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크리스틴 다치필드 지음, 이규원 옮김 / 사랑플러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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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만난 “나니아 연대기”에 푹 빠져서 이후 C. S. 루이스의 팬이 되었다는 레퍼토리는 꽤나 많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나니아 키즈” 중 한 명이다. 현재(책을 쓸 당시)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많이 썼다고 하는 저자는, 나니아 연대기 중 가장 먼저 쓰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 속 기독교적 메시지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쉽게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냈다.


책 제목이 좀 혼동을 준다. 나니아 연대기 속 제목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고, 이 책에는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붙어 있다. “와”를 ,로 바꾼 건데, 그 위에 “C. S. 루이스의 눈으로 나니아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긴 하지만 혼동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부제의 내용도 좀 웃긴 것이, 애초에 나니아 연대기를 루이스가 썼다면, 당연히 그 작품은 루이스의 눈으로 쓰였고, 읽게 되는 것 아니던가.


참고로 영어 원제는 "A Family Guide To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이다. 가족이 함께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을 읽는 데 쓸 만한 자료라는 의미 정도인데, 차라리 우리말 제목을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 정도로 했으면 어땠을까?





책은 우선 루이스의 삶을 간단하게 조망하고,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 등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사자와 마녀 그리고 옷장”을 몇 개의 장으로 나눠 줄거리를 설명하고, 그와 연결되는 성경 구절을 소개한 후 몇 개의 질문을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이도는 딱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함께 읽고 나누기에 맞게 쉬운 수준이다. 당연히 나 같은 독자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고, 탁월하다고 느낄 만한 통찰이 담긴 문장들을 찾지도 못했다. 물론 나름 관련된 성경 구절을 충실하게 찾아서 설명하고 있으니, 목적에 맞춰서 선택해 읽으면 될 일이다.(다만 절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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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인생 책방
홍종락 지음 / 비아토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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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저자의 책을 모두 읽게 됐다(번역서 말고 저자로서 쓴 책 말이다).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소개를 담고 있는 “나니아 나라를 찾아서”, 역시 루이스의 삶에 관한 소개서인 “오리지널 에필로그”, 그리고 이번 책은 루이스의 작품 세계를 다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책으로 공교롭게도 내 루이스 컬렉션의 분류항목별로 한 권씩 저자의 책이 꽂힐 예정이다.


이 책의 1부는 C. S. 루이스의 오랜 팬인(그리고 그의 여러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던) 저자가 루이스의 작품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구와 그의 아내 조이, 기도, 악마, 이야기 같은 주제들인데, 루이스의 책 전체를 다루었다기보다는 그 중 저자가 좋아하는 일부만을 담아냈다고 보는 게 맞다.


2부는 루이스의 책 중 몇 가지를 뽑아 설명하는 내용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기도 하는 작품인 “천국과 지옥의 이혼”으로 시작해, “이야기에 관하여”, “순례자의 귀향”, “그 가공할 힘”, “폐기된 이미지”, “기적”, 그리고 고통이라는 주제와 함께 “고통의 문제”와 “헤아려 본 슬픔”을 다룬다.


3부는 루이스 책을 가지고 독서모임을 진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질문들을 담고 있다. 아홉 권의 책마다 던질 수 있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독서모임에 사용할 목적이거나, 그 책 자체를 좀 더 깊게 읽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하다. 부록도 알찬데, 특히 루이스의 모든 책은 아니지만 주요 저작들의 내용 요약이 실려 있다. 혼자서 읽기가 좀 어렵다고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저자를 직접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내적 친밀감은 진작부터 맥스에 이른지 오래다. 더구나 그 루이스의 책을 여러 권, 그것도 수준급으로 번역해 냈으니 더욱 그렇다.


글이 매우 편안하게 쓰였다.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루이스의 글로 옮겨가는 방식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고, 각각의 글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다. 덕분에 루이스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조금은 쉽게 루이스에 입문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루이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읽는다면 그것 또한 매력적인 책일 것이다. 앞서 읽었던 다양한 루이스의 책들을 떠올리면서 나름 혼자만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너무 오타쿠 같은가...)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단순히 루이스의 문장만을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다. 저자가 오랜 시간 동안 루이스의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두어서, 무엇보다 저자의 깊은 통찰을 읽는 맛도 있다.




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오히려 제목이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책을 다 읽고 나니 더더욱 와 닿지 않는다. “C. S. 루이스의 인생 책방”이라... 루이스가 좋아했던, 루이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인생 책들” 그런데 그 책들이 루이스의 것들이고, 뭐 이런 의미일 텐데, 그게 이 제목이 맞나 싶다.


