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선교 현장 리포트 - 시대적 소명에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
김영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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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선교를 준비하던 여성이 있다. 우연히 남양주의 공장 지대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가 갖고 있던 계획은 완전히 재설정되었다. 1998년 시작된 국내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선교활동은 2026년까지 이어진다. 이 책은 그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따뜻하게 비춰준다.


책에 나오는 “암미선교회”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선교회다. 보통 선교라고 하면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우리나라에만도 26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 역시 선교라고 부르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암미선교회의 ‘암미’는 히브리어로 ‘내 백성’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그들을 ‘외부인’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두 “내 백성”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경상북도 인구보다 많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들을 외부인으로만 볼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저자인 김영애 선교사가 쓴 부분으로, 지난 3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경험들, 은혜의 사건들, 눈물과 기쁨이 어우러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두 번째 부분은 선교회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쓴 부분이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간 지체들의 편지도 있고, 이 사역에 동참했던 여러 사역자와 봉사자들의 간증도 보인다.


마지막 부분(3부와 4부)은 이주민 선교와 관련된 뉴스레터와 기고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의 글들이 생생함이 강조된 것들이라면, 이 세 번째 부분에 속한 글들은 조금은 전문적인 분석과 대안 제시가 담겨 있다.





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다. 잔잔한 사역의 결과물들을 읽다보면, 여전히 훌륭한 사역자들, 사역들, 봉사자들이 많구나, 그리고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렵지 않은 내용이니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읽어 볼만하다. 직접 해외에 나가는 것 못지 않게, 선교라는 분야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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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적 반시대성
오스 기니스 지음, 김형원 옮김 / 이레서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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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렸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명작을 발견했다. 오스 기니스의 책 중에 이런 게 있었구나 새삼 감탄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제목에 나온 “반시대성”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기 바쁘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선지자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꽤나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모든 종류의 현대적 적응(책에서는 이걸 ‘적합성’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잘 와 닿지 않는다)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이 나온 20년 전의 서구 교회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몇몇 초대형 교회들로 상징되는 성장주의, 부흥만능주의, 그리고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믿으면 뭐든 잘 될 것이라는 이단적 긍정신학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진단한다.


“스스로에 대한 치유적 관심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덮어 버리고, 영성이 신학을 대신하며, 종말의 도피주의가 일상의 제자도를 몰아내고, 마케팅이 선교를 축출하고, 여론조사 결과가 성경 주해에 대한 의존을 압도하며, 권력과 적합성에 대한 관심이 경건과 신실함에 대한 관심보다 두드러지며, 예배당을 재건하자는 말이 부흥을 위한 기도를 대체하고, 발흥하는 복음주의 하위문화의 재벌 왕국을 유지하려는 전력투구가 선교적 사역에 대한 복음주의의 특징적인 열정을 누르고 있다.”


저자는 “교회가 지금까지 속해 왔었던 모든 문화 중에서 현대 세계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침투력이 강하고, 가장 압박이 심하며, 현대 세계는 교회 역사상 다른 모든 박해자보다 기독교의 순결함과 효율성에 가장 크게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본다. 교회는 이 문화적 압박에 진작 굴복해버렸는데, 그 와중에서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전환을 이룬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전 시대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목록을 버린 것이 무슨 엄청난 영적 성장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또, 저자는 이젠 설교 강단에서도 성경 본문에 대한 진지하고 충실한 주석보다, 온갖 종류의 (성경이 아닌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말이 권위 있게 인용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고발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가련한 항복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품이 있는데 (비용이나 접근 기회의 차이가 없다면) 굳이 가품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 교회가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는 세속주의적 새로운 가르침은, 이미 세상에서 더 잘 가르치고, 안내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 내용이 별반 다를 게 없다면, 굳이 이런저런 부담을 지면서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즈음 서구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수의 감소는 이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소명을 ‘벤처 사업’에 비유한다. 요 몇 년 동안 크리스천 창업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관여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스타트업의 성공률, 아니 생존률이 얼마나 낮은가 하는 부분이다. 보통 10년 안에 30% 내외만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그나마 폐업을 하지 않고 남은 스타트업도 사업이 잘 된다기보다는 그저 사업자등록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만큼 실패의 확률이 높은 게 사업이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세속주의의 물결이 이렇게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은 인기가 없다. 그래서 그 길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길이고, 유명세를 얻기 힘든 길이다. 실패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때로는 실패하는 게 옳은 선택인 때도 있다는 말이 퍽 위안이 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유행에 좀 무뎌지고, 특히 “역사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상적인 지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하면서, 이미 입증된 실수를 반복하는지...


작은 책이지만 강한 도전적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다만 책 초반 번역이 조금 난감한데, 예를 들면 ‘저항적 사고’가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 사고는 한편으로 정합성을 추구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현세대와 잘 맞지 않는 기독교 메시지의 요소들에 대한 집요한 인식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라고 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조금씩 나아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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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ㅣ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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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 이 책의 시리즈 중 하나였던 다른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의 핵심 키워드는 “마음”이었는데, 이번 책은 “뇌”다. 영어로 된 원제를 보면 “The God-Shaped Brain”이니 우리말 제목이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원서에는 “How Changing Your View of God Transforms Your Life”라는 부제가 함께 붙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라는 말인데,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한다. 책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우리의 뇌에, 생각에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고 반복해서 지적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앞서 읽었던 책과 비슷한 논조를 갖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뇌’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 책은 여러 장에 걸쳐서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던 실제 환자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가 그들에게 어떤 신앙적 조언을 해주었는지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책 표지에 “이 책의 사례는 모두 실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읽었던 책에서 비판점은 기독교를 너무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정신과 의사가 실제 환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고안되고 쓰였다는 정황을 놓친 것 같다.


