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어질.


영화는 범죄 추적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는 우상(강하늘)의 방송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장을 빼 입고, 조금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마치 전문 프로파일러처럼 방송을 하지만, 영화 내내 그의 진짜 스펙이라든지, 자격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밝혀진 바가 없다. 사실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게 다들 그런 식이긴 하지만.


최근 발생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방송을 시작한 우상은, 나름 여러 조사들 끝에 조금씩 범인의 활동 범위를 특정해 나가고 있었는데, 여기에 함께 했던 여성 스트리머 한 명이 갑자기 납치가 되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 제한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여성을 살해하겠다는 연쇄살인범. 우상은 그를 쫓기 위해 카메라를 켜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는데, 감독은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우상의 방송 화면으로 채운다.


덕분에 영상은 꽤나 흔들리는 느낌이다. 실제로 흔들렸는지, 시종일관 여기저기 들쑤시며 뛰어다니는 덕분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어질어질하다. 내용도 허술하고, 범행의 동기랄 것도 허접하고, 범인과 주인공이 얼굴을 마주하는 데도 별다른 긴장감 따위는 없다. 애초에 일개 스트리머가 연쇄살인범을 금세 추적할 수 있는데, 경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범인을 추격하면서도 실시간 방송을 끄지 않고 있는 건 상대방에게 내 패를 다 까고 자기를 두겠다는 건데, 이쯤 되면 그냥 멍청한 거다.





선정성.


영화 속 스트리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튜버나, 틱토커 기타 등등..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히 경쟁도 심해지고, 서로 더 눈에 띄기 위한 소재와 영상을 꾸며대는 데 집중한다. 여기에 영화 속 우상이 활동하는 플랫폼에서는 최고 추천을 받은 스트리머에게는 50%에 달하는 플랫폼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이런 흐름을 강화시킨다. 점점 선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그렇게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영상일수록, 이야기의 맥락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승전-노출이라든지, 이른바 사이버래카라고 불리는 무차별 무지성 폭로 콘텐츠 같은 것들이 범람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예 작정하고 협박 같은 범죄까지 저지르는 이들이 있으니..


뭐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나 쓰레기들이 쌓일 수밖에 없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온라인 공간에 쌓이는 이런 쓰레기들은 종종 사람들까지 위협하니 더 문제다(아, 오프라인 공간의 쓰레기도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건 마찬가지인가). 다만 영화 속에는 이런 문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 자체도 그런 선정성에만 집중하는 느낌이니까.





솔직히 이야기 하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강하늘은 나름 젊은 배우치고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워낙 캐릭터 자체가 허접하고, 허세로 가득 차 있는, 좀처럼 몰입하기 어려웠던 지라 연기력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조연이나 주조연급 배우들도 얼굴이 그리 익지 않아서인지 연기가 훌륭하다는 느낌도 별로 없고. 이쯤 되면 솔직히 그냥 시간 때우기 용, 혹은 콘텐츠 목록 늘리기용 영상물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주제 의식 자체가 삐뚤어져 있거나, 혐오감을 주는 지경까지는 아니다. 그냥 평범에 지루함이 조금 섞인 수준. 뭐 일단 재생해 놓고 다른 일을 하는 식으로라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너무 복잡한.


영화의 시작은 익숙한 퇴마의식 장면이다. 이민기가 잘 생긴 얼굴로 구마 사제 반해신 신부 역을 하는데, 영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단골 레퍼토리인 라틴어 축귀문 발음은 국어책을 읽는 듯하고, 그렇다고 의식 자체에서 뭔가 실감나는 공포나 으스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이 영화가 엑소시즘을 주로 하고 있다면 시작부터 기대가 많이 꺾이는 부분.