루이스 입문자에게도, 루이스 애호가에게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 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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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신학
윌 바우스 지음, 이용중 옮김 / 지식과사랑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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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C. S. 루이스에 관한 책을 검색하던 중 알게 된 책이다. 문제는 일찌감치 절판이 되었다는 점이고, 출판사가 이 책을 포함해 딱 세 권만 내고 2009년 이후로 더 이상 새로운 책을 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재출간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덕분에 중고인데도 불구하고 정가보다 웃돈을 주고서야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미 루이스에 관한 책들을 잔뜩 읽어놓은 상태였고, 제목조차도 지극히 건조하지 않던가.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다시 표지를 보니 영어 원서의 제목은 “MERE THEOLOGY”, 우리말로 하면 “순전한 신학”이었다. 루이스의 가장 유명한 책인 “순전한 기독교”에서 따온 제목이다. 차라리 순전한 신학 쪽이 좀 더 눈길을 끌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서 저자의 ‘루이스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금새 눈치챌 수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루이스 애호가들처럼, 저자 역시 어린 시절 접한 “나니아 연대기”로 루이스에게 푹 빠졌고, 이후 루이스의 책을 모두 읽은 후에, 무려 7년에 걸쳐 루이스의 사상을 정리해 항목별로 이 책에 옮겼다.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방대한 루이스 참조목록을 매우 성실하게 표시해놓았고(일부 루이스 관련 책들은 단지 저자의 이야기에 루이스의 문장들을 곁들이는 식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이 책에 언급된 루이스의 주장의 출처를 쉽게 찾아, 그 원본을 다시 읽을 수 있게 해뒀다. 또, 루이스의 작품 전체를 읽은 사람답게, 책에서 인용되는 루이스의 책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대여섯 권 읽고서 루이스가 어쩌구 하는 식이 아니었다는 거다. 여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


저자의 작업도 매우 충실하다. 무려 스물다섯 개의 항목으로 루이스의 사상을 정리했는데, 그 수도 방대하지만, 각 항목 안에서도 여러 개의 세부적인 항목들에 따라 루이스가 관련 주제에 관해 쓴 글들을 총 망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루이스가 어떤 배경과 문맥에서 그런 글을 썼는지에 대한 설명도 매우 질이 높다.(최근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는 ‘루이스가 정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저자의 ‘과감한’ 해석이 눈에 좀 거슬렸다.)





참고로 저자는 건전한 복음주의적 성향의 목회자이고, 루이스의 일부 사상들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동의를 하지 못할 때도 보인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왜 그런 사상이 나왔는지를 충분히 배경과 상황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역시 우리 과다.


이 정도의 책이라면 앞으로 두고두고 참고하면서 사용할 것 같다. 특히 최근 만들고 있는 유튜브 콘텐츠에도 유용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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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 J.R.R. 톨킨과 C.S. 루이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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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와 J. R. R. 톨킨에 관한 책이 새로 나왔으니 안 읽어볼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좀 낯설다. 소개를 보면 꾸준히 책을 냈던 것 같은데, 내 독서 레이더망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제목들이다. 뭐 그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루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한 명은 더 늘어났다는 거니까.


이 책은 루이스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였던 톨킨의 이야기까지 함께 다룬다. 여기에 제목에 ‘브로맨스’라는 단어까지 들어있으면, 이 두 사람의 우정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미 비슷한 책이 나와 있다. 홍성사에서 나온 “루이스와 톨킨”이 그 책이고, 최근에는 같은 저자가 쓴 또 한 권의 비슷한 책 “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도 나왔다. 이 책은 주로 두 사람이 함께 활동했던 잉클링스라는 모임에 좀 더 집중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와는 좀 다른 방향에서 주제에 접근했어야 했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먼저 저자가 루이스와 톨킨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부터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톨킨 쪽은 몰라도, 책에서 인용된 루이스에 관한 책들은(다섯 권, 잘 쳐줘서 여섯 권이다) 다 읽어본 상황에서. 책에 소개된 정도의 루이스에 관한 정보는 충분하지 못하다. 확실한 건 저자는 루이스의 팬은 아니라는 느낌. 루이스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관찰자적 입장일 뿐이다.


물론 무조건 팬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인물을 잘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쓴 루이스 평전의 경우 이런 서술적 거리감을 부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맥그래스의 책의 경우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나름의 탄탄한 조사를 통해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일부 내용이 지나친 감이 있기는 했으나 읽을 만한 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그런 유인점도 부족하다. 저자가 언급한 루이스의 책은 몇 권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 안에서 새로운 부분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물론 이건 내가 루이스 관련 책들을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무신론자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루이스와 톨킨의 인생과 작품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점이었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 아예 일부러 그런 요인들을 배제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경향도 보인다.





그리고 책의 제목에도 있는 ‘브로맨스’라는 단어는 이 두 명성 있는 작가들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겠다는 말로 들렸는데, 정작 내용에서는 그런 부분이 매우 적다. 대부분의 내용은 두 작가에 대한 개별적인 고찰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물론 두 사람이 옥스퍼드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이 꽤 길었으니, 이 시기에 관한 서술에서는 함께 언급도 되지만 단순한 스케치에 불과하다.


