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4편의 개봉을 앞두고오랜만에 앞선 세 편을 복습해 보기로 했다정확히 말하면 1편은 몇 번이나 다시 봤지만, 2, 3편은 본 적이 없었다. 1편 기준으로 나온 지 20년이 넘는 영화인데지금 보니 액션이라든지 영상미 쪽에서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야깃거리가 나오는 걸 보면 명작은 명작인 듯.

 


매트릭스와 기독교.


영화는 매우 의도적으로그리고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주요 등장 인물 중 하나는 삼위일체(트리니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자신들을 시온으로 이끌 수 있는 구원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영화의 초반을 채우고이제 나타난 구원자가 인류를 구해내기 위한 싸움을 하는 이야기가 후반을 채운다.


이 과정에서 가룟 유다의 역할을 하는 사이퍼도 존재하고죽었던 네오가 살아나면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빼박이다그리고 네오를 중심으로 한 이 모험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적인 가치로 믿음이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측면도 있고.


물론 이런 면은 감독의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 관점을 말해주는 건 아닐 것이다아마도 C. S. 루이스가 말했던인류 문화 전변에 퍼져있는 보편적 구원 신화의 한 영향이라고 보는 게 맞을 터(마치 공산주의 신화가 기독교와 유사한 것처럼). 그리고 사실 잘 뜯어보면 기독교적 서술과는 다른 측면도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네오는 구원자로 성장해 간다이건 초기 기독교 이단 중 하나인 양자설과 비슷해 보인다또 그의 각성의 핵심 요소는 깨달음인데세상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는(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설명은 또 다른 초기 기독교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매트릭스와 유심론.


현실은 가짜혹은 거짓이고진실과 진리의 세계는 저 밖에 있다는 관념론적 관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플라톤이 그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니까이 작품의 핵심에도 바로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지금 우리가 진짜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은 사실 착각혹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일 뿐이라는.

 

언뜻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 부합되지 않는 말인 것처럼 보인다아무튼 누군가 우리를 때리면 아프고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고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행복해지는 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니까물론 그 모든 것이 뇌의 특정한 부분을 자극하기만 하면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도 얼마든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게 마음일 뿐이라는 생각은 비단 무슨 선불교 같은데서 던질만한 화두만이 아니다최근에는 이런 생각에 가상현실이라는 소재가 더해지면서 꽤나 과학적으로 포장되고 있기도 하고흥미롭게도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는 뇌과학 연구자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물론 이쪽의 경우 마음이란 용어보다는 뇌 내 작용이라는 단어를 좀 더 선호하겠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이런 지루해 보일 것만 같은 철학적 내용을 흥미롭게 영화로 담아내는 게 바로 재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회피.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제안한다파란 약을 먹으면 이 세상이 가상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지금처럼 살 수 있지만빨간 약을 먹으면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레오는 빨간 약을 먹고 모험에 뛰어들지만진실을 찾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쉬울 리만은 없다영화 속에서도 사이퍼 같은 인물은 차라리 진실에 눈을 감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했으니까.


이상을 말하고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던져지는 말이 있다.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뀐다는 것현실의 권력을 가진 이들은 너무나 강해 보이고이런 기득권에 도전을 하는 이들은 대개 핍박을 받거나 별 영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은 대개 핍박을 받거나 별 영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영화 속 네오와 그의 동료들은 변화를 회피하지 않았고결국 작은 성과를 얻어낸다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똑같이 경험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이런 도전이 우리 삶을 더 나은 이끌어 온 것도 사실이니까적어도 회피하지 않고 도전하는 일들을 향해 초를 치지는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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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정과 정오하루 두 번씩 다른 사람이 된다는 설정은 한효주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비슷했다영화 후반 강이안 역을 맡은 윤계상이 대 다수로 벌이는 총격전맨몸 결투신은 현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조금 더 과장하면 존 윅” 시리즈의 시그니쳐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고.


영화의 시작부터 쉴 새 없이 사람이 바뀌는데 그 정체나 이유가 불분명해서 영화의 중반까지 약간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또 사람이 변하는 장면에서는 윤계상과 그가 입은 새로운 사람 역을 맡은 배우들이 서로 교체되면서 이런 혼란을 더욱 심하게 만들고감독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면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관객에게 좀 더 일찍 이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 않았을까.


물론 앞서 언급한 비교가 되는 영화들과 차이점도 존재한다.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주인공의 외형이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설정이었다면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몸이 바뀌는 게 아니라 12시간 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었고액션신에서는 그 분위기나 구성이 비슷하다는 의미지 상대적으로 조금은 덜 민첩하고 둔탁하다.

