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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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유현준을 처음 본 건그가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밖에도 몇몇 교양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고 하는데 잘 보지 않는지라..) 도시와 건축 같은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데단순히 건축이라는 주제만이 아니라 관련된 인문학적 고찰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이 좋았다그의 주장에 전부 동의가 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은 되었달까계속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결론을 유도하는 진행자의 질문에번번이 자신은 건축학자로서 말하는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낮추는 모습도 호감이었고.


     이 책은 그런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을 도시건축과 연결 지어서 풀어낸 책이다왜 강남의 큰 길은 걷고 싶지 않지만 명동의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지도시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도시의 요소들은 어떤 게 있는지 등등 다양한 주제를 그리 길지 않은 꼭지들로 엮어냈다.



     사실 워낙에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기에책을 읽으면서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예컨대 도시 건축에 있어서 교차로의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24), 거리의 상가들과 그 상가의 데크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같은 내용(43)들은 신선했다국보 1호 남대문 방화와 전소 과정에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과도한 열광이랄까 뭐 그런 태도에 대해서도건축 문화재의 본질은 그 자재가 아니라 그것을 건축한 이들의 생각(116)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크게 공감이 됐다문화재 그 자체를 우상화할 것까지는 없는 거니까.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작년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물론 숭례문처럼 전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규모 복원공사가 필요한 상황이었고그런데 이 때 제안된 아이디어들이 매우 신박했다. (대통령까지 포함된일부에서는 단지 이전에 존재했던 그대로의 복원이 아니라매우 현대적인 형태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는 것물론 일부 제안은 기과한 포스트모던적 모양이었고최근 소식에 따르면 결국 이전 모양대로 복원하기로 했다고 전해지지만문화재를 대하는 사고방식이 훨씬 더 자유롭고 즐겁다는 느낌마저 주었다반면 우리는 지나치게 엄숙한 건 아닌지...



     책 전반에 걸쳐서 사람이 중심이 된 도시와 건축이라는 개념이 반복된다어차피 도시화라는 거대한 추세를 거스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그렇다면 이왕이면 천편일률적인 도시계획에 따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든눈감고 도착한다면 어디가 어딘지 구별도 안 되는 그런 재미없는 공간 말고사람들이 거닐고 싶고함께 모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좀 더 창의적이고피부에 와 닿는 도시계획또 건축이 필요한데건축이라는 영역이 온갖 사람들의 욕망이 얽혀 있는 큰 판의 도박판이 된지가 오래인지라 뭔가 다른 식으로 생각하기가 참 어렵지 않나 싶다안타까운 부분인데뭐 한 사회의 발전과 쇠락이야 어차피 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니까... 다같이 부동산 끌어안고 죽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도시와 건축에 관한 다양한 상식과 비전을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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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이주엽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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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는 어디일까정답은 대영제국이다그러면 그 다음은바로 몽골제국이다근대의 발달한 통신과 교통수단그리고 무기를 통해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대영제국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지만어떻게 몽골은 그보다 5백 년이나 앞서서 아시아와 동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울루스라는 체제가 있었다당연히 그 당시 이렇게 넓은 영토를 중앙집권식으로 다스릴 수는 없었고때문에 각지를 울루스라고 불리는 일종의 하위 영역으로 나누어서 일종의 봉건제 국가로 운영했다시간이 지나면서 각 울루스들의 독자성이 강화되는 동시에 서로 분화되었고주변 세력들과의 대결을 거치며 하나씩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비록 새로운 나라로 이름을 바꾸긴 했으나 몽골 제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여러 나라들이 몽골을 계승해 왔다고 말한다역사책을 읽다 보면 한 번씩은 접하게 될 이름들인 무굴제국티무르제국오스만제국 같은 나라들까지도 언급되고 있으니 일단 흥미가 생긴다.



