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적인 역사 이해가 없는 사람은

원형의 미로에서 방황하며

입구도 출구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톰 홀랜드, 『도미니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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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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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네가 어려움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네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된 일에 반드시 따르는 어려움이기를 바란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려면 많은 친구가 필요할 거야.

이 세상에서 친구보다 더 귀중한 선물은 없음을 네가 발견하면 좋겠구나.

우정에는 시간이 들지.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시간을 주셨단다.

서로 친구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게 돼.


- 스탠리 하우어워스, 『덕과 성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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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임종기 의료 전문가 나가오 가즈히로는,

사람들이 맛집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정작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선 무작정 의사에게 맡겨버린다고 꼬집었다.

정말 그렇다.

죽음을 위해 한 끼 식사 만큼의 노력도 안 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 김이경, 『애도의 문장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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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은 과학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이며 우호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창조 신앙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우리가 (모든 면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주신 지적, 이성적 능력으로

창조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포함한 모든 지적 노력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의 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강영안, 우종학,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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