악귀에 들린 아이 소미(이레)는 얼마 전 심장 수술을 받은 모양이다. 수술의 집도는 아버지인 차승도(박신양)가 맡았었고. 어쩌다가 악귀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는 극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데, 이게 너무 늦다. 그때까지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게 다 뭔 소동인가 하는 마음으로, 썩 몰입되지 않는 과정을 따라갈 뿐이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의 또 하나의 축으로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즉 부정(父情)을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영화 내내 딸의 이름만 부르며 오열하기에 바쁜 차승도 캐릭터가 이를 담당하는 인물인데, 오랜만에 영화에서 만나는 박신양의 연기는 딱히 문제 삼을 게 없으나 그가 맡은 캐릭터가 좀처럼 답답함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관객은 이 인물에게 몰입을 해야 되는 상황인데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반 신부가 분명 악귀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는데도 다시 사로잡혔다가 결국 현장에서 사망을 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실은 또 하나의 악귀가 숨어 있었다는 설정이고, 그 과정에 소미의 심장 수술이 관련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장기이식수술과 관련된 의료부정, 비리 건까지 더해진다. 어디까지 복잡해 질거니..


물론 이 소재가 이제는 너무 흔해졌고, 여기에 차별점을 도입하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쓴 것 같긴 하지만, 영화가 지나치게 복잡해졌고, 그 이야기들이 잘 연결되는 것 같지도(스토리 상으로는 연결되지만 정서적으로 연결이 매끄럽지는 못하다) 않다. 총체적 난국이다.





배우들과 연기, 그리고 제작진.


오랜만에 영화에서 보는 박신양은 반가웠고, 아역 배우 출신으로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는 이레의 얼굴도 반가웠다. 그동안에도 이런 저런 영화들에 조연으로 출연해 왔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10년 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영화에서 귀여운 아역으로 나왔던 게 기억이 난다. 딱 그 얼굴 그대로 잘 자랐고, 조금씩 연기력도 성장해 가는 느낌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민기의 연기는.. 뭐랄까 일단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기도 하고, 구마 사제보다는 좀 더 팔팔하게 뛰어다니는 현장 요원 쪽이 더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또 이 캐릭터에도 잔뜩 사연을 붙여두었는데, 굳이 그게 이번 영화의 메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크게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이 외에도 연기력으로 딱히 티가 날 정도로 모자란 배우들이 보이지는 않는데, 결정적으로 러시아니, 정교회니 하는 쪽으로 넘어가면서 확 분위기가 깨진다. 이쯤 되면 감독이고 제작진이고, 묘사하려고 하는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충분히 조사나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는 느낌. 여기에 장르에 대한 이해도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고.





지치지 않고 나오는 퇴마물.


이런 저런 퇴마의식을 다룬 영화들이 제법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 봤던 송혜교 주연의 “검은 수녀들”도 있고, 헐리우드 쪽에서는 콘스탄틴의 후속편이 제작된다는 소문도 있고.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는, 역시나 사람들의 욕망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 세상 가운데 널리 퍼져 있는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때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의 원인을 찾고 싶은 심리 이런 것들이 기본이겠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런 악의 문제의 원인을 악마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런 악마를 찾아 때려눕히면 내 죄까지 사라지는 것 같은 안도감도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뭐 그런 게 아니라도, 일단 재미가 있으니까 많이들 만들고 보는 것이긴 할 게다.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악마의 모습이라든지, 그것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마법 같은 대결들, 여기에 담겨 있는 도덕적, 윤리적 이슈들 같은 것들은 언제나 흥미를 끄니까. 다만 이런 영화처럼 그저 양산형 영상물도 많이 나오는 거고. 좀 다르게 생각하면, 많이 만들다 보면 개중에 괜찮은 작품들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25-08-17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퇴마물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아마도 파묘의 흥행 성공으로 해당 영화 제작당시 퇴마물이 일종의 트렌드가 아니었나 싶네요.하지만 검은 수녀들이나 성스러운 밤-데몬헌터스등이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흘의 흥행 여부에 따라서 한동안 퇴마물이 다시 퇴조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연기파 배우 박신양이 영화로 다시 복귀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스릴러.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영강사 영은(곽선영)에게는 왠지 모를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집 곳곳에 달려 있는 자물쇠(특히 찬장에도!)는 뭔가 그녀의 집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그리고 곧 그 이유가 밝혀진다. 바로 그녀의 딸 소현(기소유) 때문이었던 것.


