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교회가 온다 - 교육운동가 송인수의 평신도교회 17년 이야기
송인수 지음 / 잉클링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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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평신도교회’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회중교회/조합교회처럼 교회에 목회자를 따로 두지 않고, 교회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예배(당연히 설교도 포함된다)와 교회운영을 하는 형태는 이미 많이 있어 왔다. 다만 이런 형태의 교회가 제법 큰 교세를 이룬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형태라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차이도 있어 보이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평신도교회’는 여기에 가정교회의 모델까지 융합시키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하다. 한두 가정, 많아야 예닐곱 가정 정도의 작은 모임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기성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저자가 이런 새로운 모델의 교회를 시작한 건, 역시나 어떤 불만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이 부분이 굳이 자세하게 언급되지는 않는데, 문맥 상 교회 재정 사용의 방향성이라든지, 조직 운영의 한계, 그리고 목회자의 자질 문제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나 짐작된다.


책에서 저자는 평신도교회 모델이 이른바 ‘초대교회의 정신’을 좀 더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기독교 초기 역사의 몇몇 장면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조도 보인다.





다만 저자의 이런 주장들은 명백한 한계가 보인다. 우선 목회자가 없다고 해서, 저자가 불만을 느끼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사가 되기 위해서 받은 훈련과 교육은 간단히 대체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또, 평신도들 가운데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 시절 우연히 그리스도의 교회 계통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상대는 내가 신학생이라는 걸 모르고서 초대를 한 것 같은데, 가보니 한 대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몇몇 대학생들이 모여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예배의 진행은 선배로 보이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남학생이 이끌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게 조금 날카로웠던지 그 학생은 약간 흥분한 듯 했고, 그대로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 때 내가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랬다. 신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분이 설교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분이 신학적을 일탈하게 되면 누가,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는가. 모든 걸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건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는 수많은 이단들도 다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그 중 한 명이 될 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처음엔 좋게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어떻게 길을 잃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이런 식의 환원주의 비슷한 논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교회의 역사가 마치 처음 1세기 정도 제대로 진행되다가 수백 년(또는 천 년 이상) 길을 잘못 들었고, 이제야 (본인에 이르러서) 다시 제 길을 찾은 것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된 역사 모델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같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뭔가 교회에 본질적인 문제가 일어났던 것처럼 설명하기도 하고.


이런 몰역사적 관점은 하나님께서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오류다. 교회의 조직은 나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고민하고 도출해 낸 결과물의 집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형식은 현실에 맞춰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역사적인 적층물 위에 서는 것이지, 우리가 당장 사도행전의 시대에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조금 비판적인 리뷰가 되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그리고 실천하는 교회 모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반드시 어느 한 가지 표준 모델을 따라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예배의 형식도 마찬가지다. 이미 ‘개신교’로 분류되는 많은 교회들 사이에도, 나라별, 지역별로 예배의 모습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당장 우리의 엄숙한 장로교회의 장로님들은 미국 흑인 침례교회의 경쾌한 예배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평신도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답은 당연히 아니고, 어쩌면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보이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라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할 의무도 있는 법이다.


시종일관 정중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저자의 인격이 짐작된다. 책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일종의 설명/변호적 내용이라 방어적 논리가 좀 보이긴 하지만, 후반에는 실제로 저자의 예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스크립트가 실려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읽고, 토론해 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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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폭력의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 -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박국서 강해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 지음, 조덕환 옮김 / 시들지않는소망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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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아마도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성경을 처음 읽고 있었을 때, 하박국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었다. 이 사람 뭔데?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부터 하나님께 항의를 하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보겠다는 꽤나 도발적인 선지자. 성경에는 정말 다양한 성격의 선지자들이 나오지만, 하박국만큼 이색적인 인물도 없었다.(물론 나중에 보니 요나도, 호세아도 특이한 인물이긴 하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신학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금은 쉽고 편안하게 쓴 하박국 해설/강해서다.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신학적인 고찰이나 원어 연구 같은 내용은 적고, 대신 현실로의 적용 부분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하박국은 화가 나 있는 선지자가.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대로부터 2000 하고도 몇 백 년이 더 지난 오늘날도 현실은 비슷하다.


초강대국 미국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들을 군대로 때리고 있고, 나머지 나라들은 그런 미국이 두려워 대놓고 반대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진작 윤리적 파탄이 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말 그대로 깡패다. 수많은 나라들 사이에서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세력들이 설치고, 심지어 제1당이 되기도 한다. 어중이떠중이들은 그런 파시스트들을 추종하며, 그들에게서 현실의 비참한 자신을 덮어줄 ‘가오’를 찾는다.


