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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 살림지식총서 264
조규홍 지음 / 살림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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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중세 철학을 배울 때 이래로 오랜만에 들어본 이름이다. 플로티노스.(라틴어 발음을 따라 플로티누스라고도 부른다.)하면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정도로 간략하게 알고 있었다. 유출설로 대변되는 그의 존재론과 여기에 영지주의적 관점이 들러붙어 만들어진 종교적 특성, 그리고 이런 것들이 기독교회에 미친 영향력 정도까지.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다만 살림지식총서의 특징 중 하나인 얇게, 핵심만 간단히를 깜빡했다. 그래도 80페이지가 넘으면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리고 심지어 책의 부제도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였지만, 책은 이 부분 보다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인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자였던 플로티노스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완전성을 찾았고, 그것은 고대 철학자들을 따라 일자(一者)’로 여겨졌다. 세상은 이 존재로부터 흘러나왔고, 논리상 멀리 흘러나온 것은 일자와 가장 연관성이 적어지게 된다. 일자로 돌아가는 것이 완전성을 회복하는 지복의 상태로의 회복이라면 인간 삶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닌 완전한 일자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여기서 성속 이원론의 싹이 보인다)

 

   저자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동양철학과의 유사성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일자와의 합일은 자연히 자신(자아)을 잃어버리도록 만들고 이건 동양의 선() 사상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흥미로운 통찰이다.

 

   다만 그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한계라든지, 그것이 기독교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설명은 조금 부족하다.(책의 시리즈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특히 부제를 보고 나와 같은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긴 사람이라면 더욱 이 부분이 아쉬울 듯.

 

 

   딱 플로티노스 사상을 간단히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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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예술 - 창조세계의 샬롬을 회복하는 예술의 실천적 본질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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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적 관점으로 미학을 설명하는 책. 저자는 예술을 오로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늘날의 고급예술관을 반박하면서, 예술이 갖는 공()적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세기경에 등장한 새로운(그러나 이제는 주류가 된) 예술에 대한 관점은, 예술이 갖는 다양한 용도들 중 하나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것이다.(58-59)

 

     이런 관점은 작품에 대한 심미적 감상 이외의 태도를 배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심미적인 감상 자체를 최고의 목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조물주로 여겨지게 되었다.(101) 그는 다양한 현실적 제약들을 극복하며 투쟁하는(이 과정에서 현대 예술의 다양한 파괴적 모습이 등장한다) 인물이 된 것이다.(107)

 

     이에 대해 저자는 창조 세계의 선함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아래, 예술가가 반드시 자연을 창조를 위한 파괴의 대상으로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술가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책임이라는 단어로 특징 지워진다. 인간은 책임을 지는 존재이며, 이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주변의 자연세계와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부여 받은 존재로(145-151),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151)

 

     저자는 예술계에 샬롬을 바라며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162) 기독교인들은 고급예술속에 짙게 배어 있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예술을 통해 그들의 가장 깊은 확신들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364-365)

 

  

2. 감상평 。。。。。。。

     어려운 책을 집어 들었다. 미학. 현대철학의 제 분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다. 사실 저자와 역자 모두가 유명한 책이니 별 고민 없이 구입을 했지만, 막상 제대로 읽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위의 요약에는 다 적어두지 않았지만, 예술과 아름다움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갖는 구체적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한참 진행될 때는 논지를 쫓아가는 데만도 숨이 찼으니까.(서문에 이 책이 전문가들을 위한 게 아니라 훨씬 더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써 있었지만, 난 그 넓은 독자층에도 못 들어가나 보다.)

 

 

     흔히 예술 하면 막연히 어렵고 두려움이 드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잘 모르니까, 말하기도 겁나고, 누가 예술작품이라고 일장 해설이라도 시작할라 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만 끄덕이기 십상이다. 소변기를 갖다 두고도 예술이라고 치켜세우면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상한 감상적 예술관을 비판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칭할 수 있는지를 깊게 탐구해 나간다. 오늘날 일반적인 심미적 감상 중심의 예술은 고작 18세기에나 발생한 것이고,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는 예술의 공공적 성격이 훨씬 더 일반적이었다. 그 모든 배경으로부터 떼어내서 전문가들이나 아는 논리와 단어를 동원해 예술화하는 경향은 생각보다 정당성이 적은 주장이다.

