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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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검사나 판사 같은 직업을 떠올리면왠지 정의를 수호하는 멋있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었다물론 그 때는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볼 기회 같은 게 아예 없었으니영화나 드라마책을 통한 간접만남을 통해서 형성된 이미지였을 거다하지만 이젠 그런 환상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여전히 법집행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들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만현실 속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직업인일 뿐이었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까사실 요새 나오는 창작물들 가운데는 권력에 아첨하고 성공에 목을 매는 검사들이나 기분에 따라혹은 욕망에 따라 판결을 굽게 내리는 판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검사들을 당장에 없애버리는 게 가능할 리 없다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이들의 존재가치가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이 판결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윤리적철학적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일부에 문제가 있으니 전체를 없애버리라는 지시는 내리기 쉽지만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얼마 가지 못해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다우리나라의 해경처럼.






     이 책의 저자는 뉴욕 남부지검장을 역임한 프릿 바바라이다이름에서도 살짝 느껴지지만 인도계 미국인이다인종 차별 문제가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라지만확실히 다인종다민족 국가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다은근히 인종차별이 있는 우리나라라면(특히 같은 아시아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이런 인사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자신의 검사 재직 시절을 회고하면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를 비롯한 법집행관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수사기소판결처벌이라는 법집행과정 순서에 따라 제시한다무슨 법철학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일을 하는 과정을 묘사하는지라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여러 실제 예들을 언급하고 있기에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일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철학적 질문들을 감출 수는 없었나 보다예를 들면매일처럼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반면 수사 인력은 늘 부족한 상황이다) ‘작은’ 범죄들을 기소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정의로운 일인지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피의자들과 형량거래를 하는 일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같은.


     결국 저자는 지금 행해지고 있는 관행들을 변호하는 결론에 이른다그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에 올랐던 인물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책에 실린 여러 조언들은 아주 새롭거나 특별한 이야기들은 아니다피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하고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하는 식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이지만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의미일까사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 때가 많으니까.

 