하박국은 왜 하나님이 이런 현실을 그냥 두고 보시느냐고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항의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대답해 주신다.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훨씬 더 큰 규모로, 한 시도 쉬지 않고 진행 중이다. 눈을 크게 떠라. 우리도 종종 신앙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 오직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춰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그런 잘못된 기대를 깨뜨리신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하나님은 하박국이 고발하고 있는 현실의 악한들을 가만두지 않으신다. 저자는 특별히 제국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과 연결시킨다. 하박국 당시의 바벨론이 그런 제국주의적 폭력의 대명사였지만, 그런 세력은 하박국 시대 이후에도 수없이 등장했고,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들의 행위에 대해 심판을 하실 것이다.





저자는 하박국의 주제가 두려움에서 확신으로의 전환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선지자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성격이 바뀌었다. 저항으로서의 두려움에서 신뢰로서의 두려움으로 변했다는 것. 여전히 선지자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 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방법을 모두 알 수 없기에 그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신뢰로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건 오늘날의 많은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좀처럼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여전히 고민은 넘쳐나고, 걱정거리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애초에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문제들은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더 쉽게, 더 빨리 휘젓는다.


믿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빌고 구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하박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하박국의 전체적인 내용을 잡아가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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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목회자를 위한 하루 10분 챗GPT 사용설명서
민진홍.백형진 지음 / 한사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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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성시대다. 이제 교회에서도 어지간한 상황에서 AI를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다만 이 때의 ‘사용’이 늘 동일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유행을 따라 자신의 프로필 이미지를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보는 정도나 좀 뛰어난 검색엔진 정도로 사용할 것이고,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AI가 가진 잠재력을 좀 더 사용하기도 할 것이고.


이 책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들을 위한 AI,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GPT 사용법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 쓰였다. 제목에도 붙어있는 “바쁜”이라는 수식어는, 왜 목회자들이 이런 도구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하는지 그 상황적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너무 바쁘다.





책은 말 그대로 초보자들을 위한 수준에 맞춰져 있다. GPT 계정에 로그인을 하는 것부터 내용이 시작되고, 기본적인 구조와 실제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를 이미지로 실어두었다. 또 GPT로 교회 사역에 이용 가능한 영역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


책 말미에는 실제 목회 현장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을 특정 상황에 따른 프롬프트의 예가 140개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양육반 개강 알림 메시지를 작성하기 위한, 예배용 파워포인트 3장 구성 법 같은.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부분만 따서 적절히 사용해도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 절약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목회자들이 AI를 어느 수준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을 돌보고 양육하는 목회자의 본질적인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티타임을 하면서 저자가 만든 목회자를 위한 다양한 GPTs를 구경해봤는데, 꽤 많은 노력을 절약해 줄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는 게 한 눈에 와 닿았다.


물론 이런 도구들은 자칫 목회의 근간을 흔드는 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건 설교문 자체를 AI에게 맡겨서 작성하는 것이다. 앞서의 티타임에서 저자에게 이 부분을 질문했더니, 저자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런 행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만든 GPTs에는 그런 기능을 넣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정도. 물론 이 부분은 기술보다는 목회 윤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우려인, ‘과연 그렇게 얻은 여유를 목회를 더 잘 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역시 근본적으로는 윤리 문제다.


사실 요새는 다양한 AI작업 도구들이 나와서 꼭 GPT가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다만 몇 개를 사용해 본 결과 대략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나 설정 등은 유사한 경우가 많으니, 처음부터 기초를 잡아 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목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한 번 손에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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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
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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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의 이름이 다 쟁쟁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여섯 명 중 다섯 명의 책을 이미 최소한 한두 권씩은 읽어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의 맨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처럼, 이 책은 12.3 계엄을 전후로 한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점들을 모았다.


첫 글에서는 권수경이 권력과 재물, 이념을 우상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역사신학을 전공한 배덕만은 트럼프로 실체화된 미국 교회의 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진단한다. 옥성득은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박성철은 이른바 ‘기독교 극우’의 출현을, 백소영은 한국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비판을 각각 제시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장동민이 영성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제언을 한다.





각각의 글들이 모두 읽어볼 만하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거의 모든 일에는 전사(前史)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러 부분에서 미덥지 못하게 된 건 어느 특정한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서만 그 연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


예컨대 국가조찬기도회(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라는 모임만 해도 그렇다. 국가조찬기도회라니, 우리나라는 국교가 헌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붙어 있는 ‘국가’라는 단어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정부측 요인들이 참여하거나 주최한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소위 재벌로 불리는 경제인들까지 잔뜩 참여하는 정경유착의 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박정희 시절 교회 길들이기와 정권 정당성 홍보를 위해 시작된 이 모임은 불과 얼마 전 이 모임의 회장이었던 한 건설사 회장이 1억의 뇌물을 김건희에게 바친 대가로 자신의 사위를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올린 것이 발각되었고, 부회장인 이배용 역시 마찬가지로 김건희에게 금거북이를 바치고 국가교육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비위에만 집중하지만 애초에 이런 모임 자체가 문제였던 것.


