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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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명성을 익히 들었던 작품을 이제야 만나네요. 바로 미국 작가 C.J 복스의 '오픈 시즌'이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입니다만 미국에선 꽤나 유명합니다. '조 피킷 시리즈'의 작가로 말이죠. 스릴러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죠. 조 피킷은 물론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 사람, 여러모로 특이한 주인공입니다. 일단 직업부터 그래요. 스릴러 소설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수렵 감시관이거든요. 


 형사도 아니고 사립 탐정도 아니며 변호사나 검사도 아닌, 수렵 감시관이라니! 얼른 동물을 함부로 사냥하는 자들 뒤나 쫓아다닐텐데 스릴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이야기가 너무 빤하니까요. 사실 수렵 감시인의 이야기는 스릴러 보다 서부극에 더 어울리죠. 조 피킷이 일하고 있는 와이오밍 주 자체도 그렇구요. 미국에서 10번째로 커다란 영토의 주이지만 인구는 미국에서 가장 적습니다. 남한의 두 배가 넘는 크기인데 인구는 58만 정보밖에 안된대요. 사람이 없는 빈 공간을 대자연이 채우고 있는거죠. 사실 와이오밍은 문명이 아니라 광활한 대지의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죠. 이 곳을 배경으로 한 '브로크벡 마운틴'이란 영화를 보셨다면 이 말을 금방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조 피킷은 그런 곳에서 일합니다. 불법 수렵을 감시하여 야생 동물을 보호하죠. 이러니 서부극과 더 잘 어울린다는 말인데, 그런데 조 피킷은 서부극 영웅다운 면모를 그리 보여주지 않아요.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불법 수렵을 하는 이를 적발했는데 오히려 그에게 역습을 받아 총을 뺏겨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니까요. 싸우는 능력이 별로 없는 편이죠. 거기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제외하면 가진 것도 쥐뿔도 없고. 그저 우리 주위에 흔한 보통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토록 평범한 조 피킷이란 캐릭터가 그런데 왜 시리즈가 계속될만큼 인기가 있을까요? 능력도 모자라고 흙수저이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는 신념 때문이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고 어려워도 타협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반드시 관철하고야 마는 신념, 뚝심. 바로 그것이 그에게 서부극 영웅다운 면모를 가져다주어 인기를 얻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조 피킷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번에 나온 '오픈 시즌'이죠. 그리고 현재 17권까지 나온 조 피킷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오픈 시즌'은 명불허전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뛰어난 스릴러입니다. 읽어보니 왜 이 시리즈가 이토록 유명한지 잘 알겠더군요. 와이오밍 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릴러에 서부극적인 분위기를 잘 융합시킨 작품입니다. 간단히 줄거리를 말해볼까요? 앞서 말했던 조 피킷이 목숨을 잃을뻔한 일이 프롤로그처럼 지나가면 드디어 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역시 프롤로그만큼이나 눈길을 확 잡아끕니다. 조 피킷이 아침에 출근하러 집을 나서자마자 자기 집 앞에 놓여져 있는 한 구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프롤로그에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던 불법 수렵인이었으니까요. 조 피킷이 그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나서 잘못하면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입니다.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죽은 사람과 같이 수렵을 하고 있는 일행을 찾아내야 하죠.  그 일행이란 '아웃 피터'란 이름의 수렵 그룹으로 지금 죽은 자와 빅혼 산에 있는 '엘크 캠프'에서 함께 야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절친한 동료 웨이시 그리고 보안관 부관인 매클라너핸과 함께 거기로 찾아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한 남자가 텐트에서 나오며 총을 쏩니다. 그에게 대응하다 어디서 날아온지 모를 총알까지 얼굴에 스친 조 피켓은 결국 동료와 함께 그를 제압하고 텐트 안을 들여다 보니 '아웃 피터'의 나머지 일행은 모두 총을 맞고 죽어 있습니다. 그것도 이틀 전에.


이것이 체포된 남자가 저지른 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은 전자로 마무리하려 하고 수사에 미진한 부분을 남겨두기 싫은 조 피킷은 혼자 그 사건을 계속 파보려 합니다. 그러던 차에 조 피킷에겐 거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수렵 감시관'이란 자리까지 온갖 난관을 뚫고 마련해준 '번'이 찾아와 이렇게 제안합니다. 자신이 빅혼 산에 천연 가스 수송관을 매설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참인데 수입도 좋고 명예도 높은 확실한 일자리 하나를 줄테니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이죠. 혼자라면 수렵 감시관으로 남겠지만 자기 때문에 늘 고생하는 아내와 딸 때문에 그는 갈등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장모는 앞길 창창했던 자기 딸의 인생이 자신 때문에 완전히 망쳐졌다고 원망하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결국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그는 번의 일자리를 수락하려고 하는데, 그 즈음 사냥 하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됩니다. 최근 산 일대에서 멸종 위기 종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멸종 위기 종이 발견되면 법에 따라 그 동물을 해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전면 금지됩니다. 사냥은 물론 개발도 말이죠.


와이오밍 주의 빅혼 산 풍경.


 조 피킷은 이번 사건이 혹시 소문의 멸종 위기 종과 관련있지 않을까 하여 그 쪽을 파고 들어 가는데 이게 또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금 피킷이 있는 마을은 몰락을 거듭하고 있는 중인데 천연 가스 수송관이 빅혼산에 설치되면 마을 경기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존재하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멸종 위기 종 때문에 마을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 없어져야 하냐며 해대는 타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보니 절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사건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바로 '천성산 도룡뇽' 말이죠. 천성산엔 멸종 위기 종인 도룡뇽이 서식하고 있는데 거기에 한국철도공사가 KTX 터널을 뚫으려고 하자 지율 스님이 천성산을 보호하기 위해 단식 투쟁까지 불사했던 일 말이죠. 그 때도 한낱 도룡뇽 때문에 국책 사업이 좌절되어야 하느냐난 목소리와 인간의 편의 때문에 한 종의 존재 자체가 소멸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목소리로 나뉘어 뜨거운 찬반양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발 이익과 환경 보호. 그 중 무엇을 더 우선시 해야 하는가는 MB 정부의 4대강 산업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죠. 해마다 만나게 되는 녹조 라떼와 가뭄을 보면 말이죠.


 그러니 '오픈 시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결코 우리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 피킷의 선택에 응원도 하게 되는 것이구요. 사회가 하나로 똘똘 뭉쳐 그에게 반대하고 나서는 데도, 그는 뜻을 굽힐 마음이 없습니다. 그 일을 하면 모처럼 찾아온 안정된 일자리가 날아갈 게 명약관화인 데도 불의에 눈을 감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설은 많은 반전들을 선사하면서 피킷을 정면 대결의 순간으로 데려갑니다. 소설의 후반부는 정말 굉장합니다. 특히 피킷의 딸이 악당에게 쫓길 때의 긴장감은 정말.


 제목의 '오픈 시즌'은 수렵이 허용되는 기간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선 오히려 사람이 사냥 당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죠. 아무리 강한 포식자라 하여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피식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제목의 '오픈 시즌'은 그런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보다 현명한 포식자는 언젠가 자신이 피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자일 겁니다. 환경 보호도 그런 준비 같은 게 아닐까요? 눈에 보이는 잠깐의 이익을 취하느라 생태계의 섭리를 무시했을 때 오래지 않아 우리가 어떤 대가를 받는지는 이미 많이 보아왔으니까 말입니다.


 '오픈 시즌'의 '오픈'이 타자를 해하는 오픈이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기꺼이 내 마음을 여는 '오픈'의 시즌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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