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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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으로 전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었던 피케티의 근간이다. 그 사이에도 열 권 가까운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만에 피케티의 책을 손에 들어 본다. “21세기 자본”에서 상속 등으로 형성된 금융 자본(사실상의 지대)의 수익률이 임금소득보다 월등히 높은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이번 책에서는 (제목처럼) 평등이라는 가치가 인류 역사에 어떤 식으로 등장해 퍼져나갔는지를 (생각보다는 짧지 않게) 정리해 낸다.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인류의 노력으로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좌파답게,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며, 평등을 향한 여정은 승산 있는 싸움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이 늘 장밋빛이거나 레드 카펫이 깔려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는 평등을 향해 다양한 장치들과 규칙을 만들었고, 실제로 교육과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평등이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논지이다.





물론 이 과정은 앞서도 말했듯 매끄럽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노예제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노예가 아니라!) 노예의 소유주들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했다. 또,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식민 본국은 막대한 빚을 과거의 식민지들에게 안겼다. 결과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식민지는 독립했지만(평등의 증가), 여전히 불평등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런 불평등을 강화하는 장치들이 공고화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여론을 형성하는 각종 미디어와 싱크탱크들은 독점화 된 부와 권력을 평등하게 이전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막을 힘과 의지가 충만하다. 그들 대부분이 이미 부와 권력을 손에 준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저자의 단골 레퍼토리인 누진세 제도의 강화, 세금 도피처들을 돌며 희희낙락하는 탈세범들을 제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세금 부과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면 경제성장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반론에 관해서 저자는 역사적 데이터를 가지고 오는데, 미국의 예를 보면 1870년부터 2020년까지, 오히려 누진세를 강화했을 때 경제성장률이 높았다는 것. 사회적 불평등을 일정 수준 이하로 만드는 것은 전반적인 사회적, 경제적 성과를 내는 데 영향이 있다는 말이다.





다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목소리가 과연 언제쯤 힘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내서 반대자들까지 설득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국가에 의한 생산 수단의 소유와 중앙집권화된 계획 체제라는 특징을 지니는 사회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전 세계적 범위의 초국가적 세금을 도입하는 것만큼 “중앙집권적이고 계획적인” 체제가 또 있을까.(저자도 자신의 주장과 비슷한 제안을 하는 프리오의 주장에 대해 “극단적인 중앙 집권 국가나 다름 없”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226)


책 후반에는 교육의 평등, 남녀 간의 임금격차와 사회적 평등, 종교에 대한 대우 등등 사회 전반적인 평등에 관한 조금은 짧은 주장들이 담겨 있는데, 이 역시 문제의 지적은 확실했으나, 실질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교육의 평등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걸 공교육의 차원에서 구현해 낼 방법은 있을까? 얼치기 평등주의적 교육이론에 따라, 모든 아이들에게 (애초의 학업성취도와 상관없이) 똑같은 수준의 교육(이 경우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생에게 맞출 수밖에 없다)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평등한 것일까?



물론 이 책에서 제시된 평등의 요구는 분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의의 감각에 어울리는 일들이다. 하지만 평등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때, 자칫 그 또한 우리를 옭아매는 사상적 밧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등은 목적이 아니라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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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아포리아 4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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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지성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물어왔던 질문이다. 철학과 종교에서는 이 질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는데, 쉽게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오늘날에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이른바 뇌과학의 영향으로, 선악과 같은 도덕, 윤리의식을 뇌의 기능으로(그러니까 순수하게 물리적인 효과로) 치환하려는 태도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질문에 합리적인 대답은 아니기도 하다.


이 책은 영유아들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선과 악을 언제부터 구분하게 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실험 변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비윤리적이니까)를 지니는데, 저자는 그런 변수가 최소한으로 생기는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꾸밈으로써 이 문제를 피해가 보려고 시도한다.


