로 막은 것은 그의 동료들이었다. 당시 옥스퍼드에서는 새로운 정교수를 선발할 때, 선배 정교수들의 의사가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그들은 루이스의 행적을 문제 삼아 번번이 낙마시켰다. 가장 큰 이유는 루이스가 지나치게 기독교에 관한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학문적인 태도가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물론 그 중에는 루이스의 인기를 질투했던 이들이 있었다고 본다)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이런 분위기가 학계를 지배했다. 신앙은 오직 개인적인 차원에서 간직할 것이고, 공적인 자리에서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신앙과 일상 사이의 이원론을 강요한 것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앙을 갖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식의 무언의 압력을 접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얼마나 옳은 걸까? 그 근거는 무엇이고, 어디서 온 걸까?

 

 

     서양 철학사 전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누며 훑어가는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성과 신앙의 극단적인 분리는 근대철학에서 강렬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실은 둘 사이를 종합하려고 했던 중세 철학자들(이들은 당연히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많은 수가 수도사이기도 했으니까.)에게서도 나타난다. 특히 그 대표적인 인물이 토마스 아퀴나스니까.

 

     물론 아퀴나스나 스코투스 오컴 같은 인물은 기독교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신앙을 안전한 그릇에 담아두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신앙의 영향력을 제한시키고, 세상 전반을 자율적인 이성에게 내어주는 식이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성이 옳게만 사용된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가치중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혹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고, 이런 입장을 좀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현대 철학자들에게서 기독교는 사실상 제거되어 버렸다.

 

     그러나 최근 서구에서,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기독교 철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들은 철학이(그리고 다양한 학문과 사상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음을 지적함으로 그들의 작업을 시작한다. 반격이 시작됐다

 

 

     ​모든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입장, 혹은 입지 위에서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이건 다른 말로 신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즉 기독교인들만 신앙 위에서 철학 작업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건 모든 것을 물질세계 안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자연주의자들이나 관념론자들,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스트들까지도 동일한 상황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그들의 신앙을 전제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저자들은 어떻게 기독교 철학자들이 그들의 학문 작업에 신앙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간략하지만 충실하게 소개한다. 이들의 주장은 유물론이나 자연주의에 기초한 이들의 주장과 대등하게 공적 영역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는 듯한 인상이다. 과연 우리는 기독교 철학의 부흥을 다시 보게 될까.

 

 

     저자들은 서양 철학사에 등장하는 주요 철학자들을 시대 순으로 소개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제들, 이들의 주장에 어떤 신앙이 담겨 있는지, 또 이들의 철학이 가지는 한계는 무엇인지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만 하더라도 철학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잘 정리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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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aal 2020-02-09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노란가방 2020-02-10 04: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책읽어주는보아스 2020-02-21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목요연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노란가방 2020-02-21 14:59   좋아요 0 | URL
잘 쓴 글은 아니었는데.... 감사합니다. ^^
 
수피즘 - 신의 유혹
신은희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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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적으로 10억이 훌쩍 넘는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슬람교는 그리 가까운 종교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워 할 테니까. 그 중에서도 수피는 또 다른 이해가 필요한 종파다. 나 역시 텔레비전 등에서 한 자리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는 신기한 모습을 본 게 거의 전부고,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종파라는 설명을 간신히 입력해 놓은 상태니까.

 

 

     이 책은 본격적으로 수피 신앙(수피즘) 대한 연구서다. 기본적으로 수피가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당시 근동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던 기독교 일파(정교회와 다양한 동방 기독교들)를 비롯한 불교의 철학과 수행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아예 책의 2장은 기독교 신비주의자였던 에크하르트와 수피즘 철학의 거두였던 루미(난 이 인물을 그냥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아주 틀린 건 아니었지만)를 비교하면서 수피즘과 기독교 신비주의 사이의 유사점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3장과 4장에서는 수피즘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시인인 루미를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 여정과 그의 종교적 활동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텔레비전 속 인상적인 수피들의 모습인 빙글빙글 도는 춤을 가리키는 세마 의식에 관한 설명과, 수피즘을 잘 표현하는 시들에 관한 분석까지 종합적으로 다룬다.