     어떤 나라를 후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전에 존재했던 나라의 백성들이 이후 그 자리에 세워진 나라로 편입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단지 그 정도로 후계국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물론 저자도 단지 그 정도의 주장만을 하는 건 아니다여기에 후계국으로 소개되는 나라들은 상당수가 몽골을 자신들의 전신으로 스스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인 무굴제국을 보면애초에 무굴이란 몽골이란 뜻의 인도어이었고사실 그 나라의 정식 명칭은 티무르 왕조나 구르칸 왕조라고 불려야 한다고 한다이 제국의 창시자인 바부르는 자신을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자부했다.(관련 삽화만 봐도오늘날 인도인들의 외형과는 사뭇 다른정말 동아시아쪽 외형이 뚜렷한 바부르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에 수립된 여러 왕조들이 공통적으로 자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만큼 몽골제국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 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중앙아시아에 건설된 여러 후계국들이 곧바로 투르크화된 것으로 생각하지만(지금도 위키백과에는 실제로 그런 식의 서술이 보인다), 저자는 여기에서 당시 투르크라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오늘날과는 달랐다는 주장을 한다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는 투르크인이라는 집단명을 티무르 제국의 일원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사용했다는 것(75). 그리고 아예 오늘날과 같은 투르크인의 정체성은 근대 이후에야 발생한 것이고 그 이전에는 내륙아시아 유목민을 좀 더 폭넓게 지칭했다는 주장도 더해진다.(42-43) 그렇다면 이들 계승국가들에서 몽골제국 계승의식은 좀 더 강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오스만제국까지 계승국의 범위를 넓힌 것은 솔직히 약간 무리처럼 느껴진다애초에 오스만 왕조가 일 칸국의 제후국이었고후에 오스만 제국의 제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인근의 또 다른 몽골제국 계승국인 크림칸국의 군주가 그 제위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 정도는 충분한 근거라고 보기엔 약하다.


     또위에서 말한 투르크화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해도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현지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혈통이라든지문화라든지 현지화가 이루어졌던 면도 아예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무굴제국만 하더라도 몇 대가 지나면서 왕의 외모에서도 더 이상 몽골족의 외형이 사라지기도 했다.


     사실 애초에 계승국이라는 개념을 종주국과 피종주국혹은 문화적 침략의 수단 같은 걸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얼마든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인접국혹은 후계국이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고몽골제국 같은 강한 인상을 남긴 국가들의 영향이 이후 세워진 나라들에 남아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니까.


     이 외에도 수많은 칸국들에 관한 언급도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동시에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이제까지 역사라고 하면 보통 서유럽 중심의 역사와 우리나라가 포함된 동아시아 역사 정도였기에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그 인근 지역(동부 유럽이라든지남아시아라든지)의 역사 쪽은 아는 게 별로 없었다좀 더 폭넓은 독서 욕구를 북돋게 해 준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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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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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 정도 책은 너댓 권 정도 읽을 걸로 쳐줘야 한다.(사실 원래도 세 권의 두툼한 책으로 나왔다가 한 권으로 합본한 책이기도 하다.) 후주를 빼고 본문만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도 그렇지만유대인의 4천 년 역사를 시대구분을 따라 일곱 개의 장으로 서술하는 책의 내용도 단숨에 읽기에는 만만치 않다.


     한 페이지한 페이지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정독하다보니 책 옆면이 온통 울긋불긋 물들었다그만큼 내용을 충실하고 독창적으로 풀어내서 대충 넘어갈 만한 부분이 없다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팔레스타인(가나안땅과의 인연부터점차 발전해 나가는 유대교의 신학을 다루는 1후기 왕정 시대부터 신구약 중간기를 지나며 분화되기 시작한 유대교 내 개혁파와 정통파를 묘사하는 2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반유대주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합리주의와 신비주의가 교차되었던 중세 초기(3)를 넘어게토라고 불리는 분리거주구역의 설치와 함께 점점 반유대주의가 더 강해지는 중세 중후반(4)까지 유대인들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유대인들은 드디어 자신들에 대한 장벽이 철폐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어떤 이들은(마르크스나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이들이 대표적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유대인으로의 정체성을 부정함으로써 이 과업에 편승하고자 했지만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이런 기대가 허황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대인 국가의 재건을 위한 움직임즉 시온주의가 발흥한다(5). 그리고 마침내 벌어진 인류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6장에 이르면자칭 문명국이라 자부하던 이들이 보여준 악마적 근성에 구토가 치민다.


