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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평점 :
도킨스가 쓴 책으로는 두 번째 읽는 책인데, 그래도 자신의 전공을 중심으로 쓴 이 책이 그나마 읽을 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 다른 신념체계를 가진 사람에 대한 혐오와 조롱으로만 가득 찼던 다른 책을 보고는, 적어도 이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이 책은 최소한 논리성을 띠려고 애쓰는 것 같긴 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40)이며, 이 책의 제목에도 드러나듯, 그 유전자는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식을 지시함으로써(123) 자신의 유전정보를 최대한으로 남기기 위한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흔히 ‘종의 보존, 번성’과 같은 이유를 대며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다른 다윈주의자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저자는 그 행동의 핵심은 ‘종’과 같은 단위가 아니라 ‘유전자’로 좀 더 좁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만 이해한다면, 책의 나머지 부분은 같은 주장의 반복임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유전자’일 뿐이다.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는 다른 이론들은 다 틀렸다. 모든 것은 유전자의 자기복제, 혹은 자기와 가까운 유전자(심지어 그게 50%정도의 유사성이라도)를 더 많이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저자의 주장이 귀납적이라기보다는 연역적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동물의 행동에 관한 ‘만물 유전자 기원설’을 주장하는데,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이 여기에는 심지어 다윈주의자들 안에서도 다양한 이설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했던 작업은 다른 설명들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복’일 뿐이다. 반박으로 볼 수 있는 몇 부분은, 일부 동물들의 행동에서 이설로 설명되지 않는 예외적 패턴이 발견된다는 점 정도인데, 과연 그 정도로 충분한 걸까?(물론 이 책이 대중교양서로 나왔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정확히 말하면, “동물들의 행동을 ‘이기적 유전자 기원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전자들이 정확히 어떤 기제로 특정한 행동하는 개체를 선택하고 만들어 내는지 그 과정을 정확히 관찰할 수도, 실험할 수도 없다(여기엔 인간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된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건 그의 가정들에 근거한 설명이지, 과학적 증거가 아니다. 저자의 주장은 ‘그럼직 할’ 뿐이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다양한 게임 이론은 말 그대로 인위적인 것에 불과하다. 특히 각 게임에 임하는 개체들의 선택과 그 결과로 부여된 점수들이 그렇다. 예컨대 승자는 50점, 패자는 0점, 중상자는 -100점과 같은 점수체계는(140) 자연에서 볼 수 없는 가정일 뿐이다. 이런 건 말하기에는 좋지만, 정말로 사정이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저자는 반복해서 자신이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며, 실제로 유전자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충분히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유전자 연못(수프)’과 ‘평균’이라는 수학적 모델이 만들어 낸다.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의견에 정확히 동의한다. 유전자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우리를 특정한 행동으로 몰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 부분이다. 저자는 분명 자신이 ‘진화에 근거하여 도덕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41)라고 말한다. 보주에서 저자는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까지 덧붙인다(429). 하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느꼈겠지만, 저자는 유전자가 마치 인간의 어떤 행동을 결정하는 것처럼(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하는 데다가,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시하려고 한다.(가끔 이 과정은 조롱과 빈정거림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합리적 출산’라는 부분(209)에서 저자는 (절반 정도 유사한)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는 쪽으로 진화하는 원리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극히 부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아이에 대한 생활보장의 특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짓는다. 이게 유전자 단위의 특성을 가지고 윤리에 대해 한 수 조언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무엇인가.(하긴 저자는 앞서 언급한 ‘다른 책’에서 유산을 가리켜 자연의 “품질관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내용이 어렵지는 않았다(일단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잘 쓰긴 했다). 그리고 책에서 설명하려는 주장 자체도 그리 난해하지 않다. 문제작이고, 관련된 이야기들이 종종 사용되니 교양삼아 한 번 읽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