책 후반부는 두 작가의 작품 속에서 저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들을 뽑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는데, 저자가 골라낸 주제들이 아주 틀린 주장들은 아니긴 하지만 충분히 종합적인 이해였을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나 저자는 아나키즘에 대한 애착을 자주 보이는데, 그 때문에 이 두 작가들에게서 그런 요소들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루이스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는 분명히 표했지만, 아나키즘에 대한 호의를 품은 적은 없다.


결국 책은 루이스와 톨킨에 대해서도,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썩 좋은 요약이나 정리를 하지 못했다. 브로맨스라는 용어는 거의 의미가 없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다룰 것으로 예상되었던 주제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콜린 듀리에즈의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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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7-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님 인문학 분야에서는 나름 유명한데 가방님 잘 모르시는가 봅니다. 근데 크리스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영문학적 관점에서 다룬건 아닐까요? 평점은 높은 편인 것 같습니다만...

노란가방 2024-07-25 11:17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이렇게 또 저의 짧은 견문이 밑천을 드려내는...
본문에도 썼지만 저의 독서레이더망에는 안 걸리는 저자였던 것 같습니다.
평점 3점이면... 그냥 기본점수입니다. ^^;

stella.K 2024-07-25 11:27   좋아요 0 | URL
아니 다른 리뷰어들 평점을 보니깐요. 남들이 예스 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거죠. ㅋㅋ

노란가방 2024-07-25 19:54   좋아요 1 | URL
아하 다른 사람들이 준 평점 말씀이셨군요...
알라딘 평점 분포를 보니... 저 3점의 11.1%가 제가 준 평점을 반영한 거라면, 4점이 1명, 5점이 7명이네요.
저도 더 잘 소개된 책들이 이미 있다는, 그래서 이 책의 설명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지 책이 나쁘단 건 아니었으니까요..ㅋ
 
경이라는 세계
이종태 지음 / 복있는사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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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말 나타난 계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전의 무지몽매했던 시대를 끝낸,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으로 가득했었다. 그들을 “계몽주의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이런 과잉 자의식에 기초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들은 시대를 계몽시킨 선구자들이었다, 뭐 이런.


그들이 이전과 좀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중세 기간 안에도 그와 비슷한, 혹은 그 선구적 탐구가 존재했었다. 물론 그 시대 등장했던 여러 지식인들이 가져온 공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과학적 사고의 발달로 이전 시대의 각종 주술적(혹은 미신적) 행태를 몰아내는 계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이 책의 저자는 계몽주의 시대가 낳은 가장 큰 문제로 이 세계에서 “경이”를 함께 몰아내버린 것을 꼽는다. 사실 이건 앞서의 공헌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계몽주의자들은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일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연을 감싸고 있던 신비의 영역,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경험하는 경이의 순간이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과정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무지개를 여전히 신의 활 정도로 믿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그건 단지 빛의 굴절일 뿐 아니냐.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을 애써 무시하라는 뜻이냐 하고. 당연히 그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과정에서 세상의 의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 시대 사람은 자연을 어떤 의미가 있는 곳으로 보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텔로스(목적)를 찾아 철학을 시작했고, 동양에서는 도(道)를 찾는 이들이 비슷한 시기 나타났다. 신의 섭리나 로고스와 같은 원리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도 없는 말 그대로 그냥 있는 것(자연), 나아가 어떤 필연적인 의미도 없는 텅빈 공간(the Space)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세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물론 그런 어려운 것은 생각 안 하고 내키는 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대표적인 신(新)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조차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세상을 경이로운 곳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반복해서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핵심적인 변호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C. S. 루이스다(사실 저자는 루이스의 가장 유명한 책 “순전한 기독교”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루이스의 다양한 작품들을 인용하면서 루이스가 간절히 찾았던 경이를(루이스의 표현으로는 joy) 살펴본다.(물론 그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언급된다.)


경이가 사라진 세상은 “노래가 불리지 않는 세상”이 될 거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노래라는 것이 애초에 대상의 경이로움에 대한 찬탄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것을 물질로, 재물로 환산하는 환금주의와 물질주의, 그리고 오늘날 더더욱 부각되고 있는 다양한 인간성 상실을 떠올릴 만한 사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그 전조가 있었던 것. 시와 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메마르고 답답할까.


저자는 왜 우리가 경이감을 회복해야 하는지, 세상을 단지 기계론적으로만 보는 것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다양한 방향에서 조망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세계관을 여기에 접목시킨다. 다만 이 지점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그렇게 경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세상을 경이로운 곳으로 인식하게 될 때 나타나는 변화가 단지 우리의 심리적인 부분에 한정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 또한 그런 다분히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도움인 것처럼(물론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볼 여지가 있다는 점도. 물론 이 책이 기본적으로 EBS라는 공영방송에서 한 강의를 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긴 하다.



우리는 경이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시인도 있고, 가수도 있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미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감정과 경이, 신앙을 모두 2층 다락방 구석으로 몰아넣은 시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날마다 더 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날마다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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