 

 

     ​우선 수피즘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괜찮은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관련 정보를 이만큼 담은 책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드니까.(어색한 문장들이 종종 보이는 건, 정보를 위한 책이라면 감수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종교학 전공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일단 유사성만 조금 보이면 다들 한데 묶어 비슷한 것으로 보려는 시도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특히 기독교 신비주의와 이슬람 신비주의 사이의 양태적 유사성을 본질적 유사성으로 치환하려는 대목이 몇몇 보이는데, 특히 기독교의 성령에 관한 저자의 이해는 생각보다 많이 이탈해 있다. 기본적으로 종교에 관한 진화론적 이해에 기초해 있는 태도다.(전제에 입각한 설명이라는 말이다)

 

     책 전체에 걸쳐 수피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루미라는 인물에 관한 설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책 후반에 소개 된 그를 비롯한 수피 시인들의 시에서 과도한 해석을 이끌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그 예술성은 차치하고, 그 신앙적 함의가 지나치게 우호적, 혹은 신성화되어있달까. 물론 그 시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부터 시작해 평소의 가르침 등 다양한 내용을 알아야 하겠지만.

 

 

     수피즘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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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 살림지식총서 264
조규홍 지음 / 살림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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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중세 철학을 배울 때 이래로 오랜만에 들어본 이름이다. 플로티노스.(라틴어 발음을 따라 플로티누스라고도 부른다.)하면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정도로 간략하게 알고 있었다. 유출설로 대변되는 그의 존재론과 여기에 영지주의적 관점이 들러붙어 만들어진 종교적 특성, 그리고 이런 것들이 기독교회에 미친 영향력 정도까지.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다만 살림지식총서의 특징 중 하나인 얇게, 핵심만 간단히를 깜빡했다. 그래도 80페이지가 넘으면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리고 심지어 책의 부제도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였지만, 책은 이 부분 보다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인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자였던 플로티노스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완전성을 찾았고, 그것은 고대 철학자들을 따라 일자(一者)’로 여겨졌다. 세상은 이 존재로부터 흘러나왔고, 논리상 멀리 흘러나온 것은 일자와 가장 연관성이 적어지게 된다. 일자로 돌아가는 것이 완전성을 회복하는 지복의 상태로의 회복이라면 인간 삶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닌 완전한 일자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여기서 성속 이원론의 싹이 보인다)

 

   저자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동양철학과의 유사성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일자와의 합일은 자연히 자신(자아)을 잃어버리도록 만들고 이건 동양의 선() 사상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흥미로운 통찰이다.

 

   다만 그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한계라든지, 그것이 기독교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설명은 조금 부족하다.(책의 시리즈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특히 부제를 보고 나와 같은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긴 사람이라면 더욱 이 부분이 아쉬울 듯.

 

 

   딱 플로티노스 사상을 간단히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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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예술 - 창조세계의 샬롬을 회복하는 예술의 실천적 본질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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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적 관점으로 미학을 설명하는 책. 저자는 예술을 오로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늘날의 고급예술관을 반박하면서, 예술이 갖는 공()적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세기경에 등장한 새로운(그러나 이제는 주류가 된) 예술에 대한 관점은, 예술이 갖는 다양한 용도들 중 하나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것이다.(58-59)

 

     이런 관점은 작품에 대한 심미적 감상 이외의 태도를 배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심미적인 감상 자체를 최고의 목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조물주로 여겨지게 되었다.(101) 그는 다양한 현실적 제약들을 극복하며 투쟁하는(이 과정에서 현대 예술의 다양한 파괴적 모습이 등장한다) 인물이 된 것이다.(107)

 

     이에 대해 저자는 창조 세계의 선함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아래, 예술가가 반드시 자연을 창조를 위한 파괴의 대상으로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술가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책임이라는 단어로 특징 지워진다. 인간은 책임을 지는 존재이며, 이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주변의 자연세계와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부여 받은 존재로(145-151),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151)

 

     저자는 예술계에 샬롬을 바라며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162) 기독교인들은 고급예술속에 짙게 배어 있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예술을 통해 그들의 가장 깊은 확신들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64-365)

 

  

2. 감상평 。。。。。。。

     어려운 책을 집어 들었다. 미학. 현대철학의 제 분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다. 사실 저자와 역자 모두가 유명한 책이니 별 고민 없이 구입을 했지만, 막상 제대로 읽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위의 요약에는 다 적어두지 않았지만, 예술과 아름다움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갖는 구체적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한참 진행될 때는 논지를 쫓아가는 데만도 숨이 찼으니까.(서문에 이 책이 전문가들을 위한 게 아니라 훨씬 더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써 있었지만, 난 그 넓은 독자층에도 못 들어가나 보다.)