    우리나라에선 최근 사법체계에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고위공직자특별수사처라는 기관이 생긴 건데기존의 검사가 가진 기소독점권으로 인한 폐해를 완화해보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다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언제라도 괴물로 변할 수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일하는 검사역들이라고 해서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단지 시스템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 이유다시스템을 운영하는 건 사람인데기소권을 가진 주체가 둘이 되던셋이 되던작정하고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무슨 제도와 기관을 만들었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안심하는 대신시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권력을 감시해야 그나마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하지만 그 외의 독자들에게라면 그리 매력적인 면은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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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취약성 - 왜 백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그토록 어려워하는가
로빈 디앤젤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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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미국에 사는백인들의 인종주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저자는 모든 백인은 인종주의 안에서 태어나 자라오면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형성했고따라서 누구도 인종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단언한다백인들은 자신의 인종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고(인종 스트레스로부터의 차단), 오히려 타고난 인종으로 인한 각종 이점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 인종주의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여전히 백인들의 사고 속에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하지만 오늘날 많은 백인들은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모습을 지적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그리고 다양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데이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백인의 취약성(White Fragility)'이다책은 백인들은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특성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살라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치의 영역으로 전이되었을 때 나타난 사고 중 하나가 정체성 정치이다인간을 그가 속한 특정한 정체성으로 정의하고 설명하려는 태도이다이 책의 저자는 초반부터 자신이 이 정체성 정치에 근거해서 인종주의를 보고 있다고 단언한다피부색이 하얀 인간은 백인이자 인종주의자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저자의 맹신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체성 정치라는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을 그가 속한 범주로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착각에 있다하나의 인간은 어느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당장 A라는 사람은 엄마이자 아내회사의 직원이자 특정한 나라의 시민이면서 어떤 정당의 지지자일 수도 있다이걸 저 사람은 엄마이니까 이런 정당을 지지해야 해’ 라는 식으로 환언하는 순간 그의 현실 인식은 물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조차 흔들리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얼추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있을 수 있다예컨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백인과 인종주의 사이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 강하게 연결되는 면이 있어 보인다대체로 인종주의적 문제는 백인이 유색인을 향한 공격성의 형태로 나타나니까하지만 모든 백인들에게서 이런 문제가 동일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자신이 인종주의적인 언행을 했다고 지적받은 사람(백인)은 당연히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려고 할 텐데그러면 당장에 백인의 취약성’ 운운하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심각하지 모르는 바보 멍청이로 치부하며 가르치려 드는 저자의 태도는 오히려 일종의 콤플렉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여기엔 저자 자신이가해자라고 생각하는 백인이기 때문에 갖는 연대적 죄책감이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백인들이 보이는 모든 반응은 다 그들의 취약성을 드러낸다그들이 하는 모든 말은 저자에 의해 반박되고 재해석되어버린다심지어 백인 여성은 인종주의적 차별을 보고 울어서도 안 된다그 역시 실제로 하는 건 전혀 없으면서 감정적인 표출을 통해 논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행위니까누군가 지적하면 무조건 인정하고용서를 비는 것만이 백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다글쎄... 이건 대화를 하자는 스탠스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인종 사회라고까지는 부를 수 없는 상황인지라일상적인 경험의 범주 안에서 인종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다그래서 미국 사회의 유색인종들이 겪는 잘못된 대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이 책의 저자가 화가 나 있는’ 이유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백인들이 자주 보여주는 인종주의적 사고와 행동들에 불쾌감을 느낀다특히나 최근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 같은미국 내 흑인들에 대한 과격하고 차별적 행태는 지옥에 떨어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저자처럼 일단 그렇게 상대방을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규정해버리면, (이 책에서 저자가 그러는 것처럼상대의 모든 행동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말게 된다그러면 대화는 끊어지고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저자는 백인들이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요소를 무조건 인정하고 회개의 자리로 나오라고 명령한다그런데 이런 요청은 온전히 백인들의 윤리적 양심에 대한 호소로 보이는데이는 마치 모든 백인들은 윤리적 요청에 호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백인들이 뼛속 깊이 인종주의에 젖어 있는 존재이지만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알게 되면 그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태도는인종주의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저자로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지적하는 취약성이라는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우리는 다양한 부분에서 (인종주의만이 아니라 성별재산학력지역정치적 성향 등일종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고자신의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을 때 그것을 피해가기 위한 여러 반응들을 보인다.(심리학에서는 이런 방어기제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연구해 왔다)


     논점을 피해가고문제가 되는 상황 자체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미루는 이런 취약성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관계를 훼손시킬 수밖에 없다그 해결책은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인정하고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 데서 출발한다.(이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회개에 관한 기독교의 가르침과도 유사하다때문에 이 책의 논지는 인종주의만이 아니라 다양한 차별과 혐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는 데도 약간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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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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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말하고 있는 착각은 정확히 말하면 능력주의는 언제나 공정하다는 생각을 말한다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 신화적 주문이 실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한다언뜻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능력이 있는 사람이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일까?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는 것은 대학 입시와 관련된 문제다매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자살하도록 만드는 우리나라의 입시지옥은 잘 알고 있었지만최근에는 미국도 관련 문제가 점점 부각되는 듯하다몇 해 전에는 유명한 대학교들과 연관된 대규모 입시부정사태가 적발되기도 했다니어떤 학생이 어떤 대학에 들어가는 자격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할까간단히 생각하면 공정한 시험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 입학하는 게 가장 공정해 보인다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의 수학능력성적은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부모의 재력이 아이의 대학입학성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이해가 되는 이야기다꼭 불법적인 입시부정이 아니라도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과외를 시키고입시에 도움이 되는 각종 경험과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데는 돈이 필요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입에 유리한 자리를 얻게 된다면그건 공정한 걸까이런 현실이 장기적으로 계층의 고착화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는 점은 뒤로 하고라도흔히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개인의 실력에 달린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책에서 지적하는 능력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그것이 성공한 이들에게는 교만을 실패한 이들에게는 굴욕을 안겨주어 결국 공동체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신분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그가 타고난 행운 때문이다하지만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그 자신의 노력으로 취득한 능력 때문이다(물론 실제론 앞서 언급했듯 거기엔 개인의 능력 이외의 것들이 개입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할 이유도필요도 없다.