 





어떻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인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건지 설명이 없다.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말 그대로 주인공 자신이 다른 사람의 외형을 취하게 된다는 설정이었으니 그 인물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이다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강이안이 (영혼이든 뭐든들어갔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건과 관련된 실제 인물들이기에그들의 몸에 들어간 강이안은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인 체할 수 있는 특별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그것도 그 몸이 12시간 안에 죽지만 않으면 (그 이후에 죽더라도얼마든 다른 사람으로 깨어날 수 있기도 하고.


문제는 이게 어떤 매커니즘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영화 속 잠시 언급되는 신종 마약이 한 가능성인데설명에 따르면 아주 환각 작용이 강해서 몸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그런데 이게 말 그대로 수사적 표현이지실제로 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마약이 존재한다고 관객에게 설명하려던 것이었던가그것도 12시간이 될 때마다 몸을 바꿀 수 있는?


요컨대 설정은 있는데 설명이 없는 부분이었고이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였기에 전체가 헐거워지는 느낌이다애초에 영화가 심령강신술빙의 같은 걸 다룬다고 했던 것도 아니지 않았나.

 





빠른 전개?


12시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더구나 그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그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엔 더더욱 짧다덕분에 영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전개된다한 몸에 조금 익숙해질까 싶으면 곧바로 정신을 잃고 새로운 몸에 들어가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오락 영화에서 적당한 속도감은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영화가 느슨해지는 것을 막기도 할 뿐만 아니라충분히 세밀하지 못한 부분도 적당히 가려주기도 하니까다만 이 영화의 그런 속도감을 계속 줄이는 캐릭터가 있었으니임지연이 연기한 문진아라는 인물이다.

 

설정 상 국가정보원을 패러디한 안보정보원이라는 기관의 요원이면서 강이안과 커플이었고그가 사라지자 홀로 이안을 찾아나서는 모양인데무슨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렇데 대책 없이 다짜고짜 여기저기를 찌르고 다니기만 하는지이건 정보를 이렇게 흘려줄 테니 날 고생시켜주시오 라고 떠벌리려는 건지.


영화 말미 클래이맥스 격투신에서도애초에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근력까지 떨어지는 상태로 덜컥 잡혀 인질이 되어버리고이안의 행동을 방해하기만 하는 느낌이다그리고 문진아의 존재로 인해영화 내내 뛰어다니는 강이안의 목적도 범죄 소탕보단 연인구출로 급선회해 버리고 말이다. “아저씨나 존 윅에서 왜 주인공이 솔로로 나오는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부분이랄까오해하지 말자여성 캐릭터의 존재나 등장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이런 식으로만 묘사되어 극의 속도감을 늦추는 게 아쉽다는 말.


 

그래도 대진운이 괜찮은지 제법 흥행하고 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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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등장이다물론 머조리티나 마이너리티라는 개념 자체가 상황에 따라 변하긴 하니까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란 서구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동양계 캐릭터들이 자주 보이는데중국계 여성 외모의 세르시와 (당연히한국계 남성인 길가메시그리고 인도계 남성 외향의 킨고(킨고역의 쿠마일 난지아니는 파키스탄 출신)까지 무려 셋이나 있다.

 

뭐 선사 시대부터 지구에 와서 사람들을 지켜주었다는 설정 상문명의 기원이 죄다 동양에 몰려있는 인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그들의 외형이 동양적이라는 게 그리 어색한 부분은 아닐 것 같다서양문명의 시작인 그리스 문명이 시작될 즈음이미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은 3천년이나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인종만이 아니다팀의 블레인을 맡고 있는 파스토스는 흑인에다 게이(동성 배우자와어찌어찌 아들까지 두고 세 남자가 함께 살고 있다)이다또 마카리라는 캐릭터 역시 흑인이면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는 설정(마카리 역의 배우 로런 리들로프는 실제로도 청각장애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계 첫 마블 히어로였던 마동석보다도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히어로라는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이번 작품에서는 그저 빠른 속도가 주로 보였지만이후 다른 매력을 보여줄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


다만 의도적으로 뭔가를 일부러 우겨넣었다는 감상도 적지 않게 든다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보여주려고 애쓰다보니 일어난 결과인 것 같기도 하고하나의 신념이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독점하려고 할 땐그게 어느 진영이든 뭔가를 파괴하게 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관객들이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도 이런 차원이 아닐까 싶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여기서부터 스포 주의)


영화는 이터널스가 인간들을 공격하는 데비안츠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처럼 보인다그리고 그런 이터널스를 지구로 보낸 것은 셀레스티얼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창조자)였다그런데 영화가 점점 진행되면서셀레스티얼의 좀 더 큰 계획이 서서히 드러나고이터널스 멤버들 사이에도 편이 갈린다. ‘시빌 워가 너무 빨리 나타났달까.


