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린 여동생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났을 때, 서진(김무열)은 마냥 기뻐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니까. 처음부터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최근 아내를 잃은 사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 서진과는 사뭇 다른 나머지 가족들의 열렬한 환대는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부모님을 친절하게 모시고, 자신의 딸도 금세 마음을 열게 만드는 유진(송지효)의 등장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감독은 자연스럽게 서진의 시선을 따라 그녀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도록 만든다. 좀처럼 잡히지 않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가면서 뭔가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를 살짝 비춰주는 감독의 기술은 인상적이다. 마치 작년에 개봉했던 어스2017년에 개봉한 겟 아웃같은, 제대로 된 스릴러를 보게 되는구나 싶은 느낌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스릴은 음모의 그림자가 가장 커질 때 최고에 달했다가, 그 그림자를 만들어 낸 원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급속히 곤두박질친다. 인물들의 행동에서 당위성이 사라지고, 억지만 남는 느낌이랄까. 무슨 대단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긴장감을 잘 유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려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직업은 집을 설계하는 설계사이고, 오랜만에 찾은 여동생은 바로 주인공의 으로 들어온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언젠가 잃어버린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그가 직접 설계한 것이었지만, 정작 일에 빠져 있는 그는 집에 가족들과 함께 머물 시간이 없었다. 어느 순간 그의 이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집은 우리에게 가장 편하고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최근 우리는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많이 마주한다. 영화 속처럼 위험하고 수상한 인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도 있고, 스토킹이 이루어지거나 엿보기의 장이 되기도 한다.(물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집과 관련된 공포는 아예 그게 없다는 점일 테지만) 집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망가지면서, 영화 속 주인공은 훨씬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내 집이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되는 순간,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어진다. 누구도 끊임없이 싸우러 다닐 수만은 없으니까.(우리에게는 쉴 곳이 필요하다!) 이전에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가족과 친구마저 나를 부정하고, 가장 가까운 공권력인 경찰도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도, 마음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물론 집은 이 둘 모두를 쉴 수 있게 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쪽이야 말로 좀 더 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집은 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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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영문 제목이 “Attraction 2”인걸 보면 전편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영화는 전편에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한데, 어느 정도 내용이 영화 속에서 풀려나오기 때문에 꼭 전편을 보지 않아도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영화는 러시아 당국이 외계의 기술을 가지고 여러 실험들을 하고 있다는 멘트로 시작한다. 주인공 율리아(이리나 스파르셴바움)는 군 장성인 아버지와 경호원들의 철저한 경호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받는 실험(혹은 심문)으로 볼 때, 전편에서 외계인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얼마 후 죽은 줄로 알았던 외계인 연인 하콘(리날 무하메토프)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내용은 급진전된다. 율리아는 인간들만이 아니라 외계인들에게도 주목(제거)의 대상이 된 듯하고, 그 이유는 하콘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콘은 자신의 동료들이 아닌 인간(이라고 쓰고 율리아라고 읽는다)들의 편에 서기로 하면서 두 사람은 정부와 외계인 양쪽으로부터 쫓기게 된다는 이야기.

 

 

 

 

     흔히 외계인의 침략을 다루는 영화라면 익히 기대되는 그런 장면들이 있다. 엄청난 첨단기술로 무장한 외계세력의 대대적인 공격인데, 광선총이나 레이저 무기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 그런데 이 작품에서 외계인들의 공격은 좀 색다른 방식을 취한다. 바로 정보의 조작과 물(Water).