     반면 능력주의 사회에서 실패한 이들은 게으르고무책임한 인물들로 치부된다. “공부 못하면 저렇게 배달이나 한다는 식의 멍청한 조롱도 이런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이다문제는 그것이 절반의 사실만을 다룬 의견이라는 것과이런 식의 무시와 조롱이 반복되면극단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게 되고나아가 공동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이다.(이 주장은 책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실제로 세계는 트럼프(미국)나 르 펜(프랑스같은 포퓰리스트들과 브렉시트(영국같은 정책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저자는 여기에 오랫동안 능력주의에 의해 무시받아 왔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분노가 깔려 있다고 본다한 번 분열된 세상은 쉽게 다시 하나가 되기 어려운 법이다이들의 분노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누가 알게 될까.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저자는 서문에서 언급한 학력주의의 타파를 그 시작으로 본다오늘날 학력주의는 능력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다특히 대학 입학과 관련된 절차는 문제의 핵심이다부모의 재력이 아이의 점수와 상관관계가 있으며오랫동안 극심한 수험경쟁에 시달린 학생들이 겪는 일종의 트라우마 문제도 심각하다여기에 학생시절부터 능력주의에 물든 그들의 태도는 사회를 찢어놓을 뿐이다.


     저자는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해법을 제안한다현재처럼 대학입학시험에서 거둔 성적 순으로 입학자를 자를 것이 아니라지원한 학생들 중 일정한 자격이 되지 않는 인원들만 탈락시킨 후 나머지 인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제비뽑기를 통해 입학자를 선정하자는 것입학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인재라고 할 수는 없고최소한의 학업능력을 가진 이들 중에서 뽑았기 때문에 충분히 학업을 지속할 수 있다애초에 시험 성적 하나로 인재여부를 파악하는 것 자체도 무리였으니까.(문제 하나를 더 맞추고 못 맞추고가 그렇게 중요할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직 경제적 지표로 사람과 자격을 평가하는 현재의 기준관점을 변화시키는 일이다일의 존엄성을 회복하고그가 공동체에 얼마나 유익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예컨대 GDP 수치는 상승시키나 실제로는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금융업계(투기종사자들의 막대한 수입에는 보다 적극적인 세금을 매김으로써 그 사회적 인정의 수준을 낮추는 식의 정책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식의 일은 엄청난 저항을 받을 게 뻔하고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도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전 국민이 빚을 내서 주식투기에 빠져 있거나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지 못해 안달하는 절망적인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1점이라도 내가 얻은 것이라고 여기며 악착같이 싸우려는 사람들에게서 과연 이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까.


     하지만 뭔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받은 것에 감사하고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수고를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를 이뤄내지 못한다면결국 다 같이 침몰하게 될 뿐이다능력주의는 공정하지 않다애초에 우리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부모의 재산과 건강심지어 지능도)은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얻은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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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생명을 향해 달려온 사람들
박일환 지음 / 불어라바람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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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나는 성남그 중에도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태평동에서 태어나 군대에 가기 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살았다책에 나온 인하병원은 바로 그 인근에 있었고성남시의료원 설립을 위한 다양한 운동들이 이루어지는 모습도 직접 옆에서 봤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것처럼 그 자세한 내용까지는 다 알지 못했다아버지의 사고로 몇 번인가 가보긴 했지만병원이라는 곳이 그리 관심이 가는 곳은 아니었으니까어느 날 갑자기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하고사람들이 여럿 나와 무슨 운동을 벌이고한참 후에 그 가까운 자리에 성남의료원이라는 병원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