     결국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는 7장에 이르면이 대장정을 함께 지켜봐 온 독자로서 일종의 안도감마저 든다수천 년 동안 민족적 무시와 차별을 당했던 사람들의 사고는 우리의 생각으로 가볍게 재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은 아랍 세계와의 갈등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독립 전후의 처리 방식에서 범죄적 요소가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아랍 세계의 대처도 별반 다를 바 없었고애초에 1948년 이전에 그 땅은 전후 해체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으니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역사를 다룰 때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어떤 시기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마치 하나의 단일체인 것처럼 판단하고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러나 어느 시대든 그 구성원들의 사고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저자의 관점에서 유대인은 이런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대단히 큰 파괴력을 발휘하는 사건들은 일종의 경향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서유럽 전반에 퍼진 반유대주의를 피해 많은 유대인들이 동부로 이주하면서 아슈케나지 사회가 크게 확장되었지만, 17세기 중반에 벌어진 대대적인 학살로 인해 다시 서쪽으로 이동한다이들은 독일을 거점으로 기존 사회에 녹아들어가기 위해 애쓰지만, 2백 년 후 벌어진 홀로코스트로라는 대참사를 겪게 된다.


     그런데 그런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유대인들은 일치단결해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는다심지어 시온주의 세속국가의 건설에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반대했으니까개혁파와 정통파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교체는 유대인 역사 가운데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이런 현실에 기초한 실용주의와 이상에 기초한 정통주의를 이해하지 않은 채, ‘유대인이 어쩌구하는 식의 얄팍한 훈수를 남발하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유대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협상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빠뜨릴 수 없다수없이 핍박받고 쫓겨나고또는 갇히면서 그들은 실권을 지닌 이들과의 협상을 통해그들이 원하는 것들(대개는 재물이었다)을 어느 정도 내어주는 대신 공동체의 생존을 얻어냈다오늘날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얼토당토않은 불합리한 조건들도 그들은 감내해 내면서 조금씩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협상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역사적 표본이라고 할 정도.


     자신들이 원하는 문구가 빠졌다는 이유로혹은 자신이 제안한 것들을 상대가 백 퍼센트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협상 자체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협상이라는 게 애초에 양편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라는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승패를 가르는 싸움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태도다필부필부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야 그냥 자기 하나 손해 보면 그만이겠지만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지도자들이 이런 식의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물론 이런 방식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애초에 협상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배제한 채 유대인 몰살을 계획했던 히틀러 같은 괴물을 앞에 두고도 협상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현실을 견디기만 했던 자세도 한 몫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협상이라는 것도 상대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일 때 가능한 것이다.



     4천 년 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풍성한 정보와 인상적인 통찰들이 잔뜩 담긴좋은 학술서이면서 역사서인 책이다볼륨이 좀 있어서 부담이 될 수 있지만한 번 제대로 읽어 보면 또 다시 읽고 싶어질 때가 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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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7-30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어떻게 읽으신 겁니까? 장난 아니었겠슴다.
저는 요즘 EBS2에서 <명강>이란 프로에 주원준 교수의 강연을 보고 있는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나고 암튼 기원전 중동의 역사를 훑고 있는데
흥미롭더군요. 이런 두꺼운 책은 마음에만 있고 그런 강의라도 들어야겠다 싶더군요.
혹시 관심있으면 한번 보시죠. 밤 9시 50분경에 합니다. 다음 주까지.ㅋ

노란가방 2020-07-30 20:09   좋아요 0 | URL
ㅎㅎ 찾아보겠습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가이드북 - 증보판 마스터스 오브 로마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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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종류의 책을 보면서 킥킥대고 웃는다면당신은 분명 덕후.(반갑다나도 그렇다.) 이 책은 21권짜리 대작,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의 별책부록이다공화정 말기의 로마 역사를 다룬 소설을 읽다 보면 수많은 개념과 인물들명칭들이 등장하는데어느 정도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새로 이 장르에 들어선 사람에게는 꽤나 높은 문턱으로 작용할 수 있다그래서 작가는 아예 작은 사전을 만들어버렸다!


