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진로인문학 - 나를 찾고 꿈을 찾는 인문학 강의
김경집 외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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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인문학 강좌를 책으로 엮었다. 여덟 명의 강연자가 나섰는데, 각각 자신의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강연을 녹취한 듯한 느낌으로, 강연자들의 말투까지 대체로 살려낸지라, 강연자마다 그 내용만이 아니라 말투와 진행 방식도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냉혹한 현실을 부드럽게 비춰주면서 독서를 통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것을 권유하는 김경집의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꿈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 이남석의 접근방식은 생각한 만큼 잘 진행되지는 않은 듯했지만(살짝 웃음) 나쁘지 않은 강의였다.

 

     반면 힘든 일이 있어도 웃으며 지내라는 김종휘의 말은 살짝 막연했고, 시종일관 깐족대는 느낌으로 학생들의 대답을 비웃는 강신주의 글은 불편했다. 즐겁게 놀다보면 좋은 것이 떠오를 수 있다는 이명석의 말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학생들에게 잘 와닿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탐색하는 게 중요하다는 박승오의 말이나, 꿈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하라는 김영광의 조언은 실천적인 면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큰 깨달음까지 준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 강연은 지나치게 막연한 느낌이랄까...

 

 

     책 제목만 보고 조금은 딱딱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수월하게 읽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강연자들 사이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강신주의 깐족거림과 나머지 강연자들의 격려 사이에) 조금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공저자들이 각각 내용을 쓴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약점이다. 물론 개중에 마음에 드는 내용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점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의 양 때문에, 혹은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청소년 시기에는 확실히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내 경우에도 그랬다) 인문학은 그렇게 좁아진 시야를 넓혀주고, 구부정하게 굳어진 자세를 한 번 크게 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런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강좌를 준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직접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어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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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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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서두에 실려 있는 추천사를 보고 조금 낯간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추천사를 쓴 교수는 이 책을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와 대조하면서, 이 책이 얼마나 뛰어난 저작인지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다이제스트에서 문학으로와 같은 표현까지 등장하니..

 

     그런데 한 3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아 이 책은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 안 되겠구나. 자칫 내릴 역을 놓치겠구나’. 실제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던 상황에서, 이 책을 몇 줄 읽고 내릴 역을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그만큼 소설의 문장들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고, 소설답게 인물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배경이 되는 BC 2세기 말의 분위기도 정교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빠져들게 된다. 좋은 문학이다.

 

 

     ​책은 로마 공화정 후기의 군인이자, 군제 개혁(이건 단지 군사적 측면에서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구조와 구성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으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디딤돌을 놓았던 마리우스와 우리가 잘 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할아버지인 또 다른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그리고 잔혹한 독재자 술라가 더해진다) 펼쳐진다

 

     명문 귀족(파트리키)이었지만 부유하지 못했던 카이사르는 지방의 여유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마리우스를 자신의 큰 딸인 율리아와 혼인을 시켜 동맹을 맺으려 한다. 여기에 몰락한 파트리키 출신으로 비루한 삶을 살다가 때를 보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고 카이사르의 둘째 딸인 율릴라와 결혼을 앞둔 술라의 이야기가 또 더해지고.

 

     그런데 이 책에서 좀 더 비중을 두는 부분은 이런 인물들 이야기의 배경에 깔려 있는, 공화정 말기 로마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반복해서 묘사하는 데 있다. 이 시기 로마는 금권만능주의가 온 사회에 퍼져 있었고, 돈이 아니면 높은 관직에 올라 성공할 수도 없고, 그런 성공도 돈을 벌기 위해서인 악순환... 이 과정에서 힘이 없는 소농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율리우스 가문과 마리우스의 결합이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이 결합은 결국 문제를 근원부터 깨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근본적인 개혁은 체제의 파괴와 재구성이었다. 이미 재물의 보유수준에 따른 계급제도가 다시 한 번 그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지난 세기부터 수많은 사람이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해왔지만, 세상(그리고 기득권층)은 당연하게도 그런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는 또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시오노 나나미가 소위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는가를 그렸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서 다음 권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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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간인가? - 잃어버린 인간의 형상, 여성에 관하여
도로시 세이어즈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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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 세이어즈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물론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단 한 권도 그가 쓴 책을 보지 못했지만. 리뷰를 쓰려고 저자에 대해 살펴보던 중, 내가 언제 이 이름을 들었었는지 깨달았다. C. S. 루이스다.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스는 옥스퍼드 최초의 여성학위를 받았던 인물이고, 루이스와 지속적인 편지를 주고받았던 당대의 이름 있는 작가였다. , 후에는 루이스와 톨킨 등이 주축이 되었던 옥스퍼드의 문인모임인 잉클링즈에서 냈던 한 에세이집에 필진으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루이스와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교류를 했다면 도로시 세이어즈 역시 평범한 수준 이상의 지적 사고와 신앙적 논리전개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다. 이건 이 작은 책(116페이지 중 절반은 영어 원문이 실려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겨우 50여 페이지가 넘는 수준)의 초반 몇 장을 읽어가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10장 쯤 읽었을 때, 나는 도로시 세이어즈가 쓴 책들 중 우리말로 번역된 나머지 책들도 모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간의 상황을 알기 전에도, 마치 루이스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담고 있다. 옥스퍼드의 최초의 여성학위자들 중 하나이자, 꽤나 유명한 연작 추리소설의 작가였던 저자에게 이런 식의 질문은 자주 접하는 것이었나 보다.(책 속에도 여성의 관점으로 탐정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질문이 언급된다)

