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찰스 핼퍼린 지음, 권용철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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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는 대영제국이다그리고 거의 그와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확보했던 것이 몽골제국이었다.(둘 다 세계 면적의 22%를 넘는 영토였다대영제국은 범선과 화포 등의 근대식 화약무기를 동원해 이룬 업적이었던 데 반해몽골제국은 오직 말과 활로 얻어낸 영토였으니 대단하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넓은 영토를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했고결국 칭기즈칸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과 후손들에 의해 제국은 분리되었다물론 여전히 큰집과 작은집 정도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서울대전만 떨어져 살아도 1년에 몇 번 얼굴 보기 어려운 요즘이다하물며 대륙의 이편과 저편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립적인 왕국(몽골에서는 칸국이라고 불렀다)으로 변해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인 킵차크 칸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영토를 만들었던 나라다칭기즈칸의 맏아들인 주치의 후손들이 다스렸고카스피해와 아랄해 북쪽의 킵차크 초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자연스럽게 그 서쪽의 러시아인들과도 밀접한 접촉을 했다(물론 당시에는 아직 러시아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기 이전이긴 했다). 이 책은 킵차크 칸국과 러시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모아놓은 책이다.

 





     사실 애초에는 책의 제목만 보고킵차크 칸국의 형성과정그리고 그 역사적 전개 같은 내용을 볼 줄 알았는데책의 내용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킵차크 칸국 자체보다는 러시아와 주고받은 영향력 쪽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킵차크 칸국은 몽골제국의 다른 칸국들이 정복한 지역과 달리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민족들과 조금은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다예컨대 중국 내륙으로 들어간 원나라나페르시아 지역을 정복한 일 칸국 등은 피정복민들 사이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그러나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지 않았다그 중요한 원인인 몽골적의 힘인 기마병을 유지할 수 있는 초원이 주로 영토의 동부에 있었기 때문서부의 러시아인들과는 제한적으로만 만났다(주로 세금이나 약탈을 위해). 덕분에 러시아인들은 정복당한 상태이면서도 그것을 애써 무시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러시아인들과 몽골인들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을 정복하고 약탈하는 식으로만 맺어지지 않았는데당시 러시아인들은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역에 따라 여러 공국들이 성립되어 있었고이 공국들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킵차크 칸국과 동맹을 맺기도 하는 식으로 다른 공국들을 제압하려 하기도 했으니까이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것이 모스크바 공국이었고이는 후에 러시아(루스대공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한 러시아인들은 정복자인 몽골인들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기도 했다특히 아직 지역 단위의 작은 규모의 세력들만 유지하고 있었던 그들은 몽골로부터 제국경영에 소요되는 행정적 기법들을 배웠고이는 러시아어에 남아 있는 몽골어 행정용어들의 흔적들로 입증된다칭기즈칸의 후손이라는 황금씨족에 관한 신화는 무려 18세기에까지 러시아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사실 책의 내용은 킵차크 칸국 지배 시기 러시아에 대한 기존의 러시아 학자들의 주류해석에 대한 반론으로 채워져 있다러시아인들이 지배자들에게 대항해 오랜 투쟁을 통해 마침내 독립을 획득했고그 과정에서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완성되었다는그러나 저자는 이 서사가 사실과는 다르며양측은 좀 더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한다이쪽이 일리가 더 있어 보인다.


     다만 이 주장에 몇 번에 걸쳐서 거의 같은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건책의 완성도를 두고 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그리고 저자가 말하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항목들을 나누고 구체적인 증거들이 더 제시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예컨대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러시아 문인들이 남긴 기록을 직접 인용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전반적으로 짜임새가 좀 부족하달까이건 목차만 봐도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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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송병권 외 옮김 / 평사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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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의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는특히 그 중에서도 근대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사실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주로 제국주의적 침략자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을 뿐왜 일본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의 근대역사를 (복수)정당제자본주의로의 전환식민지주의천황제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분석해 낸다. ‘대중역사서라는 출판사의 소개와는 달리다분히 학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언급되는 정보의 양과 폭이 꽤 넓고 깊다간단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면 고전하기 쉬울 듯하다.

 


     일본의 탈아시아사상은 잘 알려져 있다동아시아의 귀퉁이에 위치한 섬나라임에도(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자신들이 아시아의 제 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존재라는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막부 시대 말기 일본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어떻게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았는지를 언급한다.