 

     예술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강조는 확실히 예술에 대한 이해에 신선한 자극을 던져준다. 작품에는 그것이 속한 시대적 맥락이 있고, 작가를 비록한 공동체의 제작 목적이 있다. 이런 것들과 완전히 분리된 채로 이루어지는 감상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관점이다. 우리도 너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기독교 관점에서 미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책 중간중간 실제적인 적용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부분들이 자주 보인다. 관련 부분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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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101가지 철학 개념
켈리 제임스 클락 외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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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원제인 101 Key Terms in Philosophy and Their Importance for Theology”를 직역하면, “101가지 철학 핵심용어, 그리고 그것들의 신학에서의 중요성정도가 되겠다. 무슨 말인지는 분명히 알겠지만, 좀 딱딱한 느낌. 그에 비해 우리말 번역서의 제목은 내용도 쉽게 이해가 되면서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잘 된 번역.

 

     제목에도 나와 있듯, 이 책은 신학과 관련이 있는 철학용어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구조는 백과사전 형태로 되어 있어서, 원하는 용어를 가나다순에 따라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용어소개에 머물지 않고, (그 정도라면 그냥 기존의 철학사전이나 개론서를 봐도 될 것이다) 각 용어들(그리고 인물들)이 신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소개를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색이다.

 

     예를 들면 미학에 관한 항목에서는, 영원한 실재를 바랐던 플라톤이 예술을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이런 관점은 플라톤의 영향력을 짙게 받았던 초대교회에 미적인 것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고 아울러 설명한다. , 스토아철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정의와 함의는 물론 스토아철학이 윤리학과 신론의 측면에서 기독교 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덧붙이는 식이다.

 

 

2. 감상평 。。。。。。。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최초의 신학자들은 사실상 그리스 철학에 익숙한 철학자들이었고, 그들의 신학작업은 그들의 철학작업과 크게 구분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완전한 철학으로 설명하고자 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이건 꼭 일방향으로만 영향을 준 건 아니라서, 어느 시점에는 역 방향으로, 그러니까 신학적 관심에 의한 철학발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이 둘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 지점도 속출하고.(아퀴나스의 작업은 신학적인가 철학적인가)

 

     어찌되었든, 이런 이유 때문에 신학적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철학적 소양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사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 해야 하겠고) 이 책은 철학과 신학이 서로 연계되는 지점을 사전 형식으로 잘 정리해 두었기에,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

 

 

     가나다순의 항목 배열은 원하는 항목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다. 또 책의 콘셉트를 강화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다만 철학은 일종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학문인데, 역사적 순서를 따라 배열했다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철학 사조들, 철학자들의 흐름을 좀 더 쉽게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튼 이 배열대로라면 데카르트보다 플라톤이 훨씬 뒤에, 헤겔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훨씬 앞에 나오게 되니까. 물론 이렇게 되면 그냥 평범한 철학사 책이 되어 버리려나?

 

     간만에 예전 대학 시절 수강했던 철학 강의를 들은 기분. 기분 좋은 회상이란 느낌. 여기에 몇몇 괜찮은 정보를 얻게 된 소득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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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아름다운 삶을 위한 철학의 기술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영태 옮김 / 책세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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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삶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철학적 사고를 통해 삶을 좀 더 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는 것. 사실 근대와 현대의 철학자들이 관심대상을 완전히 물질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으로 국한시키기 이전의 철학은 원래 그런 것을 다뤘었다.

 

철학이 삶을 다스리는 기술에 대한 자체의 전통적 연관을 다시 발견해낸다면 삶에 대한 성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에 대한 이런 새로운 이해가 삶의 기술 철학의 관심사이다.

 

      처음 세 개의 장은 이런 삶의 철학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설명하고, 나머지 장들에서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습관, 쾌락, 고통, 죽음, 시간 사용, 불안과 우울, 생태적 관점 등등)을 바라보는 좀 다른 관점들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2. 감상평 。。。。。。。

     저자가 제시하는 삶의 철학의 특징은 다르게 보기이다. 예를 들어 죽음은 삶의 한계를 지어줌으로써 더욱 알찬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가장 고유한 경험인 고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면 자기 자신과의 관계 또한 단절되어 버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우리 삶을 두렵게 만들고 걱정시키는 여러 문제들을 오히려 삶의 도구로 바꾸어버리는 적극적이고 긍정적 관점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철학사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하는 고대철학자들이 떠오른다. 세상을 논하고, 삶을 논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거대하기도 하면서, 웅장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급속도로 작아져버린다. 영웅들의 시대는 가버리고 이제는 그냥 골목을 주름잡는 이들만 남아버렸달까. 우주와 삶에 관한 성찰은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단어와 개념에 집착하는 (조금은 편집증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현대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별 매력이 없었다.

 

     자신도 시대적으로만 보면 현대에 속한 철학자이면서, 고대의 철학의 되살리는 저자는 좀 흥미로운 캐릭터다. 책을 읽으면서는 여러 군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보였고. ‘철학적 영혼의 치유사라는 타이틀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용기를 북돋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사람.

