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심의 탄생 - 한 일본인의 삶에 드러난 일본 근현대 영욕의 민중사
오구마 에이지 & 오구마 겐지 지음, 김범수 옮김 / 동아시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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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중 하나였던 일제는 결국 패전을 하고 말았다. 이른바 전범국이 된 건데, 동경재판에서 많은 전범들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일부 핵심 전범들은 법망을 빠져나와 심지어 이후 총리까지 해 먹는다. 얼마 전 암살당한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그런 전범 출신 총리였다.


당연히 그 주요 피해당사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민족적 상처이다. 여전히 친일파라는 말은 모욕적 명칭으로 사용되고, 정치인이 이토 히로부미를 인재로 치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우리 국민의 교양수준이 일본의 발톱의 때보다 못하다”는 식의 표현(솔직히 이건 중2병 느낌의 문장이긴 했다)을 쓰거나 하면 욕을 먹고 국회의원 공천까지 취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 혹은 일본 국민 전부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적절할까. 여전히 제대로 된 정부차원에서의 사죄를 할 생각이 없고, 분명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소위 혐한으로 벌어먹고 사는 버러지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런 심의 혐오로 먹고 사는 잉여들은 어느 나라나 다 있다).


하지만 일본사회 역시 그 안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투쟁가는 아니라고 해도, 그들이 혐한을 나불대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지하거나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는 건 과하다. 우리네 수많은 소시민들처럼, 그들 역시 당장 먹고 사는 게 바쁘지 않을까. 정치 선동과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인사들과 엮이는 것 자체가 좀 무섭지는 않을까. 나아가 일본인이라고 해서 언제나 제국주의적 침략을 옹호하는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전쟁 말기 징집되어 만주 지역으로 갔다가 전투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있다가 돌아온 한 일본의 젊은이(물론 지금은 노인이 되었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오구마 겐지가 바로 그 주인공.


사실 오구마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역사가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그 시절 수많은 가난한 소농의 아들들 중 하나로, 국가의 징집령에 따라 동원되었다가, 그대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온, 하지만 이후에도 수많은 직장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애써왔던 한 소시민이다.


저자인 오구마 에이지는 바로 그런 오구마 겐지의 아들이다. 현직 대학교수인 아들이 아버지가 경험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버지의 상세한 구술을 받아 적으며 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책에는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따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흔히 역사적 기록이나 사회학 책 같은 경우는 공식적인 기록 같은 것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도 말했든 개인의 구술을 중심으로 일부 공식자료들을 덧붙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진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이런 방식으로밖에 보여줄 수 없는 것 같다. 언론이니 공식역사니 하는 것들에는 언제나 시끄럽고 큼직한 사건들만 나오는 법이니.





책 제목에 “양심”이라는 두 글자가 짙은 붉은 색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렇다고 오구마 겐지가 무슨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회운동가나 반전운동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에 끌려갔으니 변변한 기술 하나 제대로 배울 새가 없었고,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후에도 밥벌이를 위해 십수 번의 직장을 옮겨가며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다행이 전후 복구 붐에 올라타 나름의 사업체도 만들어 말년에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 또한 무슨 대단한 비전을 위해 했다기보다는 그저 먹고살기 위한 한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했다는 기억은 그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던 것 같다. 전후 그는 꾸준히 전쟁의 책임을 승계하고 있는 자민당에는 단 한 번도 표를 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은퇴 후에는 지역사회의 봉사화동, 환경운동에 (본인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자리라도 채워주려고 애썼고, 자신의 전쟁 경험을 기회가 되는 대로 알려서 반전의 신념을 전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 마찬가지로 포로까지 되었지만, 일본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오웅근씨의 소송에 공동원고로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재판은 대법원까지 3연속 패소였지만, 이런 결심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아직 “양심”이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에 관해 조금의 공식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곤 한다. 그런데 책 말미를 보면 일본정부의 이런 태도는 단지 외국인에게만이 아니라 자국민에게도 동일하게 취해지고 있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전쟁 피해는 국민이 다 같이 참고 견뎌야 한다”는 희대의 막장 논리로 정부의 공식적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결국 피해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너무 시끄러우니 입을 좀 다물게 하겠다는 의도로 위로금(그것도 정부 공식 예산보다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 후원금을 바탕으로 한)을 지급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단골 대처방식이다. 이게 일본 국민들에게야 정부 사정을 이해해 줄 것을 요구할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 돈 보다 사과가 우선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범국, 가해국의 국민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국 정부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반대하며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 수많은 소시민들 중에서 누가, 얼마나 이런 일에 온 힘을 다해 참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자국의 전쟁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부터 조금이라도 애쓰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양심적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작 전쟁의 최종적인 책임이 이들에게 잇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을 “일본 양심의 탄생”이라고 붙은 건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비단 일본에만 이런 양심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당장 우리 안에도 이런 양심들이 필요한 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베트남전에 참여해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과 만행에 대해서도,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은 4.3사건, 보도연맹사건 같은 사상에 근거한 민간인 학살들, 심지어 며칠 전에도 대통령의 비서관의 주둥이를 통해 폄훼된 5.18 같은 데서 더 많은 가해자측에 섰던 이들의 양심이 필요하다.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고, 기억하지 못하면 힘 있는 이들이 멋대로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려 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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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독일 프로이센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5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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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러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슬쩍 데려온 책이다. 책 제목부터 뭔가 흥미진진해 보인다. 명화와 역사, 그리고 프로이센까지. 사실 이런 책은 분류하기가 좀 애매하다. 사실 그림에 관한 책을 한 권 볼까 하고 집었는데, 역사가 붙어있는, 그런데 또 읽다보면 중심은 그림보다는 역사인(그렇다고 그림이 단지 참고 설명용으로만 사용되는 건 아닌) 그런 책이다. 그래도 출판사가 일단 예술 관련 쪽이니 예술 쪽으로 분류를 해야 할까 싶으면서도, 이 시리즈가 대체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복잡하다. 그냥 알라딘 분류법에 따라 미술사, 예술 쪽으로 넣자.