 

      기술이 발전하면서 매일 수십, 수백 억 개의 정보들이 온라인 상에 올라온다. 외계인들은 바로 그 정보를 가지고 가짜 방송과 가짜 사건, 사고를 만들어 율리아를 공공의 적이 되도록 만든다. 최근 딥페이크라고 불리는 기술이 실제로 나오기도 했고,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실제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게 되었다니 영화 속 이야기가 생각보다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보는 유튜브 속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상황에서, 텔레비전 방송에 영상과 함께 제공되는 정보를 거짓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언론의 장악이란 이래서 무서운 일이다

 

     또 다른 공격 방식인 물이라는 소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신박했던 부분이다. 지상과 대기 중의 물을 제한된 공간 안에 모이게 만드는 방식의 공격인데, 덕분에 위 아래로 물층이 쌓여있고 그 사이에서 간신히 숨을 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인 물을 공격용 무기로 사용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나.

 

 

 

 

     우리가 쌓아올린 많은 것들은 시각 정보에 의해 구성된 것들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혼란스러워질까 싶다. 뭐든지 눈으로 봐야만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이것이 주는 파장은 적지 않을 것 같다

 

     외계인들이 조작한 가짜 뉴스에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선동되고, 선동된 사람들이 휘두르는 폭력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강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어디 꼭 외계인들이 개입해야만 일어나던 일이던가. 어쩌면 외계인들은 그냥 조금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기만 해도 됐을지 모르겠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진보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독특한 느낌의 러시아 SF영화. 전편이 살짝 궁금해 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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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나가는 변호사인 정인(신혜선)은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 화자(배종옥)가 연루된 살인사건의 소식을 듣는다아버지의 장례에 참여했던 동네 주민들이 농약이 들어 있는 막걸리를 마시고 사고를 당한 것집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뛰쳐나온 정인이었지만모든 것이 수상한 사건에서 어머니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


     분명 사건은 초기부터 수상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허준호가 연기한얼굴에 욕심이 가득 차 있는 추 시장은 그 의혹의 정점에 서 있다추 시장이 만들어 놓은 엄청난 음모를 정인이 하나씩 깨뜨려 나가며 진실을 밝히고마지막에는 통쾌한 심판을 이뤄낼 것 같다는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실제로 영화의 초중반은 그렇게 흘러가는 듯도 했다그런데 감독은 좀 다른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괜찮은 구성.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머니와 딸이 있었다모든 것은 딸을 품게 된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고사실을 모르는 딸은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났다마침내 모든 전모를 알게 된 딸이 느끼는 혼란과 슬픔그리고 극복의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영화 속어머니와 딸을 둘러싼 인물들(남성들)은 하나같이 변변찮다뭔가 음흉해 보이는 추 시장을 비롯해동네 주민들은 주인공 모녀를 향해 공격적이기만 하다. (물론 사안이 너무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여튼 감독은 그들을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이들로 그린다.) 시종일관 명확한 사실을 추적하는 정인과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떠안으려는 화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여성중심영화라고도 할 만.






     영화 후반에 드러나는 과거 화자의 결정이 참 아프다그녀로 하여금 제정신을 잃게 만들었던 사실을 깨달은 순간 겪었을 충격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그 시절 그 비슷한 결정을 해야만 했던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차마 딸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은또 다른 아픔으로 이어진다.


     (경제적으로사회적으로독립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여성의 삶이란 늘 어딘가에또 누군가에 끌려가는 위치일 뿐이다그들은 살기 위해 누군가의 호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때로 그건 굴욕적인 상황마저 감내하게 만든다수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하는 것도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계속될 악순환이다.



     화자는 결백했을까? 또 정인은 법률가로서 옳은 결정을 내린 걸까법에는 감정이 없지만사람이 하는 재판정에서 그녀는 충분히 결백을 인정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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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시골마을의 젊은 교사 부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밤만 되면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빙의 뭐 비슷한 느낌). 사모님의 비밀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집에 창살을 만들고, 밤마다 문을 잠그기로 한다. 어느 날 아내만을 따로 둘 수 없었던 남편은 자신도 아내와 함께 창살 안으로 들어가기를 자청했고, 그날 밤 불이 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이 사건을 수사하러 온 형구(조진웅)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만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어느 이상한 날 밤 독한 술에 취했다 깬 그는 자신의 신분은 물론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형사로서의 그는 사라지고, 영화 초반의 교사가 되어 있던 것. 사라진 자신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니던 형구는, 어느 순간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 비단 형구만이 아니라 영화 초반 교사 아내가 밤마다 모르는 사람이 되는 모습에도 언뜻 드러난다. 둘 다 외모는 그대로이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이 전혀 달라지거나(교사 아내), 자신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완전히 달라지는(형사) 경험을 한다.