셀레스티얼은 지구를 일종의 배양기로 삼아 지적 생명체들을 증식시키고그들을 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과정에서 지구와 인류는 완전히 파괴되지만새롭게 탄생한 셀레스티얼이 새로운 은하계와 생명들을 창조해낸다는 설정이다일부 이터널스는 이런 계획에 반감을 느끼고 명령을 거부한 채새로운 셀레스티얼(이름이 바벨론 창조설화에도 등장하는 티아매트를 떠올리게 한다)의 탄생을 막는다.


사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은 자연의 순환이다흔히 낭만적으로 자연의 순수함과 평화로움 운운하지만실제로 자연은 먹고 먹히며 끊임없는 파괴와 새로운 생산이 이루어지는 전쟁터에 가깝다문제는 이런 현실을 인간을 비롯한 지적 생명체가 나아갈 기준이상향으로까지 끌어올리느냐아니면 인류는 좀 다른 기준과 윤리를 따라 살아야 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결론이다하지만 이터널스의 일부 멤버들이 그랬듯우리는 이런 결정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사랑도 호르몬의 작동 차원으로낙태를 자연의 품질관리로식민 지배를 더 우월한 문명의 진화론적 행동으로 여기는(이 모든 건 크리스토퍼 히친스나 리차드 도킨스가 실제로 책에서 사용한 표현이다유물론을 품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





 

복잡난잡?


새로운 등장인물이 워낙에 많아서 그런지 영화가 복잡한 느낌이다영화는 굉장히 묵직한 철학적 주제(위에서 언급한)를 담고 있고그로 인한 캐릭터들의 고민이 중심이 되는데 이런 캐릭터의 입체성이 그리 잘 묘사되는 것 같지도 않다무조건 시키면 해야 한다는 이카리스의 주장은 단순 그 자체고일부는 중2병에 걸린 듯한 캐릭터를 보여줄 뿐이라 매력이 떨어진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기에 많은 걸 새로 소개하고 설명하느라 어느 정도 어려움은 있었겠지만소위 마블 영화의 강점인 적당한 유머가 섞인확실한 액션과 볼꺼리라는 측면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대신 넓은 화면을 채우는 풍경들은 인상적이었지만이게 마블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바라는 포인트일까 싶고.


기대했던 것만큼 마동석의 분량이 많지도 않다우리나라 영화에 출연한 마동석의 캐릭터는 대체로 엄청난 하드웨어+반전이라고 느껴질 만큼 스윗하거나 섬세한 성격인데이번 영화에서도 딱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좀 더 묘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싶었지만워낙에 많은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묻힌 감도 있고물론 그 와중에도 존재감은 보였지만너무 이른 퇴장을 맞이했으니...


개봉 첫날 영화관을 나오면서 ‘7점까지는 못 주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는데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이즈음 경쟁이 될 만한 영화가 많지 않았던 탓인지예매율은 1위를 차지하고 있다지만재밌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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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감성.


     영화를 보면서 문득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일본 영화들이 떠올랐다그 중에서도 역시 아케우치 유코가 주연을 맡은 지금만나러 갑니다가 가장 먼저였다감정의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이 영화에서도 헌신적으로 가족을 보살피는 캐릭터와 조금은 무뚝뚝한 가장그리고 도시를 벗어난 시골마을의 정서 같은 게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이런 감성은 또 대만영화나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들에서도 종종 보였던 것 같다드라마에 일부 멜로적 요소가 더해지고판타지가 포인트로 더해지는 그런 영화이런 게 동양적 정서에는 제법 많이 와 닿는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여기에 가족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서 아주 제대로 관객을 자극한다각자의 생각으로 대화가 끊어지면서 오해가 큰 담처럼 쌓인 부자가 결국 속마음을 털어놓는 영화 종반 장면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그리고 또 하나이 영화의 히든카드 격인 보경의 정체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효율성.


     영화의 배경이 되는 양원역은 실제로 존재하는 기차역이다경북 봉화의 산골에 있는 두 개의 원곡마을’ 사이에 위치한 역인데영화에 나온 것처럼 기차가 아니면 마을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 자체가 없었는데도 기차역은 없어서마을 주민들은 먼 산길을 돌아가는 대신 인근 역에서 내려 기찻길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제때 피하지 못해 사망하기도 했고.