소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이른바 사이코패스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고, 해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딸로 인해 이미 여러 피해자들이 나온 상황. 여전히 영은은 딸이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도 수많은 상처들이 생기고 있었으니..


영화 초반 어린 소현 역의 아역 배우의 연기에 꽤나 충격을 받는다. 태연한 얼굴로 친구의 숨을 못 쉬게 코를 막는다든가, 수영장에 밀어 넣거나, 식칼을 들고 엄마를 위협하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이 모든 행동을 말 그대로 무표정으로 연기하니 더 소름이 끼친다. 능숙한 연기력이 필요한 연기는 아닌데, 어쩌면 그래서 더 섬뜩했을 지도 모르겠다.





20년 후?


사실 이 초반 설정만 가지고 계속 이어나갔더라도 영화는 충분히 흥미로웠을 것 같다. 아이의 섬뜩한 모습과 이에 당황하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엄마라는 자리를 떠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영은(연기력도 좋다), 이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는 영화를 끌고 가기 충분한 힘이 느껴지니까. 그런데 영화는 이 고민을 조금 일찍 끝내고(영은은 아이가 친구를 물에 밀어 넣고 웃고 있던 날, 한밤 중 수영장으로 아이를 불러내 함께 물에 뛰어든다), 20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성인 배우들로 화면을 갈아 끼운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처음에는 누구인지 잘 못 알아봤었던 배우 유리(소녀시대 그 유리 맞다). 작은 규모의 특수청소업체에서 일하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조금은 거칠고 주변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캐릭터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쪽은 의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곧 또 한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해영이라는 이름의, 싹싹해 보이는 젊은 여성 캐릭터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자연히 영화를 보면서 이 중 한 명이 20년 전의 그 아이였을 것이라고 예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유리가 연기하는 김민이라는 캐릭터가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한다고 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어려워하는 걸 보면 이쪽인가 싶지만..... 아이는 웃으면서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로 더 교묘하게 진화되어 있었다. 나름 반전이었던 것.


다만 영화는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심리적으로 쫄깃함 보다는, 조금은 평범한 범죄영화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좀 든다. 앞서 말한 아역 배우의 임팩트가 좀 강했던 것도 있고, 물론 성인배우들의 연기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둘 중 누가 범인인가라는 간단한 퀴즈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스토리도 한 요인.





이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초반 아이를 보면서 답답함이 몰려왔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극중 영은의 남편, 그러니까 아이의 아버지는 일찍 포기하고 이혼을 한 상태고, 영은과 아이의 주변 사람들 역시 진작 아이의 상태를 인지하고는 멀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엄마 혼자 모든 것을 품고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한밤 중 칼을 들고 설치는 아이를 어떻게 집에서 돌볼 수 있을까)


결국 대안은 “시설”로 보내는 건데, 사이코패스라는 성향은 치료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기한 없는 치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지원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결국 그런 성향이 범죄로 발현된다는 조금은 정형화된 이야기로 이어진다.(물론 실제 모든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어떤 깊은 고민이나 심리적 갈등 보다는 그저 범죄자와 이를 피하고 막으려는 이들 사이의 몸싸움에만 집중한다. 배우들은 열심히 움직이지만 오히려 지루한 느낌이 드는 이유. 그래도 초중반의 스릴은 나쁘지 않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25-08-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처럼 연쇄 살인마 중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업가나 기업인 중에도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사이코 패스 성향의 성공한 사업가들은 타인의 감정과 고통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기에 직원들의 대규모 감원이나 M&A등 성공을 위해서 거리낌 없이 행동 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사실 정형화된 사이코패스 범죄자물 보다는 차리리 사이코패스 성공한 기업가를 다루는 드라마가 나오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노란가방 2025-08-08 13:19   좋아요 0 | URL
오... 그럴 법도 하네요 ㅎ

잉크냄새 2025-08-0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의 몰입감에 비해 후반부는 좀 단순 스릴러 비슷하게 흘러가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이 떨어져 보이더군요.
정상적이지만 악한 사람은 금지와 회피를 피하는 방법을 익히는데 비해 사이코패스는 금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금지를 회피할 이유가 없죠. 금지를 촉발하는 타인의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거죠.