물론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는데,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들의 의사를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아아들의 표정과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분석하는 최신 기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선택지에 더 오랜 시간 눈길이 머문다는 것. 이게 절대적으로 맞는 추측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실험이고, 저자의 결론도 명쾌하다. 아기들은 생후 1년이 되기 이전에 이미,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구분할 줄 알고, 대다수가 선한 행위 쪽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실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는 그렇게 단순하게 선악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들도 잔뜩 있기에, 아기들의 행동에서 발견된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실험 결과는 책에서 묻는 “도덕은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소위 진화심리학의 상투적인 표현(어떤 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존재론과 정의론의 기괴한 융합)을 사용해 가며, 어떻게든 (입증되지도, 관찰된 적도 없는) 과거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며 이어져 온 진화적 생존 적응설을 꺼내지만, 애초에 그런 설명을 할 거라면 굳이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필요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연구의 방법론은 신박하긴 했지만, 선악이 무엇인지를 묻기에 아기들은 그리 적합한 스승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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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를 속여라! 다크패턴 - 기만적 UX/UI의 유혹을 피해 고객 신뢰를 얻는 윤리적 디자인으로 가는 길
나카노 유키 지음, 장건희 옮김 / 책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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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보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마케팅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온갖 기법들이 사용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가 사그라지는 판이다. 그 때문인지 이른바 “다크 패턴”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여 묶어두려는 행태도 적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 다크 패턴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이런 내용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약관에 깨알 같은 글씨로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이 삽입되어 있는 경우. 책에는 심지어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담은 국민투표에서, 찬성 쪽이 훨씬 큰 동그라미로, 반대 쪽은 작은 동그라미 안에 표기하도록 되어 있었고, 질문에는 추가적으로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히틀러의 나치당에 투표하겠느냐는 내용까지 포함되기도 했다는 일화도 보인다.



왼쪽의 큰 원이 합병 찬성 칸, 오른쪽은 반대 칸



책에 다루고 있는 건 주로 온라인 페이지 속 다크 패턴들이다. 거부를 어렵게 만드는 (종종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UI 구조 설계부터, 이용자의 심리를 조종하려는 문구들(예컨대 눈물을 흘리는 이미지와 함께 탈퇴를 계속 하겠느냐고 묻는), 디폴트 값을 비용을 더 지불하도록 설정해 놓는 것 등등. 하나하나가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것들이다.


결국 기업들에서 이런 식의 행보를 하는 건, 그게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크 패턴을 적용시키는 경우 일시적으로 매출이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곧 이용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직면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고객대응서비스 비용이 높아지고, 잠재적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는 이용자들이 대거 빠져나가기도 한다니 정말로 이익이 되는 건지는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이용자 쪽에서도 이런 패턴들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아 둔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물질적,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 한 번쯤 읽어 볼만하다.


사실 정도(正道)경영이란, 고객이 지불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 주면서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속임을 통해서 잠깐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엔 지속적인 사업을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특히나 오늘날처럼 기업에 관한 평판이나 정보가 큰 폭으로 공개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 대부분 다른 선택지까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고. 하지만 어느 시대나 쉽게, 그리고 빨리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사기꾼 심보는 사라지지 않으니...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왜 기업들이 이런 다크 패턴을 사용하게 되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내용이 잠시 실린다. 주된 원인은 기업의 성장 지표를 잘못된 방식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경영의 기본이 안 됐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뭐든 기초가 안 된 상태에서 높이 쌓으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법.





페이크 영상까지 만들어 가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사기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크 패턴 정도는 애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애교가 아니니 한 번 공부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또 한 편으로 다크 패턴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서 만드는 것인지라, 그 안에 담긴 심리적 패턴들, 행동들을 연구하는 건 (속이는 방식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좋은 마케팅 방식을 개발하는 데 사용해 볼 수도 있겠다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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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존엄사 - 의사 딸이 동행한 엄마의 죽음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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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현직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제목에도 이미 언급되어 있고, 비슷한 내용의 책을 한두 권 읽은 것도 아닌지라, 내용상의 새로움은 없었지만, “단식 존엄사”라는 개념을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겠다 싶어 집어 들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적 질환을 갖고 있었다. 우리 몸의 운동능력을 담당하는 소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일반 발병되면 온몸이 점차 굳어가는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가계도 속 적지 않은 인원이 이 질병을 갖고 있었고, 질병을 발현하는 인자는 우성인자로 보였다. 자녀를 낳으면 1/2의 확률로 같은 질병을 갖게 된다니 당사자로서도 꽤나 걱정을 하게 만드는 질병이다.


다행이도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발병이 되었고, 그 덕분인지 병의 진행 속도도 늦었다. 하지만 결국 고통스러운 결정을 할 시기가 왔고, 어머니는 담담하게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여기에 세 명의 자녀들도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고(남편은 이미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반복해서 지적했던 것처럼, 단지 죽음을 피하는 것이 현대 의학의 최고선이 되어버린 상황은 분명 허점이 많은 제도다. 소위 연명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는 오히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고통(가장 대표적으로 삽관 자체가)을 겪게 되고, 그 기간 결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의식도 또렷하지 않으면, 누군가 영양 공급과 배변을 대신 처리해주어야 하고, 심지어 기계장치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또, 흔히들 많이 보는 제세동기는 환자 입장에서는 (피부가 검게 그을릴 정도로) 전기충격기와 다를 바가 없는 고통이다.