     병원이 문을 닫는 과정에 소유권을 둔 법적다툼이 있었고병원의 소유자가 하필 갑질 삼남매로 유명한 한진그룹이었고시민들의 복지를 위한 병원을 세우고 운영하는데 일년에 고작 수십 억이 아깝다는 이유로 방해만 일삼았던 양심 없는 시장과 시의원시 고위 공무원들에 관한 이야기는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얼마 전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성남시의료원 장례식장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원래 시청이 있던 그 자리에는 문화회관도 있어서 몇 번인가 합창공연을 위해 서기도 해서 익숙한 자리에 세워진 새로운 건물이 인상적이었다다만 건물만 새롭게 새워진 게 아니라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새롭게 바뀌었다는 건 조금 아쉽다인하병원이 폐업한 이후 새로운 병원을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던 이들은새로 만들어진 병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정치와 행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내가 성남에 사는 동안 세 명의 시장이 있었는데이재명 이전의 두 시장은 모두 비리로 구속되었다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가장 집요하게 이 문제를 방해했던 이대엽은 온갖 비효율적인 설계와 낭비로 가득한 새 시청사를 세우면서 엄청난 금액을 빼먹었던 사기꾼이었다이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의원들은 자기 할 일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모지리들이었고시청의 고위 공무원들은 공무를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보다 자기들이 더 위에 있다는 뜻으로 여기는 한심이들이었다.


     복지부동이 기본 스킬로 장착된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언제나 이전에 해 왔던 대로만 되뇌일 뿐이었고시장은 이 당에서 저 당으로 바뀌었지만 시정이 바뀌는 건 전혀 체감할 수 없었다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개선한 게 이재명 시장이었다어떤 사람들은 그가 왜 이렇게 싸움을 자주 하는지 힐난하기도 하지만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공무원 조직의 관성은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좀처럼 꿈쩍하지 않는다시장 하나가심지어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도 행정은 쉽게 달라지기 어렵다.


     10년이 훨씬 넘는 투쟁을 해온 분들에게는 조금 죄송한 일이지만결국 문제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도 정치가 아니었나 싶다물론 정치적 상황을 바꾸는 데에는 시민운동의 힘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겠지만애초에 일단 당선되고 난 후에는 여론이니 뭐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던가좋은 정치인을 선출해 내는 건 시민들의 권리이자 책임나아가 의무일 것이다.

 