 

그렇지만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봐도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와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구별되는 후진국에 속했고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과 동등한 위치였습니다그러나 미국은 일본보다 먼저 유럽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유럽 여러 나라와 대등하게 일본에 대해 불평등조약이 초래한 권익을 향유했습니다당시 막부 말기 세계 정세에 정통했던 일부 일본 지식인에게 미국은 양이의 성공적 사례로까지 인식되었고비유럽국가로서 유럽적 근대화를 이룬 선구적 사례를 제공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처음부터 이렇게 서양의 그것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세 가지 요소(정당정치자본주의식민지주의)는 서양의 제국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 구체적인 적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적인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예컨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는 유럽의 사례에서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방식으로 도입된 것에 반해일본에서는 오히려 특정한 세력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상호견제 시스템으로 도입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이는 막스 베버가 말한전문가들의 경쟁을 통해 지배자의 통제를 강화하는 경우와도 비슷하다(51).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권력분립제가 오히려 왕정복고 이념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도입되었다고도 말한다.

 

즉 메이지 헌법이 상정한 권력 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권력 분립제 하에서는 어떠한 국가기관도 단독으로는 천황을 대행할 수 없습니다.

 

     외세에 의한 강제적 개항과 그들에게 다양한 특례를 보장해 주어야 했던 일본은초기에는 외국 자본을 들여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계획을 완강히 거부했다책에는 여기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그랜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했던 조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일종의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을 꾀했던 것인데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결국에는 대만과 한반도 등지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직적 국제분업’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이른다식민지를 자원창고이자 상품판매지로 삼는 행태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일본의 그것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는데유럽 제국의 식민지가 직접 영토를 맞대고 있지 않은 곳이었다면일본은 바로 인접한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174). 그 결과 이는 단순한 경제적 식민지를 넘어 안보선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일제의 우리나라 식민지배에 관해서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조선 총독 자리를 두고 문관을 임명하려는 중추원과 무관을 임명하려는 군부 사이에 제법 오랫동안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를 멋대로 쳐들어와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죄가는 사라지지 않겠지만처음에도 이야기 했던서로 간의 견제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서 좀처럼 협업이나 정보의 원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처럼 느껴졌다.

 


     천황제에 관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는 조금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요새 젊은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정권을 틀어잡고 있는 세력이나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발언을 보면그들에게 천황은 단지 입헌군주국의 상징적 존재를 넘어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부터 이런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서양의 근대로의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애썼던 일본은서양에는 있고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바로 기독교였다기독교는 오랫동안 유럽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는 핵심이었지만일본의 은 단지 소원을 들어주는 문화적 기념물 수준이었다이에 기독교와 같은 기능을 하는 존재를 만들고자 했고그것이 천황에 대한 신격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타의에 의해 정리된 측면이 있다. ‘천황은 더 이상 도덕적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다물론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어떤 인사들은 이 부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그것이 애초에 도입될 당시부터 있었던 일종의 모순(‘천황과 헌법 사이의 관계)을 해결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도각각의 근대사를 일국사로서 쓸 수는 없(231)”두 나라그리고 중국까지 포함한 세 나라의 역사가 밀접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특히 근대사에 관해서 제대로 된 지식이나 공부가 없었다는 걸 느끼는 독서 시간이었다식민지배 시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한일 삼국이 대등한 행위자로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데여기에 이 삼국의 젊은이들 사이의 공통되는 몇 곡의 노래가 생기는 것(아마도 K팝을 말하는 듯)을 꼽는다언제까지 서로를 적대하고 공격하기만 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테니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북한의 김정은이 할아버지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사과하지 않더라도 관계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처럼일본의 집권 세력이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관계를 탐색해 나갈 수 있을까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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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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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목민족들의 역사는 추적하기가 어렵다가장 큰 원인은 기록의 부재다자체적인 역사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어쩔 수 없이 그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 전해질 수밖에 없다문제는 그 접촉이 대개 적대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곤 했다는 점이다당연히 유목민족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고사실을 과장하거나 악평을 쏟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물론 이런 경향은 후대로 가면서 조금 나아진다제국을 이룬 나라들은 자체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다 똑같은 유목 민족들로만 보이지만근래에 봤던 또 다른 책과 이 책을 비교하며 보면크게 두 갈래의 유목민족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하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튀르크족 계열이고다른 하나는 몽골족 계열이다.(물론 이 두 민족은 다양한 부족들과 동맹과 결혼을 통해 결합되곤 했다)


     이 책은 튀르크 계열의 주요 제국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기술한다시간 순서대로 보면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의 순서다유라시아 초원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주변의 작은 부족들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운 이들은초기(흉노돌궐위그르)에는 주로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제 왕조들과 세력을 다투었고후기(셀주크오스만)에는 서쪽으로 이동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후 나중에는 칼리프 자리까지(오스만 제국 시대차지하는 업적을 남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새로운 내용이라기 보다는 이미 있던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수준이다저자의 독창적인 해석이 들어갈 여지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고오늘날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고.