 

     저자는 여성을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던지는 이런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그는 오늘날 판을 치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정체성 정치에 단호하게 반대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성은 하나의 동질적인 그룹이 아니다. 어떤 여성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심이 있지만, 또 다른 여성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이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성이 어떻고 여성이 어떻고 하는 식의 논의에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지식과 능력 사이의 혼동이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예컨대 실내 인테리어와 관련해서 현재 상황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여성이 남성보다 관련된 능력이 더 많기 때문(능력의 문제)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서 무엇이 더 적절한지 알고 있기 때문(지식의 문제)이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적 관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차라리 여성의 지식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확히 반대를 선호하는(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여성적 관점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현대의 극단적 페미니즘이 종종 너무나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구름으로 기둥을 만들어 의지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책 말미에 저자는 모든 것에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있다고 주장하지 말자고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성별 못지않게 훨씬 더 눈에 띄는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이 각각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진지를 구축하며 대결하다보면 세상은 뿔뿔이 찢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그렇게 정체성 정치를 주장함으로써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소수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여성을 남성과 대립하는 하나의 진영으로 구분하는 대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인간이라는 좀 더 큰 범주 안에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단지 성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생각보다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이전 시대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던 일들을 이제 공장에서 남성들이 전유하며 재미없는 일들만 집에 남겨두고는 여성들에게 떠맡기려 한다는 부분에서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루이스의 글에서 느껴지는 유머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여성들도 사업이라든지, 경영, 관리 등을 오랜 시간 동안 잘 해내왔다. 그건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여성은 이런 일들에 익숙지 않고, 흥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동일하게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다.(대표적으로 나 같은 인물은, 사업과 경영, 관리에 젬병이다) 성에 따른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지식(과 아마도 호불호와 능숙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속한 범주를 하나의 정체성화해서 적과 나로 갈라치기를 함으로써 뭔가 얻으려고 하는 행태는 정치인들이 잘 하는 꼼수다. 대표적으로 지역감정 조장이 있고, 극단적 페미니즘이 보여주는 정체성 정치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섹터를 강화함으로써 문제에 대처하려는 태도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말이다.

 

     최근 연속으로 읽기 시작한 여성에 관한 책들 중 단연 돋보이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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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 성전 탈환의 시나리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88
조르주 타트 지음 / 시공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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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은 다양하게 번역된다. ‘십자군 운동이라고 부르면, 11세기 말부터 13세기까지 서유럽 전역을 들끓게 했던 종교적, 정치적 이상을 좇는 움직임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고, ‘십자군 전쟁이라고 하면 서유럽 국가들이 근동 지역에서 벌인 다양한 군사적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십자군 전쟁이니 후자 쪽에 가까워 보이고, 실제 내용도 그렇다.

 

 

     서장 부분에서는 십자군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 있다. 서아시아는 물론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에까지 뻗어나갔던 이슬람 세력은 분열되어 있었고, 그들의 진출을 일선에서 막고 있던 동로마제국(이 책에서는 비잔틴으로 부른다)도 그 힘이 다해가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서유럽은 오랜 빈곤상태를 벗어나 잉여농산물이 축적되면서 기사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를 비롯한 성직자들은 그들의 공격성을 이슬람 세력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런 설명은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십자군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동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의 역할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워낙에 작고 개론적인 책인지라 좀 더 깊은 연구까지 다 담아낼 수는 없었겠다 싶기는 하다. 사실 시공사에서 낸 이 시리즈의 책들은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데 더 집중하고 있으니까.

 

 

      첫 번째 십자군이 성지에 도착했을 때부터, 살라딘에 의해 사실상 쫓겨날 때까지의 역사는 마치 신문의 타임라인을 보는 것처럼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사실 서유럽에서 출발해 근동지방에서 군사원정을 벌인다는 일 자체가 당시로서는 거의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첫 번째 원정에서 이들은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슬람 세계의 분열 때문이었다. 아바스 왕조의 힘은 진작 쇠퇴하고 있었고,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는 시아파로 아바스 왕조의 곤경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바스 왕조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아시아 곳곳은 위임통치를 받은 총독들이 사실상 독립왕조를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으로 십자군은 이슬람 세력이 통합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 통합이 꼭 평화로운 방식일 필요는 없었는데, 실제 역사도 장기나 누르 앗딘(누레딘), 살라흐 앗딘(살라딘) 등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힘을 결집하게 된 이슬람 세력은 점점 십자군을 밀어내게 된다.