여전히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 목사들은 여기에 초대되고, 기도나 설교를 하는 것을 무슨 명예인 양 착각하지만, 서울 시내의 비싼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하는 기도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 경제인들을 만나고 온 게 자랑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가는 것이(눅 7:25) 과연 그리스도의 길이겠는가.





다만 이런 짧은 발제글의 모음집이라는 특성상,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은 분석과 정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있어서 더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는 글이 없고, 현실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분석과 해법을 제안하려고 애쓰는 부분이 좋다. 여성문제와 관련된 챕터는 12.3 계엄이라는 큰 주제와 어느 정도 밀접한 지는 살짝 의문이지만.


책의 구성상, 그리고 내용상 마지막에 결론처럼 실려 있는 건 “한국교회 공적 영성의 재구성”이라는 글이다. 다른 글들이 주로 비판점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느낌인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성령에 대한 관심 환기, 영성의 회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이 글 자체도 내용이 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긴 한데(더 잘, 더 많이 담으려는 욕심이 많았다), “성령이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지 못하고 체제에 밀착하거나 종속될 때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는 지적에 핵심이 담겨 있다.


결국 교회의 정치(권력) 종속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건 교회가 속세를 지배했다고 알려진 중세에도 마찬가지였고,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바람처럼, 세상을 만드시고 뒤집으시는 성령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는 좀처럼 반전, 혹은 부흥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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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챙김 - 내 안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
채정호 지음 / 선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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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0여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는 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영성챙김”이라는 방식을 발견했다. 이 용어가 좀 생소하다. 영어로는 Spiritfulness라고 표기하는데, 어떻게 봐도 신조어인데,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 “마음챙김”이라는 말이 요새 여기저기서 들리긴 한다.


사실 이 두 개념은 거의 비슷한데 강조점이 약간 다르다. 사실 기존의 정신과 치료의 주된 방향성은 정신적 고통을 회피하거나 억제하는 데 있었다면, 마음챙김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주의, 알아차림, 수용이라는 단계는 현재의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다분히 종교적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이 마음챙김은 불교적 수련법의 하나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영성챙김’도 사실 비슷한 방법론과 방향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마음챙김이 가져다주는 정신, 심리치료적 효과를 유사하기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자신을 살피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복원하고, 영적인 회복을 꾀한다는 면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 전반에 걸쳐서 이런 차별점에 대한 강조가 자주 보인다. 다만 이건 “영성챙김”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방법론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일종의 방어논리처럼 느껴진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이런 시도를 이교와의 혼합주의라고 경계 내지는 비난하고 있기 때문.


그런데 사실 이런 접근은 애초에 자기모순적이다. 기독교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얼마나 될까? 인류 역사만 해도 문자 기록이 남지 않은 선사시대를 제외해도 5~6천 년은 된다. 기독교가 출현하기 이전의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 영향을 받지 않은 게 몇 개나 있을까. 실제로 기독교 예배 가운데도 이미 근원을 따져보면 상당히 멀리서 온 요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명백히 이교적 영향이 남아있는 것들이라면, 효과가 좋으니 무조건 받아들이자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반복해 입증하려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시간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신앙의 방식 중 하나다. 이른바 “영성챙김”이란 누구나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이 방식을, 몇 가지 도구를 통해서 도와주려는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관건은 ‘익숙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서유럽의 가톨릭 신앙의 결을 이어받은 주류 개신교 신학은 처음부터 조금은 이지적인 측면에 기운 상황이다. 나도 여기에 익숙해 있기에, 책 후반부에 실려 있는 열세 가지의 영성챙김(기독교적 명상?)의 실제 예를 보면서 어색함을 느꼈다. 그런데 현대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정교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방식의 영적 수련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는 걸 보면, 함부로 폄훼하는 것도 “기독교적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성경을 익히고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데에는 이 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방법론이 나름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신비주의자의 항해가 언제나 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는 C. S. 루이스의 경고도 항상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적절한 지도(신학)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 부분에서는 이른바 영성챙김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영적 우월함 같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실제로 목회적 상담을 하다보면, 단순히 이론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개인의 삶에 하나님을 짙게 경험할 수 있는 훈련법들이 아울러 제시된다면 분명 기독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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