책은 오늘날 독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센의 역사를 다룬다. 정확히는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가문의 역사지만, 책에도 언급되듯 이 이름 자체가 좀 생소하니, 조금이라도 유명한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그리고 독일이라는 국명까지 붙였다(그런데 결과적으로 “독일 프로이센의 역사”라는 좀 어정쩡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참고로 이 “프로이센”은 종종 “프러시아”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후자는 영어식 발음, 전자는 독일어식 발음이다.


중세 십자군운동이 사실상 종결된 13세기 즈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직속의 독일 기사단(튜튼 기사단)은 성지에서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집단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법. 당시 교회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유럽의 북동부 지방을 겨냥한 북방십자군 운동을 시작했고, 여기에 이 독일기사단이 나서 땅을 정복했고 아예 자신들이 눌러 앉아버린다. 독일기사단국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250년이 더 지난 1510년 호엔촐레른 가문의 20대 젊은이가 이 기사단국의 37대 총장으로 선출된다. 물론 선출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이전에 모종의 작업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알브레히트 호엔촐레른이다. 그리고 10년 후쯤 그는 독일에서 한창 종교개혁을 진두지휘하던 마르틴 루터와의 만남 후 전격적으로 루터파로 개종을 한다. 애초에 십자군 운동에서 비롯된 기사단은 당연히 가톨릭이었지만, 이에 대한 반발은 별로 없었나 보다. 알브레히트는 기사단국을 해체하고 프로이센 공국을 세워 자신이 첫 공작위에 오른다. 그렇게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세습 영지가 된 것.


그리고 프로이센 공국은 얼마 후 왕국으로 승격할 기회를 얻게 된다. 1701년 스페인의 왕위를 두고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 벌인 전쟁에서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를 돕기로 약속한 대가로 왕국으로의 승격을 허락받은 것. 책은 1대 왕인 프리드리히 1세부터 마지막 9대 빌헬름 2세까지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간략하게 요약 설명해준다.





생각보다 금세 책장이 넘어간다. 애초에 생소한 이름들, 지역들이지만 저자는 적당히 자를 건 자르고, 붙일 건 붙여서 내용을 쉽게 설명해 낸다. 물론 여기에는 이 책의 기획 자체가 그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식이다보니, 설명할 그림이 있어야 하니까 내용도 여기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좋은 요약 능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보니, 일단 시작으로는 이 정도의 책으로 충분하겠다 싶다. 좀 더 상세하고 전문적인 정보는 또 다른 책을 찾아보면 될 일이니까. 결국 프로이센 왕국은 점차 세력을 키워 오늘날 독일을 형성하는 모체가 된다. 근세 독일과 유럽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정도의 상식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컬러 도판도 눈을 즐겁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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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의 로마 (지도 세트)
질 샤이에 지음, 정진국 옮김 / 이미지프레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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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도시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다. 일단 그 그림체부터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건 사야겠다 싶은 순간, 책값이 64,000원이나 된다는 걸 알았다. 대형 판형에 전면 컬러 도판에, 작가가 공들여 그린 그림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비싼 가격에 주저됐다. 개인 블로그에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온갖 할인과 마일리지 돌려받기를 해도 54,000원이라 너무 비싸 잠시 물러난다는 내용을 썼는데, 30분 만에 익명의 후원자님이 책값을 보내주셨다.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다.


