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

사실 어떤 작품이 여성영화라고 불릴 수 있는 건지그 기준은 잘 모르겠다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여성이라는 포인트였다주인공 세 명은 모두 여성인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진그룹이라는 대기업에 입사한 케이스다그러나 회사에서 그들에게 맡기는 일이란매일 아침 정확한 비율로 탄 커피를 준비하건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쓰레기를 청소하고출근한 남자 직원들의 구두를 맡기고 찾아오는 일 같은 허드렛일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 속에서 가장 용기 있고정의로운 모습으로 그려진다그룹 소속의 공장에서 폐수가 쏟아지는데도 이들 말고 누구도 나서서 문제 삼으려 하지 않을 정도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건 이 세 명의 고졸 여직원들뿐이었고(그에 비해 주변의 수두룩한 남자 직원들의 지리멸렬함은...), 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온몸을 바쳐서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가 떳떳해지기를 바란다.

 

결국 이들은 마치 신데렐라처럼재투성이에서 왕비로 신분의 수직상승을 이룬다차이가 있다면신데렐라에게는 마법의 도움이 필요했지만이들은 자신들의 선한 의지로 이 일을 이뤄냈다는 점.

 





실화?

영화는 정확히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몇 가지 사실들을 합쳐서 하나의 실감나는 그림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우선은 91년 벌어진 낙동강 페놀누출 사건도 하나의 모티브가 된 듯한데이쪽은 사고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다만 비만 오면 온갖 폐수를 강으로 흘려보내는 양심불량인 기업들은 차고 넘치니까...

 

또 하나는 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사건이다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간보다는 조금 후의 일이긴 한데당시 수많은 기업들이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말았다이 모든 일들이 세계화니 국제적 감각이니 하는 말들로 포장되긴 했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90년대를 다루는 영화답게여러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쓴 게 눈에 들어온다조금은 촌스러우면서도 향수를 느끼게 하는 복장이라든지배경이 되는 회사라든지.. 특히 영화 종반부에 언뜻 배경으로 지나가는 장면 중에 2호선 신정지선 연장개통과 관련된 현수막이 길에 걸려 있는데실제 지하철 2호선 신정지선의 연장선은 96년에 개통됐다.(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95)

 





차별.

첫 번째 키워드와도 연관이 있지만그 시절(그리고 오늘에도 여전히우리 사회는 차별이 고착화되어 있다영화 속에서 그 차별의 이유는 고졸이라는 학력이었다고졸 사원들을 뽑아놓고서는 수년 째 진급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심부름이나 시키고 있는 회사는 뭘 바라고 있었던 걸까심지어 그렇게 입사한 고졸 사원 중 박혜수가 연기한 심보람은 수학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은 인재였음에도 고작 가짜 영수증으로 회사 돈을 빼먹는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뿐.


대부분의 차별이란 이런 식으로 별다른 근거도 없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고졸보다 대졸이 더 유능할 거라는 편견여성보다 남성이 더 일을 잘 할 거라는 편견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회사를 더 잘 경영할 거라는 편견이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났던 장면 중 하나는이솜이 연기한 정유나와의 대화 중 얻은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양 제출해 상사로부터 인정받는 캐릭터다똑같이 여직원이지만 이쪽은 정직원이라 입는 옷부터가 훨씬 더 색감이 다양했는데하는 일이라곤 시종일관 유나의 뒷담화와 그의 성공을 시기하는 것뿐이다.


마치 암세포처럼차별과 편견혐오 같은 것들도 무한정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결국은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마저 힘을 빼고 다 같이 죽게 만드는 암세포처럼이런 것들도 사회의 건강을 훼손시켜 결국 자기가 서있는 기둥까지 썩어 쓰러지게 만든다문제는 일단 그 차별과 편견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어느새 동화되어 버린다는 점영화 속 회사의 다른 직원들의 무시가 어디 처음부터 그랬을까.

 





엄청나게 무겁고 그런 영화는 아니다조금은 가볍게 볼 수 있는일상 속 영웅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그래도 재미있게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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