노란가방 2025-08-08 19:12   좋아요 0 | URL
확실히 뒷힘이 약해 보이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


수 조원짜리 정부 발주 사업에 신기술을 가지고 입찰에 도전하려는 주인공(하정우)이 옛 친구이자 경쟁사 대표가 주무부처 장관에게 로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로비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공략 대상은 중앙부터의 고위 관료인 최 실장(김의성)으로, 장관의 남편(이지만 관계는 썩 좋지 않은)이기도 했다.


영화는 로비를 위해 준비한 골프 접대가 이루어지는 골프장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최 실장이 한 여성 프로 골퍼(강해림)의 열성팬임을 알아채고는 선수와 스폰서십을 맺겠다고 사정하면서 간신히 골프 스케쥴을 잡는데 성공하지만, 로비 과정이 영 순탄하지 않다. 조금은 내켜하지 않는 듯한 진 프로와 주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최 실장, 시종일관 틱틱대며 김을 빼는 박 기자(이동휘), 그리고 골프가 처음인 주인공이 한 팀을 이루어 벌이는 엉뚱한 접대 이야기.


사실 스케일이 크기 보다는 그냥 골프장을 배경으로 두런두런 입으로 만들어 내는 만담, 상황의 아이러니 같은 것들이 주무기인 영화다. 주연 4인방 중 세 명이 다들 연기 경력이 무시무시한 배우들인지라 이런 종류의 합이 또 잘 맞는다. 비교적 신인급인 강해림의 연기는 딱히 볼 게 없긴 했지만, 영화 내에서 맡은 배역이 적극적으로 내키지 않는 프로 골퍼라는 설정인지라, 또 조금은 딱딱한 연기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는 있다.


오히려 조연 쪽에서 작정하고 망가지는 모습이 재미있는데, 요새 핫한 여배우 차주영이 푼수끼 다분한 캐릭터로 나서고, 그 상대역으로 최시원이 나와서 역시 대놓고 망가진다.(다만 연기는 좀 과장된 느낌이 강해서 옷이 썩 맞지 않는 느낌이긴 했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력으로만 승부를 보는 건, 감독의 전작인 롤러코스터에서도 볼 수 있었던 부분.




 

공정은 어렵다.


영화의 대사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 주인공이 최 실장에게 접근을 하면서,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말하자, 최실장은 차라리 특혜를 달라고 하는 게 편하다고 대답한다. 공정한 절차를 만들고, 심사를 하고 그렇게 해서 결정된 사안도 누군가로부터는 편파성과 특혜성을 지적받기 마련이라는 것.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 마인드랄까.


사실 영화 전체적으로 두고 봐도 강한 사회비판적 요소는 딱 여기 하나이긴 한데, 그 한방이 꽤나 인상적이다. 공정이란 무엇인지를 정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능력주의란 것도, 어디까지가 본인의 순수한 능력인 건지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모호한 부분이 잔뜩 등장하기 마련이다. 법대로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법과 규정이 임의적이고 때로 불합리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


물론 아나키즘이 답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사고를 중단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니까. 어리는 어떤 식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들, 미처 보지 못했던 약점들도 나타나겠지만, 그런 것들을 보완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인류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니까.




 

영화의 만듦새는...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애초에 주된 소재인 로비는 너무 허무한 방식으로 해결되고, 그 방식은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공을 들여 성사시킨 접대 골프 자체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골프 자체도 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했지만.


