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의미 있는 노력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은

자신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옳고 당연하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에게도 그 방식을 따를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기 십상입니다.


로완 윌리엄스,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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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란 수괴의 대통령직 박탈 선고. 

당연한 일이었고, 다행인 일이지만, ​ 

여전히 윤신론자들의 발악이 걱정이다. 

처음부터 이들은 논리적인 대화가 안 됐으니까. ​


또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 교회의 무지성과 개념없음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잠시 기쁨을 누리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 삶을 짓누르는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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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4-04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법재판관이 말하기도 했습니다만,
서로 ‘존중‘하는 말을 쓸 일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312272?rc=N&ntype=RANKING

‘윤신론자들의 발악‘이라는 말이란
‘혐오표현‘입니다.

아무리 윤씨와 여러 무리가 얼뜬 짓을 했더라도
‘발악‘이라는 낱말은 안 써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이런 혐오발언인 ‘발악‘을 자꾸 쓰기에
다시금 나라가 쪼개지고 맙니다.

그리고 ‘전광훈과 추종자‘라고 해야지,
˝한국 교회의 무지성과 개념없음˝은
알맞지 않은 말입니다.

저는 무교입니다만,
제가 아는 목사나 신자나 교회는
모두 탄핵을 찬성했습니다.

어떤 얼뜬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집단을 통째로 ‘무지성‘과 ‘개념없음‘이라 말하는 일이야말로
또다시 ‘차별-분열‘을 부추기는 혐오발언일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와 뜻이 다른 사람˝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며
문제를 풀어가려는 마음이 아닌,
이런 혐오발언을 멈추지 않을 적에는
계엄 우두머리를 탄핵했더라도
미움불씨는 오히려 더 번질 수 있습니다.

윤씨한테 붙이는 ‘수괴‘라는 말은
지난날 박정희와 전두환이 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며 쓴 말이기도 한데
‘수괴‘ 같은 말도 삼갈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노란가방 2025-04-05 00:28   좋아요 1 | URL
언제나 점잖게 논평하는 위치에 있을 수 있으면 참 좋은 일이겠지요.

수괴는 법률 용어입니다. 2020년 형법에서는 ‘우두머리‘로 개정되긴 했으나, 여전히 군형법에서는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썼든, 이토 히로부미가 썼든, 수괴라는 단어가 애초에 비문이 아닌 법률 용어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용하지 못할 법은 없지요.

요새는 그저 ‘내가 듣기에 기분 나쁜 용어‘에다가 ‘혐오‘라는 딱지를 붙이는 사상경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일본에선 그렇게 부른다네요) 그런 식으로 말을 옥좨는 것 또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표시와 사상의 표현을 임의로 제한하려는 굉장히 전제주의적 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참고로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에 와서 지난 몇 달 간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던 사람들도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죠. 저는 모든 기독교인들에 대해 비난하는 게 아니었고, ˝윤신론자˝라고 부른 윤석렬의 광적인 추종자들을, 그리고 이즈음 온갖 언론에 도배되는 두 명의 사기꾼 목사들과 그 추종자들의 지성없음과 무논리에 대해 비판했을 뿐입니다.

무지성과 개넘없음이라는 단어가 불편하신 이유가, 전부가 그렇지 않고, 정말로 그런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 굉장히 형식논리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 같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그런 식의 과도한 형식논리 찾기로 의사소통이 되기는 할 지 살짝 의문입니다. 제가 무슨 법정 선고 요지서를 쓰는 것도 아니고(그런 경우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오해가 없도록 써야겠지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끄적이는 곳에, 제 경험과 느낌을 썼을 뿐이거든요. (이 경우 문맥을 정확히 설명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고 느껴지네요)
 


교회가 독재정권이나 전제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처사에 침묵하는 것이

과연 교회가 중립적으로 순수하게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 구스타보 구띠에레즈, 『해방신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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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성공적으로 부과되었다.

그들은 가장 명백한 실제적 침해도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그 심각함을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만큼

대중적 사건들에 관심이 충분히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의 부족으로 그들은 여전히 제정신인 채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였고,

받아들인 것은 해가 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마치 옥수수 낱알이 소화되지 않고도 새의 몸속을 통과하는 것처럼,

뒤에 잔여물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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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02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중국을 보면 게속 1984가 생각나더군요

노란가방 2025-04-02 09:40   좋아요 0 | URL
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온갖 음모론에 빠져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위에서, 앞에서 선동하는 대로 따라만 하는 사람들이 수만 명 그 이상이니까요. ㅠㅠ
 


대부흥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는

자급, 자전, 자치하는 복음주의 한국 개신교회의 형성이었고,

그 장기적인 결과는

한국 개신교회가 일제 식민지 기간의 핍박과 난관을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거룩한 기억을 제공받은 것이었다.


- 옥성득, 『한국 기독교 형성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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