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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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야마 시치리.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일본 미스터리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년엔 벌써 몇 번째 만나는 그의 작품인지조차 얼른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왔으니까요. 어쨌든 나카야마 시치리는 2009년, 48세의 나이로 '안녕, 드뷔시'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으면서 일본 미스터리 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는데, 실은 그 때 또 다른 그의 작품 하나가 최종 본선에 올랐더랬습니다. 다시 말해 데뷔한 그 해, 시치리는 두 작품을 발표했고 모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놓고 다투었다는 것이죠. 해마다 많은 작품이 출간되는 일본 미스터리 세계에서 하나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두 작품이나 오른 것도 모자라 결선에서 치열에서 경쟁했다니 이 정도면 '대단한'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별 상관 없을지 않을까 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이번에 나온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안타까운 게 뭔지 혹여 아실까요? 그건 제가 아직 '안녕, 드뷔시'를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시치리의 두 작품 중 과연 어떤 것이 대상을 받을만 했는지 나름 평가할 수 있었을 텐데요. 여하튼 '안녕, 드뷔시'가 만일 대상을 받을만 했다면 그 작품은 분명 엄청난 걸작일 게 틀림 없습니다. 경쟁작 '개구리 남자 연쇄살인마'를 읽어봤는데, '와우!' 정말 뛰어난 작품이었거든요. 올해도 많은 일본 미스터리를 읽어봤습니다만, 근래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 최고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저번에 읽은 '속죄의 소나타' 보다도 훨씬 더 좋네요. 그리고 이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개구리 남자 연쇄살인마'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근원이 되는 소설입니다. 지금 그의 소설 중 대부분은 바로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 파생된 게 분명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직 '안녕, 드뷔시'를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만.


 만일 당신이 잔혹한 연출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면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는 단언컨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최상의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높은 퀄리티를 가진 미스터리 소설에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가의 모든 것들이 들어 있으니까요. 공감이 가며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에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충격 속에서 몇 번이나 거듭되는 반전 등등. 반전이 마구 펼쳐지는 후반부의 페이지는 불길에 타들어가는 마른 종이처럼 거침없이 넘어가 버립니다. 덕분에 '속죄의 소나타'를 읽었을 때도 못 느꼈던 것을 '개구리 남자 연쇄살인마'를 통해 하게 되네요. '이제라도 이렇게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말이죠.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만 가족과 연인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작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 시즌이거든요. 현실적 시간과 비슷하다면 소설 속 이야기가 뭔가 더 실감나게 다가올테니까요. 모두 네 명의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소설을 그 때 읽는 게 참 어울리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또한 이걸 자꾸 강조하면 그렇다면 1년 가까이 기다려서 이 소설을 읽으란 말이냐 나무라실테니, 얼른 이렇게 정정하겠습니다. 아무 때나 시간 나실 때, 아니 나지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꼭 읽으시라고 말이죠.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기에 이렇게까지 호객 행위를 하느냐구요? 그럼,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소개해 볼까요?


 인구 8만의 한노시(city). 소설은 마치 꺼져버린 부동산 거품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점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한적하고 고요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합니다. 거기 13층에서 거대한 도롱이처럼 매달린 시체가 발견되는 것이죠. 한 오라기의 실도 걸치지 않은 나신의 여성 시체가. 거기엔 범인이 남긴 다음과 같은 쪽지도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개구리를 잡았다. 상자에 넣어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지만 점점 싫증이 났다. 좋은 생각이 났다. 도롱이 벌레 모양으로 만들어 보자. 입에 바늘을 꿰어 아주아주 높은 곳에 매달아 보자.(p. 12)


 이제 왜 하필이면 제목이 '개구리 남자'인지 아시겠죠? 살해당한 시신이 발견되는 장소마다 범인이 살해한 정황 그대로 개구리에 대한 글을 놓아두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장의 소제목은 '매달다', '으깨다', '해부하다, '태우다' 등으로 모두 범인이 살해한 방식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범인은 두 번째는 70대의 노인을 폐차장의 차량 압축기로 시신을 으깨버렸고 세 번째는 일곱 살의 아이를 낱낱이 해부했으며 네 번째는 40대의 변호사를 불에 태웠습니다. 이렇게 계속 연속 살인을 저지르는데도 수사는 난황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희생자들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별도, 연령도, 직업도, 거주지도 모두 다양합니다. 소설에서 한 형사는 그냥 살인보다 연속 살인이 훨씬 더 잡기가 쉽다고 말합니다. 그건 살인이 거듭될 수록 단 한 번 이뤄지는 살인과 달리 희생자들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되어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더 수월해지는 까닭이죠.


 그러나 '개구리 남자'의 연속 살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희생자를 고르는 지조차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무차별 살인'이라는 게 확산되어가고 때문에 '한노시'에 사는 모든 시민들은 패닉에 빠져 버립니다. 언제라도 나나 내 가족이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용의자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경찰서로 몰려가 거센 폭력 시위를 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 사건의 한 가운데에 우리의 주인공 '고테가와' 형사가 있습니다. 아마도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을 읽어본 분이라면 이 이름이 친숙하지 않을까 싶네요. '속죄의 소나타'에도 조연으로 등장했던 형사니까요. 물론 '속죄의 소나타'에서 놀라운 추리력을 보여준 와타세 형사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개구리 남자' 이후로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 '와타세 - 고테가와 형사 콤비'를 자신의 작품에 계속해서 출연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제가 '개구리 남자'를 그의 작품 세계 원형이라 보는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개구리 남자'에서 주역은 고테가와 형사입니다. 그는 이제 막 부임한 초짜 형사로 아직 형사의 의무가 무엇인지 또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개구리 남자' 사건을 통해 그것들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실은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에게 부여한 임무인 것이죠.


 '스스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인 단어를 하나 꼽는다면 바로 이 말이 될 것입니다.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답을 찾아가는 게 이 소설에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 후반에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대중의 공포와 혼돈과 연결되어 있지요. 그렇게 한노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인 두려움 속에서 급기야 중세의 마녀 사냥과 다름없는 폭동을 벌이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순전히 스스로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대서만 그 답을 구하려 했던 데 있었으니까요. 이 소설은 언론에 대한 비판도 많이 담겨져 있는데, 언론이야 말로 이제는 국어 사전에도 올라야 할 것 같은 '기레기'란 말 그대로 제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모르는 이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호도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아니었던가요? 이처럼 이 소설은 타인에게 기생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많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를 당신도 보신다면 분명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제야 확연히 깨닫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체성'이라는 걸. 내 삶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니, 삶을 대하고 살아가는 태도 역시 오로지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나카야마 시치리가 작품을 통해 내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죠. 사실 요즘처럼 온갖 가짜 뉴스들과 댓글 부대가 활개치는 때엔 더욱 필요한 태도이기도 해서 그 마음까지 오롯이 전해지니 더욱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오늘은 눈이 내렸고 한파도 다시 찾아온다 합니다. 이런 시간엔 따뜻한 방구들에서 흠뻑 빠져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 소설만큼 좋은 피한(避寒)도 없을 듯 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는 거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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