     인명과 지명제도생활로 구분된 항목엔 오랫동안 작가가 조사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글로만 읽었을 때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등 유명인들의 복잡한 가계도와 군데군데 직접 그린 삽화들까지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는 책이다구글창에 검색어 몇 개만 넣으면 어지간한 건 다 나오는 시대지만몇몇 항목에서는 다른 책들(예컨대 로마인 이야기』 같은)이나 심지어 위키백과의 설명과도 다른 독특한 설명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기사에 관한 설명을 보면로마인 이야기나 위키백과에서는 이것이 원로원 계급 아래의 두 번째 계급 정도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그런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원로원 의원은 300(이후 일시적으로 600명으로 늘어나기도 했지만)에 불과했고들고나는 것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심지어 정원이 빌 때까지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그렇다면 이들을 계급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콜린 매컬로는 기본적으로 원로원 의원이라는 계급은 행정적인 것에 불과했고그들도 기사계급에 속해 있었다고 말한다예컨대 의원의 가족들은 실제로 기사 계급을 유지했다는 것일종의 금권정치제도였던 로마 공화정에서 기사계급이야말로 평민들과 구분되는 진정한 클래스였다는 것원로원 의원들은 일종의 명예를 더하는 직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로마의 트리부스 단위의 투표 방식에 관한 구체적 설명도 눈에 들어온다트리부스 투표가 미국 대선처럼 각 주의 의사를 결정한 후 그 표수를 계산하는 일종의 간선제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오늘날처럼 각 지역들이 하나의 선거구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로마의 서른다섯 개 트리부스 중 하나로 배정되었고수도의 빈민들은 단 네 개의 트리부스에 속해서 그 정치적 결정권이 제한되었다는 점 등은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



     이제 본편을 세 권 읽었지만늘 읽는 시간이 즐거워지는 시리즈다잠깐 가이드북으로 한숨을 돌리고이제 두 번째 풀잎관” 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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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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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세계대전은 그 때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의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전쟁이었다. 이 책은 그 전쟁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 전전(戰前) 수년 동안 관련 당사국들의 상황을 세심하게 추적하는 책이다. 보통 전쟁을 다루는 저작물의 경우 전쟁의 경과에 집중하는데 반해, 이 책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시기만을 다룬다.

 

     ​굉장히 두꺼운 책인데, 서술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쪽 역사에 대해 많은 선지식이 없는 이상,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는지라 약간 당황스럽긴 하지만, 또 각국의 복잡한 정치현실을 한참 읽다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중심에 두고 읽어나간다면 또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1부에선 세르비아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발칸 반도에 위치한 이 크지 않은 나라는 과거 세르비아 제국이라고 불리는 영광스러운 확장의 시대를 거쳐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야 독립하게 된 이 나라는 복잡한 정치지형으로 인해 수상조차 원하는 바를 쉽게 실행할 수 없었다. 더구나 19세기 후반에는 호전적인 군부가 중심이 된 세력이 국왕을 살해하면서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면서 영토확장주의와 민족주의가 크게 발흥하게 된다.

 

     한편 세르비아의 이웃에 있으면서 직간접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치던, 그리고 후에 사라예보에서 살해된 왕세자의 나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황도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이 나라는 합스부르크가문의 지배에 있던 오스트리아와 자체적인 수상을 가지고 있던 헝가리 두 나라의 연합으로 형성된 이중군주국이었다. 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으니 의사결정 과정의 어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독일제국의 상황도 복잡했다.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형성된 이 나라는 유럽의 인근 국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외교적으로 점점 고립돼가던 상황에서 러시아의 팽창위협을 과장스럽게 의식하던 군부는 예방전쟁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었고, 카이저(황제) 빌헬름은 군주답지 않은 행태로 주변에 염려를 끼치고 있었다.

