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언어 -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양정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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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리뷰라는 걸 쓰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아무 때나 아무 말을 별 생각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던 게 바로 저였습니다. 그만큼 지금 내가 내놓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점점 이럴 때 이런 말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한 문장, 한 단어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라는 책에 말이죠.


 이 책을 정작 손에 잡게 된 것은 저자 때문이었습니다. 지은이가 바로 양정철이었거든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으로 그의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정치 활동을 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문재인 정부가 자리를 잡자마자 문재인 정부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면서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나라마저 홀연히 떠났습니다. 그것은 간다는 기별조차 없이 몰래 말이죠. 범인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도와 모시는 주군이 드디어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면 마치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찾으려는 것처럼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힘쓸 터인데 오히려 그런 자신이 정부에 부담이 될까 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고 몰래 사라지다니, 거기서 작가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그 때부터 양정철이란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번 그의 목소리를 진중하게 듣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그의 책이 나온 것이죠.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말에 대한 책입니다. 그가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나에 대해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그러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직 살아계실 때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아 그 뜻을 밝혔는데, 정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민주주의적 진보를 이루려면 국민들 생각과 의식을 바꾸고 문화를 바꿔야 한다면서 정치를 하지는 말고 봉하 마을로 내려와 같이 좋은 책을 내자고 말이죠. 저자는 그 말에 큰 감화를 받아 정말 봉하 마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여 그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미완으로 남았던 계획이 드디어 결실이 되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식과 문화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말할 것도 없이 '말'입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쓰느냐가 우리의 의식을 만들고 문화의 성격을 형성합니다. 또한 말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있듯이 삶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말도 우리를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말에 대한 책을 낸 것입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시작되며 우리 생활 속 작은 일과 작은 생각 그리고 작은 언어부터 바꿔야 민주주의 역시 온전한 모습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그렇게 5장에 걸쳐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언어들에 은밀히 깃든 정치적 의미와 타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잘못된 사용법들을 알려줍니다. 이를테면 미망인이나 여류 같은 단어들 말이죠. 우리 역시 무의식 중에 자주 쓰곤 하는 말인데, 혹시 그 의미를 아시고 계셨나요? 우리는 남편을 잃고 홀로 된 부인에게 미망인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요, 사실 미망인의 뜻은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 입니다. 즉 '미망인'이란 말 속엔 '남편을 따라 빨리 죽지 왜 아직 살아 있느냐?'란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오직 여자고, 아내라는 이유 만으로 죽음을 강요하다니, 이런 폭력적인 말도 또 없을 것 같네요. '여류'란 말도 그러합니다. 많이들 그런 말을 쓰는데, 사실 그 말의 본뜻은 '기생'이란 말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자주 여류란 말을 붙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예술을 하는 여인의 대부분이 기생이었으니까요. 한 마디로 비하하는 말인 것이죠.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버릇처럼 자주 쓰는 말들엔 이렇게 아주 폭력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이 책엔 이렇게 평등 보다는 차별을, 존중 보다는 폭력을 은근히 조장하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도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써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글을 쓰면서 말의 무게를 진득하게 느끼는 중이었는데, 이 책마저 읽으니 한 마디의 말이라도 더욱 조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더군요. 저자는 마지막에 참된 민주주의 문화를 토착화시키기 위해서 그렇다면 말은 어떻게 되어야 하나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섬김의 언어, 겸손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막말과 암호 같은 말들('급식체' 같은 것들 말이죠)로 넘쳐나는 요즘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원래 말이란 소통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내 마음 같이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이란 걸 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지금 말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본분을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막말이나 암호 같은 말들은 소통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더 많이 드러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니까요. 거기에는 타인에 대한 그 어떤 배려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과 다르면 가차없이 차별하고 배제하겠다는 폭력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말이 더 많이 유행하고 인기를 얻는다는 게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이기주의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걸 나타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섬김과 겸손의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세상을 바꾸는 언어'라는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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