 

 

     역시나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수많은 컬러 도판들이다. 책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도판들은 모든 페이지에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 본문의 설명과는 별개로 박스형으로 삽입되어 있는 주석들도 꼭 읽어볼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책 후반에는 십자군과 관련되 동시대인들과 현대의 연구자들의 기록을 일부 인용해두었는데, 당시의 전술과 성채건축 기술에 관한 내용들은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이 책은 특히나 더 어느 정도 사전지식을 갖고 본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들의 행동에 대한 설명들, 그리고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에 세워졌던 라틴 국가들 사이의 관계들, 유럽인들과 이집트, 시리아를 지배하던 무슬림들과의 상호작용, 관계들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는 이 책을 더 즐겁게 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 작은 책이 그런 추가적인 독서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면 저자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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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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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시작하며 등장하는 주제는 (세포)의 가소성이다. 가소성이란 일정한 힘으로 형태를 바꾼 대상이 일단 힘이 사라진 후에도 변형된 그 대로를 유지하는 성질이다. 찰흙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든 후에도 그 모양이 그대로 굳어지는 걸 생각하면 쉽다. 저자는 우리의 뇌도 그와 같은 성질이 있어서, 한 번 어떤 형태로 길이 나버리면 계속 그 길을 따라서 가게 된다고, 다른 길로 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읽기는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말은 좀 더 기본적인 기능에 해당하기에 최소한의 도움만으로도 말하고 이야기하며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인가를 읽기 위해서는 배워서 자신만의 읽기 회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다. 평소 주변 사람들과 만나면 대개 책 얘기를 한다. 사실 대화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주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던가.(소개팅 자리에서도 자꾸 그래서 문제긴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딜 갈 때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으면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책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누구나 연습하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건 내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거라면.(이제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저자는 종이책과 디지털 기반의 읽기 사이의 차이를디지털 방식이 얼마나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깊은 통찰을 얻는 것을 방해하며, 공감능력을 퇴화시키는지길게 설명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권장하기 위한 책이다.

 

     책 읽기를 멀리하고 디지털 매체를 통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편파적으로 접한 이들이 어떻게 괴물처럼 변하는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빠져 사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통해 실감나게 목격된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며 단식하는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이거나, 보모로 돌보던 남자 아이를 강간했다고 자랑스럽게 글을 올리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도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독서를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만들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책 속에는 지난 20년 동안 젊은이들의 공감능력(이런 건 어떻게 측정하지?)40% 가량 줄었다는 연구 자료가 실려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지만, 그 현실에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도 하다. 책 속에는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접하는 정보의 양이 약 34기가바이트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다. 엄청난 양이다. 이미 충분히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얻고 있으니 책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주의를 쪼개가며, 발작적으로, 단속적인 정보들을 접함으로써 우리의 읽기 능력은 향상되기는커녕 쇠퇴하고 있다. 저자는 상호교류식 전자기기들도 더 깊은 읽기능력을 기르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최신의 전자기기 사주거나 종일 유튜브를 틀어주는 부모들은 기대했던 유익은 쉽게 거두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를 통한 지식의 습득은, 진짜 나의 지식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술에 접속되어 있는 상태와 지식을 가진 상태는 다른 법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영화 마션의 주인공이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책 후반부로 가면서 초반의 논지가 살짝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종이책 읽기에 비해 문제가 많은 디지털 읽기방식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해 놓고는, 어쩌면 다가오는 미래에는 두 가지 읽기의 길을 발달시키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깊은 읽기도 하면서 때에 따라 가벼운 접속도 해 낼 수 있는 세대들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그런 경우에라도 디지털 기기가 제1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구축해 놓은 논리의 나사들이 꽤나 헐거워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 물론 저자가 교육 쪽에 몸을 담고 있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한동안 우석훈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책은 대체로 장차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한 우울한 전망으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 자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우석훈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미래에는 저축하는 사람이 능력이라는 말.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의 지출을 조정해 지속적으로 저축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귀하게 사용될 거라는 의미다.

 

     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곤 한다. 미래에는 책을 읽어갈 수 있는 것이 큰 능력이 될 거라는 말. 책을 한 달에 몇 권씩 읽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좀 수준 있는 어렵고 두꺼운 책들을 봐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능력에 맞게 꾸준히 읽어나가는 게 능력이라는 뜻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그 위에 얹힌 문자들을 인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을 쓴 사람과 교감을 하고, 그 안에 묘사된 세상을 체험해 보고, 나름의 반응을 보이는 작업이 책을 읽을 때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뭔가 특별한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이 작업은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간략한 요약본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무슨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는 분명 유익을 줄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AI가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이 사랍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란 얼마나 중요해질까. 때문에 어찌되었든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물론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 사람은 안 듣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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