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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갈
니테쉬티와리 감독, 아미르 칸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레슬링.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한 번씩 보게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인기가 많은 종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한 경기규칙이나 점수를 내는 방법 같은 것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두 선수가 나와서 서로 붙잡아 매치고, 뒤집고 하는 운동에 그닥 박진감을 느끼지도 못했었다.
이 모든 생각이 인도의 여성 레슬러를 그리는 이 영화를 통해 바뀌었다. 레슬링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운동인지 확 와 닿는다. 그렇다고 카메라워크에 뭔가 엄청나게 공을 들이거나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심지어 음향 부분에서도 별다른 게 없는데도. 감독은 스토리의 전개만으로도 박진감을 만들어 낸다.
여성.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다. 심지어 비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 같은 신분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더더욱. 영화 초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금메달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마하비르(아미르 칸)이, 연달아 태어나는 딸들을 보며 실망하는 모습은 수없이 봐 왔던 남아선호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이내 그들은 ‘딸들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훈련을 시작한다.
물론 이 역시 부모의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또 하나의 억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하비르의 감춰진 마음이 드러나면서 이런 인상은 완전히 바뀐다. “우리 딸들은 능력 있는 여자가 되어서, 남편감을 직접 선택하게 될 것”(그렇게 만들겠다)는 아버지의 각오는, 십대에 팔려가듯 시집을 가서 평생 남편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도 여성들의 삶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기타와 바비타는 그렇게 인도 소녀들의 한 모델이 되었고, 기타가 영연방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후천 명의 인도 소녀들이 레슬링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 여성의 지위가 낮은 상황에서 그 소녀들이 그저 짐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뭔가 특별함을 내어보여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안쓰럽기도 하고.
협회.
영화 속 인도 레슬링 협회(?)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니다. 물론 일부 각색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복지부동의 자세로 선수들의 실력향상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영국 식민지 시절 이식된 티타임 시간은 꼬박꼬박 챙기는 꼰대들.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나라의 빙상연맹이나 수영연맹 같은, 더 한심한 실제 예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뿐. 물론 우리나라 양궁연맹처럼 회장이 사비를 털어 선수들을 지원하는 데도 있다지만...
뭔가 일을 하려면 일단 무슨 위원회니 협회니 하는 것들부터 만들고, 그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온 자원을 빨아들인다. 이게 어디 스포츠 협회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얼마나 많은 관료제 조직이 그렇게 사람들의 창의력과 잠재력, 의욕과 의지를 말려버리는지... 때문에 모든 조직은 늘 어느 정도는 새로워질 수 있는 자원을 떼어놓아야 한다. 안정성은 필요한 요소지만 지나친 보수성은 결국 조직에 속한 모든 이들을 죽인다.
훈련.
영화 속 소녀들의 훈련 장면은 유쾌하게 그려지지만, 실제 선수들의 훈련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다. 최근 난생 처음 헬스장에 등록해서 PT를 받기 시작했다. 매일 겨우 한 시간 남짓의 운동을 하는 것도 온 몸에 근육통이 장난 아닌데, 하물며 선수들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지나면서, 점점 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최근에는 다이어리에 하루하루 한 일들을 적으면서, 조금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정말로 뭔가에 매진해 본 경험이 언제인지.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러려면 몸이 편한 자리만 따라다녀선 안 되겠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던 영화. 개인적으로는 소위 엘리트 체육은 시대적 효용을 다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또 어느 자리에선 누군가에게 꿈을 품을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