     다만 이 과정이 철저하게 개인의 사고만을 통해서 가능한 건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좀 의심스럽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이런 주제를 오랫동안 다뤄 온) 어떤 종교적 권위도, 그렇다고 (현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 과학적 근거를 의지하지 않는다. 오직 사유만으로 이 모든 걸 쌓아 올린다는 말인 걸까? 그걸로 충분한 걸까?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을 그렇게 믿어도 되는 걸까?

 

     물론 이 책에 실린 삶의 철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도그마가 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가치는 삶의 매뉴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 좀 더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데 있는 거니까. 그런 목적이라면 조금은 어렵지만 충분히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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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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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삶이 끝난 이후에도 삶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사후의 삶이라는 것이 모순적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죽음이란 삶이 끝난 상태인데, 어떻게 또 이 가능 하느냐는 논리다. 이어 몇 개의 장에 걸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한 두 주장오직 육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일원론과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론에 관한 논의를 하는데, 여기에서 저자의 논지는 분명하다.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가 없으므로, (자신에게는) 일원론을 따르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생각된다는 것.

 

     인간의 본질에 관한 논의에 이어 본격적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해 살피는 장들로 넘어간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앞서와 같은 사고실험들을 끊임없이 계속하는데, 예컨대 죽음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놓고서는, 우리의 삶이 지속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상태라면 그것이 중단된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나쁜 것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임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식의 결론을 제시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삶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그렇게 지속되는 기간 동안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아는 한 어떤 일도, 100, 1000년 계속되어도 즐거운 것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가치는 행복’(혹은 쾌락)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전제는 자연스럽게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것을 누군가 허락할 것인가(다양한 유형의 자살에 관한 논의) 하는 질문에, 만약 어떤 사람의 삶이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하다면, 그 생명을 어느 순간 중단시키는 것도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식으로까지 이어진다.

 

 

2. 감상평 。。。。。。。

 

     우선 책 뒷표지에 실린 홍보문구를 집고 넘어가자. “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학생이 끝까지 들으려던 강의인가?”라는 도발적인 문구인데, 사실 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래, 그 정도로 깊은 감동과 교훈, 가치를 지닌 강의란 말인가? 그런데 책 속에 간략히 소개된 이야기에 따르면, 그 학생이 정말로 꼭 이 강의를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 학생은 졸업 전에 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그 과정에서 이 강좌를 수강했다는 것이 팩트.

 

     꼭 이 강의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 속에는 딱히 설명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다면 어쩌면 이 강의가 학점을 잘 줬거나, 과제가 적거나, 병원치료와 시간이 맞았거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좀 싱거운 사실.

 

     ​물론 이 강의의 내용이 그 학생에게 위로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그저 기계일 뿐이고, 영혼은 없으며(정확히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물리적인 증거가 없으며), 따라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며, 즐거움이 다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용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강의를 듣고 그 학생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삶을 정리하는 데 일정부분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고.

 

 

     사실 저자의 철학적 논리 전개 방식이 썩 인상적이거나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책 초반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원론적 입장에 대한 공격에서 저자가 사용하는 것은 플라톤의 저작 속에 나오는 영혼의 불멸 사상인데, 사실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플라톤 식의 이유를 들어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런 전략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저자는 영혼의 존재에 관해서 아직까지 그걸 인정해야만 하는 증거가 없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물론 여기에서 증거는 물리적인 증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영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본 개념상 물리적인 육체와는 다른 질적 양상을 지닌 무엇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물리적이지 않은 무엇을 물리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만 한다는 요구가 과연 적절한 걸까?

 

     ​나아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저자의 또 다른 유력한 주장인, ‘영혼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저자 자신도 인정하는,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기 때문. 이 부분은 얼마 전 읽었던 C. S. 루이스의 위험한 생각에서도 다루고 있는 문제와도 비슷하다. 어떻게 우연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게 된 인간의 육체가 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나아가 논리이성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 역시 아직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67)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입장(오직 육체만 존재한다)은 철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언젠가 그 원리가 자연주의에 입각한 방식으로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영원히 살아가고픈 인생을 여러분은 과연 상상할 수 있겠는가?(339)라고 물으며 영생에 대한 소망을 비웃는 부분 역시 딱히 논리적으로 일관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몇 페이지 앞에서(271)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

 

 

     ​철저하게 논리를 기반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가 죽음에 관해 물리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건 죽어 있는 육체일 뿐이니까. 매미의 사체를 해부한다고 해서 매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고, 꽃잎을 샅샅이 조각낸다고 해서 꽃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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