책은 금세 읽힌다. 전체적으로 큼직큼직한 사진과 지도가 중심인 책이기 때문이다. 역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손으로 직접 그려낸 4세기 로마시의 모습인데, 책과 함께 딸려온 대형 브로마이드에는 이 모든 장면이 한 장에 담겨 있다(지금은 내 방 벽에 붙어 있다). 보는 맛이 있는 책.


이 정도 퀄리티로 로마의 곳곳을 묘사했으면 좀 더 흥미롭게 설명을 더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은 가공의 한 인물이 황제에게 전하는 속주 총독의 편지를 들고 로마에 들어오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별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그가 걷는 길을 따라서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는 식인데, 빠지는 건 너무 많고, 설명도 좀 부실하다.

고대 로마에 대해 어느 정도 선이해가 없다면, 이게 어디를 말하는지, 무슨 이야기인지 거의 와 닿지 않을 만한 내용(물론 이런 책을 사는 사람치고 고대 로마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이다. 또, 길을 가면서 보는 모습이라면, 그 본문 옆에 지금 걷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지도의 일부를 넣어두는 센스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건 뭐 글 한 번 보고 지도 한 번 찾아보고 하는 식으로 보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이 모든 불평거리에도 불구하고, 일단 손에 넣고만 있어도 뿌듯해지는 책. 다른 책들을 읽으며 필요할 때마다 찾아 들춰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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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경계의삶 - 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2
김아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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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난민”이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프리카나 중동 어딘가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워낙에 난민 지위 인정에 까다롭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여서, 이런 사유로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을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땅에도 수없이 많은 난민들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불과 70여년 전만해도 말이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지적에 눈이 번쩍 뜨였다.



책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군부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던 1960년대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다양한 종류의 난민들의 삶을 다룬다. 생각해 보면 이 시대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떠돌았다. 우선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이나 만주 지역으로 이주했던 이들이 해방을 맞아 귀국을 했고, 곧이어 터진 전쟁으로 북한 지역 주민들 중 상당수가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이 기간 애초에 남한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집을 떠나 피난민이 되었고.


그뿐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난민은 계속 발생되었다. 제주에서 일어났던 4.3사건과 여수, 순천 등지에서 발생했던 여순사건, 그 이외에 지리산 등지에서 이어진 빨치산 소통작전들 까지, 남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좌익 군사활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들까지 피해를 입었고, 그중 많은 수가 다시 한 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상당기간 동안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이제 막 세워진 정부와 공화국으로서의 전통을 전혀 갖지 못한 국민들,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에 집을 잃고 떠도는 수 백 만이 넘는 사람들까지. 이런 나라가 앞으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이런 상황을 수습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당시 존재했던 정부는 공화국에 대한 전통이 전혀 없는 2천 만 명의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무엇보다 그 자신들조차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인사들로 구성된 정부였다. 여기에 난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여유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선거조작으로 종신집권을 꾀하던 이승만이 하와이로 도망친 후 얼마 못가 군사 반란까지 일어났으니 설상가상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정부가 시행했던 조치들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실제 난민들의 삶에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선은 일부 난민들(4.3이나 여순사건, 빨치산 토벌과 관련된)을 발생시킨 요인이 당시 정부이기도 했지만, 사실 전쟁통에 제대로 된 행정경험이 부족했던 정부가 난민들을 모두 보살핀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정부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피난민들을 주로 농촌에 정착시키고자 했는데, 이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지를 다시 확보함으로써 생산력을 늘리려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긴 한데, 문제는 농지라는 게 그냥 아무 땅이나 갈면 되는 것도 아니고, 1년 한 번 수확을 하는 그 때까지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보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너무 당시 정부 탓만 할 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저자는 남한 내 반란세력 토벌 과정에서 이루어진 주민 소개와 공출 등의 부담을 지게 한 것에 대해서도 꽤 비판적으로 서술하지만, 그런 조치는 전쟁 상황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내전은 적과 아군의 구분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지라, 부수적인 피해를 논하는 게 사치일 수도 있고.(저자의 군대에 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했다고 보인다) 물론 그 과정에도 좀 더 세심한 주민 위무작전이 시행되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세력은 자신들의 부족한 정통성을 만회하려고 뭔가 성과를 내려고 안달이었다. 그 중 하나가 전국의 부랑아들을 데려다 갱생을 시켜 국가발전의 역군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들 “부랑아”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앞서 말했던 난민들이기도 했다. 애초에 축적된 자본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게 극히 힘들었을 테니까.


온갖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바닷가나 산지로 보내져 개간사업에 뛰어든다. 개간이 완료되면 그 땅을 분배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이게 또 생각했던 것만큼 잘 안 됐나 보다. 애초에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에 대한 처우 또한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까스로 수 년 간의 노력 끝에 개간에 성공했다고 해도, 행정착오라든지, 그 땅의 원주인이 따로 있었다든지 하는 이유로 제대로 분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일부 사건은 2000년대 초반까지 와서야 해결되었다고 한다).