 

     ​사실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건 경험과 그에 따른 기억들에 상당부분 의존하는데, 이 기억이라는 건 블록체인과 비슷해서, 나만이 아니라 나와 연관된 이들의 공통 기억에도 크게 의존한다. 꼭 영화 속 형구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도, 우리는 아주 여렸을 적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부모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고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곤 하니까. 문제는 이 두 요소가 서로 딱 맞물리지 않을 경우인데, 영화 속 형구의 혼란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주변인들의 기억이 맞물리지 않으면서 커져만 간다.

 

     ​물론 영화가 이런 질문들을 충분히 잘 풀어냈느냐는 좀 아쉬운 부분. 영화 초반에서 중반으로의 전환(교사 부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서 형사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은 많이 갑작스럽고, 영화 종반부 형구와 초희의 대화 중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는 부분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는 만들지만, 그 의미 자체는 불분명하다.

 

 

 

 

​     최근 개인주의와 맞물리면서 내가 누구인지는 오직 나 자신이 결정한다는 유의 가벼운 심리학이 유행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마음가짐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니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내 멋대로 하겠다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다 보면 결국 나에 대한 나의 인식과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식 사이의 괴리가 생기게 될 테니까.

 

     배우로 더 알려진 장진영 감독의 첫 영화. 미숙한 부분도 보이지만, 나름 독특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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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무슨 커다란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만, 전형적 일본의 시골 가족을 중심으로 소소하면서 감동적인 스토리가 그려질 거라고 예상했다. 비슷한 느낌의 다른 일본 영화들처럼. 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그런 기대를 깨버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뭐임?’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으니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떠나보내는 아들 하지메의 이마에서 기차가 조금씩 빠져나오고, 그 빈자리가 뻥 뚫려 있는 엽기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서 알아봤어야 했다.) 하지메의 어린 여동생인 사치코는 자신의 거대한 이미지 때문에 골치가 아픈 초등학생인데, 영화 중간중간 정말로 엄청나게 큰 사치코의 얼굴이 사치코를 바라보는 모습이 묘사된다. 설정상 그 모양은 오직 사치코 자신에게만 보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에 약간 치매기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무슨 마임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가 없고, 엄마 요시코나 외삼촌 아야노도 별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 영화.... 어떻게 보라는 거지.

 

     일단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야기에 논리가 있어야 뭐라고 평을 할 텐데.... 영화 속 캐릭터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서로 특별한 교류가 이어지지 않는다. 매우 적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식.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껏 사용하는 게 진지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똥이나 슬랩스틱이라면 그닥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영화보다 네이버의 영화 한줄평이 더 재미있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분명 재주인 것 같다는 반어적 표현도 재미있지만, ‘산뜻하고 평화로운 어느 시골에서 자란 대마를 핀 것 같다, 작정하고 비꼬는 평도 재미있다. 정말 소위 약 빨고만든 영화 같으니까. 메시지도, 감동도, 비주얼도 볼 것이 별로 없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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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하트 2020-06-27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감독의 다른 영화를 찾아보았지만 다른 작품들은 공감이 잘 안되더군요. ‘산뜻하고...대마를 핀 것 같다‘는 표현은 아마 최고의 상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란가방 2020-06-27 21:36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감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지요.
사실 인물 하나하나가 당면하고 있는 일들은 나름 공감이 되는 면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큰 틀에선 너무 헐겁다는 느낌이 드네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