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더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였다. 그렇기에 그가 저지른 범죄를 적절하게 처리하는 데는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은 변했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전처럼 정보를 숨기고 감추는 것이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요더처럼 큰 명성이 없더라도,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당당히 나가면 무슨 수를 써도 처리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해 한 대형 교단 총회장이 불륜으로 담임목사자리에서 사임하면서 수 억 원 대의 전별금을 당당히 요구하고, 교회에서는 그를 내보내기 위해 이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또 책에도 언급되었던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는 아예 교단 차원에서 별다른 처벌을 하는 걸 포기하기도 했으니, 비슷한 사건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에게 퍽 용기를 불어넣어 줄 만한 상황이다.
분명 요더가 남긴 저작들과 그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따로 떼어서 놓고 볼 수는 없다. 나쁜 사람이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너무나 타당하다. 책에서 저자는 초보적이나마 요더가 그의 신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그의 신학이 가진 문제점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이는 재세례파 전통에 서 있는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일 수도 있는 지점인데, 그들은 너무 빨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비슷한 차원에서 한국 교회의 많은 주요 리더들이 여전히 많은 윤리적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고, 그마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 또한, 뭔가 개별적인 일탈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이젠 너무 확연해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