사실 앞에서 봤던 내용들은 누가 오더라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지만, 군사정권에서 이루어진 이 강제 차출/동원에 근거한 개간 운동과 그 안에서 벌어진 다양한 육체적 학대, 합동결혼식(대부분은 서로의 얼굴도 몰랐다) 같은 비윤리적인 조치들은 비판받을 측면이 충분하다. 이 사업을 통해 농지가 늘어나고 수확량이 증가했다는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과거에 있었던 국내 난민들의 처지를 돌아보면서, 오늘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난민들도 자연히 바라보게 된다. 우선은 다양한 이유로 망명의 문을 두드리는 외국인들에게 여전히 우리는 차가운 반응만 보이고 있고, 여전히 절박한 처지에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여러 소외계층에 관해서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국가가 나서서 모든 걸 다 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낸 세금을 사용할 대는 충분한 공감대, 혹은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차라리 좀 더 빨리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과거의 실책과 문제를 되돌아보면서 좀 더 나은 정책적 노력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은 저자의 논문을 엮은 거라서 내용이 그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양한 도표와 책 뒤편에 실린 그 당시 행정명령서들, 또 생존자들에 대한 구술 인터뷰 자료 등도 포함됭서, 관련 연구를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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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7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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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사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글을 썼었는데, 좀 더 범위를 넓혀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국사, 특히 그중에서도 현대사에 관한 이해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잘 가르치지도 않을뿐더러, 소위 정체성 정치가 심해지면서 현대사에 관한 어이없는 주장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지난 100년만 봐도 우리나라는 정말 버라이어티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식민지 시절을 경험하기도 했고, 3년간의 내전을 겪었고, 민주 공화국을 건설했다가 군부 쿠데와 군사독재시절을 지나기도 했다. 군주를 처형하는 혁명 없이 다시 민주화를 이루기도 했고. 어지간한 국가가 2, 3백 년 동안 겪어야 할 일을 압축해서 100년 만에 모두 겪은 셈이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도시의 외적 변화들, 그리고 최근에는 극단적인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 소멸 위기까지...





물론 이 책이 그런 우리나라의 현대사 전체를 조망하게 해 주는 건 아니다. 책 제목처럼 우리나라 현대사의 여러 장면들 중 40개를 뽑아서 큼직한 주제 아래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기간 역시 한국전쟁 이후부터 90년대 까지 약 50년에 한한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뽑아 놓은 장면들을 보면 정말 이 나라는 다이내믹하구나 싶다.


시점이 시점이다 보니 개인적인 경험과도 어느 정도 겹치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라든지, 성수대교 붕괴, 다미선교회 휴거 사기 같은 것들은 어린 시절 뉴스를 통해 본 것들이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또,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성남의 역사와도 관련된 광주대단지 이주 사건 같은 것들은 좀 더 인상적이기도 했다.


성남시의 기원은 박정희 시절 서울의 미관을 위해 청계천 인근에 살던 빈민들을 거의 반 강제로 이주시켜 만든 광주대단지였다. 집과 편의시설, 일자리까지 만들어주겠다고 판자촌 주민들을 꾀어 보냈지만, 그들이 마주한 건 맨땅에 그어진 줄과 군용텐트가 전부. 물을 한 번 얻으려면 수 km를 걸어가야 했고, 하루에 겨우 버스 네 번만 지나가는 곳에 버려진 이들의 이야기는 군사독재 정부가 보여준 무능함과 잔혹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저자의 시각은 대체로 이 시기의 문제점, 혹은 어두운 지점들을 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지난 반 세기의 역사가 어둠기만 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감추고 숨기려 했던 이야기들도 있는 법이고, 그런 장면들은 누군가 애써 들춰내지 않으면 그대로 잊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와 기억들 또한 오늘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들이니 그냥 잊어버릴 수만은 없는 것들이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다양한 굴곡을 지나왔다. 주한미군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들을 처벌조차 못했던 약소국이었고, 독재정권은 각종 정치공작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빠른 성장을 위해 부실공사로 여러 건물들이 붕괴하기도 했고, 외적인 성장에 비해 성숙하지 못했던 내면은 끔찍한 범죄로 나타났다. 느리지만 그런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개선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가 정말로 그런 일들을 극복했나 싶다. 백주 대낮에 아파트들이 무너져 내리고, 무도한 정권은 노동자들을 깡패로만 몰기 바쁘다. 어느 샌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을 동원해 언론은 장악되어버렸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생각보다 세상이 잠잠한 건, 어쩌면 우리가 근대사를 너무 일찍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난 50년의 다양한 사건들을 스케치 해 가는 책이다. 익히 아는 것이 있더라도, 또는 근대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더라도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가는 데 제법 쓸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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