     그러면 진작 역을 하나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건설비부터 운영비까지 역 하나 운영을 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그런데 심지어 이 역을 이용하는 인원이 하루에 다섯 명도 안 되는 상황이니 타산이 나오지 않는다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역을 설치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이다결국 영화 속 이야기처럼주민들이 직접 역을 만들고 역명까지 정한 전국 최초의 역이 생겼다고 한다다만 이용자 수가 워낙에 적으니 지금은 관광열차만 운행 중이라는 소식.






     어려운 문제다이동권이라는 건 법률로 규정된 건 아니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상황이 이러면 대책을 세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 같다비슷한 부분으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사회적 과제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데이쪽은 일종의 사회보장혹은 복지 차원에서 비용의 상당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그런데 기차까지 그렇게 운행을 하는 게 가능할까(비용 측면에서 워낙에 큰 차이가 나니까).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나 부담이 가능할까.

 






배우들의 호연.


     영화를 보며 젊은 여배우 둘이 눈에 띈다걸그룹 출신의 윤아는 제법 이런저런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어느 정도 연기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고(진짜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팍), 이야기에 색다른 느낌을 주는 보경 역의 이수경은 몇몇 작품에서 꽤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약간 시골스러운 느낌의 연기에서도 매력을 발휘한다).


     주연인 박정민의 연기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는데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자식들을 사랑했던 아버지 역의 이성민이 잡아주는 무게감도 꼭 필요했다앞서도 언급했지만이 아버지 역의 이성민이 눈물을 삼키며 털어놓는 진심이 마음을 울렸다.


     전반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중심이 되는 이야기 몇 개를 잘 조화시켰다는 느낌뻥뻥 터뜨리는 영화도 좋지만가끔은 이런 영화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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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나라는 1991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북한과 동시에 유엔 가입을 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조차 되지 않은(못한나라였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그땐 그랬다전쟁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되어버리고군부독재의 힘든 시기를 지났음에도 아무튼 그렇게 정상국가가 되어왔다(물론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북한이 정상국가인지는 여전히 미심쩍지만).


유엔 가입은 국제사회에서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받는다는 걸 의미했고북한과의 체제경쟁에 한참이었던 시기 우리나라는 당연히 이 일에 매진했을 것이다영화는 그 시절 유엔에서 가장 많은 표를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애썼던 우리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모든 게 갖춰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이야, ‘체제 경쟁을 위해 했던 여러 일들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한 국가에 있어서 정통성이란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고냉전이 여전히 지속되던 시절 그건 존립을 흔드는 위협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영화는 그 시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한 번 진지하게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우리 참 힘든 시기를 잘 헤쳐 나왔다이건 당연한 일도자연스러운 결과도 아니니조금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위기.


작중 소말리아에 머물고 있던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반군이 시작한 내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다어린 아이의 손에도 들려진 AK-47 소총의 총구는 누구를 향하게 될지 알 수 없었고국제법적으로 다른 나라 땅으로 인정되는 대사관마저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대사관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탈출을 계획한다.


감독은 이 위기 상황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그려낸다현지 상황은 전혀 모른 채늘 안전한 곳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딴지나 걸어대는 훈수꾼들의 생각과 달리실제 상황에선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수두룩하기 마련이다감독은 예측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들을 적절하게 나열해서 보는 사람들도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이 위기 상황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건역시나 동포애가 아니었나 싶다대사관을 습격당한 북한 외교관들이 중국 대사관에 이어 결국 찾아간 곳이 우리나라 대사관이었다는 거굳이 통역이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대화가 통한다는 것만 해도 급할 때 매우 큰 메리트인데다국교관계를 수립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의례를 생략하고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런 결단이 정부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훨씬 더 진전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고.





 


반복.


영화 속 비참한 현실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상 수많은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10년이 넘은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예멘이나 시리아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수는 이미 수백 만 명을 넘겼다가깝게는 최근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는 상황이고.


이 혼란상을 보면서 다양한 감상이 생길 수 있겠지만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떠오른 건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무질서한 상황이 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물론 거의 대부분의 혁명은 피를 흘리기 마련이지만그렇게 흐르는 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감상적인 이상주의에 취해서 혁명이니전복이니 하는 단어들을 가볍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가능해야 한다그렇지 못하면 앞서 설명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일 테니까하지만 그게 대책 없는 질서 무너뜨리기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현실은 아무렇게나 무너뜨리고 쉽게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레고 블럭이 아니니까.(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보수적으로 되나 보다)


 

간만에 본 잘 만든 영화올해 지금까지 본 30여 편의 영화 중 가장 괜찮았던 작품오락성도 있고생각할 꺼리도 던져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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