환자의 가족이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집중 치료실에서의 일주일은 적게 잡아 50만 원 이상에서 100만원을 쉽게 넘긴다. 간병인을 둘 경우 비용은 더욱 증가하고, 가족 중 한 명이 전담해 간병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런 인공적인 수명 연장술은 종교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흔히 종교계는 이른바 “존엄사”에 반대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을 기계장치를 통해 그저 연장하는 행위는 수명에 둔 신의 뜻을 저항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저자 역시 이런 면을 의식했는지 “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 음식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고대 로마에서도 자주 있었다. 예를 들면 스키피오를 실각시켰던 공화파 정치인 대(大) 카토는 자신의 몸이 죽음에 가까워졌음을 인식하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이런 결정은 환자에게 죽을 때까지 고통을 가하는 현대의 연명의료(와 이를 유지시키는 법)에 대항하는 유효한 방식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역시 악용되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사람이 만든 모든 제도가 지니는 숙명이니까.


한편으로 책의 구성이 조금은 난잡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중간 중간 가족의 이야기, 특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담아내고 있기도 하고, 덕분에 이야기의 호흡은 자주 끊긴다. 책이 존엄사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기보다, 일종의 가족 문집으로 쓴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 심지어 책 말미에는 저자의 동생이 쓴 어머니에 대한 기억 같은 글도 덧붙여져 있다. 물론 가족적 의미는 있겠지만, 단식 존엄사라는 주제 자체에 집중하려는 독자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이긴 하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죽음에 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의 삶을 좀 더 큰 맥락 안에서 생각해 보게 만들고, 오히려 현재의 하루하루에 좀 더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비단 이 책이 아니라도, 한 번씩은 읽어 봐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전히 연명 신화 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관련 법률도 개정을 위한 좀 더 실제적인 움직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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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24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한국에서는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어머님 친구분중에서도 대장암 수술후(대장 대부분 제거),대변 팩을 밖으로 달고 다니셨는데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마기 았냐면서 한 두주 스스로 곡기를 끊고 돌아가신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아마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이 되어다면 보다 더 편하게 돌아가셨을 텐데 돌아가실때끼지 매우 힘드셨던 것으로 들었습니다.이제 우리 사회도 개인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서 죽음을 선택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미켈 볼트 라스무센 지음, 김시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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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이라는 단어는 벌써 거의 한 세기 전에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이제는 사장된 언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새로운 파시즘”이 득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부적인 면에서 과거의 파시즘과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그 핵심부에는 여전히 “외국인을 배제함으로써 상상의 유기체적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이 있다는 것.


과거의 파시즘의 중심에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새로운 파시즘의 중심인물은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르펜,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덴마크 피아 키에르스고르 같은 (그 중에서도 역시 트럼프) 인물들이다. 확실히 이즈음 극우정치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이지만, 일부(예컨대 트럼프 같은 인물은)는 극우라는 이념 지향 보다는 오히려 탈이념적인 인물도 있다.





책 제목에도 나와 있듯, 저자는 이 새로운 파시즘에 ‘후기 자본주의’를 덧붙이고자 한다. 문제의 원인을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서만 찾으려 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문제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려는 시각이다.


정리하자면, 대규모 경제위기는 복지의 축소로 대표되는 긴축정책을 펴도록 만들었고, 이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다시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신,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고, 이 공간을 파시스트들이 차지했다는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어떤 종류의 음모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의 표현”이다.


오랜 경제 위기로 인해 누적된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불만을 해소할 “복수의 대상”을 찾는다. 파시스트들은 그런 사람들 앞에 이민자, 무슬림, 공산주의자, 유대인 같은 타자를 희생양으로 던져주어 물어뜯도록 만든다. 또, 새로운 파시즘은 이전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 특히 온라인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소위 일베나 펨코 같은 파시스트들의 친목질 커뮤니티에서는 이민자나 특히 중국인이나 무슬림에 대한 강력한 혐오와 공격적 언사들이 일상적으로 발화되고 있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건, 이른바 진보적 의제를 제시한다는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


심지어 현재 우리나라엔 책에는 나오지 않는 현상도 있는데, 바로 종교적 배경을 지닌 집단이 부패한 정치세력과 굉장히 밀착해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일각은 물론 통일교나 신천지 같은 이단 집단들이 책에서 말하는 새로운 파시즘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도, 그런 것들 주장하는 세력들에게 돈과 인력이라는 지원을 하는 상황은 종교와 정치의 오랜 (그리고 부적절한) 밀착의 반복이기도 하지만,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책의 분석이 아주 정교하지는 못하다. 사실 책 자체의 볼륨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앞서 말한 주제가 별다른 발전 없이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느낌이다. 어떤 인상비평, 사건에 대한 스케치 정도에 가까워 보인다. 당연히 상황에 관한 설명 이외에, 대안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볼륨에 비해 책값이 꽤나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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