     어렵게 완성된 시립의료원이 시민을 위해 잘 운영되기를그리고 이를 위해 애쓰고 수고한 이들의 노력이 너무 빨리 잊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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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의 정체 - 아베 신조의 군국주의의 꿈, 그 중심에 일본회의가 있다!
아오키 오사무 지음, 이민연 옮김 / 율리시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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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대륙의 선진문화를 섬나라 일본에 전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해왔고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통신사 일행을 극진히 떠받들 만큼 우리나라는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이랬던 상황이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크게 변해버렸다. 36년 동안의 강점기 동안 일본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고일본제국군 출신의 독재자와 그 아류들이 통치하던 군부독재 기간 이런 경향은 고착화되었다최근에야 K팝을 비롯한 우리나라 문화가 다시 일본에서 널리 인기를 끄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이렇게 가까이 위치한 두 나라는 서로 질투하면서도 닮은 점이 많아져버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정치가 아닐까 싶다전후 일본을 지배해 온 자민당의 일당독주는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발견되는 모습이었다하나의 정당이 무려 70년 가까이 집권하는 초유의 사태는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보수정당과 그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부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90년 대 후반을 전후하며 우리나라는 비로소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이후 몇 번의 선거를 통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어졌고지난 박근혜 탄핵사태 이후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정치지형이 그 상대편 쪽으로 조금은 무게가 움직여진 것 같긴 하다당연히 이런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고그렇게 쫓기는 마음으로 선택한 게 이명박 정권의 뉴라이트나 박근혜 정권의 태극기 부대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보수정치인들의 이런 의아한 행동이 단지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그건 그들의 정치적 스승인 일본 우익으로부터 학습해 이 책의 주제인 일본회의” 같은 것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회의는 일본의 가장 큰 우파조직이다. 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점령군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헌법을 폐지하고일본을 전쟁 전 메이지 유신 때의 천황중심국가로 되돌리려는 망상에 빠진 우익인사들이 만든 조직과 생장의 집이라는 불교계 신흥종교와(이 세력은 현재 이탈했다고 한다신도 등의 종교세력이 연합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책은 이들이 어떻게 영향력을 키워왔는지를 자세히 조사해 밝히고 있다그리고 이 부분이 위에서 말한우리나라 보수세력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위들이 그대로 겹쳐지는 지점이다이들의 뿌리가 되었던 조직 중 하나는 원호법제화운동을 추진하던 단체였다과거 왕정시기 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왕이 정하는 연호 같은 게 필요했었다일본에서는 패전 후 새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런 내용이 빠졌었는데이를 법제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쇼와 몇 년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런 건데얼마 전 새로 즉위한 일왕의 원호는 레이와였다사실 그렇다고 해서 ‘2020’ 같은 서력표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그 자체로 무슨 특별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 내용이 왕을 중심으로 시간을 읽어나간다는우익계의 주장과 맞닿으면서 이 운동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고정말로 그것이 법제화에 성공하면서 사람들은 그 성공의 기억을 크게 가졌다는 것.


     이후 좌파 세력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풀뿌리 조직과 지방으로부터 시작해 수도로 밀고 들어오는 여론전이 효과적임을 깨달은 우파세력은마침내 일본회의라는 거대조직을 결성해 일본 사회를 과거로 되돌리고자 하고 있다주권이 국민이 아닌 천황에게 있다고 주장하고식민지배와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한 사과에 반대하거나일본제국군의 군가였던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정하고민주주의 교육을 부정하는 등의 시대착오적 움직임 마다 일본회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렇게 일본회의가 세력을 키워가자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치인들도 자의든 타의든 한 발을 걸쳐놓게 되면서 점점 우파시민세력과 정치인들 사이의 결합이 일어났고나중에는 단체 출신의 국회의원까지 나오면서 이런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얼마 전 아베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일본의 중참의회의 절대 다수가 일본회의에서 여는 모임에 이름을 걸어둔 걸 보면 이런 추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앞서도 말했듯 일본의 이런 우파 풀뿌리 조직운동은 자연히 우리나라 보수파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물론 시민운동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저마다의 뜻에 따라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보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주장의 내용일 텐데근거 없는 선동적 주장을 남발하거나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평화 대신 무력과 폭력 사용을 옹호하는 식이라면 결코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한 때 우리나라에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꽤나 오르내렸던 뉴라이트라는 말이 잊히고자신들은 끊임 없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일본회의라는 조직이 무슨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일본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그림자정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유의 얕고 천박함이라든지망상에 가까운 허황된 주장이라든지 하는 걸 보면당장에야 신사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돈으로 유지는 될지 모르겠으나 일본 밖으로 그 영향력이 확장되지는 못할 것 같다는일종의 안도감도 살짝 든다저런 수준의 집단이 활개를 치고 있다면 한 나라나 그 사회 공동체의 발전은 상당히 지체될 것이고그로 인해 피해를 볼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중요한 건 우리나라다일본식 풀뿌리 우파조직을 키워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보려 했던 시도는 지난 몇 번의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운동의 형태 뿐 아니라 메시지까지 배워왔던 것이 패착이다하지만 종교계와 우파인사들의 결합이었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언론까지 끼어있으니 그 영향력은 조금 더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선동에 현혹되지 말고사실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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