확실히 기독교 문화가 더 일상적인 미국이니 만큼, 여전히 매우 보수적인 신앙관 속에서 종종 압제적인 상황에 처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이즈음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여기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이분법 적으로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흔히 “죄”라고 말하는 것들에도 구체적 정황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경직되고 정통주의화 된 기독교 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엄격한 관점을 지니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빠져 심각하게 삶의 질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충분히 나오게 된다. 저자의 책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한 가지 약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의 책을 너무 일반론적으로 읽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단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마음을 뇌의 특정한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건가 하는 구절이 몇 군데 보인다. 이른바 ‘육체와 마음의 연결점’이라는 오래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목회상담을 진행 중인 목회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기독교적 전제를 갖고 임하는 것과, 목회자가 할 만한 일을 하는 것 중. 물론 이 또한 일부 목회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신자들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눌러둔 결과겠지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견해, 그 중에서도 그분을 무서운 심판자이자 처벌자로만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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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에이미의 은혜 - 내 존재와 삶을 채우시는 하나님
박순용 지음 / 아가페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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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조금 생소할 수 있다. 특히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헬라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더욱 그럴 터. 책 제목에 쓸 정도면 이 책의 내용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꽤 중요하게 다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란, 영어의 I am과 비슷한 용법이다. “에이미”는 영어 be동사와 유사한 에이미동사의 1인칭 단수형인데, 영어로도 어떤 문장에서 I am 이라고만 끝마치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헬라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그리고 여러 학자들은) 이런 조금은 어색한 구문에서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찾아낸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계시하셨던 “여호와”(저자는 또 여기에서 히브리어 본래 발음에 더 가까운 건 ‘야웨’라고 쓰는데, 애초에 이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모른다는 상황에서 야웨가 더 가까운 발음이라는 것 또한 추측일 뿐이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기에 기억과 전승을 통해서 단어를 발음하는데, 일부에서는 ‘야웨’의 모음은 ‘그 이름’이라는 뜻의 “하 쉠”이라는 단어에서 모음을 가져다가 붙였을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라는 이름과 같은 의미라는 것. “여호와”라는 단어의 의미로 추정되는 것 중 하나가 “나는 나다”, 혹은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데에서 의미적 유사성이 있다는 말.





그렇게 저자는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성 주장을 읽어낸다. 다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반론도 존재하는데, 요한복음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을 말한 예수님 이외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자, 그가 나서서 말한다. “에고 에이미”. 번역하면 “나야(나 맞아)”다.(요 9:9) 그렇다면 이 표현이 예수님만 사용하신 독특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조금 헐거워진다.


물론 그것(요 9:9)과는 상관없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의 신적 주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도 크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어쨌든 요한복음에서는 이 구분이 반복되면서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양한 모습으로 계시하셨으니까.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


다만 책에서 빠진 설명이 하나가 있는데,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갖는 또 한 가지의 독특한 점은 헬라어 동사에는 애초에 성과 수가 다 포함되어 있어서, 굳이 주어(이 경우에는 “에고”)를 붙이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에이미”라고만 써도 “나는 ~이다”라는 의미가 다 있다. 여기에 굳이 1인칭 주격 대명사인 “에고”를 붙이면 이중으로 “나”를 강조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조금 의역하면 “그게 바로 나다” 정도일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그렇게 시작한다.





책은 요한복음의 “나는 ~이다”라는 아홉 개의 본문과 저자가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또 한 가지 주제를 각 장에 펼쳐서 설명한다. 리뷰 초반에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에 트집 아닌 트집을 잡았지만, 책 내용 자체는 표준적이고 안정적인 해석과 적용이 담긴 설교문이라는 느낌이다.


사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이니”라는 연속되는 구절들은 내용도 아름답고, 깊은 교리적 진리를 담고 있어 사랑받는 본문들이다. 이런 긴 강화는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한복음만의 독특한 특징적 본문이다. 책은 이 본문들을 너무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한다. 누구에게 권해 줘도 나쁘지 않을 만한 책일 것 같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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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낚는 어부의 기술 - 토머스 보스턴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을 얻는 목회와 전도의 원리
토머스 보스턴 지음, 아가페 편집부 옮김, 이서용 감수 / 아가페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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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교도의 향기가 짙게 묻어 있는 작은 책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 문체부터 내용 전개 방식까지, 마치 오래된 오크통 속에서 숙성된 황금빛 액체처럼, 진한 맛이 배어 나온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살피는 성경구절은 딱 하나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에서 저자는 우리(특별히 목회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인 전반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가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의무이며, 그럴 때 우리는 사람을 낚는 사명과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며 이 모든 일은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고 말한다.


1부에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어떤 방식으로 그의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어떻게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지에 관해 길게 설명한다. 목회자의 부족함에도,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확신 어린 결론이다.





청교도 특유의 담담함이랄까, 우직함이 느껴진다. 부족하면 어떤가, 능력이 없으면 어떤가, 이 일을 맡겨주신 분이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해 낼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의 글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교도들은 온갖 박해와 차별과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켜왔던 이들이다.


사역적인 면에서도 청교도들이 그 시대의 인플루언서는 분명 아니었다. 주류는 국교회였고, 사실 사람들의 신앙의 열의도 그리 높지 않았던 시대였다. 책 속에서 이를 반영하는 구절이 나온다. “목이 터지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간절히 설교한다 해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거나 영혼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황이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하나님이 생을 은혜롭게 마치게 하시고 그분의 품으로 데려가신 선배 사역자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성령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라는 권고는 저자 자신에게 하는 각오이기도 했던 것 같다. 소명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이들의 글은 언제나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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