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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의 죽음 ㅣ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0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은 냉혹하여라.
천상에서 가없이 노니게 할 때는 언제고
차디찬 등을 보이며 사라진 지금은
끝도 없는 추락을 선사할 뿐이니...
문득 사랑을 잃고 절망한 이들이
왜 자주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지 알듯도 하다.
지금 자신의 기분이 그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겠지...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이제는 세계적인 코지 미스터리가 된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의 열 번째 소설이 나왔습니다. '아도니스의 죽음'이 그것이죠. 재작년인 2016년 11월에 이 시리즈의 첫 권을 만났을 때만 해도 세계적으로 아무리 유명한 시리즈라도 쉽게 단종되는 우리나라 출판 환경 속에서 과연 얼마나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10권까지 나온 데다 책 날개를 보면 앞으로 네 권이 또 나온다고 하니 이대로라면 시리즈의 모든 작품이 나오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뭐,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가 32권에 이르긴 합니다만.
네? 맨 앞에 냉혹한 사랑 어쩌고 저쩌고는 왜 써놓았냐구요? 아, 그건 '아도니스의 죽음'을 읽어 보니 이 소설이 사랑이라는 것, 특히나 사랑이 사라졌을 때 남게 되는 것들에 대해 잘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네, '아도니스의 사랑'은 해미시 맥베스가 그동안 보여준 것처럼 살인 미스터리가 등장합니다만 그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놀랍게도 사랑의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시리즈를 계속 읽어보신 분들은 이 말만 듣고 '그럼, 해미시와 프리실라가 헤어지는 것이냐?'하고 물으실 지도 모르겠어요. '아도니스의 죽음'에서 해미시와 프리실라는 사실상 약혼한 사이니까요. 해미시의 오랜 짝사랑이 결국 이뤄진 것이죠. 그러나 제가 말한 상실은 이별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으로 인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사랑이 사라지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만개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쓴 말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사랑의 콩깍지가 눈에서 떨어진 상태 말이죠. 지금 생각하니 사랑의 상실이라 말하지 말고 '사랑의 사라짐'이라 했어야 할 것 같네요. '아도니스의 죽음'은 그렇게 세상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였던 사랑이 문득 사라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추운 겨울 날 이불 밖을 벗어났을 때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서늘한 한기에 대한 소설입니다.
시작부터 그것을 강조하지요. 해미시는 자기 집에서 일어나자마자 프리실라가 가져온 새 전기 스토브가 자신이 좋아하는 낡은 난로 스토브를 대체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난로 스토브를 정말 좋아하지만 싸움을 피하고 싶어서 프리실라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하지만 속은 타들어 갑니다. 그렇지 않아도 프리실라가 약혼한 이후, 해미시를 시골 경찰이 아니라 도시 경찰의 간부로 성공시키겠다고 이래저래 자신의 삶에 잔뜩 간섭과 통제를 해오던 참이었거든요. 스코틀랜드 특유의 독립심과 로흐두 마을의 한가한 경찰로 있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는 소박함 때문에 자신의 현실을 결코 바꾸고 싶지 않은 그는 그제서야 사랑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응시하게 됩니다. 존중과 포용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관리와 통제라는 것을 말이죠. 처음 사랑의 온도가 한창 가열되었을 때 존재 그 자체로 만족하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하고 그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아무 사건도 안 일어나서 영국 제도에서 가장 따분한 지역인 드림 마을에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처럼 아주 잘생긴 피터 하인드란 남자가 찾아옵니다. 겨울만 되면 세상과 단절된 느낌만 가득해지는 그 마을에서 한동안 살겠다고 말이죠. 프리실라가 가져온 새 전기 스토브처럼 드림 마을에 사는 여인들 삶으로 끼어든 것이죠.
그 전기 스토브가 해미시에게 사랑의 알몸을 보게 했듯, 피터 하인드란 남자도 드림 마을에 사는 여인들에게 똑같은 것을 합니다. 남자의 미모에 반한 나머지 마을 여자들은 앞다투어 그를 사랑하고 오로지 가지고 놀기 위해 거짓 사랑 놀음만 일삼는 그를 통해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의 진실을 체득하는 것이죠. 물론 그것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참혹한 대가가 뒤따릅니다. 그건 여인만이 아니라 피터 하인드 본인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드림 마을을 평지풍파로 몰아넣은 피터 하인드가 어느날 별안간 사라진 것입니다. 작가 M.C 비턴은 피터 하인드란 아도니스를 정말로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찾아왔던 것과 똑같이 사라진 것도 이처럼 갑작스럽게 만든 걸 보면 말이죠. 중개인에게 나타나 집까지 내놓고 간 것을 보면 마음이 변해 떠난 것 같지만 그래도 해미시는 피터 하인드로 인해 드림 마을 전체가 악의로 넘쳐났던 것을 생각해 볼 때 뭔가 사건이 생긴 것 같다고 여기고 휴가까지 바쳐가며 개인적으로 피터 하인드의 발자취를 추적합니다. 마치 어느새 사라져버린 자신이 생각했던 사랑을 뒤쫓는 것처럼 말이죠.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피터 하인드를 뒤쫓은 해미시의 개인적인 추적은 바로 불현듯 없어져 버린,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을 되찾고 싶은 열망의 표현이라고. 그러나 그 열망은 프리실라가 해미시와 도시에서 같이 살기 위해 사려고 했던 집의 가족을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산산이 부서집니다. 해미시가 곳곳에서 목격하는 것은 사랑의 완성이라 일컫는 결혼이 실은 사랑을 이루는 부드러운 살결을 다 썩어 문드러지게 하곤 오직 증오의 뼈대만을 남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소설의 마지막에서 해미시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당연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도니스의 죽음'은 사랑의 실패를, 사랑이 썰물처럼 쓸려버리고 난 뒤 해변에 남은 더러운 잔해들을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재미없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해미시 맥베스가 가지고 있는 코지 미스터리의 재미와 매력을 한결같이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니까요. 그러니까 여기서 제가 하고 있는 말은 M.C 비턴이 열 번째 이야기를 왜 이렇게 썼나 하는 궁금증에 대해 나름 답변을 해 본 것이라는 거죠. 사실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로맨스는 해미시 시리즈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준 중요한 동력원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 그것이 결실을 맺기에 이르러 과연 사랑이라는 게 뭔가란 질문을 이 소설에서 제대로 풀어보려 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허영으로 그치지 않고, 해미시가 바랐던 것처럼 존중과 포용으로 나아가는 길을. 자기 중심의 마음과 자기 주장의 말로 가득한 사랑이 아니라 타인 중심의 마음과 타인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것으로 충만한 사랑으로 향해가는 길을.
물론 그 해답은 이 소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건 다음의 이야기에서 밝혀지겠지요. 아,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