앞서 언급했던 사회비판적 요소도 딱 그 대사말고는 좀 더 발전되지 못하고 소비되어 버린다. 결국 남는 건 배우들의 망가짐, 슬랩 스틱 같은 것들 뿐. 물론 모든 영화가 진지해질 필요는 없고, 이런 코미디 영화도 나름의 가치와 자리가 있다고 본다. 그냥 머리 아픈 것 말고, 순수하게 웃어보자는 생각으로 본다는 또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


다만 이번이 세 번째 감독 연출작이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한 하정우의 감독으로서의 필모그래피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도 손익분기점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감독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배우들을 조금은 쉽게 캐스팅해서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 개인적인 취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흥행한 영화의 스핀오프.


몇 년 전 엑소시즘을 주요 소재로 한 영화들이 몇 편 연속적으로 개봉되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행하기도 했고, 만듦새도 괜찮았던 게 “검은 사제들”이라는 작품이었다. 강동원과 김윤석이 주연을 했던, 제목처럼 가톨릭 구마사제 두 명이 강력한 악마와 싸운다는 스토리였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서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배경과 정서가 담긴 영화인지라 나름 재미있게 봤었다.


그런데 올해 초, 그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 격인 작품이 또 하나 왔다. 이름도 비슷한 “검은 수녀들”. 이번에는 두 명의 수녀들이 악마와 싸우는 이야기다. 베테랑과 신입이라는 조합도 그렇고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가 같은데, 주연 캐릭터들의 성별만 바뀐 느낌이다. 작중에도 “검은 사제들”에 나왔던 두 명의 신부도 한 명은 이름으로, 다른 한 명은 실제 영화 말미에 특별출연으로 나오고,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가 그 제자였다는 설정도 보인다.


이게 단순한 자기복제가 아니려면 뭔가 독특한 포인트를 만들었어야 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영화에서 그런 건 딱히 잘 보이지 않았다. 남도가 할 수 있으니, 여자도 할 수 있다 정도의 느낌으로 시작했던 걸까. 사실 왜 굳이 (구마사제도 아닌) 이 두 수녀들이 구마의식에 나서야 했는지 그 당위성조차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느낌.





뒤죽박죽.


영화의 주인공이 수녀들이니 가톨릭적 배경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편인 “검은 사제들”에서도 그랬고. 하지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면서, 전편에 그런 대 난리를 겪었음에도 좀처럼 구마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아가 오히려 방해하려는 고위 사제단의 모습도 잘 이해가 안 된다.(물론 가톨릭교회라는 조직이 생각만큼 일사분란하지 않기는 하지만.)


또, 악마와 싸우는 사람은 뭔가 좀 불량한 끼를 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아마도 “콘스탄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이 여실하게 보이는 스테레오타입의 유니아 신부 캐릭터는 오히려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송혜교라는 배우의 느낌과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잘 어울리지 않았달까. 아 캐릭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인적인 느낌은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신부는, 전작의 문동은이 옷만 바꿔 입은 느낌.


여기에 가톨릭으로 시작해 무당으로 이어지는 (전작에서도 나왔던 설정이긴 하다) 온갖 종교적 소재들이 뒤죽박죽으로 엉키는 모습은, 그게 살짝 양념 정도면 모를까 극 전체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기만 하는 것 같다. 가톨릭의 신앙교리부(검사성성의 후신)를 너무 물로 보는 건 아닌지. 마녀들 때려잡던 기관이라고.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은 오히려 더 교리와 전통에 충실하고, 신학적으로도 엄격한 검증을 거친 이들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가톨릭과 개신교의 축귀 이미지.


가톨릭에서 행해지는 구마의식과 이를 담당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작품들로 제작되어 왔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한 주인공 캐릭터들(대개 구마 사제들)은 일부 인격적인 흠은 있어도 전반적으로는 그래도 훌륭한 일을 했다(혹은 훌륭한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 같은 뉘앙스로 묘사되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개신교에서 비슷한 축귀사역 같은 경우는, 그게 썩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걸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개신교 쪽에서는 이런 부분이 교리적으로 제대로 정립된 적도, 관련된 조직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정립된 게 없으니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어디서 들여왔는지 모르는 의식과 절차, 사상을 집어넣어, 말 그대로 잡탕을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 영화보다 더 뒤죽박죽인 건 이쪽일지도.( 의식의 유효성이나 우월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