     하지만 책이라는 게 꼭 새롭고독창적인 내용일 필요는 없다이 책처럼 다양한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굳이 일부러 찾는 수고를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불릴 수 있다더구나 터키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외교관 출신의 저자이기에이 지역(아나톨리아)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경우 꽤 상세하고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만 흉노와 훈족을 직접 연결시키는 게 학계에서 얼마나 인정받는 내용인지는 모르겠고또 유목민족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유목민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은 좀 아쉽다예건대 유목민들은 생산력이 낮아 약탈에 의존하는 경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식(127)인데최근에 나온 농경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고대 농경사회는 그 주민들을 억압하며 농지에 묶어두는 구조였던 데 반해유목채집 사회는 저습지의 풍성한 소출과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다는 내용이 보인다좀 더 검토해봐야 할 부분.

 


     튀르크 민족에 관한 한 권의 통사로서 가지고 있을 만한 책후에 관련된 내용을 검토할 때 역사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 둔 책으로 다시 들춰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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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20-12-29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저 리뷰를 작성하셨네요. 예전에 읽었는데 귀찮아서 안쓰고 지나가다보니..아직도...요즘 밀린 숙제 하나씩 다시 하고 있습니다. ˝한 권의 통사˝라는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노란가방 2020-12-29 22:05   좋아요 0 | URL
이 책 구입하셨나 보군요.
저도 최근에는 책 조금만 사고 사둔 책들 읽으려고 계획 중입니다. ㅎㅎ
 
유토피아 서해클래식 4
토머스 모어 지음, 나종일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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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뜻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는 바다이야기가 쓰인 16세기 당시의 판단으로여러 분야의 가장 좋은 모습을 떠올려 콜라주처럼 모아놓은 세계가 유토피아다하지만 각각의 영역만 생각하면 이게 좋겠다 싶어도그것들이 여러 개 복잡하게 결합되면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는 게 세상이다때문에 이야기를 한참 읽다 보면 정말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애초에 이야기가 어떤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16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다양한 문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기 위함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아귀가 좀 헐거운 부분들을 지적하며 골라내는 대신나름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다영국에서 고위공직생활을 했던 작가 토머스 모어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이 점만 해도 작가를 인정할 만하다원래 특권에 익숙해지면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책은 분명 작가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가상의 나라를 묘사하고 있지만그 안에는 당대 유럽의 상황을 반어법적으로 담아내는일종의 역사책처럼 읽히기도 한다왕과 귀족성직자들의 부를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빈민의 처지에 몰려 매일 중노동을 하는 상황그마저 일자리가 없어 결국 도둑이나 걸인으로 전락해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게 강한 처벌로 억누르기만 하는 당국자들물질주의에 물들어 부를 쌓는 데 여념이 없는 권력자들과그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지는 법률 등.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은 하루 여섯 시간만 일하고그러면서도 모두가 다 노동에 참여하기에 생필품에 부족함이 없고금을 노예를 묶어두거나 죄인을 표시할 때 사용함으로써 금을 귀하지 않게 여기려 한다는 장면은일부러 쇠로 화폐를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지니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고대 스파르타에서 추진되었다는 리쿠르고스의 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곳곳에 피식 웃게 만드는 문장들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어떤 게 진짜 보석인지 감정서를 써주지 않으면 사지도 않을 정도로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냥 모조품을 지니고 있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지적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통렬하게 때린다다른 사람들이 먼저 인사해주는 높은 지위에 오른다고삐걱거리는 내 무릎이 낫는 것도 아니고돈 머리가 치료되는 것도 아니니 무슨 소용이냐는 표현도 꼭 누구를 가리키며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유토피아적'이다그건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과 그 결과로 다시 한 번 형성되고 있는 특권계급도이제 자연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빈부의 엄청난 격차도극심한 물질주의로 인해 희생되어 가는 사람들의 뉴스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문제는 물질주의에 있고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두가 계획적으로 함께 일하고 소득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해결책은 언뜻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체제를 떠올리게 한다물론 앞서도 썼지만이 책이 구체적인 사회구조 개혁을 위해 쓴 것은 아니기에빠진 부분도 많고(예를 들면 장애인이나 노인처럼 생산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생활할까그리 솜씨가 좋지 못한 작가나 시인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온전한 그림을 다 그리기는 쉽지 않지만문제인식 자체에는 공감이 된다.