 

 

     흔히 예술 하면 막연히 어렵고 두려움이 드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잘 모르니까, 말하기도 겁나고, 누가 예술작품이라고 일장 해설이라도 시작할라 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만 끄덕이기 십상이다. 소변기를 갖다 두고도 예술이라고 치켜세우면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상한 감상적 예술관을 비판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칭할 수 있는지를 깊게 탐구해 나간다. 오늘날 일반적인 심미적 감상 중심의 예술은 고작 18세기에나 발생한 것이고,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는 예술의 공공적 성격이 훨씬 더 일반적이었다. 그 모든 배경으로부터 떼어내서 전문가들이나 아는 논리와 단어를 동원해 예술화하는 경향은 생각보다 정당성이 적은 주장이다.

 

     예술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강조는 확실히 예술에 대한 이해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준다. 작품에는 그것이 속한 시대적 맥락이 있고, 작가를 비록한 공동체의 제작 목적이 있다. 이런 것들과 완전히 분리된 채로 이루어지는 감상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관점이다. 우리도 너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기독교 관점에서 미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책 중간중간 실제적인 적용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부분들이 자주 보인다. 관련 부분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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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101가지 철학 개념
켈리 제임스 클락 외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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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원제인 101 Key Terms in Philosophy and Their Importance for Theology”를 직역하면, “101가지 철학 핵심용어, 그리고 그것들의 신학에서의 중요성정도가 되겠다. 무슨 말인지는 분명히 알겠지만, 좀 딱딱한 느낌. 그에 비해 우리말 번역서의 제목은 내용도 쉽게 이해가 되면서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잘 된 번역.

 

     제목에도 나와 있듯, 이 책은 신학과 관련이 있는 철학용어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구조는 백과사전 형태로 되어 있어서, 원하는 용어를 가나다순에 따라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용어소개에 머물지 않고, (그 정도라면 그냥 기존의 철학사전이나 개론서를 봐도 될 것이다) 각 용어들(그리고 인물들)이 신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소개를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색이다.

 

     예를 들면 미학에 관한 항목에서는, 영원한 실재를 바랐던 플라톤이 예술을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이런 관점은 플라톤의 영향력을 짙게 받았던 초대교회에 미적인 것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고 아울러 설명한다. , 스토아철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정의와 함의는 물론 스토아철학이 윤리학과 신론의 측면에서 기독교 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덧붙이는 식이다.

 

 

2. 감상평 。。。。。。。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최초의 신학자들은 사실상 그리스 철학에 익숙한 철학자들이었고, 그들의 신학작업은 그들의 철학작업과 크게 구분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완전한 철학으로 설명하고자 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이건 꼭 일방향으로만 영향을 준 건 아니라서, 어느 시점에는 역 방향으로, 그러니까 신학적 관심에 의한 철학발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이 둘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 지점도 속출하고.(아퀴나스의 작업은 신학적인가 철학적인가)

 

     어찌되었든, 이런 이유 때문에 신학적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철학적 소양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사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 해야 하겠고) 이 책은 철학과 신학이 서로 연계되는 지점을 사전 형식으로 잘 정리해 두었기에,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

 

 

     가나다순의 항목 배열은 원하는 항목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다. 또 책의 콘셉트를 강화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다만 철학은 일종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학문인데, 역사적 순서를 따라 배열했다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철학 사조들, 철학자들의 흐름을 좀 더 쉽게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튼 이 배열대로라면 데카르트보다 플라톤이 훨씬 뒤에, 헤겔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훨씬 앞에 나오게 되니까. 물론 이렇게 되면 그냥 평범한 철학사 책이 되어 버리려나?

 

     간만에 예전 대학 시절 수강했던 철학 강의를 들은 기분. 기분 좋은 회상이란 느낌. 여기에 몇몇 괜찮은 정보를 얻게 된 소득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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