 

     ​여기에 시종일관 독일(과 독일과 가까운 오스트리아-헝가리)을 고립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외교적 목표로 삼고 있었던 듯한 프랑스와 프랑스, 러시아 등과 조약을 맺으며 가까워지고 있는 영국, 그리고 곰처럼 조금은 굼떠 보이지만 발칸 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러시아까지...

 

     마침내 세르비아 내 군부 비밀조직인 흑수회가 사주한 암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런 복잡한 각국의 정치상황과 외교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1차적으로 피해당사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즉각적인 대처 대신(만약 그랬다면 좀 더 동정적 여론이 형성될 수 있었을 거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복잡한 내부논쟁을 시작했고, 세르비아와의 연계 아래 동원령을 시행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독일 군부 역시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자연히 독일을 경계하는 프랑스의 반응을 불러일으켰고(막상 전쟁이 벌어진 후 프랑스 군의 현실을 보면 뭘 믿고 그렇게 독일을 까댔나 싶기도 하지만), 이들은 영국의 참전마저 이끌어냈다. 그 결과는 최소 3천 만 명의 군인들의 희생과 그보다 훨씬 더 큰 민간인들의 피해였고...

 

 

 

 

     수백 페이지가 넘는 자세한 서술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세계대전과 같은 행위자가 많고 복잡한 사건은 선형(線型)의 단순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복잡한 국내 정세에 저마다 대처하기 급급했고, 외교에 있어서는 온갖 선입관과 억측, 거짓 정보에 근거한 착각 등이 버무려진 난장판이었다

 

     책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1차대전 관련 당사국들의 외교적 판단에 하나같이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신의에 기초한 외교라는 게 없었던, 속고 속이는 시대이긴 했지만(어쩌면 이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하는 이야기일지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자신들의 관점으로만 단순하게 만들었을 때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분명 이들은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볼 수 없었던 몽유병자였다는 게 저자의 평가.

 

     복잡한 민족구성을 가진 국가에서의 통치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중군주국이라는 독특한 정체를 가지고 있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그 복잡한 의사결정구조 때문에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없었고, 민감한 정치적 결단은 대개 반대 목소리들에 묻혀 상쇄되어 버렸다. 어차피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수렴해 낼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폭력과 망상을 추종하는 세력들도 여하튼 선거를 통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은 재앙적이었다.

 

 

     사실 나는 민주주의 정체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고, 좀 시끄러워보여도 최선의 방법을 향해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오스트리아 제국 의회에서 뭔가를 하려는 상황을 가정해 보니, 언젠간 잘 풀리겠지 하는 식으로 낙관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사람들이 의회에 잔뜩 앉아 있지 않던가.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최근 비례연합정당이라는 게 만들어진다면서 여러 소수, 그것도 아주 소수정당들이 참여해 당선권에 후보를 배치시키게 된다는 점도 살짝 우려가 된다. 이쪽은 좀 과대대표가 되는 건 아닐까. 민주주의 안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드시 국회의 의석 배분을 의미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과연 그 안에서 합리적인 지혜가 도출될지, 아니면 중구난방의 싸움만 가속화될지...

 

     2017년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에게 이 책의 원서를 선물했다고 한다. 북한의 관리들이 영어로 쓰인 이 책을 읽긴했을까 싶지만,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정치와 외교는 굉장히 복잡하며, 한두 가지의 논리로 모든 걸 설명하려다보면 의도치 않은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으리라. 그건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북한 체제를 최고지도자의 한 마디면 모든 인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곳으로 여기지만, 정말로 그럴까? 그 안의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몽유병자처럼 눈뜨고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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