     오늘도 수많은 "유토피아"들이 쓰이고 있다저마다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지만여전히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건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지가 부족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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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1-0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노란가방 2021-01-08 20:33   좋아요 0 | URL
ㅎㅎ 갑자기 무슨 축하인가 하고 한참을 찾아봤더니..
이달의 리뷰로 뽑혔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
M. 스캇 펙 지음, 조종상 옮김 / 율리시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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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생명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두드러지고 있다사형제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벌써 오래된 일이고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촉발된 논쟁도 작은 문제는 아니다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안락사일 것이다서양의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허용되기도 했던 안락사 혹은 조력자살은갈수록 고령화 되고 있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스캇 펙은 이 주제와 관련해서 오래 전부터 많은 고민을 하며 책을 써왔다꽤 오래 전 영혼의 부정이라는 책에서 아주 좋은 통찰을 얻었던 적이 있었는데새로운 책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구입했다그런데 아뿔싸원제를 보니 같은 책이었다이 책의 영어제목이 “Denial of the Soul”, 즉 영혼의 부정이었다애초의 제목이 영어제목을 직역한 것이라면새로 낸 이 책은 그게 좀 어렵다고 느꼈는지 새로운 제목을 붙였는데사실 책의 내용을 다 읽고 보면 이 또한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긴 한다.

 


     저자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의 근거로 제시하는 삶의 질’ 문제가 안락사를 시행하는 이유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오늘날 많은 (마약성진통제는 충분히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중독의 위험을 과장해 처방과 투약을 늦추거나 주저하는 의료계의 관행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2장과 3장에서 저자는 육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도 적극적으로 진통제를 사용한 완화치료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외부생명유지장치와 같은 과도한 의료조치로 수명을 억지로 연장시키는 의료적 관행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치유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저자는 여기에 플러그를 뽑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얼핏 모순되는 것 같지만저자의 입장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의 환자가 겪는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의 제한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보인다.


     요컨대 저자는 안락사를 피할 가장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로 미뤄두고자 한다심지어 고통(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도 안락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오히려 고통은 우리에게 인생에 관해 뭔가를 배울 수 있게 만드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해는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우리를 이끈다저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오히려 인생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데인간 정체성의 핵심으로서의 영혼을 강조하면서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혼을 성숙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한다그에 따르면 성급한 안락사는 이러한 성숙을 도리어 방해한다.

 


     십수 년 전 읽었을 때보다 조금 더 저자의 주장이 선명하게 와 닿는다아마도 그 기간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수년 동안 집중치료실과 일반병실그리고 집 사이를 오고가시며 앓으시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병원에서 돌아가셨다입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와 가족 모두 쇠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병실이 몇 개인지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종합병원에서도 막상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수두룩하다는 걸 깨달으면 허탈해진다.


     생각해 보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 아니었을까사람이 그런 곳에 며칠을 머물면 정신착란이 일어난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몇 번이나 연속해서 고비를 넘던 중병원에서 다시 한 번 위험한 상태가 되었을 때 소생술을 실시할지 여부를 가족에게 물었고어머니와 여동생을 대신해 내가 결정을 내렸다의식도 없이 누워계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말했던 플러그를 뽑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고통은 자연스럽게 인생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배움의 양이 많든 적든사람은 그런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대해또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듯하다어차피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이라는 문에 도착할 수밖에 없고저자처럼(그리고 나처럼)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태로 그 문 앞에 서게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그 문을 열려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해 보이긴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너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나의 고통은 누구와도 직접 나눌 수 없는 것이니까저자의 말처럼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충분한 의료적약물적 처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제공된다면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막바지를 찬찬히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내가 그런 상태가 되어 입원한다면꼭 진통제 자기조절장치를 제공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관련 주제를 함께 읽고 이야기 해 보기 좋은 책이다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여러 견해와 주장들을 무조건 신봉할 필요는 없지만확실히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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