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알쉬와 실비아 키이즈마트는 공저인 『제국과 천국』에서

오늘날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는 신은 더 이상 신전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은밀하고 더 광범위하게 삶을 지배하고 대중의 마음을 빼앗는다.

흥미와 자극만이 이 종교의 유일한 교리이다.

빠르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의 도파민을 자극한다.

이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느린 속도의 이야기에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의 이야기에 더 이상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거대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인간의 언어로 충분히 담아낼 수 없으며,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주일에 단 한 번 30분이라는 설교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홍광수, 『넷플릭스가 삼켜 버린 기독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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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모아봐야 어차피 적은 돈이라서 소용없다’와 같은 말이

앞으로 청년 솔로들의 주머니를 노리면서 점점 퍼질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인간의 매력이 통장에서 나오게 되는 시기가 온다면 어쩔 것인가?

돈 자체가 매력이 아니라,

돈을 모아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매력인 것이다.


-  우석훈, 『솔로계급의 경제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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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나의 정략적 사설을 늘어놓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교회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은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관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 있는 말씀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목적으로 써먹고 있느냐를 검증하는 일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실제 해석의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해석학적 우상숭배’를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권연경,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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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차분히 물어야겠지요.

정치 환멸이 퍼질 때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혹 그들이 정치 환멸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를.

아울러 그 결과까지 종종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멀리할 때

결국 특권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삶이 좌우되는 상황을 맞게 되니까요.

정치는 우리의 무시에 반드시 보복하거든요.

'정치 무시의 정치'랄까요.


손석춘,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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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가장 유사하지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충만함과 빈곤함, 최고 권력과 비천한 신분,

정의와 회개, 무한한 능력과 도움의 호소만큼

서로 닮지 않은 것들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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